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9
48화 발목을 잡다
의도적으로 문을 닫아걸고 있을 뿐, 나는 천마무겁수의 진수를 알고 있다.
기초 단계를 익히는 것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문제의 풀이 과정을 습득하는 것에 가까웠다.
어렵긴 하지만 못할 것은 아니었다.
공간을 파악하는 감각이 몸에 스며들자 현세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힘의 흔적이 멀리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자극적인 냄새를 맡는 느낌이다.
‘서방금신의 신력이란 말이지?’
숭산에서 금모후를 통해 얻은 힘은 몸의 기반이자 근본을 강화하는 힘으로 보였다.
어지간한 타격에도 상처를 입지 않고, 설령 피를 볼 만큼 큰 상처를 입어도 금방 회복하는 이능에 가까운 힘.
이 대단한 능력에 버금가는 힘이라면 이것 역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멀리도 갔네.”
높은 시야를 확보한 상태에서 방향을 가늠하고 보니 대략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흐릿하게 보였다.
벌써 개미보다 작게 보일 정도의 거리다.
이제 보니 미리 방화를 저지르기 위한 불씨 같은 것을 심어 놓고 먼저 몸을 뺀 것으로 보인다.
쫓아가기가 만만치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인데…….
“경치가 참 좋네.”
나는 잠깐 정신 건강을 위한 휴식을 취했다.
어쨌거나 보기에는 참 멋있는 절경이라서.
호연지기를 기르기는 딱 좋긴 한데…….
[뭐 하냐, 안 뛰고.]“……옙.”
밑이 잘 보이지도 않는 까마득한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니 주변 경치를 즐길 수가 없었다.
올라갈 땐 절벽을 오르고, 내려갈 땐 칼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 같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게 참.
[배운 걸 잘 활용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게다.]“…….”
서로 다리를 뭉갰느니, 팔을 뽑았느니 하시던 분들이 의견을 일치하는 걸 보고 있자니 제자 된 도리로 참 얼마나 가슴이 웅장해지는지.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들으실까 봐 차마 입에는 못 담겠다.
“갑니다.”
올라갈 때 정도는 아니지만 비스듬한 경사가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곳을 향해 한 걸음 내딛자 몸이 아래로 쑥 꺼지듯 떨어졌다.
아직 익숙해졌다 할 만큼 몸에 익지 않은 무공을 펼치며 내려가는데, 확실히 발에 닿아오는 감촉이 다르다.
원래대로라면 미끄러운 빙판길마냥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어야 할 텐데, 지금 발에 닿는 감촉은 질척한 진흙 위를 미끄러져 가는 느낌이다.
정신만 차리면 저기 단단한 암반에 머리 박는 일은 없을 거란 소리다.
“다리 사이가 이상해에에에에에!!”
하지만 다리 사이에서 올라오는 이 묘한 느낌이 정신줄을 흔들어댔다.
뭘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기분 나쁘게 중독성 있는 느낌은.
“예에엡!”
정신없는데 천마 사부가 말까지 시킨다.
이거 먹이시는 건가?
그렇다고 무시했다간 후환이 두렵다.
[뭔가 다른 느낌 안 들디?]“이상했어요오! 불쾌하다고오오 느낄 만크으음 기분 나쁘게에에에!”
[이상하다? 기분 나빠?]“예에에엡!”
[흠! 그렇다는 건…… 제대로 된 마공을 익힌 놈이 아니거나. 사도의 사법과 연이 닿아 있다는 소리 같은데.]“사도요오오오?”
[어쨌거나 너는 잠깐이나마 극마의 경지에 발을 들였었다. 마공을 익힌 놈이라면 오히려 상대가 위압감을 느꼈어야 정상이지. 한데 불쾌감을 느꼈단 말이야. 그럼 마도는 아니야. 사도와 연이 있을 게다. 그것도 극사도(極邪道).]“어어어, 그럼 어떻게에에 되는 겁니까아아?”
[둘 중 하나겠지. 천마신교가 아니라 사파에서 보낸 놈이든가, 아니면 내가 아는 것보다 신교의 상태가 더 거지 같든가. 빠드득!]천마 사부가 두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하시는데, 두 번째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는 이 가는 소리가 무척이나 살벌했다.
뭐, 때려잡아 보면 알겠지.
구파, 그중 화산파 제자가 후기지수 딱지를 뗄 나이의 수준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는 있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기엔 내가 얻고 배운 것이 너무 많다.
오히려 마교 쪽 간자를 조진다는 점을 천마 사부가 떨떠름해 하지 않을지를 걱정했었는데 잘됐지.
“읏차!”
가파른 곳을 거의 다 내려왔을 즘 나는 가볍게 몸을 튕기며 방향을 틀었다.
위에서 본 방향을 향해 날린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펼치는 보법의 이름 그대로 빠르게 쏘아지며 뻗어나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교의 간자는 움직임이 굼떴다.
[기척을 죽이고 움직이는 거겠지. 불을 질렀으니 연기가 날 텐데, 연기를 보고 복귀하는 다른 화산파 녀석들과 마주치면 안 되니까.]“아하!”
화산파에 불이 났는데 정작 화산파 내에 있던 녀석이 그걸 끌 생각은 안 하고 하산 중이다? 다른 화산파 제자와 마주치면 변명할 말이 궁색하다. 단박에 의심을 살 수가 있다.
게다가 화산파 제자들은 현재 화산파 주변의 마을들을 넓게 포진하듯 순찰 중이기 때문에 마주칠 확률도 높았다. 조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정상적인 길을 택해 내려온 보람이 있었다고 할까. 어쨌거나 까마득하던 거리는 확실하게 좁혔다.
그리고 따라잡았다.
파라락!
달리는 것을 멈추고 떨어져 내린 내 몸에서 옷이 요란하게 펄럭이는 소리를 냈다.
“어딜 그리 바쁘게 가세요?”
“너는…….”
상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더라?”
“……상우경이다. 화산파 제자 상우경.”
화산파의 제자라 소개하는 말에 내 입술 끝이 비쭉 올라갔다.
염치가 없네, 이 양반.
[병신.] [허!허! 아무리 근본이 그쪽이라 해도 배운 곳이 화산이거늘.]사부님들이 상우경이란 양반을 씹었다.
‘암기.’
대화를 나누는 중 이 상우경이란 양반은 내가 보지 못하는 시야의 사각에서 슬그머니 손바닥에 암기 하나를 꺼냈다.
장삼풍 사부의 청경은 사물이 움직일 때의 파장을 읽는 느낌이다. 감지한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릴 거다.
그에 반해 천마 사부의 감각은 눈을 거치지 않고 공간 전체를 삼켜서 머릿속에 쑤셔 박는 느낌이다. 공간 전체를 파악하는 감각이니 공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그 두 가지가 합치니 사방팔방에 내 눈이 있는 느낌이다.
‘좋네.’
다 보인다. 급전 필요할 때 도박장 가서 야바위판을 조지면 밥 굶을 일은 없을 것 같다.
“화산파에 불이 났는데, 불 안 끄세요?”
“바깥 분들께 소식을 알릴 사람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피어오르는 연기만 봐도 알아서 오실 것 같…….”
쌔액!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 말을 이어나가는 순간 암기가 날쌘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단검이었다.
미간을 노리고 뻗어오는 단검은 빨랐다.
하지만 미리 그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고개를 옆으로 살짝 젖혀 피할 수 있었다.
진짜는 그다음이었다.
사악!
목젖을 노린 검격이 발검과 함께 날카롭게 뻗었다.
“휘유!”
검 끝이 닿은 건 아니지만 피부가 후끈했다.
암기의 존재를 미리 몰랐다면 첫 공격에 어설픈 움직임으로 피했을 거고 뒤이은 공격에 목이 갈라졌겠지.
기습과 속공이 어우러진 좋은 공격이었다.
“정파의 방식이 아니네요?”
“흥!”
조금 전까지 화산파의 제자라 말하던 상우경의 눈이 가라앉았다. 살기를 품은 눈빛엔 더 이상 올곧은 정광이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이빨을 드러냈다.
‘좀 더 긁어 볼까?’
“방금 한 수로 죽었어야 했는데. 아쉽죠?”
“입이 가볍군.”
파락!
방금 목을 노렸던 때만큼 빠른 검이 심장을 노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만큼 빠르다.
‘이거 대단한데?’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장삼풍 사부의 청경과 천마 사부의 공감각의 결합은 상상 이상이었다.
‘다 보여.’
보인다.
느껴지고 읽힌다.
감지된다.
검이 어디로 어떻게 날아올지 다 알겠다. 몸이 움직일 수만 있다면 코앞에서 휘둘러도 다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증거로 찌르는 검을 피하는 순간 횡으로 변화를 그리는 검 놀림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당연히 간단하게 피했다.
상우경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새겨졌다.
“촐싹거리긴.”
“그쪽은 뒷심이 없고요.”
“…….”
“게다가 검을 쓰는 것도 간결하고 변화가 부족한 것이 화산파 검법답지 않네요?”
“뭘…… 안다고!”
“검격이 연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검세를 이어나갈 힘이 부족하다는 건데, 그건 검을 휘두를 때 그만큼 폭발적으로 힘을 쏟기 때문이죠.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싶으시다? 그렇다고 너무 눈에 띄게 화려한 검법을 펼치면 멀리서도 잘 보이겠죠?”
“…….”
“생각보다 잘 알죠?”
본의 아니게 조롱해 버렸다.
조롱이 맞나?
분명한 건 상우경의 입이 합죽이처럼 닫혔다는 거다.
“마음이 급하신가 봐. 진정해요. 흥분해서 좋을 게 뭐 있다고.”
“……닥쳐.”
상우경의 미간에 잡혀 있던 내 천자가 더 깊어졌다.
민낯이 벗겨진 상우경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사람 속 긁는 재주가 제법이구나.]천마 사부가 재미있어하신다.
반면 달마 사부는 내가 입을 놀리는 걸 가만히 보고만 계시다 말문을 여셨다.
[도발하는 게냐?]“심리전이라고 해 주세요.”
나는 상우경이 듣지 못할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건방진!”
그런데 상우경은 사부님께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것마저 도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발끈해서 덤벼 왔다.
상우경의 검에서 자색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겹치고 겹쳐 축첩 된 경이 외부로 드러나 번뜩인다.
사람 따윈 간단하게 찢어발길 수 있는 기운이 수십 가닥의 변화를 그리며 뻗었다.
“……뭣?!”
하지만 내 몸은 상우경이 상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나는 이미 상우경의 영역 안으로 파고들었다.
능운금광보가 간격을 완벽하게 지워냈다.
게다가.
‘흥분했네.’
흥분한 무인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동작이 커진다.
상우경은 내가 순간적으로 얼마나 빠를 수 있는지 몰랐고, 나는 그 틈새를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기세를 담아 가차 없이 내지른 주먹이 상우경의 가슴을 때렸다.
콰앙!
“컥!”
일격에 나가떨어진 상우경이 바닥을 두어 번 구른 다음에야 가까스로 몸을 세웠다.
순간적으로 내공을 크게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기에 가능한 대처였다.
화산파 밥을 이십 년이나 먹은 짬은 있다는 거지.
“그래 봐야 달라질 것도 없지만. 이거 보여요?”
“너!”
상우경의 눈이 부릅떠졌다.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내 손에 들려 있는 거였지만.
상우경이 조금 전까지 품에 넣어 두었던 물건이었다.
쇠로 만들어진 철패였는데, 마(魔)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부스스!
그런데 갑자기 내 손에 들려 있던 철패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어?!”
상우경이 놀라 소리쳤지만, 이번엔 나도 놀랐다.
마치 제 역할을 다한 듯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철패라니.
“어라?”
그저 놀랐을 뿐인 상우경과 달리 나는 그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철패를 쥐었던 손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어떤 힘이 힘차게 안으로 들어와 내부에서 뒤섞이고 화합하는 것이 느껴졌다.
토생금(土生金).
땅이 쇠를 생한다.
“이것 봐라?”
새로운 힘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