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83
82화 평화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
출발하기 전 당만옥 총관에게 약재를 구하러 갈 사람들을 모을 공지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었다.
가주에게 독을 쓴 놈이라면 이 일이 실패하길 바랄 터. 분명 원정대에 참여하여 훼방을 놓을 것이니 잘 조사하면 배신자를 솎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효과일 뿐, 가장 큰 목적은 시선을 돌려 잡아 두기 위함이다. 그사이 후딱 약재를 모아 올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기민하게 움직였네.”
추적이 붙었다는 건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했다는 의미이다. 사전에 말이 새 나갔을 수도 있고,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대비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추종술이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뛰어나다 할 정도도 아니어서 확신하지 못하겠다.
“방심하지 마. 일부러 형편없는 척하는 걸 수도 있어.”
“야, 다른 건 몰라도 전술이라면 내가 너보다 위거든? 그 정도쯤은 당연히 숙지하고 있으니까 훈수 둘 거 없어.”
사부님들에게 들은 실전 전술 중 하나.
누군가 수준 낮은 움직임을 보이며 미끼가 되면 표적에 신경이 쏠리며 주변에 대한 경계가 옅어진다. 그때 주변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던 진짜 실력자들이 허점을 파고들어 마무리하는 것이다.
암기와 독에 능숙한 사천당가라면 유용할 전술임이 분명하다.
‘따로 걸리는 기척은 없는데…….’
진지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훑어냈지만, 걸리는 것은 없었다.
혹여 엄청난 고수라 내가 읽어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장삼풍 사부의 청경과 천마 사부의 공감각을 하나로 했음에도 읽어내지 못한다면 어지간한 수준에서는 상대하지 못할 괴물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고수가 포함되었다면 굳이 이런 미끼 전술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가능하면 사로잡는 쪽으로 가자.”
반응은 순간적으로.
뭔가 말싸움이라도 하다가 화해한 것처럼 보이던 우리가 갑자기 돌변해서 기습을 하는 형태다.
너무 갑작스러웠는지, 숨어 있던 인영에게선 대응하고자 하는 반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항이 없어?’
마치 백기 투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급적 사로잡을 생각이었기에 손에 힘을 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빠르게 쓰러트린 뒤 목을 움켜쥐고 제압한다.
“당신……?”
기억에 있는 인물이었다.
두 번이나.
“와! 보자마자 올라타는 거예요? 손이 빠르시네.”
“……예?”
그게 이 상황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할 소린가?
아니, 그런 걸 따질 게 아니라.
“그래도 가능하다면 순서는 지켜 줬으면 하는데요. 그쪽에 관심이 있는 건 맞지만 너무 싸게 보이는 것도 곤란해서,”
“…….”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네가 말린 것 같다만. 일단, 그 처자 위에 올라타 있는 거나 어떻게 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어?’
뭘 보고 그렇게 눈요기가 된다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다고 잡아떼고 싶지만, 유독 도드라진 부분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와 버렸다.
화들짝 놀라 일어서는 건 너무 없어 보일 것이기에 본능적 반응은 최대한 억누르며 천천히 제압한 것을 풀어 주었다.
“우리 뒤는 왜 쫓아왔습니까?”
“당사연이라고 해요.”
“하아…….”
또다시 동문서답이다.
주관이 확실하다고 해야 하나? 자기주장 하나는 끝내주는 처자다.
“예, 사연 소저. 이름은 잘 들었으니 다시 묻겠습니다. 저희 뒤는 왜 쫓아오셨습니까?”
“관심이 있어서요. 그쪽에게.”
이것도 동문서답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간자가 추궁해 오는 상대의 논지를 흐리고자 던지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 그것이 목적이라면 무척이나 잘 먹히고 있는 느낌이다.
“고백처럼 들리네요. 이성에게 할 법한.”
“받아 주실 건가요?”
“…….”
안 된다, 이거.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곤란한데.’
정말 다른 목적이 있어서 뒤를 밟은 게 아니라면 문제가 좀 있다.
우리가 사천당가에서 몰래 몸을 뺀 것이 들통 난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 행적을 알릴 수 있는 당사연이 당장은 사천당가로 돌아가선 안 된다.
자꾸 싱숭생숭한 말을 던지는 이 여자를 끼고 여정을 계속해야 한단 소리다.
“너, 여자한테 고백받은 건 처음 아니냐?”
“시끄러.”
백무호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나와 당사연을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웃음이 전염되기라도 한 건지 그 말을 들은 당사연도 해맑게 웃는다.
“혹시 저희 당가의 데릴사위 방식을 어떻게 생각해요?”
“……생각해 본 적 자체가 없어서 대답을 못 하겠는데요.”
무슨 의도로 묻는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오히려 이해가 안 간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말을 던지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무호 말처럼 내가 여자에게 고백받은 건 이번이 처음인가?’
“이번에야말로 진짜 큰일 났네, 우리 누님.”
말하는 것과 다르게 여전히 웃고 있는 백무호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
뭔가 내 손으로 무덤을 파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심 그 기분을 누른 나는 당사연에게 당장은 사천당가로 귀환하지 못할 거라 이야기했다.
본의는 아니지만, 신변을 우리가 맡아야겠다는 통보다.
그에 대한 대답이 가관이었다.
“고백인가요?”
“아닙니다.”
“그럼 몸만 목적이란 소리?”
“……아니, 어, 맞나? 말하자면 그게 맞긴 한 것 같은데, 뭔가 어감이 이상하게 들리네요.”
“연 소협이 그리 말씀하시니 따르도록 하지요.”
결론적으로는 순순히 따르며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일 중요한 것은 동문서답형 어법이 줄었다는 점이다.
동행하게 된 이상 현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니 당사연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사천당가 내부인의 관점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생각하신 대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부 소행이 맞겠네요. 독공의 고수인 가주님이 독의 분량 조절에 실패해 위험에 빠졌다는 건 역시 말이 안 되죠.”
“그런 일을 했을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가주님을 중독시켰을 만한 사유를 가진 사람 말인가요?”
“예.”
사실 물으면서도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대개 가문의 치부와 연결되기에 외부인에게 쉬이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쎄요. 단순히 그럴 만한 사유를 가졌을 사람이면 너무 많아서 다 언급하기가 힘들 정도인데요?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꽤 범위가 좁혀지긴 하겠지만.”
“……그 정도로 콩가루입니까?”
가주에게 독을 먹였을 만한 사유를 가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니?
백무호도 꽤나 흥미로운지 입을 다물고 경청하는 자세로 귀를 기울였다.
“시대적인 문제라고 할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랄지……. 연 소협은 사천당가에 대해 잘 모르죠?”
“남들 아는 정도만 압니다.”
“그럼 모르는 게 맞네요.”
당사연은 딱 잘라 단언했다.
“사천당가는 가문의 여식을 바깥으로 시집보내는 일이 드물어요. 대부분 데릴사위를 들이죠. 가문의 힘이 강하니 건드리는 외부 세력도 없어요.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숫자가 불어나고, 분쟁이 없으니 단명하는 사람도 적죠. 그 결과는 직접 봤을 거예요.”
아무리 세가라고는 하지만 과도할 정도의 규모.
“데릴사위로 들어왔다고 해도 그 핏줄은 당 씨 성을 써야 해요. 그게 당가의 포용법이니까요. 결국, 사내는 자기 성씨를 버리고 사천당가로 들어왔다는 것인데, 둘 중 하나죠. 정말 짝을 사랑해서거나 당가를 등에 업고자 하는 야심이 있다는 소리예요.”
[과연, 그렇게 되는 게 필연이긴 하겠군.]“아…….”
장삼풍 사부는 바로 이해한 것 같다. 나도 거기까지 들으니 감이 좀 잡혔다.
당사연이 이야기한 시대적인 문제, 혹은 구조적인 문제라는 단어가 요점이었다.
“소소한 분쟁은 있지만 그게 전부인 시대에, 야심은 있으나 이를 표출할 기회를 찾지 못한 이들.”
사천당가라는 배경을 얻고자 가문마저도 버렸는데, 정작 명성을 떨칠 기회가 없다.
확실히 야심이 있는 자들이라면 사고를 칠 법한 환경이다.
“가문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아요. 가주가 바뀌면 권력 구조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적어도 측근이라 할 사람은 바뀌겠죠. 당연히 그 측근이 가까이하는 이들 역시 위치가 달라질 것이고요.”
“때마침 사천은 혼란스럽고 말이죠.”
섬뜩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칼을 휘두르려는 사파. 그런 사파를 충동질 하고 있는 마교. 근래 마교의 자극으로 인내심이 바닥난 정파.
이런 상황에서 마교의 수작질을 막고, 나아가 전쟁을 막을 첫 단추이자 억제력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천당가였는데, 오히려 그 사천당가가 벽력탄을 품고 있었다니!
가만히 듣고 있던 백무호가 궁금한 점이 생겼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천당가 내부 사정이 그렇다는 건 알겠어. 그럼 야심가들은 오히려 사천당가를 피하는 것이 맞지 않아?”
“알았다면 피할 분들도 계셨겠죠.”
“아? 아, 그렇겠네.”
이 부분도 납득이 간다. 이런 치부가 외부로 알려지기는 쉽지 않으니까.
외부에서 볼 때는 강한 영향력과 힘이 있는 사천당가라는 거대세력만 보일 뿐이다.
그 일원이 되면 자신도 그 힘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가문에서는 데릴사위로 삼을 사람의 배경보단, 기량이나 자질을 보니까요. 어느 정도의 가문이라면 당가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를 알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굳이 가문을 버릴 이유가 없죠.”
이만하면 확실히 마교의 수작질에 넘어갈 수도 있겠다.
가주를 중독시키고 난세를 일으켜라.
마교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다. 제 딴에는 마교를 이용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천당가를 이용하기 위해 데릴사위가 된 것과 차이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평화라는 것도 복잡하구나. 허 참! 평화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라니.]무질서와 전란이 가득하던 시대를 살아갔던 장삼풍 사부라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지옥에서 죄인들을 똥물로 튀기는 중이시라는 천마 사부라면 알았을 것 같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요즘 천마 사부 진짜 소식이 없다.
사실 사천에 온다고 했을 때 제일 즐기실 분이 천마 사부라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데릴사위로 권하는 상대에게 그런 거 다 말해 줘도 되나?”
갑자기 훅 들어온 백무호였지만, 당사연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끝까지 속일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니까요. 사기 쳐서 맺어진 인연이 행복할 리 없잖아요. 이미 그런 사례들은 많이 봤기도 했고요.”
당사연의 말대로라면 숱하게 봤을 거다.
“굳이 불행해질 일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야망을 위해 개인의 행복 같은 건 희생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어요.”
야망도 이루고, 행복도 움켜쥐고.
꿈이 야무지다.
“욕심이 많네요.”
“건전한 욕심이라면 나쁠 거 없잖아요?”
당당한 당사연의 미소는 싱그러운 풀잎 같았다.
[멋진 아이구나.]‘예.’
장삼풍 사부 평가처럼, 멋진 소저다.
“반했어요?”
“아니요.”
“칫.”
한계 따윈 모르는 성격이다.
사람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선이 그어져 있다.
당사연은 그 선을 주저 없이 넘어버린다.
이건 그녀의 장점이면서 단점이라 생각한다.
‘다만, 마냥 싫지만은 않다는 거지.’
분명한 건 매력이 있다는 거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것은 밝게 빛나는 만큼 눈길을 끌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