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50
49화 왜 이렇게 찜찜한 느낌이 들지?
‘뭔가 새로운 힘이 생겼다는 건 알겠는데…….’
적다.
땅의 기운도 그랬지만 이 서방금신의 힘도 일반적인 내공과 다른 존재감이 있다. 그렇기에 더욱 적나라하게 보였다.
“한 번이나 쓸 수 있을까?”
땅의 힘을 전해 준 것이 무려 등선을 앞두고 있던 거대한 존재가 남긴 유산이었으니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는 있다. 이해는 된다. 이해는 하지만…….
[역시 담긴 힘이 미비한가 보군.] [괜찮다. 네가 그 힘의 본질을 받아들였다는 게 중요한 부분이니라. 부족한 부분은 키우면 그만이고. 마침 네게 땅의 힘이 있으니 문제는 없을 게다.]천마 사부와 달마 사부는 대충 이렇게 될 거라 짐작하고 계셨던 것 같다.
두 분의 대화로 볼 때 이거라도 건진 게 어디인가 싶기도 하다.
“뭐라 지껄이는 거냐.”
뿌득!
그저 얻은 기운을 확인하고 평했을 뿐인데, 무시당했다고 여겼는지 상우경 저 양반이 이빨을 갈았다.
본의 아니게 또 도발한 셈이 된 것 같다.
‘화산파에 숨어들어온 간자치곤 너무 소심한 거 아닌가?’
저쪽 사정이야 굳이 듣고 싶지 않지만 간자로서의 소양은 부족해 보인다.
“알아서 흔들려 준다니, 나야 좋지만.”
뿌득!
이번엔 들었으려나?
상우경은 더 이상 실력을 숨길 생각이 없는지 검 전체에 기운을 담아냈다.
중첩된 경(勁)이 유형화되었다.
검기(劍氣).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시작한 이상 멀리에서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뒤가 없으시다?”
“그래. 적어도 네놈은 죽이고 간다.”
“하하!”
죽음을 각오하고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면 나도 경시할 수 없다.
“어제였으면 좀 위험했겠지.”
지금은 아니다.
장삼풍 사부의 청경과 천마 사부의 공감각이 합일된 공능은 엄청났다.
보고, 느끼고, 읽고, 감지한다.
상대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악해낸다.
“장삼풍 사부에게 혼날 일이 많이 줄어들겠어.”
내 무당권이 좀 더, 아니 훨씬 더 완벽해졌다는 이야기다.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는 무당권의 태극선(太極線)은 상대의 움직임을 보다 명확히 파악할수록 그 힘이 커진다.
쉽게 말해 무당권의 위력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힘마저 얻었다.
[오행에서 금(金). 쇠의 기운은 특별하다.] [땅, 불, 물, 나무는 자연에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쇠는 사람의 손에 정련되어야만 비로소 그 형태를 갖출 수 있다.] [그야말로 인위(人爲)가 낳은 힘이라 할 수 있지.]천마 사부의 말이 줄지어 이어진다.
어서 내게 그 힘을 써 보라는 듯 부추기셨다.
달마 사부 역시 말을 더하셨다.
[오행의 다섯 기운은 저마다 상징하는 의미가 있음이다.] [나무(木)는 강하게 뻗어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고, 땅(土)은 모든 것을 담아 수렴하고 발산하는 것을 의미한단다. 불(火)은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하며, 물(水)은 모이고 모여 응축되고 결속되는 것을 의미하지.] [마지막으로 쇠(金)는 변형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다듬어지는 기운이라 할 수 있다.] [서방금신의 힘. 백제의 진력은 네가 상상한 것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다.]내 안에 들어와 땅의 힘과 만나는 순간, 물 만난 고기처럼 생동한 쇠의 기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말씀들이었다.
상상한 것을 빚어내는 힘.
이대로라면 너무 범위가 넓어 오히려 활용하는 법을 깨우치기 어렵다.
다만 지금은 분명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천 갈래로 쪼개 주마.”
덮쳐오는 검의 폭풍.
만개한 매화의 꽃잎이 거센 바람결에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는 듯하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그 매화꽃의 흐름 속에.
‘검날의 날카로움을 이기는 강건함.’
나는 겁 없이 손을 넣었다.
카앙!
순간 짜릿한 통증이 손에서 느껴졌다.
‘괜찮은데?’
유형화된 검기는 쇠를 진흙처럼 베어 버리는 예기를 지닌다. 태극선으로 검로를 읽고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비스듬히 쳐낸 것이라 해도 검기의 날카로운 예기를 맨손으로 감당했다는 건 굉장한 거다.
“검기를?!”
그 증거를 상우경이 보여 주고 있다.
상우경의 눈은 더 이상 확장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확장된 눈동자의 중심, 거울처럼 눈앞을 비추는 망막에 검을 쳐내고 거리를 좁히는 내 움직임이 비쳤다.
어떻게든 검을 수습하여 다시 휘두르려 하지만 늦다.
‘늦었어. 비스듬히 쳐낼 때 엇박을 걸었거든.’
검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오히려 반발력을 이용해 더 빨리 거둘 수 있다.
하지만 비스듬히 비껴내면 동선에 낭비가 생기고, 뻗어나가는 힘을 되돌리기 위해 추가로 힘을 써야 한다.
빈틈이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거기에 수작까지 걸어놨으니 빈틈은 더욱 커진다.
‘거두는 동작이 최소 두 박자는 느려.’
서방금신의 신력을 담고 있던 증표를 회수할 때 먹인 일격. 그 여파가 남아 있는지 힘을 원활하게 쓰지 못하는 느낌이다.
공격이랍시고 뻗은 검격을 제대로 거두지 못한다?
그럼 처맞아야지.
빠악!
“컥!”
깔끔하게 들어간 주먹이 안면에 꽂히며 실한 소리를 냈다.
상우경의 몸이 그 자리에서 두 바퀴는 돌다 땅에 떨어졌다.
의식까지 날아갔는지 쓰러진 상우경은 간헐적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압해 둘까.”
마침 잘됐다 싶었다.
“점혈하는 법 좀 가르쳐 주세요.”
강의는 역시 실습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점잖은 걸로 가르쳐 줄까? 아님, 좀 막 나가는 걸로 가르쳐 줄까?]“……그것도 종류가 있어요?”
[목적에 따라 특정 혈을 점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방식이 다르지. 일종의 암호 같은 거다. 암호란 것은 복잡할수록 풀기 어렵고.]‘배우고 쓰기도 어렵겠죠.’
또 무슨 천외천의 세계를 보여 주시려고.
걷기도 전에 나는 법을 배우는 건 이젠 좀 피하고 싶다.
“그럼 점잖은 걸로 부탁드립니다.”
[그쪽이라면 내 것을 배우는 게 좋겠다.]내가 방향을 정하자 달마 사부가 나서셨다. 의외로 순순히 물러나신 듯 천마 사부에게서는 더 이상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점혈은 기의 흐름을 막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혈 자리에 관한 지식은 이미 있었기에 달마 사부가 가르쳐 주는 점혈법을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건 다른 이야기지만.
“어디 보자…….”
움직임을 봉할 생각이라면 마혈(麻穴)을 제압하면 된다고 했다. 사부의 가르침대로 어깨와 양팔의 뼈가 만나는 지점을 짚은 내 손끝에서 나온 작은 기운이 상우경의 몸에 스며들었다.
뚝!
“오호.”
간헐적으로 부르르 떨던 상우경의 몸이 나무토막이라도 된 듯 뻣뻣하게 굳었다.
제대로 점혈이 된 모습이다.
크륵!
“……응?”
그런데 갑자기 이 양반 왜 피를 토하지?
[걔 왜 그러냐?]“그걸 제게 물어보시면 제가 뭐라 답하겠습니까?”
당혹스럽긴 매한가지다.
내가 잘못 배워서 제압용이 아니라 살상용을 쓴 건가?
일단 수습을 해야 할 것 같아 몸의 이곳저곳을 주물러 보는데 묘한 변화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라?”
불쾌한 느낌이 사라지고 있다.
명줄이 끊어져서 그런 것인가 싶었는데 곧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크르륵…….”
끓는 피를 끊임없이 토해내는 상우경의 코와 입에서 허연 점액질 같은 것이 꾸역꾸역 쏟아져나왔다. 머릿속에 있어야 할 것이 코와 입에서 나오는 거다.
끔찍한 광경이지만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끔찍한 핏덩이와 뇌수 사이에서 사람에게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독(蠱毒)이다. 네가 느낀 불쾌감의 근원이겠지. 정파의 방식으로 제압당하면 발동되게 되어 있었나 보군.]천마 사부가 담담한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신교 돌아가는 꼬라지가 참.]확실히 이건 사도다.
[이딴 것에 의지하니 그따위로 허약해지는 거지. 쯧!]천마 사부가 불쾌감을 감추지 않으셨다.
보고 있는 나도 속이 별로 안 좋고.
누가 보면 오해하기 딱 좋은 광경일 것 같다.
입과 코에서 뇌수를 쏟아내고 있는 화산파 제자와 그와 싸운 나.
만약 이걸 누가 본다면?
“그 아이…… 자네 짓인가?”
“켁?!”
창졸간에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자허진인이 보였다.
***
자허진인은 걱정했던 것보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증거들이 있으니…… 믿을 수밖에.”
물론 상우경이 마교의 간자라는 내 주장을 자허진인도 단번에 믿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우경의 시신을 살피는 도중 내 말을 뒷받침할 증거들이 나왔다.
“자하신공을 빼돌렸다니…….”
상우경이 절대 가지고 있을 수 없는 비급이 품에서 나온 거다.
게다가 상우경이 토해낸 고독의 흔적 또한 이 살인이 내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부끄러운 일이구먼.”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처럼 완벽하게만 보이던 자허진인이 허탈해 보이는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손에 쥔 자하신공의 비급을 꾹 움켜쥐더니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미안한 일이네만, 여기에서 일어난 일들을 비밀로 해 줄 수 있겠나? 외부에 알려지면 화산파에 누가 될 일인 것 같아 그러네.”
화산파의 장로답다고 해야겠다. 세간의 평판에 화산파가 상처 입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아, 예. 그런 거라면.”
“고맙네.”
순순히 수긍하는 내 대답에 고개까지 숙이며 감사를 표한다.
이어 더 이상 숨이 붙어 있지 않은 상우경의 시신을 수습했다.
“마도의 무리가 선을 넘었구나.”
자허진인의 목소리에는 짙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분노 어린 목소리에서 언젠간 반드시 이 빚을 돌려주겠다는 전의(戰意)를 느꼈다.
어쩌면 조만간 그간의 평화를 날려버릴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화산파의 선두에는 분명 이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 한편으론 죽은 상우경의 시체를 보며 혀를 찼다.
‘저쪽은 정말 운이 없었네.’
자허진인이 다가온 방향은 상우경이 도주하려던 방향이었다. 아마 내 개입이 없었어도 그가 화산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배신자의 말로로는 꽤나 어울리는 마무리라 하겠다.
‘이것도 인과라는 건가.’
마치 처음부터 끝이 정해져 있는 과정의 풀이를 지켜보는 느낌이다.
‘뭐, 더 이상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까.’
손님에게는 손님의 자리가 있는 법. 그 선을 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화산파는 내부의 간자를 잡았다. 상우경이 화산파에 불을 지르고 자하신공을 훔친 방식을 고려한다면 근래 화산파 주변에서 일어나던 모든 사건사고들의 원흉 역시 그의 짓으로 판단된다.
나는 화산에서 얻어야 할 것들을 모두 얻었다.
해낼 것을 해내고 이룰 것을 이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찜찜한 느낌이 들지?’
그럼에도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뒤처리가 깔끔하게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앞서 올라가는 자허진인의 어깨 위, 생기를 잃은 상우경의 시신을 바라보는 나는 근거 없는 예감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
뭔가 걸리는 게 있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연청운의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 건 다 본 것 같으니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자네가 그런 표정을 지으면 꼭 사고가 터졌었는데 말이지.”
묘한 웃음을 흘리는 천마를 보며 달마는 한 소리를 던졌다.
“제자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겠으니, 나는 나대로 그것을 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
“제대로 된 대답은 아니구먼.”
“하하하!”
천마는 달마의 걱정을 웃음으로 흘려 넘겼다.
지옥으로 출근을 하며 천마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분명 말해 주려 했단다.”
천마는 지옥에서 화성촌을 습격했던 마적들을 짓밟고 그들에게 정보를 구했다.
그들이 토해낸 정보 중에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
[지옥에서 족친 놈이 뱉은 정보대로라면…….]“감사합니다.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인과율이라는 문제도 있다면서요? 그거 이야기하시는 순간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들어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잖아요.”
복면으로 얼굴을 감추었지만, 본질을 꿰뚫어 본 무격의 영혼은 알아보았다.
“듣지 않겠다고 한 건 너란다, 제자야.”
마적들에게 제안을 했던 자는 분명 ‘나이가 많은’, ‘오래된 자’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