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92
391화 수상한 움직임
언제부터인가 사천연합은 스스로 무림맹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림맹은 단단하게 뭉쳐졌다.
하지만 사파는 달랐다.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당장에라도 사분오열(四分五裂)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 현실에 대흑련의 련주 유시열은 골머리를 싸맸다.
‘빌어먹을! 어쩌다 이리된 거지?’
제육천 중 넷이 손을 잡았지만, 각자의 개성이 너무도 강한 데다 세마저도 백중세였기에 하나로 구심점을 모으지 못했다.
말만 연합이지 생각과 행동은 제각기였다.
흑살대는 살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바깥에서 겉돌다 유성을 맞고 멸문했다.
어이가 가출할 일이지만, 흑살대 본거지였던 검림산을 확인한 대흑련은 그곳에 남겨진 압도적인 파괴의 흔적을 똑똑히 확인했다.
극악사도 놈들은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헛소리만 늘어놓으며 나서지 않았다.
그나마 무상 거룡제를 잃으며 큰 피해를 본 흑룡회가 전면에 나섰기에 나름대로 싸움이 이뤄졌지만 흑룡회 하나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흑룡회에서 싸움에 미온적인 극악사도를 성토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그럼 빠질까?”
아쉬울 것 없다는 극악사도의 반응에 다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직접적인 전투에는 미온적일지라도 극악사도라는 이름값은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그 이름값만이라도 중히 여겨야 할 판이다.
‘그나마 정파가 맛이 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공동파, 종남파, 점창파가 변절했고, 화산파는 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망가졌다.
소림과 무당의 경우는 내부에 문제가 생겼는지 봉문이라도 한 것처럼 문을 닫아걸었다.
남궁세가는 도적연맹과의 싸움에서 주력 고수들을 대부분 잃었고, 모용세가는 북방의 습격에 말 그대로 멸절(滅絶)됐다.
하북팽가는 그렇게 쳐들어온 북방과의 싸움에 발목을 잡혀있어 무림으로 눈을 돌릴 형편이 아니다.
그랬기에 사천의 문파들로 구성된 연합에 화산파의 잔당이 합류한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을 돕는 의외의 세력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밀어버렸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을 돕는 세력이었다.
사파의 거대세력 중 두 곳인 흑애무천과 삼악도가 합류한 것도 황당했지만, 마교가 정파를 돕는답시고 가세했을 때는 이게 뭔 개소린가 싶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어이가 없지만 직면해야 했다.
그렇기에 사파 연합은 처음의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진지하게 대응하려 했지만, 지지부진했다. 이 꼴로는 뭘 해도 안 된다는 것이 대흑련의 판단이었다.
사실 대흑련조차도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뭐라 따질 수도 없었다.
태생적으로 다른 제육천에 열등감이 있었던 대흑련은 이번 기회에 다른 세력들이 약화되길 바랐다.
특히 흑룡회!
대흑련은 열 받은 흑룡회가 도박판에 전 재산을 꼬라박는 느낌으로 폭주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혼자라도 싸우겠다며 날뛰다 약화되었을 때 뒤통수를 쳐서 잡아먹을 계획을 은연중에 세웠다.
문제는 차곡차곡 준비를 진행시키던 도중 터진, 원대한 대흑련의 음모를 주저앉혀버린 사건이 발목을 잡았다.
다름 아닌 망해버린 흑살대에서 흘러나온 암살의뢰서였다.
상인이라는 족속들은 만만하다 싶으면 골수까지 뽑아먹는다.
하물며 대흑련은 태생부터가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버는 밀수꾼들이었기에 음험함으로는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운 수준의 극악함을 자랑한다.
경쟁자들끼리 암살 시도 정도는 기본소양이다.
서로가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음은 은연중에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누가 자신의 목을 노렸는지, 노리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된 대흑련 간부들 사이에서는 짙은 살기가 흘렀고, 심심치 않게 칼부림이 이어졌다.
다른 집 불타는 것을 보며 좋아하고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자기 집이 더 크게 불타고 있었다.
처음에는 흑살대가 벌인 공작인가 싶었다.
해서 보복으로 진즉에 파악했던 흑살대의 본거지를 급습했다가 검림산에 남겨진 흔적을 확인했던 것이다.
미리 빼돌려둔 자료인 것인지, 아니면 남아있는 잔해에서 자료를 얻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대로라면 대흑련의 존립 자체가 위험했다.
대흑련주는 어떻게든 내분을 멈춰야 했다.
그리고 내부의 분쟁을 막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을 썼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멍청이들아!”
“닥쳐! 댁이 의뢰는 제일 많이 했더만!”
“……과거는 좀 미뤄두자고.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겠는가.”
“무슨 미래? 댁이 우리 모가지를 썰고 모든 재물과 권력을 독차지하는 미래?”
“불신이 가득하구만. 뭐, 모가지가 썰리는 미래긴 하지. 그 모가지 중엔 내 것도 있을 테니 문제겠지만.”
“뭔 개소리야?”
“흑룡회와 극악사도.”
대흑련주는 내부의 단합을 위해 흑룡회와 극악사도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었다.
당연히 처음 반응은 고까웠다.
얼마 전까지 어떻게 찢어먹을지 고민하던 먹잇감이 자신들의 모가지를 딴다니 납득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요지부동인 극악사도는 또 왜?
“잘들 생각해봐. 지금 흑룡회 상황이 어때? 그런 흑룡회가 우릴 어떻게 볼까?”
“그야…….”
“지금까지 제대로 싸운 것은 흑룡회뿐이야. 결과적으로 흑룡회는 주력 중 한 명인 무상 거룡제까지 잃었지. 그런 가운데 우리가 서로 죽고 죽이며 싸운다? 흑룡회 입장에선 우리가 잘 차려진 만찬처럼 보이지 않겠어? 가뜩이나 피 좀 흘렸는데 몸보신 좀 하자는 거지.”
“에이, 흑룡회 놈들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데 그런 짓을…….”
“그놈들은 사파 아니냐? 사파 놈들이 자존심은 개뿔.”
“어어…….”
“게다가 극악사도 놈들도 수상해. 아니, 난 이놈들이 제일 수상해. 같이 싸우자며 연합에 참여는 했는데 움직이질 않아. 이거 우리보다 더한 새끼들이야. 뻔뻔하기가 안 닦은 밑구멍 같은 놈들이라고! 이 새끼들은 뭘 하려는지 가늠할 수가 없어!”
“그러고 보니…….”
“미친놈들이야. 광신도라고. 미친 광신도 새끼들이 뭔 짓인들 못 하겠냐고!”
대흑련주는 무조건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상관없었다.
그저 듣기에 그럴싸하기만 하면 그들의 음험한 머리가 알아서 상상력을 발동시킬 테니까.
실제로 말을 꺼낸 대흑련주 본인이 생각해봐도 제법 그럴싸했다.
그렇게 대흑련주는 대흑련의 분열을 막았다.
그렇다고 실제로 흑룡회나 극악사도와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그래 봐야 서로 제 살 깎아 먹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파를 쳐야 했다.
사파 거두 모임에 참여한 대흑련주는 흑룡회주 사자혼의 성난 시선을 멋쩍게 받아넘기며 어떻게든 정파를 치도록 유도하기 위해 궁리했다.
사실 흑룡회는 사실상 홀로 사천연합과의 싸움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대흑련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할지언정 겉으로는 반길 것이다.
문제는 극악사도다.
대흑련주는 극악사도의 장, 저들은 대사도라 부르는 자를 힐끔 바라봤다.
보기에도 기분 나쁘게 검은 옷으로 얼굴을 둘둘 싸매 가린 자들.
게다가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거대한 덩치의 호법을 대동한 채 회의에 참여했다.
‘정파와 한판 붙자는 자리에 합류해놓고도 요지부동인 이상한 새끼들.’
극악사도의 행동을 보자면 대흑련주가 아무렇게나 내뱉었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들을 구슬려야 했다.
“오늘이 이 모임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군.”
흑룡회주의 목소리에는 분기가 가득했다. 만약 이번에도 결론이 지지부진하다면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갈 기세다.
하지만 약삭빠른 대흑련주는 흑룡회주의 상태를 금방 알아챘다.
협박에 가까운 언행이지만 그만큼 몸이 달아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원래 이런 판에선 흥분하는 순간 팔할은 지고 들어가는 법이다.
‘아깝다. 암살의뢰문서 때문에 내분만 없었어도 제대로 벗겨 먹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당장은 제 코가 석 자인 마당이다.
“모두 자기 세력의 힘을 모아 총공격에 나선다. 여기 모인 셋 중 하나라도 거절한다면 우리의 동맹도 여기서 끝이다.”
으르렁거리며 말하는 흑룡회주의 협박에 대흑련주가 탁자를 내려치며 동의했다.
“좋소이다! 흑룡회주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우리도 전력을 다해보지요!”
너무 쉽게 승낙한다.
협박까지 하며 몰아붙이던 흑룡회주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당한 기분이 드는데?”
“그리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저희도 좀 다급한 상황이라서요.”
“……얼마 전에 터진 흑살대의 암살의뢰문서 때문인가?”
“뭐, 그런 거지요.”
대흑련주는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도 아니다.
“그렇군. ……외부의 적을 만든다.”
“예. 그러니 이번에는 정말 믿어도 됩니다. 저희도 뒤로 빼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거든요.”
“서로 이득이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군. 좋다. 믿어주지.”
흑룡회주는 사파지만 투귀(鬪鬼)에 가까운 자다.
그저 서로의 이득이 분명하다는 것만 보여줘도 납득한다.
흑룡회주의 시선이 극악사도에게로 향했다.
“댁은?”
어쩌면 이번 합의에서 최대의 난관이 될 존재.
대흑련주는 내심 긴장을 하며 상황을 주시했다.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
“합류하겠소.”
대사도를 설득할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던 대흑련주는 그 응답에 눈을 번쩍 떴다.
‘이 순간에?’
지금까지 요지부동이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 정도로 대사도의 대답은 순순했다.
‘뭔가 당한 기분인데?’
“크하하하! 그래! 이제야 뭔가 좀 돌아가는 것 같군!”
하지만 흑룡회주는 당장이라도 춤을 출 것처럼 기뻐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협박이 먹혔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허무하게 죽은 거룡제의 복수를 할 것이다! 기울어져 가는 정파의 썩은 기둥을 찍어내고 사파의 천하를 이룩하리라! 하하하하!”
흑룡회주는 이미 천하를 손에 쥐기라도 한 듯 파안대소했다.
***
회의가 파하고, 각자 모든 세력을 이끌고 다시 모이기로 약조하며 흩어진 가운데, 극악사도의 대사도는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끌끌끌.”
흑룡회주가 슬쩍 자신의 뒤를 따르는 거구의 무인을 돌아보았다.
“그대의 복수를 하겠다는구나.”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끌끌끌.”
대사도의 입에서 억눌린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대사도의 몸에서 가공할 만한 기운이 기세를 불렸다.
“길었다. 정말 길었어.”
극악사도에는 신(神)이 거한다.
극악사도는 신에게 언제나 허락을 청한다.
제발 자신들의 목줄을 풀어달라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구할구푼 같았다.
안 된다.
“힘이 있으면 쓰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신께서 계시고, 그런 신의 가르침은 극악사도의 힘을 키웠지만, 그 힘을 사용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아주 가끔, 세를 확장할 기회가 생겼을 때 다른 반응이 있을 뿐이다.
허락이라기보단 대답이 없는 순간.
안 된다는 말 대신 아무런 말이 없으신 순간이 있다.
그때가 되어서야 한 번씩 극악사도는 힘을 드러냈다.
가끔 가진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욕망을 드러내며 날뛰는 놈이 나오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모습을 드러낸 신의 분노가 그 우둔한 자를 찢어버렸다.
철저하게 망가트리며 다시금 강조했다.
“나는 너희에게 이런 짓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 광경을 몇 번이나 보아왔던 대사도는 확신했다.
자신들은 목줄이 걸린 채 사육당하는 짐승이라고.
사실 그동안 참전을 요구하는 흑룡회주나 대흑련주의 요청에 요지부동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답(無答)이 나왔다.”
대사도는 세 가지를 물었다.
흑룡회, 대흑련과 함께해도 되는지!
그동안 숨겨왔던 모든 힘을 꺼내도 되는지!
천하를 피로 물들여도 되는지!
모두 대답이 없었다.
그 반응에서 극악사도는 자의적인 해석을 넣었다.
무답은 곧 허락이라고.
“이제 움직일 때다.”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을 터트릴 것이다.
“모두 죽이고 노예로 삼으리라!”
사파천하 따윈 관심 없다.
세상을 피로 물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