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89
88화 당가내란(3)
기운을 끌어올린 여파만으로 건물의 벽이 녹아내릴 정도의 독기를 뿌렸다. 이것만으로도 그 수준을 알 수 있다.
‘조문혁이라 했던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만독신군을 보호하며 위해가 될 만한 독기를 막아서는 당만옥 총관이 이름을 입에 담았었다. 오삼보라는 사람을 언급할 때와 마찬가지로 분노와 안타까움이 섞여있는 목소리였다.
‘오삼보라는 사람과는 궤가 다르지.’
이자는 오삼보라는 사람을 조종했다. 근본부터가 그쪽이라는 거다.
그런 작자가 동시에 당가 무공까지 익혔다. 그것도 가히 독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제대로 독공을 수련했다.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당만옥 총관이 안타까워할 만한 재능임은 분명하다.
“칵!”
보법을 밟으며 움직이는 조문혁의 몸이 흐릿해졌다.
눈을 현혹하는 방식의 보법을 펼치며 접근해 온다.
눈을 현혹한다는 건 자신의 수를 속이겠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다른 노림수를 감추기 위함일 수도 있다.
역시나 태극선을 통해 보이는 움직임은 나를 향하지 않는다.
내가 아니라 내 너머를 노린다.
아직 만독신군을 죽이겠다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딜!”
화신지력이 몸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크기가 크지 않지만, 근처에 이화가 있어서인지 기운은 얼마든지 빌려올 수 있다.
화신지력의 힘이 듬뿍 담긴 일장으로 막아냈다.
콰쾅!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코앞에서 울렸다.
더러운 것을 불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퍼지며 조문혁이란 자가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난다.
족히 열 걸음은 뒷걸음질 치던 조문혁이 몸을 추스르며 나를 노려본다.
“느…… 우…… 어!!”
“다시 한눈팔아 보시지. 이번에는 제대로 모가지를 날려 줄 테니까.”
혀가 망가져 제대로 말 한마디 못 하는 조문혁을 도발하며 만독신군을 노리지 못하게 견제했다.
‘칫! 생각보다 강해…….’
하지만 만만치 않은 힘에 살짝 놀랐다. 화신지력이 독기를 태웠음에도 조문혁의 일장을 막아낸 팔의 소매 끝자락이 타다 만 것처럼 녹아 있었다.
완벽하게 독기를 지워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당가의 사람들이라도 독인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그 수가 적다고 알고 있는데.’
당가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 중 하나가 녹색으로 칠한 가죽장갑이다. 독이 묻은 암기를 다룰 때 손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구로 사용된다.
모두가 손에 독을 묻히고, 독을 삼키며, 독기를 몸 안에 받아들이는 수련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정도 되는 실력자가 마교의 간자란 말이지.’
화산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구파에 이어 오대세가에도 간자가 잠입해 있었다.
최악의 경우 모든 주요 명문 정파 내부에 마교 간자가 심겨 있을 수도 있다.
[저거 눈깔 굴리는 게 이상한데?]‘응?’
복잡한 무림 정세를 고민하는 사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정신이 바짝 드는 것을 느꼈다.
장삼풍 사부의 언급처럼 잠깐이지만 저놈 시선이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이 자식 봐라?’
나와 만독신군이 있는 자리를 피해 움직일 방향, 도주에 적당한 방향이었다.
몸을 뺄 생각인 것이다.
‘이자는 필히 여기에서 죽여야 한다.’
사천당가 내부에 심겨 있던 세작이란 점은 둘째 치더라도, 이화가 내 옆에 있는 것을 본 놈이다.
이놈을 놓치는 건 내게도 큰 해가 된다.
‘먼저 퇴로를 차단하고.’
능운금광보의 보법이 단번에 놈과의 거리를 좁히며 도주로를 차단한다.
동시에 끌어모은 힘을 주먹에 담는다.
천련, 만공의 흐름을 겹겹이 쌓아 한 점으로 수렴시킨 무공이 고개를 내민다.
“뭉개 버린다!”
극강격!
막아서는 모든 것을 뭉개는 견고하고 강맹한 일격이 거침없이 뻗는다.
터앙!
하지만 주먹에 남은 것은 무언가를 부쉈을 때 느껴지는 깔끔함이 아니다.
탄력 있는 것을 걷어찼을 때의 느낌이다.
“흐으!”
조문혁이 짧은 웃음을 남기며 뒤로 내 일격을 받아냈다. 내 공격을 추력으로 삼아 몸을 빼려는 것이다.
“……이제 손 따윈 아깝지 않다 이거지?”
극강격은 달마 사부의 절학이다. 가볍게 받아낼 성질의 무공이 아니다. 힘에 저항하지 않고 흘려내듯 받아냈다고 해도 적지 않은 타격이 남았을 것이다.
도주를 위해 대수롭지 않게 남아 있는 손마저 희생시켰다.
두 팔을 잃더라도 살아 돌아가겠다는 집념이 느껴진다.
“놓칠 성싶으냐!”
땅을 박차며 상대의 궤적을 따라 높이 뛰어올랐다.
건물 몇 개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허공에 체류 중인 조문혁을 쫓았다.
높게 솟아오른 만큼 사천당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쪽도 한바탕 하는 중이구만.’
만독신군을 치료할 약재를 만든다며 시선을 끌어모았던 함정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수적으로 우위인 데다가 매복하고 있던 것은 사천당가의 최정예다.
그나마 내일이 없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내던지며 싸웠기에 버티고 있을 뿐, 오래가지 못해 제압될 것으로 보였다.
‘이제 이놈만 처리하면 끝이다, 이거지!’
다시 한번 건물의 지붕을 밟으며 재도약하는 순간, 내 몸이 강궁의 화살처럼 쏘아졌다.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신형은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그때 조문혁이 피 묻은 손으로 뭔가를 힘겹게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암기?”
내 시야 사각에서 꺼내 든 것은 아이 팔뚝만 한 굵기의 대나무 통이다.
폭우이화침.
내공을 담아 터트리기만 하면 내부에 담긴 암기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다는 당가비전의 암기다.
두 손이 망가졌기에 제대로 암기를 던질 수 없겠지만, 저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조문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쾅! 솨아아아!
폭음이 일며 소낙비 소리가 났다.
근거리까지 접근한 것이 화가 되었다.
흉악한 암기의 폭우가 쏟아져 내린다!
‘영강수!’
장삼풍 사부의 청경과 천마 사부의 공감각이 한순간에 최고조까지 올라갔다.
감각이 잡아내는 모든 것에 대응하는 영강수에 두 사부의 공능이 흐른다.
솨아아!
본능에 맡긴 내 두 손의 움직임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완벽한 벽을 만들어내며 폭우를 받아낸다.
“허어!”
“저 거리에서 맨손으로 폭우이화침을 받아낸다고?”
공중에서 벌어지는 공방이었던 만큼 지켜보는 눈이 제법 있었나 보다. 전투 중이라는 것도 잊었나 싶을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천룡?!”
“소천룡 연청운!”
낯짝의 온도를 한껏 올려주는 말들도 뒤를 따랐다.
반대로 내 앞에서는 강한 분노와 적대감이 있었다.
내가 신녀 이화와 뭔가 연결고리가 있다고 느낀 것인지 나만큼은 죽이려 했던 모양인데, 그게 무산된 것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크익!”
혀가 망가져 말은 못 하지만, 필담 같은 것으로 의사 표현은 가능하다.
저놈이 입을 열면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난다.
‘넌 여기서 죽어야겠다.’
그때였다.
흠칫!?
온몸의 감각이 들고 일어난다.
무언가 내 감각의 영역을 어지럽혔다.
“뭐, 뭐야? 뚫고 지나갔다?”
깨닫고 난 다음에는 이미 지나가고 없었다.
내 영역을 간단히 통과한 그것이 닿은 곳은 조문혁의 이마였다.
“이건…….”
조문혁의 이마에 붉은 점이 생겼다.
그 붉은 점을 만든 것은 반쯤 망가진 당가의 암기였다.
이자가 적이었다면 그 존재를 깨닫는 순간 이미 머리가 날아갔을 것이다.
나는 그 강자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등 뒤, 왠지 경험해 본 듯한 거대한 존재감을 드리우는 무언가가 해일처럼 덮쳐온다.
“만독신군.”
사천당가의 가주.
다시금 본연의 육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그가 만들어낸 존재감이 삽시간에 사천당가 전체를 집어삼켰다.
‘신승 공료와 같아…….’
소림에서 보았던 그분의 존재감을 다시 경험하는 기분이다.
어느 쪽이 더 깊은 경지인지는 내 수준으로 잴 수는 없지만,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진 자들 특유의 존재감만은 분명 닮아 있었다.
[와하핳하핳! 성공이다! 성공!! 캬핳하핳하!] [편작 형! 되어쏘! 우리가 해내쏘!! 하하핳하하핳!] [드뎌 우리 의가에도 볕 뜰 나리 오게꾸나!]편작 선생과 화타 선생이 미쳐 날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당장은 그 말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반쯤 정신 줄을 놓은 채 외쳐대는 터라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지만.
충격적인 광경이 지상으로 하강하는 내 시야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녹아내리고 있다. 결사적으로 저항을 하던 당가의 배신자들이 순식간에 핏덩어리가 되었다.
머리부터.
덕분에 끔찍한 저 광경 속에서도 비명 한 자락 들리지 않았다.
“……녹아내리는 양초를 보는 것 같네요. 사람을 두고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편작의 도박수가 성공했구나. 이런 결과라면 충분한 가치가 있지.]장삼풍 사부는 내 표현보다는 그 결과를 만들어낸 경지에 초점을 맞추셨다.
역시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을 위로할 여유는 없었다.
“표현이 꽤 재밌군.”
눈 깜빡할 사이에 모든 것을 지워 버린 존재가 코앞에 있었다.
“네가 날 살린 놈이냐?”
뇌우를 동반한 폭풍 덩어리를 보는 듯하다. 위험한 존재감을 몸에 두른 이가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를 보며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요동치는 사천의 정세는 안정을 찾겠어.’
이 사람이 나선다면 분명 그렇게 될 거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다.
나름 스스로의 무공에 자신이 생겼지만, 그 자신감을 자만이라 눌러 내린 사람이다.
그 점을 고려한다면 내 생각은 결코 과한 판단이 아닐 것이다.
‘아니면 더 크게 요동치든가.’
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생각이 떠오르며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뭔가 불길한 느낌과 함께.
***
취죽 선생은 연청운이 사천당가로 향한 뒤 모든 인맥과 영향력을 동원하여 사천의 전란을 막고자 동분서주했다.
취죽 선생의 영향력은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넓게 뻗어 있었다.
청렴 그 자체인 인물이며, 원리원칙에 충실했고, 그러면서도 선입견이 없이 사람을 대하는 그 태도에 사파 인물들조차 존중을 표했다.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오해를 풀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비록 국소적이긴 하지만, 고생한 성과는 있었다.
“허허.”
어쨌든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은 어느 정도 해냈다는 성취감을 누리던 취죽 선생은 문뜩 연청운의 할아버지, 무애의 서신을 떠올렸다.
“학이라…….”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는 힘의 존재들이 개입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으나 그 힘은 분명 존재했다.
그 존재감을 살피며 무애, 연청운의 할아버지 연자염은 그렇게 말했다.
“학 같다.”
늘씬한 다리와 기다란 목을 가진 학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먹잇감을 내려다본다. 먹잇감이 보지 못하는 높은 곳에서 부리를 겨누고 있다가 순식간에 먹잇감을 집어삼킨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세상을 향해 부리를 겨누고 있는 존재.
취죽 선생은 무애의 그런 표현이 퍽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어째서일까?”
학이 움직였다는 그 서신을 떠올린 것은 무의식의 발로였다.
사람의 무의식은 의식이 보고 살피지 못하는 영역까지도 들여다본다.
취죽 선생은 잠깐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궁리했다.
그때였다.
“좋은 표현이군. 학이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취죽 선생의 배후에서 불현듯 목소리가 들렸다.
“무림과 관을 잇는 성가신 연결고리가 있기에 찾아와 봤다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그 목소리에 담겨 있는 것은 흥미였지만, 명백하게 포식자의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포식자는 무언가를 잡아먹기 때문에 포식자다.
“너는 없어지는 게 좋겠다.”
학의 부리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