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185
마탄의 사수 (1185)
후우우우…….
조금 전까지 들려오던 유저들의 비명과 혼란 섞인 발걸음 소리는 모두 사라졌다.
이하는 갑작스레 홀로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것은 아니었다.
흘끗 뒤를 돌아보아도 라파엘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카일의 공격을 막아 내는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공격의 성질은 마지막으로 피격 되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발형……. 언데드 브라운― 아니, 키메라 브라운이 사용했던 그것과 유사한 건가.’
과연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하는 자신이 맞았던 공격보다는 약할 것이라 생각했다. 루거를 통해 [관통]에도 몇 가지 성질이 세분화된다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벙커 버스터나 레일 건의 형태처럼……. 말 그대로 목표물을 뚫어 버리고 들어가는 공격이 있는 반면―.’
폭발형처럼 나름대로 범위 공격으로써 목표물의 약점을 [관통]한다는 개념의 공격이 있다.
즉, 폭발형 공격을 사용한 이상 [명중]형 공격을 사용했을 때보다는 단일 공격력은 낮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니, 놀라운 건 그 모두를 사용한다는 점이려나? 브라운, 엘리자베스와 함께 있었으니까 크게 놀랄 것도 아니긴 하지만……’
언젠가 사우어 랜드에서 대결한 적이 있다.
카일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속사로 키드를 이겼고 관통으로 루거를 이겼었다.
그 이후로도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고, 하물며 카일의 상태가 과거 자신이 알던 때와 완전히 다르므로 저런 수준의 변화는 그리 놀라운 게 아니었다.
‘문제는 어느 정도로 사용하느냐는 거다. [명중]과 [관통]을 어느 수준까지 단련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이하는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폭염이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더 이상 유저들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이미 충분히 단련된 낮은 포복인 데다, 스탯 보정이 있는 한 이하의 움직임은 결코 느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해. 조금 더 가면 공간 이동은 안 된다. 사실상 여기가 마지노선이야.’
아주 잠깐 다른 생각을 하며 기어간 것만으로도 이하는 신대륙 중앙의 마지막 경계선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하는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켰다.
지금은 〈녹아드는 숨결〉은 사용 중이다.
이하가 카일을 상대하기 위해 가장 먼저 테스트해 보고 싶은 건 이것이었다.
‘카일, 너는 날 볼 수 있을까. 지금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빼앗긴 상태겠지만― 저들이 사라지기 전에 날 발견할 수 있을까.’
카일의 ‘눈’은 어느 정도인가.
적어도 당장 자신에게 공격이 개시되진 않았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카일이 자신을 발견할 능력이 없는 것인지, 아직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크툴루에게 감염된 몬스터들, 그 수준 높은 몬스터들도 내 흔적을 발견했었어. 카일이 그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치요가 곁에 있다면 나부터 찾으라고 하겠지.
이하는 호흡조차 조심스레 내뱉어 주변의 잡초들이 부자연스럽게 흩날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곳에서 얻어야 할 정보는 그의 ‘눈’뿐만이 아니다. 그의 사거리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포탄의 피격각을 기준으로 이하는 멀리 신대륙 동부의 숲을 살폈다.
〈백룡 전투〉 당시 마왕군 유저와 몬스터들 그리고 칼라미티 레기온이 뛰쳐나왔던 수풀은 카일의 모습을 완벽하게 가려 주고 있을 것이다.
‘아니…… 저 숲 부근도 아닐 거야. 분명히 숲 내부에 있다.’
만약 숲 어딘가에서 사격을 개시했다면 루거나 키드가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노출된 지역이 아니라 숲속에서 격발했다는 뜻이 된다.
스킬 등급이 또 한 번 향상된 〈독수리의 눈〉과 블랙 베스의 스코프를 통해 이하는 카일이 있을 만한 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숲속에서 쏘는 건 저격의 기본. 자신의 모습은 숨기면서 목표물은 노릴 수 있다. 하지만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야.’
〈꿰뚫어 보는 눈〉이 있다.
웬만한 거리라면, 어중간한 은신 따위를 하고 있다면 자신의 눈에 숲의 색과 다른 ‘테두리’가 반드시 보일 것이다.
‘무엇보다 숲에서 저격을 하는 단점이라면…….’
바람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이하는 숲을 살폈다. 피격 각도를 역산하여 카일의 위치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숲에서 쏠 때의 약점이 있다.
‘총성 때문에 주변의 동물들이 전부 도망간다는 것이지.’
이하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그곳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깊은 숲속에 자리해 있는지 모르지만, 새 둥지와 그곳에서 알을 품는 작은 새가 보인다.
다른 쪽에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우가 보인다.
그러한 짐승들의 흔적이 보이는 와중에 그 어떤 생명체의 흔적도 없는 곳.
카일이 있음직한 장소를 추정해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방향은 이쪽……. 거리는……?’
이하의 눈은 마침내 카일의 위치를 어림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테두리’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눈에 힘을 주어도 마찬가지였다.
치요를 비롯한 시노비구미는 물론, 마왕군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최대 사거리에서 쏘는 건가? 하긴 그게 당연한……. 아니, 아니다.’
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장거리에서 사격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이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첫 번째 이유는 거리였다.
루비니와 에윈은 지금 자신이 있는 위치보다 ‘앞’에서 저격당했다. 그 저격을 최대 사거리에서 했을 가능성은 물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하는 고개를 돌렸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유저들의 퇴각 시간과 수정구 발동 시간 등을 벌어 주는 라르크 등이 보였다.
지금 저들과 자신의 거리는?
‘맨 처음 저격은 최대 사거리일 리가 없어. 지금 저들이 아직 내 눈에 잡힌다는 건 공격받고 있다는 뜻일 테고―.’
카일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즉, 카일은 신대륙 중앙에서 훨씬 더 물러난 유저들을 쏠 수 있을 정도의 사거리가 있다.
카일의 공격은 자신보다 먼 곳에 닿는데, 자신은 카일을 볼 수조차 없다고?
* * *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아니, 그럴 수가 있나?’
이하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을 받았다. 카일을 상대하는 게 쉬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지금 목숨을 걸고 다른 유저들이 시간을 끌어 줄 때 자신이 발견만 할 수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블랙 베스니까! 저 자미엘을 죽이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무기니까―.’
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제 이하는 고개를 돌려 볼 수도 없었다.
이미 유저들의 퇴각은 시작됐을 것이다. 시간을 끌던 정예 멤버들도 하나둘 공간 이동을 사용해 빠져나갔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만약 카일이 〈녹아드는 숨결〉 이상의 ‘눈’이 있다면…….
‘나는 벌거벗고 서 있는 격이다.’
아무리 엎드려쏴 자세로 있다 한들 카일이 자신을 못 볼 리는 없다.
〈녹아드는 숨결〉이 간파당하느냐, 당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단순히 ‘카모플라쥬’ 전후 수준의 은신을 못 알아챌 카일이 아니다.
이하는 다급해진 마음으로 눈의 배율을 낮췄다.
혹시 자신이 놓친 게 있는 것은 아닐까.
카일이 숲속 깊은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발포하며 앞으로 걸어 나오진 않았을까.
자신처럼 엎드려쏴 자세로 포복을 하며 기어 오고 있지는 않을까.
당연히 그럴 리는 없었다.
애당초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면 〈꿰뚫어 보는 눈〉에 잡히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꿰뚫어 보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수준의 은신을 하고 있다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돼. 그래, 말도 안 된다. 최초 피격자가 누구였는지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돼.’
카일이 은신했을 가능성은 없다.
〈꿰뚫어 보는 눈〉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은신이 있었다면 뭣하러 루비니를 쐈을까.
치요와 카일이 노린 것은 카일의 위치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생각하면, 답은 간단했다.
‘루비니만 없으면 그 어떤 유저도 자신들을 발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거야.’
하이하가 오든 루거나 키드가 날뛰든 보배가 나오든 치요와 카일은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눈’으로는 볼 수 있는 사정 거리가 아니니까.
그들의 작전을 깨닫는 순간 이하는 소름이 돋았다.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틀린 작전’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위화감은 느껴지고 있었다.
눈의 배율을 다시금 높이며 주변을 살피던 이하에게 보인 것.
그것은 카일이나 치요, 마왕군 소속 유저나 몬스터 따위는 아니었다. 조금 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숲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한 가지 바뀐 점이 있었다.
‘없어졌어.’
있던 것들이 없어졌다는 점.
알을 품던 새가 날아가고, 여우가 사라지고, 토끼가 굴을 파 들어가 버렸다.
동물들이 없었던, 카일이 마지막으로 공격했음직한 자리에서 800m 이상 떨어진 곳의 짐승들이 전부 사라졌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움직이면서…… 쏘고 있다고?’
카일은 자리 이동까지 하며 자신의 위치를 감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 객관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응? 뭘?] [선배님의 아드님……과 비교했을 때, 저는 어떤가요?]이하는 불현듯 엘리자베스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카일을 마침내 적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냈을 때, 이하는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강한가, 카일이 강한가. 엘리자베스는 답했다.
[네가 이길 거야.] [어? 네? 정말요?]어쩌면 지금까지 카일을 상대하는데 가장 큰 기반이 되었던 정보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그때의 대화였다. 놀란 이하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었다.
[응, 단순 저격전이라면 카일이 이기겠지만, 온갖 변수가 많은 전투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우리 아들은 아직 그런 전투에는 익숙지 않거든.]이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래, 분명 그때만 해도 카일은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었어. 하지만 지금은 나아졌다는 이야기인가.’
더 이상 그때의 정보로 카일을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은 분명히 있었다.
‘아니, 아무리 산전수전을 겪었다 한들 단순 전투의 경험과 ‘저격’의 경험은 아예 다른 이야기일 텐데…….’
물론 자신이 이상하다고 말한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카일은 이하가 알고 있는 가장 노련한 저격수의 실력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 시점에서 이하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이하는 조용히 수정구를 발동시켰다.
카일을 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를 찾을 수조차 없는 전투였다는 걸 인정하는, 패배의 퇴각이었다.
* * *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신성 연합〉의 요새에 위치한 널따란 회의장에 모여 있었다. 모여 있는 것은 오직 유저들뿐으로, 평소와 달리 작전 참모와 같은 NPC들은 참석하지 않은 자리였다.
에윈 또한 NPC였으므로, HP의 회복 여부와 다르게 적용되는 ‘부상’의 일환으로 작은 골절을 진단받고 휴식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대부분 같았다.
“보이지도…… 않았다고요? 하이하 씨에게?”
“형보다 더 멀리서 쏠 수 있다는 뜻이야? 아니, 헐? 토, 토온의 방패를 들고 제대로 막았는데도 HP가 13%씩 날아갔단 말이야! 이게 물리 타격을 얼마나 많이 감소시키는데…….”
“키― 키킷. 당분간 또 개사기 몬스터 때문에 발이 묶이게 생겼군.”
보배와 기정 그리고 비예미는 이하가 경험하고 온 것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맞아요. 그가 처리되지 않는 이상…… 시티 페클로의 대규모 정벌은 불가능할 거예요.”
라파엘라라고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기정이 말한 것처럼 웬만한 배리어나 쉴드를 한 발에 파고들어 시전자를 죽이는 능력이 있는 데다, 범위 공격으로 전환까지 가능하다는 걸 확인하지 않았는가.
라파엘라 자신이 온 힘을 다해도 몇 발 막아 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번에 죽었던 유저들이 다시 돌아온다 해도, 카일이 처리되었다는 게 확인되지 않는 이상 참전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