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46
제146화 – 그럴 이유가 없잖아.
약관을 갓 지나 나란히 하늘과 땅과 인간을 관통하는 이치를 꿰는 삼재에 든 안준(安俊)과 안연(安娟)은 도원의 전통에 따라 속세로 나갔다.
그를 포함해 아무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천지인의 도에 들어선 전례가 없었던 터라 태청진인은 물가에 철부지 아이들을 내놓는 심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식들이나 다름없는 제자들의 출행을 막고 싶었으나 본인의 불길한 예감 외엔 마땅한 설득의 근거가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들의 출행을 허락했다.
한껏 들뜬 쌍둥이를 사막 끝까지 배웅한 진인은 그들에게 바깥세상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찰하되 세사불개입의 원칙을 철저히 지킬 것을 재삼재사 당부했다. 그들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쌍둥이는 태청진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나중에 안연의 고백을 통해서 알게 된바, 그들은 애초부터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갈 심산이었고 그를 실천에 옮겼다.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골들을 끌어모아 장례를 치른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복수를 결의했다. 그것이 그들의 마장임을 깨닫지 못한 채.
도원에서와 마찬가지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고립 수행을 이어가던 남매는 더딘 성취에 애가 달았다. 사부와 합의한 삼 년 기한이 다가오도록 음양의 도는 고사하고 삼재조차 통달하지 못한 둘은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금기를 깨뜨림으로써 음양지도를 깨치고자 한 것이었다.
도력의 완전한 상실을 각오하고 행한 그들의 도박은 완벽히 성공했다. 안연이 그들의 후세를 잉태하고서 석 달쯤 지난 어느 날 둘은 불현듯 음양지도와 태극의 묘리를 터득하며 팔 단계와 구 단계의 벽을 한꺼번에 돌파했다. 꿈에 그리던 일원지경을 목전에 둔 남매는 도원으로 귀환하기 전에 삼 년 전의 다짐을 실행하기로 했다.
***
숨죽인 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안진이 탄성을 토해냈다.
“아! 드디어 복수에 나선 거구나!”
“원래는 그럴 참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마원으로 넘어가고도 마인들을 척결할 수 없었다.”
“왜?”
“아무리 극악무도한 마인들이 대상일지라도 살생을 하게 되면 결코 궁극의 도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달아서였다.”
“무슨 소리야? 사부는 이미 알고 있었잖아? 그들에게 그 중요한 원칙을 안 알려줬단 말이야?”
“나도 음양지도의 최종단계에서야 불살의 금제를 인지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이 도원을 나가고 이 년쯤 후였구나. 그 가르침이 없더라도 그 아이들이 살인을 저지를 리 만무하다고 믿었지만 그 길로 도원을 나섰다. 그것을 핑계로 아이들을 찾아보려고.”
“그래서 그들을 만났어?”
“일 년 가까이 온 천하를 헤맸지만 허탕만 쳤다. 그러다 기한이 되어 도원으로 복귀하던 중 혹시나 싶어 아이들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곳으로 가보았다. 두 아이의 흔적이 있더구나. 지금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애당초 거기부터 들렀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을.”
“그러게. 그다음엔 어떻게 됐어?”
“나는 마원으로 향했다. 그 아이들이 그 마을에 꽤 오래 머물러있었던 걸로 보아 어쩌면 혈족의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심히 불안했다. 그 아이들이 불살의 금계를 어겨 도력을 잃을 것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변을 당했을까 봐서. 한데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 기다리고 있더구나.”
“뭔지 알겠어. 그들이 엉뚱하게도 천마의 마령을 취한 거지?”
재수 없는 늙은이가 만면에 침중한 기색을 드리움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위화감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늙은이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그 모든 게 우연이었을까.
한 식경 사이에 삼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은 늙은이를 직시하며 나는 뱃속에서 솟구치는 의혹들을 목구멍에 가두었다. 일단은 더 들어볼 참이었다.
***
제자들을 찾아 마원을 배회하던 태청진인은 천마고원 북편의 깎아지른 절벽에 난 석굴에서 그들과 조우했다. 그들을 발견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를 자극하는 가공스러운 마기에 이끌려 가보았다가 맞닥뜨린 것이었다.
그의 애제자들은 이미 본래의 성품을 상실하고 천마의 노예로 전락해 있었다. 그들은 사부를 알아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불문곡직 그를 죽이려 들었다. 태청진인은 악마로 화한 그들을 제압하려 했지만 역불급이었다.
쌍둥이의 합공에 고전하다 간신히 목숨만 건진 진인은 몸을 뺐다. 제 한 몸 살겠다고 무작정 도주한 건 아니었다. 제자들이 천마의 힘을 오롯이 얻기 전에, 그래서 세상을 시산혈해로 만들기 전에 어떻게든 제지할 작정이었다. 다행히 그에겐 복안이 있었다.
마원을 나간 진인은 이십여 년 전 속세 행에서 인연을 맺은 선맥의 절대기인을 찾아갔다. 상선은 기꺼이 그의 청에 응해 은신처를 나섰다. 천마고원에 이른 둘은 쌍둥이와 격전을 벌여 하나는 자진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진인은 살아남은 마녀를 참회동에 가두었다.
***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어째서 조부에게 그들에 관해 알려주지 않았소?”
재수 없는 늙은이가 반문했다.
“어떻게 알린단 말이냐? 그 아이들은 도가의 치부인 것을.”
늙은이의 뻔뻔함에 분기가 치밀었다. 안진이 내 편을 들었다.
“너무 성급한 거 아냐, 사부?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들은 어쩌면 좋은 의도로 천마의 마령을 취했을 수도 있어. 선에게 듣기로는 마두들에게 마종으로서 두 가지 명령을 내렸다고 하더라고. 첫째, 함부로 사람들을 죽이지 말 것. 둘째,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걸 줄 것. 그것만 보더라도 무자비한 학살로 온 천하를 피로 물들였다는 천마하고는 거리가 멀잖아. 안 그래?”
“초기엔 인성을 어느 정도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만났을 때는 이미 인간의 이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상선과 내가 며칠만 늦게 당도했으면 끔찍한 혈겁이 일어났을 게다. 물론 무림엔 놀라운 무력을 지닌 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 당시엔 아직 그 아이들의 마력에 미치지 못했다. 더욱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설령 그들이 합심해 그 아이들을 막았다고 해도 그 전에 수만, 수십만의 인명이 희생당했을 터. 나로서는 살겁을 미연에 방지해 안도했을 따름이었다.”
그럴듯한 주장이었기에 안진도 더 물고 늘어지지 않고 늙은이를 놔주었다. 대신 내가 꼬투리를 잡았다.
“아까 내 모친의 고백을 통해 전후 사정을 알아냈다고 하지 않았소? 이지를 잃었다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했소?”
늙은이가 잡아먹을 듯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안진을 흘끔거렸다.
“그 아이는 딱 한 번 온정신이 돌아온 적이 있다. 진아를 낳은 직후였다. 지독한 난산이었다. 사경을 헤매다 겨우 출산에 성공하고는 별안간 눈물을 쏟더구나. 나를 알아본 게다. 그날 그 아이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비록 금방 다시 미치광이가 되었으나 중요한 내용은…….”
그야말로 ‘중요한 내용’이 이어질 참이었으나 안진이 끊어버렸다.
“그래서 내 아버지가 누구야? 선이 부친은 그 전에 자진했으니까 다른 사람일 텐데.”
안진의 동공에 짙은 두려움이 묻어났다.
나는 내 누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알았다.
참회동은 천지인의 도에 들고도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야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고립수행을 하는 이들을 포함해 일백 명 전후로 추정되는 도원의 도인들 중에서 그러한 조건을 갖춘 이는 극소수일 터였다. 어쩌면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몰랐다.
설령 참회동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해도 접근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재수 없는 늙은이가 도가의 금역(禁域)이자 성역인 참회동을 아무나 들락거리도록 방치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다름 아닌 늙은이가 안진의 부친으로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니겠는가. 기실 이는 노인네의 선령을 통해 모친의 모습을 초견하자마자 내 머릿속에 즉각적으로 떠오른 가설이기도 했다.
뜻밖에도 늙은이는 별다른 동요 없이 쓴웃음을 지었을 뿐이었다.
“그 또한 비극이었구나. 참으로 아까운 인재를 잃었어. 내 불찰이었다.”
운을 떼어놓고는 늙은이가 입을 다물자 그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하던 안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뒷말을 재촉했다.
“아까운 인재라니? 내 아버지 말이야?”
“그래. 그는 나를 제외하면 최연소로 도원에 든 기재였다. 지나치게 외골수이긴 했지만 최고의 근기를 가진 원석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그를 차기 원주로 지목할 참이었다. 실제로 그 일이 있고 나서는 그를 불러 도원의 후사를 맡겼다. 공식적인 발표만 앞두고 있었는데 그 황망한 사태가 벌어졌구나.”
“빙빙 돌리지 말고 바로 말해줘. 내 아버지가 어떻게 참회동에 갇힌 그녀와 관계를 가지게 된 거야? 둘이 사전에 아는 사이였어?”
“안다고 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아주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다. 실은 둘은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아이들처럼 그도 도원에 들어온 이후 고립수행을 고수했다. 그러다 도력이 상승함에 따라 그 아이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감지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겼지만 워낙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성미인지라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다 공교롭게도 그 아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천지인의 도에 이르고는 속세행을 위해 나를 보러 왔을 때 내 처소에서 얼굴을 마주치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간 후 누구냐고 묻더구나. 그래서 사실대로 대답해주었다. 아마도 그는 그때 연아를 음양지도에 들었을 때의 극복대상으로 상정했던 듯하구나.
아무튼 그 아이들과 보름 상관으로 출행한 그는 삼 년 후 무사히 귀환했다. 깊되 좁았던 도량이 한층 넓어져 있더구나. 그는 그보다 앞서 나간 아이들의 성취에 관심을 보였다.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벌어진 참극에 대해 알려주었다. 몹시 놀라더구나. 도가의 미래를 잃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고. 그의 반응을 보고는 나도 다시금 가슴이 무너졌다.”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침통해하던 늙은이는 안진의 독촉을 받고서야 회상을 재개했다.
“일 년여 후 그는 참회동을 인지할 수 있는 도력에 이르렀다. 혹시 그가 그곳을 기웃거릴지 몰라 한동안 지켜보았지만 수행에 여념이 없더구나. 그래서 방심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참회동에 외인이 들었다는 신호가 잡히더구나. 황급히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후였다.”
“자꾸 말하다가 멈추지 마, 사부. 무슨 일이었는데?”
“실혼인(失魂人)이나 다를 바 없는 그 아이는 광소를 터뜨리고 있었고 그는 그 위에 엎어진 채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그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그는 그저 ‘죄송하오, 원주.’라고만 하더구나. 그러고는 이승을 하직했다.”
“그가……, 그녀를 덮쳤단 말이야?”
“그래.”
“어째서?”
“…….”
“왜 그랬냐고?”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지 못한다. 짐작건대 마장에 빠지지 않았던가 싶구나.”
“그러면 그녀가 그를 죽인 거야? 하지만 이상하잖아? 그녀에겐 그럴 힘이 없었을 텐데. 천마의 마령은 선에게로 갔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천지인의 도에 든 상승의 도인을 해칠 수 있었던 거야?”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하지만 빤한 대답이 나올 질문이기도 했다. 과연 늙은이의 입술에서 예상했던 답변이 흘러나왔다.
“그를 죽인 건 그 아이가 아니다. 참회동에 깃든 선사들의 정기였다. 그분들의 영이 성스러운 참회동 안에서 삿된 짓을 벌이는 그를 응징한 게다.”
콧잔등에 주름을 잡은 안진이 입술도 꽉 깨물었다. 그녀가 가여웠지만 나는 나와 별 상관이 없는 문제가 완결되어 다행이라 여겼다. 이제 ‘중요한 내용’에 집중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다시 한번 안진이 방해했다. 다만 이번엔 나로서도 그녀를 적극 응원해야 할 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내 아버지는 그렇다 쳐. 어머니는? 그녀는 왜 아직도 참회동에 잡아두고 있는 건데? 그럴 이유가 없잖아?”
잘한다, 철딱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