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91
390화 신은 있다
서둘러 무림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정확히는 사천연합이 모인 화산이다.
그 전에 소림을 경유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단 구파도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의견을 던져놓긴 했지만,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 청조를 살펴야 할 듯싶었다.
장삼풍 사부는 황궁에 던져놓고 반년쯤 잘 먹이면 혼자 알아서 회복할 것이라 하셨지만, 약간이나마 손을 거들어준다면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물의 신력을 넣어준다면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청조의 상태를 살피면서 슬쩍 물의 신력을 흘렸다.
뺘앗! 빠뺘뺘빳!
“이 녀석도 급했네.”
물의 신력을 타고난 놈이라 그런지 신력을 불어넣자 신난다고 힘을 받아 간다.
그러던 중에 청조의 몸 안에서 무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무거우면서도 유연한 기운.
마치 물을 잔뜩 머금은 먹구름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행보와 달리 기운 자체는 정종의 심후함이 가득했다.
그런 가운데 특이한 힘이 단숨에 치고 나와 청조의 몸에 대고 있는 손에 닿았다.
손바닥이 짜릿했다.
‘뇌기(雷氣)?’
물의 신력을 활용하는 청조가 체내에 벼락의 기운을 품고 있다면 본인의 기운이라기보단 멸천회주의 힘이 남긴 여파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무래도 멸천회주는 벼락의 기운도 구사할 줄 아는 것 같다.
벼락이라면 천지간에 가장 강한 기운으로 평가받는 힘이다.
기억해둬야 할 것 같다.
“그럼 잠시 너를 맡아줄 곳으로 가자.”
간략하게나마 청조의 상세를 다스린 나는 그대로 청조를 둘러업었다.
뺘아!
***
당연한 소리지만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어지간한 초가집으로는 둥지도 되지 못할 크기다.
그런 거조를 둘러업고 달리니 시선을 안 끌래야 안 끌 수가 없다.
황궁도 별다르지 않았다.
어마어마하게 바쁘다고 했던 말이 거짓말인 것처럼 다들 나와서 청조를 바라봤다.
“이, 이건…….”
“천산의 신조입니다. 곤륜의 왕모낭랑(王母娘娘) 서왕모 님의 권속이지요. 연이 닿아 한동안 도움을 받았었는데, 상처를 입어 데려왔습니다.”
뺘아.
청조가 인사를 하듯 한쪽 날개를 들어 올리자 황제가 어안이 벙벙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심지어 할아버지도 많이 놀라신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그, 그게…… 어어…….”
특히 서왕모 님의 권속이라는 말에 크게 놀라는 것 같았다.
무리도 아니다.
청조가 정말 서왕모 님의 권속이라면, 서왕모 님 또한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후세계 또한 있다는 소리고,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살아생전에 엿같이 산 작자들이 죽음 뒤에 정말로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왕모께서… 진정…….”
“계십니다. 실존하세요.”
[아이야, 여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아니하느니라.]‘그런 것치곤 목소리가 꽤 흥에 겨우십니다만?’
“아마 지금도 이곳을 굽어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러지 말래두.]한 번 더 확인해보자.
“청조가 잠시 여기 머물러야 할 듯한데, 황도에 서왕모 님을 모시는 사당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요?”
뺘아.
[어휴, 얘도 참.]세 번이나 들으니 확실해졌다.
좋아하시는 거 맞다.
[허험! 하는 김에 곤륜십이선도…….]거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태을진인이 올라타신다.
위로 올라가면 상급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다.
“기왕이면 서왕모 님을 모시는 곤륜십이선 분들도 같이 모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뺘앗!
“……그래야겠구나.”
청조를 힐끔 살펴본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신이 있다면 사당이 대수겠냐는 표정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지 의문을 표했다.
“한데 서왕모 님의 권속이라는 영조가 어쩌다 이런 부상을 입었는가?”
“황궁과 무림에 드리워진 그림자. 뒤에서 모든 일을 꾸미고 암약한 자. 멸천회의 주인 멸천회주에게 공격받았습니다.”
“멸천회주?”
“장인태감의 뒤에 있던 자입니다.”
“으음!!”
내 말을 이해한 황제가 분노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내 그 존재가 신의 권속조차 이리 만들 수 있는 자임을 깨닫곤 얼굴을 굳혔다.
“그대가… 막을 수 있겠는가?”
황제가 한껏 기대하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제 사명입니다.”
“믿겠다.”
황제는 반색을 했다.
지금 황제는 내가 요구하는 건 뭐든 들어줄 것 같은 모습이었다.
***
알현이 끝나고 물러난 내게 어르신들이 슬그머니 다가오셨다.
다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시다.
그중 가장 괄괄한 천진패 어르신이 선봉으로 나서셨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핵심을 찌르는 물음이다.
다만, 이미 예상한 물음이다.
“아시다시피 할아버지의 손자입니다만?”
“그래?”
돌아온 반응은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안도하는 느낌이 크달까?
“뭐, 천산의 청조라면 나도 들어본 것 같긴 해. 서왕모 님 같은 대신의 권속인 영물과도 연이 닿았다는 걸 보면 신선들과 연이 있을지도 모르겠지.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반도원의 주인인 서왕모 님은 뭇 신선들의 숭배를 받는 대신이시니까.”
조경후 어르신이 은근슬쩍 찔러왔다.
나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해 너스레를 떨었다.
“잘 아시네요. 납탑도인 장삼풍, 보리달마 그리고 천마의 무맥을 이었습니다.”
“역시.”
“그렇군. 그런 거였어.”
그런데 어째 반응이 생각한 것과 다르다.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농담으로 치부해야 할 텐데, 다들 납득했다는 표정이시다.
“어라? 믿으시는 건가요?”
“보통은 안 믿겠지. 하지만 너는 보여준 게 있잖아.”
그렇긴 하다.
당장 어젯밤 황도 역모 사건 때도 직접 무위를 목도했거니와 서왕모 님의 권속인 청조를 보기도 했으니까.
“무당파 속가제자일 때 빌빌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이 년 동안 급성장해서 이만한 무위를 이뤄냈다? 사술이라도 불가능해. 차라리 신선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는 게 더 납득이 되는구나.”
“어?”
내가 듣기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게 내가 정곡을 찔려 어물거리자 어르신들이 벌떼처럼 달라붙었다.
“장삼풍 진인은 어떤 분이시냐? 정말 전설 속 주인공처럼 고아하신 분이시더냐?”
‘고아? 예? 고아(古雅)요?’
털털하다는 단어가 고아하다는 말로 치환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사람 잘 갈구면서 장난기 많으신 점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나! 나! 달마대사는 어떤 분이신가 궁금하네!”
‘달마 사부라…….’
[미친 ‘도’라이들아! 그만 지져!! 쿠르릉! 빠지지직! 그아아아아아…….]갑자기 뭔가 들린 것 같은데, 착각인가보다.
아무튼, 달마 사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좋은 분’이라 하겠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시는 달마 사부.
어쩌면 세 분 사부님 중에 제일 좋은 분이 아닐까 싶다.
[너! 너 이 새끼 내가 얼굴 기억해뒀다! 쿠르릉! 빠지지직! 그에에에에에…….]달마 사부에 대해 떠올리는데 자꾸 이상한 환청이 들린다.
“천마는 어떤 자인가? 선계와 천마라니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군.”
‘아니, 똥지게 메고 다니는 천마 사부의 모습이라면 당연히 상상이 안 가시겠죠.’
어쩌면 지금 천마 사부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답을 주기 전에는 놓아주지 않을 기세라 뭐든 말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분들이십니다. 뭘 생각하고 계시든 그것을 뛰어넘는(?) 분들이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거짓말은 안 했다. 거짓말은.
“오오오오오!”
“역시!”
다들 근사한 상상력을 발휘하시는 모양이다.
근데 왜 자꾸 진실이란 아픈 것이라는 격언이 떠오르는 것일까?
[저 녀석 저거 우리 맥이는 것 같지 않냐?] [흥! 유예해 두는 걸로 하지.]역시 장삼풍 사부는 눈치가 빠르시다.
거기에 천마 사부의 목소리가 곁들여진다.
‘유예’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잘 넘긴 거다.
그런 가운데 할아버지가 대전(大殿)에서 나오시며 미간을 찌푸리셨다.
“바쁜 아이 잡아두고 뭐하는 겐가.”
어르신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아니, 뭐…… 궁금하잖나. 아니 그런가?”
“맞아.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이야기일걸?”
“자네도 입장을 바꿔보라고. 죽은 공자 맹자의 근황을 알 수 있다면 우리랑 다를 바 없을걸?”
“암! 고건 못 참지.”
전대 고수들, 무림을 호령하던 어르신들이 할아버지 앞에선 아이처럼 군다.
어르신들의 말에 쓴 웃음을 짓던 할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운아.”
“예, 할아버지.”
“잘하고 오거라.”
할아버지의 말에는 신뢰와 염려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반드시 학의 머리를 꺾고 돌아오겠습니다.”
멸천회보다는 학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실 할아버지를 위한 대답에 할아버지가 조용히 웃으셨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설아 누나에게로 시선을 향하셨다.
“아가.”
“……예? 옙!”
가문 사람을 부르는 듯한 말투에 설아 누나가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운이를 부탁하마.”
“예!”
붉어진 얼굴로 크게 대답한 설아 누나가 포권을 쥐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
연청운이 떠나고 궁에 남은 연자염의 표정이 굳어졌다.
셋이 떠날 때까지만 해도 웃음기가 흘렀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짐이 무겁겠구나.”
연청운이 해내야 하는 일의 어려움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황궁은 물론 무림에까지 은연중에 뻗어있는 영향력.
거기에 서왕모의 권속이라는 영물조차 찍어 누르는 힘.
멸천회주라는 자는 떠올리기만 해도 두려운 존재였다.
하물며 피가 이어진 손자가 그 대적자(對敵者)다.
하지만 연자염의 그런 걱정에 다른 이들은 넉살 좋은 표정을 지었다.
“잘하겠지. 무애, 자네 손자인데.”
무애(無礙). 막히거나 걸림이 없다.
신분이나 소속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고, 옳은 일이라면 누구와도 대적하길 머뭇거리지 않았던 연자염이기에 붙여진 별호다.
그러고 보면 연청운의 행보 역시 그러했다.
언제나 막힘없이 달렸다.
지금도 달리고 있다.
“그렇군. 잘하고 오겠지. ……내 손자이니.”
드물게 자화자찬하며 손자 자랑을 하는 연자염의 얼굴이 붉어졌다.
“오호? 이거 봐라?”
“이 친구 이거.”
“크크크크.”
다들 연자염을 놀릴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이 튀어나오려는 찰나.
“급보입니다! ……북방이! 북방이 뚫렸다고 합니다!!”
마냥 웃고 즐길 수만 없는 소식이 황궁을 강타했다.
참담한 소식이다.
연청운의 발목을 잡을만한 사건이다.
연자염과 그 친우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도 움직이세.”
“흥! 당연하지. 아직 뒷방 늙은이가 되긴 이르다고!”
노익장을 자랑하는 노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 시각.
서역으로 통하는 비단길의 관문.
변방 방위의 요지이며, 북쪽과 서쪽의 침입을 경계하는 관문 입구에서 누군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공동… 공동파가 왜…….”
관문의 수비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눈앞에 있는 자를 응시했다.
공동제일검.
공동파 장문인 태공진인.
감숙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문파가 공동파다.
공동파 장문인의 방문에 의심 없이 안으로 들였던 경비대장은 관문에서 일어난 학살극을 바라봐야만 했다.
“도인의 수양은 가끔 거칠 때도 있는 법이지. 공동파를 위한 양분이 되어주게나.”
악귀처럼 웃는 태공진인이 경비대장의 목을 쳤다.
그리고 잠시 후 훤하게 열린 관문으로 한 무리의 군세가 거침없이 들어섰다.
동북방의 관문이 깨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서북의 관문마저 뚫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