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45
제145화 – 무슨 일인데?
재수 없는 늙은이의 일성은 예상 밖의 질문이었다.
“전부 회수했느냐?”
내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늙은이가 당혹감을 표출했다.
“아니, 어떻게?”
나는 늙은이가 그새 내 속을 훑어 두 달 전보다 훨씬 강대한 마기가 휘돌고 있음을 알아챘다는 걸 알았다.
“어쩔 수 없었소. 마기를 도로 마정에 집어넣으려면 다 빼내야 했소. 비운 연후에야 채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요.”
늙은이의 눈이 일그러졌다.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반증이었다. 혹은 탐탁지 않거나.
“이 정도의 마기를 뽑아내고도 영향을 받지 않았단 말이냐?”
“전날 말했듯 내 선력을 초과하지 않으면 통제가 가능하오.”
잠시 침묵하던 늙은이가 핵심을 찔러왔다.
“천마의 마령을 온전히 복구하려면 네가 천지조화지경에 들어야 한다는 뜻이더냐?”
“그렇소.”
“만약 마령의 마기가 신선의 선기를 능가하면 어쩌려느냐?”
“그럴 일은 없소. 나는 본능적으로 아오. 극미한 차이이나 천마의 비력이 신선의 권능보다 아래에 있음을. 마력을 선력의 성장 수준 이상으로 끌어내지 않는 한 결국은 원래의 결정체로 돌아가게 될 거요.”
“얼마나 걸리겠느냐?”
“일전에 일 년을 기한으로 잡지 않았소? 아직 열 달 가까이 남았으니 그 안에 충분히 해내리라 자신하오.”
늙은이의 표정이 묘했다. 내가 신선이 되는 건 달갑지 않을 터이지만 천마의 마령을 참회동에 돌려놓으려면 나를 응원해야 할 입장인지라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떨떠름해 하는 늙은이를 응시하며 나는 전날의 요구를 되풀이했다.
“내가 마령을 원상 복구해 진인에게 건네주면 내 어머니를 석방해 주시오.”
“말하지 않았더냐? 그 마물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너는 그것과 무관하게…….”
늙은이는 말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콧잔등에 주름을 잡고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안진이 불시에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마물이 내 어머니야, 사부?”
늙은이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멍하니 안진을 바라보던 늙은이가 돌연 나에게 무시무시한 안광을 발했다.
“네놈이 진아에게 괴상한 소리를…….”
늙은이는 이번에도 말을 중간에 멈춰야 했다. 그를 막은 건 안진의 악다구니였다.
“대답이나 해! 그 마물이 내 어머니냐고!”
나는 발광하기 일보 직전인 안진을 제지했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서 험한 언사가 쏟아져 나오기 전에 늙은이가 선수를 쳤다.
“나가자. 나가서 얘기하자꾸나.”
나에게 눈짓을 한 늙은이가 좀 전에 나와 안진이 떨어져 내렸던 구멍으로 몸을 솟구쳤다. 안진을 껴안은 나도 수직으로 비상했다.
***
아직 이른 아침이었지만 모래 언덕은 벌써부터 불을 땐 방구들처럼 뜨끈뜨끈했다. 일광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기지 않고 재수 없는 늙은이가 그 자리에서 대화를 재개했다.
“대체 어떻게 알았느냐?”
누구에게 던진 질문인지 모호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로써 늙은이는 참회동의 여인이 안진의 모친임을 시인한 셈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해? 진짜 그녀가 내 어머니야? 그러면 내 아버지는 누구야?”
“…….”
“말 안 할 거야? 내 아버지는 누구냐고?”
안진에게서 시선을 돌려 허공을 쳐다보는 늙은이의 눈빛에 회한이 어렸다.
“그래, 얘기해 주마. 전부 다.”
마음을 추스르려는지 늙은이가 한참 동안 뜸을 들였다. 나는 보채려는 안진을 다독이며 늙은이의 토설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어언 사십여 년의 성상이 흘렀구나. 당시 천지인의 도에 들어선 나는 도원을 나가 세상을 떠돌았다. 그 아이들과 조우한 것은 삼 년으로 잡았던 수행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삿된 탐욕으로 얼룩진 속세의 인간들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해있던 나는 도인들의 마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심신을 정화시키고는 했다. 비록 도력은 약했으나 하나같이 순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언젠가 오행의 도를 깨쳐 도원을 찾을 터였고.
그 아이들은 도원으로 귀환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았던 곳에서 만났더랬다. 악마들의 소굴인 마원의 변두리에 위치한 소촌이었지.
마을로 향하던 나는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다. 상공에 도기만이 아니라 마기가 일렁이고 있더구나. 서둘러 마을에 달려가 보았으나 이미 참극이 끝나 있었다. 금기를 어기고 마원의 경계를 넘어온 마인들이 무자비한 학살을 저지른 것이었다.
온전한 시신을 찾아볼 길 없는 목불인견의 참상에 망연자실해 있는데 난데없는 울음소리가 들리더구나. 황급히 소리가 날아온 곳으로 가보았더니 아궁이 속에 한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이들이 있었다.
추측건대 마인들의 침입을 인지한 아이들의 어미가 급히 수혈을 짚은 후 거기에 숨겨둔 듯했다. 공간이 극히 협소한데다 숨소리가 미약해 마인들이 그 아이들을 놓치고 지나갔을 터이고.
아무튼 그것이 나와 쌍둥이의 첫 만남이었다.”
묵묵히 늙은이의 회상을 듣고 있던 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이 쌍둥이라는 건 어찌 알았소? 그냥 부모가 다른 아기들이었을 수도 있잖소?”
“품에 사주와 이름들이 적힌 표가 있더구나. 성(姓)과 생년월일시가 동일하다면 쌍둥이가 아닐 수 없지 않겠느냐?”
내심 타당한 추론임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반박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잖소? 그들이 별개의 모친들에게서 우연히 한날한시에 태어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거니와 집성촌이라면 성씨가 같은 게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오.”
안진이 나를 거들었다.
“맞아. 그 아기들이 쌍둥이였을 거라는 사부의 짐작에 근거가 상당하지만 꼭 옳다고 볼 수는 없어.”
늙은이는 우리와 언쟁을 벌이지 않고 물러섰다.
“그래,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아이들이 쌍둥이였는지 아닌지가 무어 그리 중요하겠느냐? 어쨌거나 준아와 연아는 자신들이 쌍둥이라 알고 자랐다. 그러면서도 인륜을 거슬러 둘의 후세를 가졌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었다.”
이 대목에서는 늙은이의 감상에 토를 달기 어려웠기에 나도 안진도 침묵해야 했다.
***
안진이 진도를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사부가 그 아기들을 거뒀어?”
늙은이에게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아니다.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아이들을 내가 무슨 수로 키우겠느냐? 그래서 전에 들렀던 도가의 마을을 찾아가 그 아이들을 맡겼다. 그러고서 도원으로 돌아왔구나.”
“그럼 나중에 그들을 다시 만난 거야? 천마의 마령을 품은 이들을 잡고 보니 그때의 그 아기들이었다고?”
나는 긴장했다. 만약 늙은이가 그렇다고 답하면 거짓말일 공산이 컸다. 아무리 인세에서 떨어진 도인들의 마을이었다고 해도 문상의 대대적인 조사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을 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늙은이의 고개가 좌우로 돌아갔다.
“나중에 만난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늦게는 아니었다. 그 아이들과의 재회는 사 년만이었다.”
“사부가 일부러 그들을 찾아갔구나?”
“그래. 속세 행을 마치고 도원에 돌아온 후 나는 음양지도로 나아가기 위해 불철주야 수행에 전념했다. 하지만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나날이 도력이 퇴보하더구나. 마장(魔障)에 들었음을 자각한 나는 원인을 탐구했다. 그랬더니 그 아이들이 나오더구나.
그 아이들과의 인연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면 천지인의 도를 완성할 수 없음을 깨달은 나는 그날로 도원을 나와 그 아이들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그 마을에서 얼마간 지내며 아이들과 어울렸다. 정을 다진 후 가차 없이 떼기 위해서. 그래야 마장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더랬다.”
늙은이가 입가에 매단 씁쓸한 미소를 본 안진이 결과를 예단했다.
“하지만 실패했구나.”
늙은이의 고소가 짙어졌다.
“그 이상이었다. 정을 떼기는커녕 그 아이들에게 푹 빠져버렸구나. 준아와 연아는 내 아들딸이 되었다.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희한한 건 걸림돌로 여겼던 사사로운 감정들이 내 도력 상승에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어느새 꿈에 그리던 음양의 도에 성큼 다가섰다. 한동안 고민하던 나는 운명에 순응하기로 했다. 설령 그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일원의 궁극에 이르는 데 방해물이 될지라도 받아들일 참이었다.”
내가 끼어들어야 할 시점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그 마을에서 도를 닦았단 말이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안진이 적절한 질문을 던졌다.
“왜?”
“그 당시 나는 이미 도원의 원주였다. 그 아이들과 재회하고 반년쯤 지났을 때 일찌감치 나를 후임자로 지목했던 전대 원주가 영면했음을 알게 되었다. 도원을 오랫동안 비워둘 수는 없었기에 부득이 돌아가야 했다. 한데 나를 부모인 양 따르는 아이들을 두고 가자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더구나.
고심 끝에 두 아이를 도원에 데려오기로 했다. 오행의 도를 깨치려면 멀었기에 자격이 없었으나 원주의 직권으로 가능성을 우선시하기로 한 게다. 준아와 연아 모두 특출한 근기를 지니고 있으니 머지않아 오행지도에 들리라 확신했더랬다.
그렇더라도 일종의 편법이었기에 나는 도우들 몰래 아이들을 폐쇄구역에 들였다. 나중에 자격을 갖추면 정식으로 소개할 작정이었지. 실제로 둘 다 불과 십일 년 만에 경계를 넘었다. 어엿한 도원의 일원이 된 게지.”
안진이 나보다 앞서 반론을 제기했다.
“납득이 안 돼. 그럼 다들 그들을 알 텐데 어째서 나한테는 아무도 말하지 않은 거야? 설령 사부가 함구령을 내렸다고 해도 떠버리 할아버지나 주책바가지 아저씨의 입까지 막을 수는 없었을 텐데.”
“그 아이들은 오행지도에 든 이후에도 도반들과 교류하지 않고 고립수행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했다. 일원에 이를 때까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로매진하겠다며. 나로서는 그저 기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실제로 두 아이의 재능과 성취는 도원 역사상 최고라고 평가받던 나를 훌쩍 능가하는 것이었다. 진아, 너에겐 약간 못 미치지만 가히 천상의 재목들이었지. 오행지도에 든 지 다시 칠 년 만에 사상(四象)의 경계를 넘어 천지인의 도에 이르렀으니까. 그러고는 금도까지 어겨가며 단숨에 음양지도를 건넜으니 그 일이 없었더라면 나와 거의 동시에 일원의 궁극에 도달했을 게다.”
“그 일? 무슨 일인데?”
늙은이가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나는 격동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선정 상태가 아니었다면 소리를 질렀을지도 몰랐다.
내가 도가의 후예였다니. 어쩐지 도원에 들었을 때 오매불망 그리던 본향에 온 듯한 포근함이 느껴지더라니.
나는 철이 든 이후 지금까지 나 자신의 정체성을 마인이라 여기고 살았다.
극악의 본성이 발현되지 않는 건 나에게 선기를 불어넣고 선인으로 키우려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노인네 덕분이라고 믿었다. 자라는 내내 노인네의 꼭두각시가 된 것 같은 반발심에 괜히 위악을 떨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착각에서 비롯된 처사였다니.
허망했다. 그러면서 분기가 일었다. 노인네가 아니라 재수 없는 늙은이한테.
어째서 노인네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았나. 노인네와 내가 미망에 빠져있던 세월을 어떻게 보상할 텐가.
나는 재수 없는 늙은이에게 격렬히 항의하고픈 충동을 선정으로 다스렸다.
내 부모의 운명을 뒤바꾼 일에 대해 들어야 했다. ‘그 일’이 천마의 마령과 관련되어 있음은 불문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