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91
90화 포상은 챙겨가라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노골적인 협박이다.
순간 무거운 압력이 내 몸을 눌러 왔다.
시야가 굴절되는 느낌이다. 더 이상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오로지 만독신군만이 보였다.
‘거침없네, 진짜.’
천마 사부와 죽이 맞을 것 같다는 장삼풍 사부의 평가 그대로다.
그런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맞서야지.’
그렇다면 피할 수 없다.
피해서는 안 된다.
‘버티는 것이라면 자신 있어.’
중토신공이 있다.
대지의 신력과 쇠의 신력이 단단하게 그릇을 보듬는다.
여기에서 이전에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실행시켜 보았다.
‘흘린다.’
어떤 구조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나는 외부에서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구멍을 통해 흘려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라는 존재가 힘을 담는 그릇이 아닌, 통로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윽!’
마음먹은 바를 실행하는 순간 거친 힘이 내 안으로 파고들며 헤집었다.
지금이라도 단단한 벽을 세워 부딪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할 수…… 있어…….’
이유극강(以柔克刚).
귀화불항(贵化不抗).
사기종인(舍己從人).
기초 중의 기초.
태극권을 배울 때 들은 무당파 무공의 진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무시하고 넘겨버린다.
이론에 국한된 말로 현실성이 없다고 여긴다.
눈앞에서 칼이 날아들고, 산을 허무는 일격이 몰아치는데 이를 고수할 수 있냐고 따진다.
허나.
모든 궁극적인 지향점은 언제나 그 흔하고 당연한 기초와 함께한다.
기초(基礎) 없이는 궁극(窮極)도 없다.
그렇다면 무의 궁극이란 결국 무의 기초가 이뤄내는 종착지가 아닐까?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받아낸다는 무당파 무공의 진수(眞數)가 이런 것이 아닐까?
맞다. 이런 건 결국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이상적인 논리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좋거든.’
이상을 추구하는 게 뭐가 어때서.
꿈을 좇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런 인생은 필요 없다!’
결의와 각오,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
그와 함께 삼재일기공이 피어난다.
달마 사부의 무공도, 천마 사부의 무공도 포용하는 힘이 내 안에서 태동하여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치 꿈을 그리는 붓처럼 ‘번져나가는’ 그것이 세상을 나의 색으로 물들인다.
[좋구나!]“허어?”
나를 압박하던 만독신군의 입에서 묘한 감정을 담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편작 형, 저거 방금…….] [……니 생각이 맞는 것 같은데?]주어가 빠진 화타 선생과 편작 선생의 말들은 어딘가 만독신군이 방금 낸 목소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잘했다!]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장삼풍 사부의 칭찬 한마디.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말에 나는 기분 좋은 웃음을 그릴 수 있었다.
“웃기는 놈일세, 이거.”
만독신군이 헛웃음을 흘렸다.
더 이상 불필요한 압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뚜렷하게 보이는 만독신군의 모습은 무섭지도, 일그러지지도 않았다.
“좋은 걸 보여 주는군.”
“덕분에요.”
“흥! 그 뻗대는 표정은 썩 마음에 안 들지만, 인정은 해야겠지. 보여 준 만큼 값은 치르는 게 맞겠고. 허! 사천의 안정화라…….”
만독신군이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방금 보여 준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일까?
그리 생각하자 왠지 감정이 고조되는 느낌이다.
“무의미한 짓이다. 네 생각대로 사천당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잠깐 괜찮은 ‘척’은 할 수 있겠지. 허나 결국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게 될 거야.”
만독신군의 회의적인 의견에 반론하기는 어렵다.
사천에는 너무 많은 힘이 고여 있는 상태다. 사천당가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그 힘이 분출될 때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평화는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기에, 모두가 노력을 그만둘 때 평화도 사라진다! 저는 먼저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피곤한 길을 가겠다?”
“그런 성격이라서요.”
“영웅의 자질이 있구만. 잘나셨어.”
만독신군이 비아냥거렸다.
“피가 뜨거운 놈을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는데……. 쯧!”
‘통했네.’
표정에는 언짢음이 가득하고, 어투는 비아냥거림이 넘쳤지만, 그 안에는 열기를 내뿜고 있음이 느껴진다.
“좋아, 바라는 대로 해 주지. 쯧! 이번 기회에 쭉정이들을 죄다 불살라 버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내부 정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좀 고민해 봐야겠군.”
“……저기, 속마음이 밖으로 나오고 계십니다만.”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눈치 없긴. 쯧! 알았으니까 나가 봐라.”
끝까지 투덜거리는 만독신군이었다.
그래도 나는 뜻한 바를 이루었기에 그런 만독신군을 향해 정중한 예를 담아 포권을 쥐었다.
“아, 그리고.”
“예.”
“결국, 어차피 내 생각대로 될 것 같거든? 그러니까 내가 원래 주겠다고 한 포상은 챙겨가라.”
“……예?”
“마음에 드는 애 있으면 데려다가 으쌰으쌰 하라는 소리다. 원하는 물건 있으면 아무거나 하나 집어 가도 좋고. 줘도 못 먹는 병신은 아니겠지?”
“…….”
으쌰으쌰라니, 그게 무슨……?
저기요?
***
터덜터덜 나가는 연청운의 뒷모습을 보며 만독신군이 피식 웃었다.
“걸물이구만.”
평화란 값싼 싸구려 같은 말이다. 누구나 쉽게 입에 담을 수 있기에 저열하고 저급한 자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허나 그 무게와 값어치를 아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평화는 천금의 값어치를 지닌다.
“십 년 내로 어디서 비명횡사만 하지 않는다면 천하제일인은 몰라도 천하제일의 대장부쯤은 되겠어. 그런 녀석이라면 손녀딸을 줘도 아깝지 않지.”
저만한 인재가 눈앞에 굴러다니는 것을 봤는데 그냥 넘어간다면 한 가문의 가주로서 직무유기나 다름이 없다.
출가외인을 허락하지 않는 사천당가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해도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연청운이란 인재는 탐이 났다.
“경쟁자는 좀 많을 것 같지만, 그 정도는 이겨내겠지. 우리 애들이 만만한 애들도 아니고.”
영웅이란 족속들은 몸 안에 별이라도 담고 있는지 스스로 빛을 낸다. 그 빛에 이끌려 사람들이 모이고, 무리를 이루며, 대업을 이룬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자들만 그 빛에 끌리는 것이 아니다.
“말년이 심심하진 않겠어. 큭큭큭.”
사천의 정세와 연청운의 미래 그리고 그가 걸어 나갈 행보와 사천당가의 앞날을 상상해 보며 만독신군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
“뭐가 이렇게 살벌해?”
나를 압박하려 뿜어냈던 기운이 바깥까지 뻗어나갔던 모양이다.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백무호가 한소리를 했다.
“다친 곳은 없냐?”
“없지. 내가 뭐 위험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백무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위쪽에서 보니 그렇지만도 않던데? 사천당가 암기가 좀 대단하잖아.”
“아, 그려? 별거 없던데? 휙휙! 하니까 타다닥! 하고 쳐내지더라.”
백무호는 약재를 가져온 당사자다. 직접 달이기까지 했다. 당연히 주요 목표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내 걱정과 달리 백무호는 사천당가의 비전암기를 가볍게 처리했다고 자랑했다.
‘발전하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건가.’
직접 당해 봐서 느끼는 거지만 눈앞에서 터져 나왔던 폭우이화침의 위력은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백무호의 역랑도 내 생각 이상으로 성장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뭐, 조금 이상한 건 있었지.”
“응? 뭐가?”
“으음……. 너, 사공패 그 싸가지한테 뭐 한 거 있냐?”
갑자기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사공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려 버렸다.
“왜?”
“아니, 내가 약재를 옮길 때 청성파 쪽 사람들이랑 같이 움직였거든. 그런데 뭔가 묘하게 고분고분해진 느낌이라서. 예전 같으면 틱틱거리며 지랄했을 녀석인데, 먼저 몸을 숙이는 느낌이랄까.”
백무호는 사공패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사람이 쉽게 바뀌냐. 이유가 있어도 안 바뀌는데. 이유 없이 태도를 바꾸는 거면 오히려 경계해야 하고. 흐음. 청풍자 장로님한테 한 소리 들었나?”
백무호는 사공패가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나야 그놈이 사고 안 치고 조용히만 있어도 좋겠다는 쪽이라 적당히 그 말을 흘려들었다.
큰일을 끝내고 여유가 생기니 나도 신경 쓰이는 것이 생겼다.
바로 이화다.
마교의 신녀였으니만큼 뭔가 사천의 현 상황과 마교의 움직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을 거다.
문제는 백무호다.
‘미안하지만 이건 너랑 같이 들을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어지간한 사안이라면 속 시원하게 터놓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이화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곤란했다.
나야 천상의 사부님들과 인연을 맺으며 어느 정도 완화된 면이 있지만, 백무호는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간 털어놓을 날이 있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아, 무호야.”
“어?”
“그러고 보니 당가 가주님이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이라고, 당가 신병이기나 비전암기 하나 정도씩은 챙겨가도 좋다고 하시더라.”
“얀마! 그런 건 빨리 말해야지!”
내 말을 듣자마자 백무호는 당만옥 총관을 찾아 부리나케 달려갔다.
“저거 저거 하나만 챙길 기세가 아닌데.”
당가 내부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은근슬쩍 챙겨 놓을 기세다.
“뭐, 알아서 하겠지.”
어쨌거나 백무호가 자리를 비운 이때 이화를 만나 봐야겠다.
서둘러 이화를 찾아 움직였다.
해낸 일로 인해 제법 주목을 받아서 그런지 내 일행에 대한 위치는 몇 번 말을 묻는 것으로 알아낼 수 있었다.
이화는 처음 나와 백무호가 배정받았던 손님방에 있다고 한다.
손님방으로 들어서자 곧장 몸을 숙이는 이화를 볼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천마님.”
“……미안한데, 호칭을 좀 달리하는 건 어떨까. 다른 곳도 아니고 사천당가 내부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겁나서 살 떨린다.”
역시 백무호를 떼어 놓고 온 것은 잘한 일이다.
내심 현명한 판단에 자화자찬하는 시간을 가지는 가운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화가 대안을 내놓았다.
“그럼…… 주인님?”
“그것도 좀…….”
“……위대한 분?”
“……그런 말을 태연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낯짝이 두껍진 않거든?”
“어, 음……. 그럼 소녀가 어찌 불러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 내던 이화가 처음으로 허둥거리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그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이지만, 처음 등장부터 범상치 않은 모습들만 보아 와서 그런지 다소 신선하게 느껴졌다.
뭐랄까. 귀엽달까?
“오라버니, 라고 부르는 건 어때?”
“청운…… 오라버니?”
이화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뭔가 낯간지럽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앞서 나온 제안보단 나으니 이쯤에서 타협을 보자.
“그래, 앞으로는 그렇게 불러.”
“예, 청운 오라버니.”
“…….”
뭐, 듣다 보면 익숙해지는 날이 올 거다.
아마도.
“아무튼, 네게 물어볼 게 있어.”
“예. 제가 아는 것이라면 뭐든지 답해 드리겠습니다.”
호칭과는 상관없이 이화는 당장이라도 이마를 땅에 댈 것 같은 태도로 답했다.
“마교 내부에 내분이 꽤 심하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이야?”
“알고 계시는군요.”
의외였는지 이화는 크고 동그란 눈에 호기심을 드리웠다. 마교 내부의 일을 알고 있는 게 신기했나 보다.
허나 곧 호기심을 지워내고 설명을 이었다.
“지금의 천마신교는 크게 네 개의 생각을 가진 이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현 천마를 지지하는 파벌과 현 천마를 인정하지 않는 파벌. 그리고 전통과 격식을 무시한 채 힘을 키울 수만 있다면 뭐든 좋다는 생각으로 사법(邪法)에 몰두하는 파벌. 마지막으로 골치 아픈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중립 파벌이 있습니다.”
“의외인데.”
마교 마인들이라면 천마라는 두 글자 앞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거 아니었어?
“천마는 마교에서 절대적 권위를 자랑하는 존재가 아니었나?”
“청운 오라버니와 같이 진정한 천마의 무맥을 이으신 분이라면 그렇겠지요.”
“진정한 무맥?”
“지금 천마 위에 있는 이는 제대로 천마 님의 무맥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반쪽짜리죠.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몇 대 전부터 그런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천마가 천마의 무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권위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 들으니 왜 마교의 상태가 저 모양 저 꼴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
그 순간 뭔가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온전하지 않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파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구대문파를 필두로 한 정파 무공 역시 그 정체성이 상당히 훼손되어 있었다.
정파도 약해지고 마교도 약해졌다.
‘마치…… 누가 그렇게 유도라도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