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087
마탄의 사수 (1087)
‘불안해. 반격을 못 하겠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기묘한 감각은 물론, 몬스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근원적인 불안감이 기정의 태도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저도 느끼고 있어요! 하앗, 〈꽁뜨르 아따끄〉!”
기정의 말에 동의했던 신나라의 검은 몬스터의 갈비뼈를 긁고 지나갔다.
날카로운 공격에 몬스터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으나 신나라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았다.
“확실해. 저는― 이 정도의 불안감을 느낀 적이 없어요. 올림픽 결승 피스트Piste에서도 이 정도의 압박감은 아니었다고요.”
그녀는 빠른 동작으로 뒤로 물러섰다.
자신의 공격이 치명타를 입히지 못했다면 오히려 치고 나가며 추가타를 선호하는 신나라 또한 자신의 공격 스타일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 역시― 이 빌어먹을 이단 녀석들의……. 알 수 없는 행태에 화가 납니다.”
다른 사람들의 불안이나 위화감, 소극적인 태도와 달리 베르나르는 극도로 분노했다.
공격 한 방으로 언데드를 싹 쓸어버릴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던 그때처럼, 그는 대규모의 스킬을 사용하려 했다.
“〈아이스 스피어〉.”
베르나르의 곁에서 그보다 앞서 스킬을 사용한 것은 람화정이었다. 그녀는 몬스터들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더욱 놀라운 결과였다.
몬스터의 동작이 날렵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아이스 스피어는 논 타겟팅 스킬이며, 람화정의 공격은 특히 완전할 정도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저걸 피한다고?”
사람들이 당황할 정도의 일이 일어났다.
람화정의 아이스 스피어는 허무하게 놈들의 곁을 스치며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확신했다는 듯 자신의 주먹을 꽉 쥐며 이하를 보았다.
“오빠. 업적.”
“네?”
“보상. 정신.”
“정신? 무슨 정신― 아!?”
단어로만 이루어진 그녀의 말이었음에도 이하는 곧장 이해했다. 뜬금없이 다른 업적을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곳에 발을 딛게 되며 얻었던 업적의 보상!
〈업적: 신과 마의 숨결이 닿지 않던 찰나(R-)〉
보상: 정신계 저항력 +10%
“젠장! 역시 맞아. 그냥 ‘상태 이상’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세상에! 이제 보면 문구도 확실히 있어요!”
마침내 신나라도 눈치를 챘다.
미들 어스는 언제나 갑작스런 장난을 치지 않는다.
눈치 빠른 유저들이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열쇠는 항상 자물쇠의 곁에 두곤 한다.
“하지만 상태 이상이라는 알람은 안 떴는데요? 그리고 상태 이상이면― 베르나르 님의 스킬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무서운 거야, 기정아.”
이하는 기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제야 기정도 소름 끼치는 확신이 들었다.
“상태 이상이 아닌 방식에서 영향을 끼친다면……. 게임 외적인 시스템에서 간섭하고 있다는 의미잖아. 미들 어스 접속기를 통해서…….”
시스템 상의 상태 이상으로 유저들의 스탯을 디버프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상태 이상 ‘실명’처럼 유저들의 눈을 잠시 안 보이게 만들거나, ‘석화’처럼 유저들의 몸을 굳히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상쇄할 수 있는 스킬이나 아이템이 있다.
그러나 애당초 ‘게임 내 시스템’ 상의 페널티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거였어. ‘공포’에 대한 저항력은 있지만, 애초에 상태 이상으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잖아.’
현재 미들 어스 접속기에 연결되어 있는 유저들의 두뇌는 더욱 본질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전투처럼 유저들의 신체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리라.
사삭, 사사사삭……!
처음 등장한 14마리의 몬스터 중 9마리가량을 죽인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수풀이 떨렸다.
“파―응루이 매글루―나프…….”
번역조차 안 되는 몬스터들의 목소리가 그곳에서 울리기 시작했을 때, 유저들은 모두 한 가지의 방법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우선 피하죠.”
이하의 제안에 신나라, 기정, 람화정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전투에서 벗어날 준비를 했다.
베르나르가 남으려 했으나 이하는 한 마디로 그를 진정시켰다.
“여기 있다간 당신도 저렇게 변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건 안 되죠. 가요.”
베르나르는 수줍은 목소리로 이하에게 말했다.
* * *
“더 이상은 안 따라오는 것 같네요.”
“빠르기는 무지 빠르네. 피하는 것도 힘들었어.”
신나라와 기정이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멈췄다.
“휘유우우우……”
이하 또한 한숨을 돌리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스킬 창을 열어 보았다.
큰 이빨 여우의 특성이 추가적으로 저장되어 있을 뿐, 역시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전부 큰 이빨 여우였던 건가.’
그보다 훨씬 좋은 것을 갖고 있는 이하에게 이런 스킬은 아무 의미도 없다.
“뚫을 방법이 있을까요?”
“상태 이상도 아니고 저런 식이면, 최악의 경우 베르나르 씨가 과거 조사하셨던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올지도 몰라요.”
“……정신적 세뇌를 당하거나, 재수 없으면 육체적인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이군요. 큰 이빨 여우처럼.”
신나라와 이하의 대화를 들으며 람화정과 베르나르가 부르르 떨었다.
베르나르의 경우는 자신도 모르게 타 종교를 숭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고, 람화정은?
“문어. 징그러.”
“그렇죠. 우선 저 모습으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방법을 찾아야겠군요.”
“응. 크라켄. 컸어. 보기 싫어. 얼렸어.”
‘크라켄이라……. 그게 배를 직접 가격하려 했을 때 람화정은…….’
아예 바다의 표면을 얼려 버렸었다. 이하는 문득 그때를 생각하다 잠시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웬만해선 얼지도 않는 바다를 얼릴 정도로 람화정은 막대한 마나를 사용했다.
당시 보여 주었던 집중력과 마나 통제 덕분에 신대륙 항행의 유저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설마 그게…….’
연체동물을 무서워하기 때문일까?
“저건. 더. 징그러.”
람화정은 이하의 눈빛을 받으며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심각한 상황을 마주하고도 이하는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우하핫! 람화정 씨가 무서워하는 게 있네? 산낙지도 못 드시겠는데? 엉아! 람화연, 람화정 씨 다음에 한국 오면 산낙지나 먹으러 가자.”
기정이 까불거리다가 입 주변의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재미있네, 방금 전까지 엄청 심각한 느낌이었는데. 그냥 거대한 산낙지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만만하게 보이는데요?”
“나라 씨도 산낙지 드세요?”
“어머나, 그럼요.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하는 그녀의 답변을 들으며 다시금 상황을 정리했다.
“자, 그럼 우리가 산낙지로 변해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놈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을 좀 해 보죠. 아참, 베르나르 씨. 아까 저것의 본체를 뭐라고 하셨죠?”
“크툴루입니다.”
“크툴― 이름도 이상하네. 하여튼 ‘그것’을 직접 목격해야 모습이 저렇게 변하는 거라고 하셨죠? 그럼 지금 산낙지로 변해 버린 큰 이빨 여우를 계속 보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정신이 침해받고 있다는 것은 이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육체는 어떤 상황에 변하게 되는가.
베르나르가 로페 대륙에서 ‘저것’을 신으로 모시는 이단을 잡아 추출한 정보에서는 분명 그 본체를 목도해야 한다고 했다.
“……적어도 저희의 시대에서는……. 크툴루의 모습은커녕, 지금 변이한 큰 이빨 여우와 같이 크툴루의 영향으로 그 모습과 유사하게 변한 생명체도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서적 속 이미지나 작은 조각 정도가 전부였지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시점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하나 신나라가 본능적으로 육체의 변이 가능성을 느꼈듯, 베르나르의 정보가 모두 맞을 것이란 태평한 판단을 하고 있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 큰 이빨 여우를 상대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계속해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는 건가.”
“새. 있어.”
“네?”
“여우. 말고. 다른.”
람화정이 하늘을 가리켰다. 유저들의 고개가 모두 들어 올려졌다. 우중충한 하늘이었으므로 딱히 무언가가 맨눈으로 보일 환경은 아니었다.
이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스코프로 살폈다.
스코프 속에선 어두운 하늘에서 큰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생명체가 보였다.
“젠장…….”
“이하 씨?”
“날개를 보니 독수리 쪽인 것 같은데, 얼굴에는 부리 대신 산낙지가 여러 마리 들어차 있다……는 느낌이네요.”
큰 이빨 여우만 변이된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세계에 있는 생명체 중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이 저렇게 변했단 말인가.
“저희가 여기에 나타났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크툴루가 자신의 ‘신도’들을 이용하고 있는 거겠죠.”
베르나르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당장이라도 불순한 것을 치워 버리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다가올 전투에 대비할 방법을 궁리할 때, 기정이 방패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근데요.”
“뭐 생각난 거 있냐, 기정아.”
“아니……. 우리 여기에 저거 잡으러 온 거야?”
“뭐?”
기정의 눈이 잠시 허공에 집중되었다.
퀘스트를 홀로그램 창으로 띄워 확인하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연계 퀘의 성공 조건에 산낙지를 때려잡으라는 건 없었지? 우리 목표는…….”
“주신 찾기……. 아흘로를 만나는 게 우리의 목적이야!”
나무에 집중하면 숲을 보지 못하게 된다.
당장 저것들을 잡아 해결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그들이 에즈웬에서부터 출발한 이유도,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서 대천사들에게 들었던 내용 중에서도 ‘저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 않은가!
“그럼 저걸 그냥 무시하고―”
“주신을 찾으면 됩니다. 베르나르 씨!”
이하는 신나라의 말을 끊으며 베르나르에게 물었다. 베르나르는 그런 방식의 사고를 처음 들었다는 듯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단을 처리하지 않고……. 직접 신께…….”
“네. 주신 아흘로의 위치, 확인 가능하십니까?”
이하가 물었다.
베르나르가 잠시 입을 다문 사이 답한 것은 블랙 베스였다.
―크크크……. 빌어먹을 대천사들의 말이 기억나지 않는가, 각인자여.―
“응?”
―아흘로는 이 공간 안에 자신을 가두었다. 나조차도 지금은 냄새를 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숨은 놈을 어떻게 찾겠다는 거지?―
실제로 대천사들이 말하기 전까지, 그 어떤 것에서도 아흘로가 미들 어스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를 찾을 방법 또한 없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종교가 되었든.”
유저들은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한 베르나르를 보았다.
“신도는 자신의 주와 대화할 수 있지요.”
그는 방금 전까지 무기처럼 쓰던 십자가를 땅에 경건하게 꽂아 세운 뒤,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도를 통해서.”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해도 무엇보다 게임 속이다. 그리고 게임 속에서 신앙을 확인하는 방법?
“현실에서도 이런 방법을 쓸 수 있다면 세상은 평화로웠을 겁니다. 〈마인드 리스토어〉.”
베르나르의 몸에서 하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마저도 경건하게 만드는 백색의 빛이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발했다.
“와…….”
“과연……. 그러고 보니 미들 어스에서 ‘신성력’이라는 개념은―”
“주신의 힘을 빌려 온다는 뜻이기도 했죠. 누가 봐도 저기네요.”
기정과 이하 그리고 신나라는 베르나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은은하게 빛을 내는 이단심문관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우중충한 하늘에 닿을 정도로 기다란 빛기둥이 뿜어지고 있었다.
―크크……. 냄새가 나는군. 신神의 냄새다.―
주신 아흘로의 위치가 마침내 확인되었다.
“이제…… 저 녀석들을 피해서 가기만 하면 되는 거죠?”
신나라가 자신의 검을 빼어 들었다. 람화정은 재빠르게 스킬을 쓰며 그녀에게 답했다.
“마나. 탐지.”
“저도 몇 가지 탐지 스킬은 있습니다.”
이하 또한 저장해 두었던 특성들이 많다.
당장 뱀파이어들 중 혈향과 관련된 것을 활용한다면, 저 독특한 피를 머금은 생명체들을 피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