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078
마탄의 사수 (1078)
―우선 제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 기다리세요.
“어떤 방법이 있나요?”
―뭐, 딱 떨어지는 건 아니어도 응용만 할 수 있어도 좋으니까요.
“응용? 뭘 응용한다는 거야, 형?”
이하는 기정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조용히 스킬 창을 열었다.
수백 개가 넘게 생성된 스킬을 보며 이하는 헛웃음을 쳤다. 그러나 웃음은 곧장 지워졌다.
‘여유를 부릴 순 없지. 빨리 해야 한다.’
그것은 이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 중 하나였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의 문이 열렸음을 유저들만큼 빨리 알아챈 존재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끌끌끌끌…….”
“하핫.”
“어머나, 어머나아~?”
뜬금없는 반응을 보이는 존재들 때문에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화들짝 놀랐다.
평소 웃음이라곤 일절 보이지 않던 기브리드까지 소리를 내었기에 그 놀람은 더욱 컸다.
유저들이 눈치를 보자 그들 중 가장 고참인 파우스트가 나섰다.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백작님.”
“아, 있고말고. 피로트-코크리 녀석 때문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싶었는데.”
“끼히히힛! 하여튼 할아버지도 내 말은 절대로 안 믿는다니까! 정말 놀고만 왔다고 말했잖아!”
피로트-코크리는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의자에 앉아서 발을 흔들고 있었다.
언성을 높이는 언데드의 여왕을 보며 푸른 수염은 고개를 저었다.
“끌끌, 인간들은 땅에서 솟아나는 게 아니야. 데려간 인간들의 25%를 잃어 놓고 ‘논다’는 네 녀석의 말을 어떻게 믿겠나.”
“원래는 그렇게까지 하려는 게 아니었거~든~? 하지만 재미있는 장난감이 있는데, 후진 장난감을 계속 가지고 놀 수는 없고……. 끼히히힛! 그래서 물물교환 좀 했지! 그치, 얘들아~?”
피로트-코크리는 주변의 네크로맨서들을 향해 물었다.
그녀와 함께 출전했다 살아 돌아온 유저들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감에 가득 차 세상이라도 다 가진 것처럼 행동하던 때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킥킥, 마왕군 생활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적응되는 게 아니지. 스스로 머리를 굴리지 않고 무작정 따라나섰다간 금방 도태되는 것을……. 이제야 놈들도 마왕의 조각의 무서움을 느끼는 건가.’
파우스트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피로트-코크리가 네크로맨서 유저들을 대규모로 데리고 나갔다 온 이후로, 마왕군에 들어온 유저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약하거나, 쓸모없는 유저는 곧장 떨어져 나간다.
그것도 보통이 아닌 페널티와 함께!
이제 막 마왕군에 들어선 유저들에게 있어선 가장 무서운 처형 방법이나 다름없었다.
“뭐, 일단은 믿어 주도록 하지. 하지만 명심하는 게 좋을 게야. 놈들은 이제 겨우 문을 열었을 뿐.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우리도 미래가 없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
“끼히히힛! 하여튼 그놈의 잔소리! 놈들 중 내가 죽인 건 한 녀석도 없으니까, 그곳까지 못 가면 내 탓은 아니라고!”
피로트-코크리는 여전히 장난스러웠으나 레의 표정은 그럴수록 더욱 굳어만 갔다.
파우스트도 대략의 상황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왕의 조각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문이라면 라퓨타에 있다던 바로 그것입니까.”
“끌끌, 그래.”
“그럼 안 되는 것 아닌지요. 그곳은 신성력과 관련된, 아니, 성직자들이 강해진다거나 놈들이 정말 신神이라도 만나 어떤 축복을 받는 날에는―”
“파우스트.”
“―위험해지는 게 아닌지―……. 크흠, 넵, 백작님.”
마왕의 조각과 함께 가장 오래 일했던 유저가 할 수 있는 반항이란 겨우 그 정도였다. 자신을 불러도 바로 답하지 않고 1초쯤 더 이야기를 지속해보는 것.
푸른 수염의 눈은 파우스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파우스트는 그 눈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원하는 게 그거야.”
“……네?”
“끌끌끌끌……. 마탄의 사수가 버젓이 활동하면서 적개심을 드러내는 한, 우리도 안심할 수가 없어.”
푸른 수염은 간략하게 말했다. 주변의 유저들이 그 얘기를 듣고 수군거렸으나 파우스트는 푸른 수염에게 다시 묻지 않았다.
이미 힌트는 나왔다.
굳이 그것을 다른 유저들에게 확인시켜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성 연합〉놈들이 라퓨타에서 신이나 또는 그 유사한 NPC를 만나면…….’
마왕의 조각들은 더 이상 마탄의 사수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된다, 라는 의미가 아닌가.
‘크크크! 그렇게 되면 이제…….’
파우스트는 숙인 고개 그대로, 미소를 짓지 않으려 애썼다.
여전히 주변의 유저들은 푸른 수염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고르나 파이로는 역시 무너지는 배에 탄 거야. 마왕군 쪽이야말로 미들 어스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어.’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게 바로 정보의 힘이자 유저들 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마왕의 조각들이 하는 이야기를 완벽하게 이해한 건 역시나 파우스트뿐이었다.
“거기, 도마뱀?!”
피로트-코크리는 그런 파우스트를 부르며 의자에서 뛰쳐나왔다.
“네, 넵, 피로트-코크리 님.”
“나랑 새로운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래?”
“무슨…… 말씀이신지―”
“기브리드 오빠도 도와줘야 해! 끼히히힛, 이번에 얻은 장난감 재료들이 좀 망가져 있으니 고쳐 줘!”
피로트-코크리는 다짜고짜 기브리드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잡아당겼다.
유저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기브리드는 피로트-코크리가 당기는 대로 움직였다.
그 방향은 시티 페클로에서도 오직 피로트-코크리만 들어갈 수 있는, 그녀만의 공간 쪽이었다.
파우스트는 잠시 레의 눈치를 보았다. 레는 그를 흘끗 보며 입을 열었다.
“흘…… 가고 싶으냐.”
“백작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배워 보고 싶습니다.”
“그래. 이번에 ‘그놈들’을 얻는 과정에서 너의 공이 컸지. 가 봐라.”
레가 피로트-코크리와 함께 나타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그 외의 할 일’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곳에서 공을 세운 파우스트를 푸른 수염은 상당히 인정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파우스트는 레에게 인사한 후 재빨리 피로트-코크리를 쫓았다.
마왕군에 속한 유저들은 모두 부러운 눈으로 파우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하얀 비늘의 리자디아가 피로트-코크리의 방으로 들어가고 불과 몇 초 후, 파우스트의 외침이 방 안에서 새어 나왔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이건― 이게―
―끼히히히힛! 재미있겠지? 응!
“무슨 일일까?”
“글쎄. 네크로맨서니까 또 뭐 만드는 거 아닌가?”
“근데 이번엔 기브리드까지……. 아, 부럽다. 나도 진작 전향했으면 파우스트 따라잡았을 텐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던 유저들은 그저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그리고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열렸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나, 그것과 무관하게 바삐 움직이는 사람은 또 있었다.
* * *
딱―!
죽통이 바위를 때리며 맑은 소리를 퍼뜨렸다.
다다미가 깔린 방은 넓었으나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남성 세 명과 여성 한 명이 호화롭게 차려진 음식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자리한 상태였다.
“……문제는 해결할 수 있나.”
“물론이에요. 문제라고 부를 것까지는―”
“사스케에게 들었다.”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치요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옅은 미소가 머금어져 있는 그대로였다.
정작 이름이 불린 사스케는 움찔하며 치요의 눈치를 보았으나 치요는 사스케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잠시간 침묵이 지난 후, 사스케의 맞은편에 앉은 안경 쓴 남성이 입을 열었다.
“그 전체적인 플레이 성향이나……. 지금까지 치요 상이 가져온 정보는 분명 도움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구플의 그 어떤 개발진도 게임 속에서 권한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과, 특정 성향의 유저들이 불리하도록 잠수 패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지요.”
“별 말씀을. 그거야 처음부터 제가 알려 드리기로 한 건데요.”
치요는 안경 쓴 남성을 향해 살포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친절해 보이던 남성의 목소리 톤이 조금 낮아졌다.
“따라서 중요한 건……. 압도적인 지배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저희의 지원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니 재촉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지만, 지분 참여를 한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여러분들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빨리―”
“거기까지 하지.”
“핫! 그러시지요.”
안경 쓴 남성이 재빨리 입을 닫자, 치요 곁에 있던 남성은 술을 한 잔 들이켜곤 말을 꺼냈다.
“그 지분에 관해서도 다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예?”
“실질적인 개발은 자네들이지만……. 우리가 미들 어스 개발 정보를 빼내어 주지 않으면 결국 구현하지 못한다면서.”
“그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분명 필요 정보를 얻기까지 소요되는 비용을 야마구치구미 3, 저희 사社에서 7을 대기로 하고― 해당 정보를 얻은 후의 지분 20%를 드리는 것으로―”
“얼마 전 N사에서 연락이 왔네.”
안경 쓴 남성이 계약 조건을 꺼냈으나 치요의 곁에 있는 남성은 곧장 다른 카드를 꺼내어 들었다.
안경 쓴 남성은 잠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곧 표정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서, 설마 지금에서야 개발 정보를 들고 N사와 거래를 하시겠다는 건―”
“단어 선택에 주의하시오, 개발실장님. 오야붕께서는 참으셔도 내가 못 참소.”
사스케가 인상을 찌푸리자 개발실장이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는 이미 완전히 제압된 상태였다. 치요의 곁에 앉은 남성은 흡족한 얼굴로 사스케를 본 후, 개발실장에게 말했다.
“아무리 인의가 없다 지탄받고 있다지만 우리도 그렇게 멍청하진 않네. N사로 가겠다는 얘기가 아님을 왜 모르는가.”
그것은 매우 완곡한 협박이었다. 개발실장은 결국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원하시는 건…….”
“첫 번째는 지분 증대. 두 번째는 자금 지원 비율 조정.”
“첫 번째는 어떻게든…… 하지만 자금 지원 비율은―, 이미 들어간 비용이 저희 회사 입장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규모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개발실장은 거의 울먹이며 읍소했다.
남성은 귓등으로도 듣는 척을 하지 않았으나 이번엔 그의 곁에 있던 치요가 술병을 들고 개발실장의 곁으로 다가왔다.
“죄송해요, 실장님……. 하지만 지금 당장 급한 일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어제 미들 어스 상황보고 드렸던 거 기억나시죠?”
“분명 연합 측 유저들과 악한 NPC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고―”
“네, 네, 맞아요. 저희 세력이 급격히 위축되어 버렸거든요. 지금 시점에서 그만두었다간―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이미 투자된 비용이 우리도 상당한데……. 지금도 대부분 접속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약 제가 말씀드렸던 ‘그’마저 놓쳐 버리면 그땐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개발실장은 치요에게 잔을 받으며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이래서 야쿠자와 거래는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어느 모로 봐도 자신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지점까지 발을 들인 상태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추가 자금을 지원해 드리면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를 우리가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 조금 날뛰어야 할지도 모르거든요. 그들에게 선금이라도 쥐어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치요 상께서 데리고 계신 분들은―”
“‘그’를 찾아야죠. 신대륙 전부를 뒤져서라도…….”
쪼르르륵, 치요는 그의 잔을 가득 채우며 말을 이었다.
“홀로 돌아다니고 있을 《마탄의 사수》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요. 미들 어스 개발진과 거래할 수 있는 키워드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개발실장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잔에 담긴 술을 모조리 삼켰다.
당장 그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나 결국 나올 답은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