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60
59화 불씨를 안고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 거야?”
“사천.”
“어우야! 여러 가지로 험하겠네.”
백무호가 말한 여러 가지로 험할 거라는 말에는 정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중원의 지형은 멀리서 전체적으로 보면 서쪽으로 갈수록 지형이 높고 산들이 많은 반면, 동쪽으로 갈수록 지형이 낮고 평탄한 평야 지대들이 많다.
그래서 동쪽은 논밭을 일구기 좋은 평야 지대가 많은 대신 물난리가 나면 제일 먼저 쓸려나가는 거고, 서쪽은 험하고 거칠다 못해 팍팍한 생활고에 성깔 더러운 똘기 넘치는 인간들이 많은 거다.
속칭 ‘바르지 못한 생활’ 사람들.
‘약간 편향적인 의견이지만 뭐 어때, 내 생각이 그렇다는데. 물론 더 더 더 먼 서쪽에서 온 달마 사부님은 논외로 쳐야겠지만.’
아무튼, 지금 언급한 사천은 굉장히 서쪽에 치우쳐 있는 지역이다.
산 많고, 산 높고, 가는 길이 엿 같은 곳의 대표주자.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밝은 미래를 고려한다면 신혼여행 같은 곳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
억지로 한 혼인이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끝장내고 싶다면 일순위로 고려해 볼 만한 곳이기도 하겠지만.
인종적으로도 회족이나 묘족, 강족 등등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살아가다 보니 민족적 정체성도 굉장히 다양하다.
게다가 무림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사천만큼 묘한 곳도 없다.
“그런데 말이야, 그…… 우리가 지금 가야 할 곳이 그래도 정파 쪽 영역인 거겠지?”
무림인의 시야로 보면 사천은 삼분할 된 지역이라는 점이다.
보통 사파의 영역은 아래 지방 쪽에 깔려 있는데, 이 영향력은 사천에도 닿아 있다.
여기에 서역과 닿아 있는 영역 부근은 서장의 포달랍궁과 같은 새외 세력들의 영향력이 미세하나마 존재하는 데다가, 정파 사파와 함께 무림 세력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마교의 영향력까지도 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구파인 아미파와 청성파 그리고 오대세가인 사천당가가 정파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정‧사‧마가 한자리에 모여 삼파전을 이루고 있는 복마전이라는 의미다. 잘못 발 담그는 순간 아주 주옥 되는 혼돈의 도가니탕이라는 이야기다.
멀리서 보면 안줏거리로 씹어대기 좋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겠지만, 직접 그곳에 가야 하는 무림인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파지는 곳이다.
“아슬아슬할걸?”
“대답 보소?”
대답이 영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백무호가 찌푸린 눈을 흘겼다.
“낙장불입이라고 아냐?”
“흥, 누가 뭐래? 가자, 가. 가면 되는 거 아냐.”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내 말에 까짓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냐는 똘기를 드러내는 백무호가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겼다.
대충 여기까지가 우리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때의 모습이었다.
***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애새끼 둘이서 쏘다닌다? 명줄이 두세 개씩은 되나 보지?”
“염병. 걸려도 이렇게 사내새끼들뿐이야. 계집년들 좀 후리고 다녀라. 젊은 새끼들이 맥아리가 없어가지고.”
“어른들이 험한 산중에 함부로 오르면 우리 같은 산중호걸님들 만난다고 안 가르쳐 주시던? 집에 애미 애비도 없냐?”
지금 상황은 이런 느낌이 되시겠다.
산중호걸(山中豪傑)을 자처하는 떡대들 한 무더기가 길을 막고 있는 중이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어깨 위에 두툼한 거도나 철침 박힌 질려골타(蒺藜骨朶: 끝부분이 두툼한 둔기)를 걸쳐 올린 채 건들거리고 있다.
덩치만큼이나 무식한 무기들로 위협을 가하며 험한 말을 쏟아내는데, 간담이 약한 사람이면 겁에 질려 벌벌 떨었을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나나 백무호에게는 해당이 없다.
오히려 이젠 슬슬 질리는 단계랄까.
[어째 얘들은 발전이 없냐.]홀로 자리를 지키시는 장삼풍 사부도 식상한지 한숨을 절로 쉬셨다.
나도 동의했다.
“왜 이렇게 하는 말들이 다 똑같은 건지.”
저쪽 기대와 달리 우리에게 산적이란 놈들은 처음 겪어 보는 게 아니라는 거다.
“어디 산적 새끼들 찍어내는 학당 같은 거라도 있나?”
“녹림이라고 있긴 한데, 그 동네는 저 허우대들이랑은 급이 달라.”
“그래? 그럼 녹림 애들은 만나면 뭐라고 하는데?”
“어어……. 으음……. 지금 생각해 보니 대가리 수준은 비슷한 것 같긴 하다.”
내 질문에 백무호는 병신들이 산적이 되는 건가, 아니면 산적이 되면 병신들이 되는 건가의 선후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사부님 때도 저랬습니까?”
[말해 뭐 해.]장삼풍 사부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산적이 되면 병신이 되는 쪽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새끼들이 겁을 상실했나!”
“목숨만을 붙여주려 했더니!”
긴장감이라곤 쥐뿔도 없는 우리의 모습에 산적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시겠지.”
그럼에도 나나 백무호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이 역시 그간 보고 겪어 온 산적들과 비슷했으니까.
“몇 놈 살려 놔. 아무래도 정보 좀 뽑아 봐야겠다.”
아무리 산길이 많은 동네라지만 부딪쳐도 너무 많이 부딪쳤다.
이번 여정에서 산적들을 만난 게 다섯 번째다.
지금까지는 길가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왜 이 난리인지 알아는 봐야 할 것 같다.
백무호가 픽 웃었다.
“너나 대가리 터트리지 마세요.”
“너는 반갈죽 그만하고.”
“반갈죽?”
“반으로 쪼개지 말라고. 검에 무게 좀 생겼다고 사람을 장작마냥 쪼개고 다닌 게 누군데.”
천마 사부의 검리를 엿보며 중검에 눈을 뜬 백무호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만든 설매검은 날이 갈수록 경지를 높여 갔다.
요즈음 산적들을 베고 다니며 한껏 실전 감각까지 높여 놓자 도끼로 장작 패듯 사람을 쪼개 버리는 검법이 되었다.
“반갈검이네?”
“어휴…….”
아재들도 안 웃을 작명 감각이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눈앞의 산적들에 집중했다.
쓰레기는 치우라고 있는 거다. 그게 사람까지 해칠 정도로 악성이면 치우는 그 자체로 이미 공덕이다.
장삼풍 사부도 처음 산적들을 쓸어버릴 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교화? 좋지. 새사람 만드는 거? 아주 좋아. 하지만 그게 쉬우면 왜 세상에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겠냐?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거 아니면 손대지 마라. 그냥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하면 된다. 세상 혼자 사는 거 아니야. 다 떠안고 짊어질 필요 없어.]‘나는 영웅은 못 되나 보다.’
담담한 눈으로 일보를 뗐다.
“……!”
내 움직임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봤는지 산적들 몇몇이 눈을 크게 뜨며 반응했다.
나름 경력이 심상치 않은지 반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후웅!
사람 머리 정도는 가볍게 곤죽으로 만들 것 같은 질려골타의 쇳덩이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는 그 궤적을 선명하게 바라봤다.
질려골타의 막대기 끝에 달린 둥근 쇳덩이와 그 쇳덩이에 꽂혀 있는 철침 사이사이에 마른고기 조각 같은 게 달라붙어 있는 것까지 똑똑히 보였다.
누군가를 피떡으로 만든 흔적.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가 없음을 확인한 나는 중토신공 삼단공을 손에 담아 내질렀다.
콰앙!
“허윽!”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쇳덩이가 박살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무슨!”
“질려골타가……!”
산적들이 기함을 하며 주춤거렸다.
묵직한 둔기가 종잇조각마냥 찢겨 흩어지는 모습은 일반적신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광경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러온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다.
마음이 흔들린 자의 일격이 곧을 리 없다.
도망쳐야 하는가, 공격을 이어야 하는가.
두 마음을 품은 순간 칼질은 이미 예리함을 잃었다.
‘선이 흐려.’
장삼풍 사부의 태극권을 수련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모든 움직임이 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좀 더 단순하게 보였다.
그런 경향은 천마 사부의 공감각을 손에 넣으면서 더욱 강해졌다.
태극선(太極線)이라 부르게 된 선.
저 산적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거라면 맨손으로도 잡겠다.’
콰직!
“미친!”
예리함을 잃은 거도를 맨손으로 잡았다.
도신을 부수고 찌그러트렸다.
압도한다.
이 순간을 잡아먹는다.
“괴물이냐!”
순간을 잡아먹힌 자들이 곧잘 하는 말.
승리를 보장해 주는 찬사를 등에 업고 앞으로 한 번 더 나아갔다.
뻐억!
복부에 박히는 주먹질 한 방에 산적의 두 다리가 잠깐 허공에 떴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 눈알이 뽑혀 나올 것처럼 튀어나와 있는 상황일 거다. 속은 완전히 뒤집혔을 것이고.
“우엑!”
입에서 뜨끈한 걸 쏟아낸다.
“다섯 번. 아니, 이번이 여섯 번째라는 걸 다행으로 알아.”
중토신공 삼단공은 정말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처음 마주친 산적에게 휘두른 주먹질에 산적의 머리가 말 그대로 깨진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괜히 백무호 저놈이 머리를 터트리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다.
지금이야 몇 번의 실전을 통해 실전 감각을 높여 놓아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힘의 제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위력의 가감이 어렵달까?
[얀마. 모처럼 이 사부가 혼자 있는데 중토신공만 쓰고 있냐?]한껏 중토신공의 묘미에 빠져있는데, 장삼풍 사부가 불평하셨다.
바라시는 대로, 나는 태극권의 묘리를 손에 담았다.
장삼풍 사부의 태극권은 후발선제를 통한 철저한 반격 위주의 수법이지만, 쓰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공격적인 방법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현 무당파의 태극권과는 다른 방법.
백가표국에서 나를 증명했을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균형을 무너트리는 것만으로 사람의 몸은 허물어진다. 몸의 움직임을 이루는 선을 뭉개는 그 자체가 이미 제압이나 다름없다.
“으아아!”
“이 새끼들 뭐야!”
내 앞에서 무기는 날카로움과 무거움을 잃었고 무기의 주인들인 산적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꺾어 버린다.’
흐릿한 태극선의 궤적을 휘젓는다.
밀고 당긴 뒤 꺾는다.
공포에 질린 산적들을 정리하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어디 한 군데씩 망가진 몸으로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이고 있는 산적들을 향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이 근처에 뭐 대박 건수라도 생겼습니까?”
“그러게. 뭐 이렇게 다들 옹기종기 모여서 지랄들인데? 짜증 나게.”
나와 다르게 백무호는 대놓고 짜증을 냈다.
이해는 되었다. 어쨌든 백무호의 본직은 표사다. 표물을 털어먹겠다고 달려드는 각다귀 같은 산적들을 좋게 볼 수는 없다.
산적 중 하나가 그런 백무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대박 건수가 있다기보다…… 도망쳐 나온 겁니다.”
“도망쳐 나와?”
“요즘 구파의 신경이 날카로워져서요. 주변 정리에 들어가고 있다고 할까. 저희가 도망쳐 온 곳에서도 산채 몇 곳이 날아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튄 거고요.”
“구파가 움직이고 있다?”
가볍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구파는 현 무림의 주축 중 하나인 정파의 핵심이다. 사실상 정파의 중심이며, 그들의 움직임은 곧 정파의 움직임과 같다.
“전쟁 준비를 한단 소리로 들리는데?”
“쌓인 게 많긴 하니까.”
숭산에서 마교의 습격으로 종남파의 장문제자가 죽었다.
화산파에서는 내부에 심어졌던 간자에 의해 문파가 불탔고, 소중한 비전절기를 도둑맞을 뻔했다.
“구파라고 해서 탈속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려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전쟁을 원하는 자들도 있을 거다. 멀리 볼 거 없이 화산파만 해도 불같은 분노를 가슴속에 품은 자들이 적지 않았다.
소림사 혜원 스님의 말에 의하면 종남파도 적극적으로 전쟁 준비 중이라고 했었고.
벌써 내가 알고 있는 구파 중 둘이 전쟁에 적극 나설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혼란의 도가니탕인 사천으로 가야 한다.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가?”
[그럴 게다.]혼잣말로 생각을 정리하는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천마 사부?’
[새롭게 뒈진 놈들 튀기는 도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만, 신교에서 웃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이 상황에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