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59
358화 재앙(災殃)
급히 삼양현으로 가야겠다는 내 말에 삼악도 호걸들은 군말 없이 따랐다.
호풍환우를 일으켜 비바람을 불러온 이후로 삼악도 호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뭔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뭐랄까,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당장에 개구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담긴 시선이랄까.
“개구리가 되면… 설령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도 그사이 근손실 나겠지?”
“그냥 말라깽이로 만들어버리는 게 더 현실성이 있지 않을까?”
“그런 악랄한……!!”
살집 없는 매끈한 몸이 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저주라고 여겼다.
장강을 생활권으로 두고 있어서인지 반쯤은 뱃사람들의 성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미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고 할까.
하나하나 잘못된 생각을 바꿔주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샘솟긴 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흑기 너무 좋아. 히히힛.”
“흐끼, 그뉵, 흐끼, 그뉵. 우헤헤헤.”
다만, 정말로 사람을 개구리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면 몇몇 정도는 정말로 개구리 임시체험을 시켜주고 싶은 작자들도 있긴 했다.
이화에게도 진지하게 충고했다.
“이제 네가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알겠지?”
“예…….”
삼악도 방식으로 천마신교 마인들을 조련해볼까 하던 이화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고여 있는 물처럼 잠잠하지만, 한번 움직이면 기름이 부어진 불꽃처럼 심하게 날뛰는 편이긴 했다.
이화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그렇게 이화를 다독이는데, 경태세가 다가왔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줄 수 있겠나?”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태도다.
“예, 뭐.”
“삼양현은 어떤 곳이지?”
뭔가 심각한 내용인가 싶어 긴장했는데, 별다른 내용이 아니어서 의아할 정도였다.
‘뭐지?’
고개를 갸웃하는데 사부님이 타박하셨다.
[널 사람이 아닌 뭔가로 생각하는 거겠지.] [용이라든가, 아니면 아직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같은 걸로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구나.]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확실히 평범한 사람이 호풍환우를 부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경태세는 실제로 사람이 맞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때의 대답으로 오해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뭐, 그냥 평범한 마을…….”
[이겠냐?]장삼풍 사부가 날카롭게 말을 잘라내셨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평범하진 않았다.
“……이라고 하긴 좀 그런가?”
어릴 적부터 자라와 친숙한 곳이지만, 요 근래 바뀐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평범하지 않다는 내 말에 경태세가 눈을 반짝였다.
삼악도 호걸들도 조용히 내 말에 집중했다.
깊이 이해했다간 오히려 내 정신건강에 지대한 위협을 끼칠 양반들이라 그런지 그냥 되는대로 이야기를 해버렸다.
“구파 쪽 사람들이 좀 들락날락하고, 오대세가 사람들도 좀 자리 잡고, 천하십검 장 선배도 종종 놀러 오시며, 천마신교 사람들도 있는 그런 곳?”
말하고 나니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이게 남들이 들으면 어떤 느낌일지 고민하는데, 경태세는 오히려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천연합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군.”
“그렇기는… 하죠?”
구파와 오대세가는 같은 정파다 보니 어떻게든 연합할 수 있긴 했다. 여기에 흑애무천도 할아버지 지인이니 적어도 충돌을 피하자는 정도의 합의는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마신교가 함께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적어도 내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경태세가 내놓는 결론은 좀 황당했다.
“천마신교까지 포섭했다니 대단하군. 오대세가가 합류했고, 연 동생 신분을 생각하면 소림과 무당도 참가할 터. 화산과 공동파까지 가세했으면 정파는 사실상 규합했다고 해도 무방하군.”
“흑애무천에 우리까지 먹었으면 사실상 사파 무림의 힘 삼할을 모은 것이나 다름없지요.”
옆에서 듣고 있던 장금보가 말을 거든다.
“멸천회라는 곳만 쓰러트리면 무림일통(武林一統)이나 다름없겠는걸.”
갑자기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른다.
이러면 마치 내가 무림을 통일하기 위해 치밀하게 일을 꾸며온 야망 넘치는 효웅이 되어버린다.
난 그저 앞으로도 후임들이 신선이 될 토대를 쌓고자 할 뿐이다.
끽해봐야 무의 기반을 바로 세우겠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당연히 무림을 일통하겠다는 야심은 일절 없었다.
상상력이 심하다.
과대망상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하지만 경태세의 상상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혹시 관도 장악했나?”
“……예?”
“용은 천자의 상징이잖나. 후기지수도 아닌 연 아우가 용의 화신이라 불리고 있단 말이지. 그걸 관도 묵인하고 있고. 그렇다면 아우가 관도 장악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말이야…….”
큰일 날 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누가 들으면 역모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아니, 할아버지가 용린대 수장이긴 하지만…….’
가능한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에 털어놓지 못했지만, 제삼자가 나를 어떻게 볼 수 있는지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느껴졌다.
확실히 오해할 여지가 충분했다.
나를 향한 주목 역시도 후기지수일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조심해야 한다.
명심해야 할 내용을 가슴에 새기며 삼양현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
삼양현을 향해 달리는 도중에 마을과 도시가 있으면 한 번씩 훑으며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혈교의 공격을 받지 않았는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남쪽에서 대놓고 날뛴 움직임 이후로 혈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보가 부족하니 답답했다.
혹여나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일지도 모르기에 사부님들께 문의해보기도 했다.
혹여 호북에서 혈교가 혈겁을 일으킨 흔적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지만, 다행히도 혈교의 공격을 받은 마을이나 도시는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더욱 삼양현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남쪽에서 혈겁을 일으켜 시선을 끌고, 진짜 표적은 삼양현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제정신이라면 무당파 인근인 삼양현을 공격할 리는 없다.
하지만 달리 이야기하면 삼양현을 공격하기 위한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유시후가 혈교에서 비중 있는 자리에 올랐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끼워 맞춘 가능성에 불과하긴 하다.
문제는 이를 충분히 반박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불안한가?”
내 기색을 읽었는지 경태세가 엄격한 얼굴로 다가왔다.
“우두머리가 흔들리면 따르는 사람도 흔들리다. 정신 차려라!”
따끔한 충고다.
삼악도를 통솔하며 쌓아온 경륜이 느껴지는 충고에 나는 마음을 바로잡았다.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이미 삼양현과 가까운 곳까지 다다랐다.
이제 와서 결정을 되돌리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설령 판단 착오가 명백해질지라도 제대로 확인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런 가운데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역겨운 기색이 느껴졌다.
“……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감각 끝에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혈교의 대법을 받은 자들이 있다.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가늠해봤다.
‘아직 삼양현과는 거리가 있어.’
남쪽 장강 부근과 달리 이 근방은 충분히 익숙한 지형이다.
싸움의 여파가 발생하더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곳이다.
속도를 높이며 나는 내 존재감을 풀어놓았다.
차라리 내 쪽으로 시선을 끌어모으는 것이 낫다.
굳이 기습의 묘를 살릴 필요는 없다.
그저 정면에서 뭉개버리면 그만이다.
화아아아아아아!
기세를 드러내자 주변의 공기가 밀려 나갔다.
잡초가 납작 엎드리고, 잎사귀가 흩날린다.
광풍처럼 들고일어난 존재감이 저 앞에 모여 있는 자들에게 닿자 삽시간에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그 기색 속에서 음습한 살기가 섞이기 시작한다.
“먼저 갑니다.”
힘차게 땅을 박차던 발끝에서 능운금광보가 펼쳐졌다.
무공의 경지가 깊어짐에 따라 그 특색 역시 짙어진 능운금강보는 소림의 금강부동신법의 색채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거리가 좁혀진 내 신형에 혈교 마인의 눈이 경악을 담았다.
하지만 본능에 새겨진 움직임이 발도와 함께 참격을 그려내려 한다.
“카핫!”
정중동의 극치인 능운금광보로 거리를 좁혔음에도 용케 내 움직임에 맞춘 일격을 뻗으려 한다.
반응하는 속도가 빠르다.
한두 명이 아니라 모두가 대응했다.
수준이 높다.
하지만 그들의 대응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나는 더 빠른 데다가 이미 공세를 펼칠 준비가 끝나있었다.
앞으로 돌진하는 기세에 실어낸 소림권의 일초가 도검을 다 뽑아내지 못한 혈교 마인의 머리를 부숴버린다.
파각!
다음으로 이어지는 오른손이 무당권의 유려함을 담는다.
우득!
좌수로 강맹한 소림권.
우수로 유려한 무당권.
이제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좌우 쌍수가 단번에 혈교 마인 둘을 박살 낸다.
그제야 정면으로 검격이 날아든다.
“느려.”
방금 목을 비틀어 꺾었던 오른손이 유려함을 이어나간다.
뻗어오는 검으로 향한 내 손가락 사이로 차가운 검날이 끼워진다.
공수입백인.
날아드는 검세의 기세를 검날째로 휘어버리며 상대의 목으로 향하게 한다.
잡혀 비틀려 방향이 바뀐 검이 제 주인의 목을 날린다.
서억!
반쯤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눈에서 생명력이 사라져가는 적을 뒤로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상대해야 할 자들이 많다.
종 노와 삼악도의 호걸들도 사방으로 흩어지며 전투를 개시했다.
“응?”
그런 가운데 감각에 경종을 울리는 힘이 느껴졌다.
공기 속에서 차가운 냉기가 느껴진다.
이미 지나간 계절인 겨울의 한풍이 날뛰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기운이다.
“설아 누나?”
확신할 수 없지만, 설아 누나를 비롯해 백진성 아저씨와 한산월 아주머니는 삼양현에 머무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내 기세를 느꼈음에도 설아 누나가 나를 부르는 반응이 없다.
뭔가 다른 것에 신경 쓰기 힘든 급박한 상황인 것 같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타탓!
잔챙이들을 무시하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곧 싸우고 있는 설아 누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설아 누나와 싸우고 있는 상대도 보였다.
“윤시후?”
믿기진 않지만, 뒤로 물러나는 설아 누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은 윤시후였다.
천마신교에서 보았던 혈마의 힘, 대양무절기를 휘두르고 있다.
“운아?”
나를 발견했는지 뒤를 돌아보는 설아 누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하하하! 헛걸음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운이 좋군!”
윤시후가 크게 웃으며 설아 누나를 몰아쳤다.
순간 꼭지가 돌아버릴 뻔했지만, 짙은 위화감이 흥분을 막았다.
설아 누나는 윤시후의 공격을 큰 어려움 없이 막아냈다.
내게 한눈을 팔았음에도 대응하는 모습에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런데 뒤로 물러나고 있다.
“어서 피해!”
그러면서 이 자리를 피하라고 소리치고 있다.
그렇다는 건 설아 누나가 두려워하는 상대는 윤시후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보다 더 강한 자!
콰앙!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저 너머에서 튕겨져 나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백진성 아저씨와 한산월 아주머니.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
“기이하구나.”
그저 의문을 표할 뿐인데 목에 칼이 닿아있는 느낌이다.
“거기 있는 자, 누구인가?”
“멸천회주?”
어렵지 않게 그자의 정체를 예상할 수 있었다.
모든 재앙의 시작이 나를 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