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61
60화 천마의 목적
‘마교에서 문제가 터졌다……라…….’
전쟁이 벌어졌을 때 가장 위험한 곳은 당연히 세력 간 경계선이 맞닿아 있는 곳, 바로 최전선이다.
사천이 그 최전선 중 한 곳이다.
더 골치 아픈 것은 정·사·마 세 곳이 모두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경우 끝내주게 미쳐 돌아갈 곳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사천 지방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무슨 일인데요?”
조금 전까지 산적들에게서 정보를 빼냈기에 생각을 가다듬기 위한 혼잣말로 보일 상황이라 거리낌 없이 중얼거릴 수 있었다.
[얼마 전에 흑풍마제라는 놈이 뒈져서 지옥에 왔다.]‘마제(魔帝)?’
별호란 그의 행적과 업적을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중 특별하게 취급되는 단어가 왕(王), 제(帝), 황(皇)이다.
흑풍마제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별호만 놓고 본다면 마교에서 상당한 고위급 인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부가 언급한 것을 보면 자연사는 아니겠네요.”
[내분이다. 누가 더 강한가를 논하는 서열 정리도 아니고, 정쟁(政爭)으로 뒈졌으니 병신 같은 짓거리를 한 거지.]천마 사부가 생각하는 마의 본질은 순수한 본성이다.
남들 위에 올라서고자 하는 정복에 대한 욕구.
누구보다 강하여지고자 하는 열망.
인간이 가진 욕망에 대한 솔직한 모습이 곧 마(魔)의 시작이라는 거다.
오직 자신만이 존귀하다는 천마 사부의 극단적인 자기애의 근본은 거기에서 시작한다.
당연히 천마 사부에게 정치라는 개념은 달갑지 않은 일일 테니, 정쟁 중이라는 마교의 현 사태는 짜증을 낼 만도 하다.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려나?’
원초적 욕구만으로 움직이는 순수한 마(魔). 어딘가 변질된 정파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마교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맞춰 놓기라도 한 듯 정파와 마교 둘 다 어딘가 하나씩 망가져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도 뭔가 웃기는 일이다.
“마교 꼬라지가 개판인 건 천마 사부에겐 짜증 나는 일이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다행인 것 같은데요.”
별호에 제(帝)라는 단어를 붙인 양반이 죽어 나갈 정도면 마교의 내분이 그만큼 심각한 상황일 것이다.
[병신들끼리 지지고 볶을 테니까?]“나쁘게 말하자면 뭐…….”
역시 천마 사부는 장삼풍 사부나 달마 사부와 다른 맛이 있다. 말을 듣는 것만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래도 그 ‘천마’이시다 보니 심리적인 거리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심 그것도 괜찮지 않느냐는 내 반응에 천마 사부가 피식 비웃으셨다.
[내부가 혼란스러울 때 그를 봉합하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게 무엇일 것 같으냐?]“그야…….”
천마 사부의 말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다.
내부의 혼란을 봉하고, 단합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공통된 외부의 적.
전쟁.
‘미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인내하는 도중 천마 사부의 말이 이어졌다.
[사천에서 시작할 거라 들었다. 사천이야 원래부터 혼란스러운 곳이라 뭐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니까.]“하아…….”
정파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인데, 마교라는 벽력탄에도 불이 붙어 있다.
내분 상태라고 하니 마교의 일부 세력이 일을 꾸미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위협이긴 매한가지다. 게다가 그놈들의 생각대로 일이 흐르게 되면 마교 전체가 움직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
‘된통 걸렸다는 게 이런 건가.’
지금 사천으로 들어갔다간 뭔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것 같다.
당장 포기하고 튀어야 하는가 싶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내게 서신을 맡긴 할아버지의 행동으로 볼 때 이 일의 중요성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마교의 수작질을 막아낼 기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천상에 계신 사부님들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만, 내 수준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아무리 중토신공 삼단공을 이루고 삼재일기공을 얻었다지만, 이 정도 수준으론 마교의 절정 고수 한 명만 나서도 사투를 각오해야 한다.
사실 약관도 채 안 된 새파란 애송이가 그 정도를 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내 목을 따겠다고 날아들 칼날은 그런 나이 차를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삭초제근을 하겠다며 필살의 의지를 불태우는 작자들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어? 잠깐…….’
“지옥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지불해야 할 부담이 크다고 하셨는데, 인과율 괜찮습니까?”
[뭐, 이 정도쯤이야. 얼마 만에 생긴 제자인데 이 정도 편의를 못 봐줄까.]“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뭔가 좀?’
천마 사부의 무공론만 봐도 알 수 있듯, 천마 사부가 추구하는 선은 이타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단순히 내가 제자라서, 혹은 마음에 들어서 손해를 감수하셨다고 생각하기엔 어딘가 껄끄럽다.
‘뭔가 노림수가 있으신 것 같은데.’
천마 사부가 내게 이 정보를 전해 줌으로 해서 얻는 이득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별게 다 머리를 아프게 만드네.’
할아버지의 일, 정파의 움직임.
마교의 움직임에, 이제는 뭔가 있을 것 같은 천마 사부의 속내까지.
이번 일은 정말 많은 것이 얽혀 있다.
“무호야.”
“오야. 머릿속 정리 다 끝났냐?”
내 부름에 백무호가 담담하게 답했다.
산적들이 내놓은 정보에 이 녀석 역시 상황이 복잡하단 걸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혼잣말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겼나 보다.
‘지금부터 펼쳐질 일들은 네 상상 이상의 일들이 될 거란다.’
문제는 털어놓을 수 있는 정보도 아닌 데다가, 털어놔 봐야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깊고 깊은 미안함을 털어 버릴 방도는 하나뿐이었다.
“사천요리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아, 그건 나도 들어봤지.”
“맛있는 거 많이 사 줄게.”
많이 먹자.
먹고 힘내야지.
“어, 그래. 고맙다?”
뜬금없는 배려에 백무호가 나를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봤다.
뭔가 날카롭게 찔러오는 시선을 피해 산적들을 향했다.
“순탄하게 입을 연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정보를 말해 줬으니 살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주지.”
쓰레기는 치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해도 껄끄러운 일은 있는 거다. 그게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라면 더더욱.
아직 무림에 덜 물들어서 이런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에 무감각해지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 말에 산적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닐 텐데.’
기회를 준다고 했지, 멀쩡히 살려 주겠다고는 안 했다.
나는 내가 부러트린 칼을 산적들 앞으로 툭 찼다.
“무공 익힌 놈들은 단전을 폐하고, 나머지 놈들은 손발 근맥을 끊어.”
“그, 그건!”
“그럼 우리더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라고!”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살려는 주겠지만, 계속 산적질하게 둘 생각은 없어.”
양자택일의 기로에 처한 산적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몇몇이 떨리는 손으로 부러진 칼을 잡아 자신의 손목 부근으로 가져다 대었지만, 차마 긋지는 못하였다.
[부질없는 짓이다.]천마 사부가 뻔한 결과라는 평을 내리셨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산적들의 손이 땅바닥으로 가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흙을 움켜쥐었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시겠지.”
나는 내가 제안했던 기회와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였다.
***
“나약해.”
자오경 속에 비친 연청운의 모습을 보며 천마는 불만을 표했다.
“마음에 안 드나?”
“뻔히 결과를 알면서도 선택지를 주었다는 건 나약함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마음에 들 리가 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평가만 내린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했다는 것은 인정해 줘야겠지. 적어도 변명거리를 만들어 도망치는 얼빠진 짓거리는 안 했으니까.”
“그러긴 했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들 그렇게 한다.
자신의 행동에 변명거리를 만들고 거기에 기댄다.
그게 편하니까.
제자는 그러지 않았다.
“본성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건가?”
“그 역시 마(魔)에 이르는 길이니까.”
본성을 언급하는 장상품의 물음에 천마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신이 있기에 마가 있다. 신마(神魔)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이치의 축이지. 우리의 존재가 그를 증명한다. 허나 선악(善惡)은 사람이 만든 것. 세상의 이치가 아닌 사람만의 관념일 뿐이다. 우리 제자가 악에 빠질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도에 닿지 않을 거란 이야기도 아니지.”
마(魔)와 악(惡)은 동일하지 않다.
마가 세상의 이치라면, 악은 사람의 관념.
연청운의 타고난 본성은 악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마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잊지 마라. 그 아이는 이미 마에 닿아 마를 이루었다. 그 아이에게 마도는 이미 논외의 길이 아니다.”
“굳이 그걸 부정한 적은 없는데?”
“그럼 다행이고.”
장삼풍의 답을 들은 천마는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천마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장삼풍은 어깨를 으쓱했다.
천마로서는 드물게 속에 담긴 말을 꺼냈던 것이다.
“꽤나 진심이구만.”
제자로 삼았다 하지만 결국 지상의 존재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보지 못한 거울 속의 존재일 뿐이다.
그저 먼 세상 속에 있을 뿐인 유희적인 존재로 치부할 수도 있다.
“저 친구라면 그리 생각할 거라 여겼는데 말이지.”
실질적으로 마교라는 집단 역시 반쯤 유희에 가까운 충동으로 만든 것에 가까웠다.
천마가 생전에 거둔 제자 중에서도 실제 애정을 담았던 존재는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오직 자신만이 존귀하다는 생각만으로 천상에 이른 존재이니 필연적인 귀결이었을 것도 같지만.
그랬던 천마가 청운이에게는 상당히 집착하고 있다.
“나야 좋지.”
천마의 그런 집착이 장삼풍은 기꺼웠다. 천마가 진심이라면 그만큼 제자의 손에 쥐어지는 게 많을 거다.
“저 친구가 던져 주는 게 평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거야 뭐, 청운이 녀석이 감당할 문제고.”
던져 준 것들을 기가 막히게 받아먹었던 제자 녀석의 재능을 생각하면 그쪽은 크게 걱정이 안 됐다.
문제는 현천상제였다.
“이 양반이…… 정신 나간 짓을 하더니 잠잠해졌어.”
천상은 오래된 집단이다. 당연히 사고(思考)가 굳어져서 말이 통하지 않는 꼰대들이 한가득하다.
지상과 연결된 제자의 모습을 유연한 관점으로 즐길 신선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꼰대질을 할 신선들이 몇 배는 많을 것이다.
현천상제를 끌어들인 이유는 천마의 독선을 대비할 목적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윗선의 꼰대질을 막기 위함이 더 컸다.
물론 현천상제의 성격을 생각하면 한 번 정도는 사고를 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 그가 저지르려 했던 짓은 예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다행히 자오경이 알아서 막기는 했지만,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천마에게 따로 하나 더 받은 보패를 통해 현천상제가 하려던 행동을 엿봤던 장삼풍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거렸다.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생겼다.
자오경은 뭔가 거대한 인과의 흐름에 개입되어 있다.
그리고 연청운은 그 흐름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흐름의 끝은 어디일까?
“이것도 인연이라는 것이겠지.”
장삼풍이 자오경에 비치는 연청운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
“삼풍이 녀석, 속을 떠보기는.”
장삼풍의 태도와 언사에서 그 속에 묻어 있는 진의 정도는 쉬이 읽어낼 수 있었다.
굳이 속에 있는 말을 털어낸 것은 아직 자신에 대한 경계심이 남아 있는 장삼풍을 납득시키기 위함이었다.
“현 상황에서는 어쨌거나 손은 잡아야지.”
아쉽게도 제자 놈은 독점할 수 없다. 독점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천상에 매여 있는 몸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미 선점하고 있던 장삼풍과 달마에 대한 지분도 인정한다.
거기까지는 납득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공평하게 나눠야 하는 것 아니겠나?”
연청운은 정파 쪽의 사람이다.
그건 공평하지 않다.
“나누려면 확실하게 나눠야지.”
천마의 입가에 그려지는 웃음이 짙어졌다.
“이름이 너무 순해서 그런지 어울리지는 않지만…… 뭐, 관록은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익숙해지면 문제없겠지.”
불길함이 느껴지는 짙은 웃음 사이로, 장삼풍이나 달마가 들었으면 경악할 말이 흘러나왔다.
“천마(天魔) 연청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