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184
마탄의 사수 (1184)
“킷, 길마 님이 상대했던 건 엘리자베스, 브라운과 ‘함께 있을 때’의 카일이었죠. 특별히 우릴 죽인다기보다 그저 맹숭맹숭한 견제나 하던 당시가 ‘그 정도’의 힘이었어요.”
“네? 아…… 그러고 보니…….”
〈천국으로 가는 계단〉 너머로 다녀올 당시, 별초의 유저들은 겪어 보았다.
엘리자베스와 브라운을 잃고 방황하던 카일의 힘을.
그때도 이미 상대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렇군. 그때보다 더 강력해진 게 이런 수준이라는 뜻인가요.”
“말도 안 돼. 그때는 제가 탄환을 떨어뜨리는 것도 몇 번 했었다고요.”
“……아니,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는 당시부터 이미 불안정한 상태였으니까요. 만약 그가 안정을 되찾았다고 가정한다면…….”
하물며 혜인의 말을 기반으로 삼는다면, 그때보다 강력해진 이유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미엘로 변한― 음?”
슈와아아아……!
마침내 공간 이동이 가능해진 지역까지 후퇴한 그들의 곁에, 이하가 연보랏빛과 함께 나타났다.
“조심해! 저건 아마 카일―.”
까아아아아────────ㅇ!
깡통을 후려치는 통렬한 소음과 함께 이하의 몸이 날아갔다.
한마디를 미처 끝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하이하!”
람화연이 이하에게 다가서려 했으나 기정이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거 놓―.”
[묘오오오옹!]젤라퐁은 널브러진 이하의 몸에서 촉수를 내뿜어 라파엘라의 배리어 내부로 향했다.
자동으로 자신의 주인을 옮기는 아이템과 펫의 중간 생명체를 보며 유저들이 잠시 당황했을 때 이하가 겨우 눈을 떴다.
미리 사용해 두었던 스킬 〈플래티넘 쉴드〉는 단 일격에 사라졌고, 심지어 젤라퐁은 한 번 죽었다 살아날 정도로 HP가 소모되었으며 자신의 시야도 검붉게 변해 있었다.
“괜찮아! 카학, 괜찮아, 화연아! 블라우그룬 씨, 바로 배리어부터!”
한 방에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음에도 이하는 당황치 않고 빠르게 외쳤다.
때마침 나타난 블라우그룬은 라파엘라의 배리어 위에 자신의 쉴드를 한 겹 더 덮었다.
“하이하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바하무트 님은 오시지 말라고 하세요. 절대 오면 안 됩니다. 알렉산더한테도! 베일리푸스 님도 오면 안 돼요.”
이하는 칼라미티 레기온과 함께 이곳으로 달려오다 소식을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공격력과 적중률 그리고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거리 감각.
여기까지는 엘리자베스와 카일을 구분할 수 없었으나 이하 또한 키드와 루거와 같은 추론으로 적이 카일이라 단정 지을 수 있었다.
적은 카일이다.
아무리 강한 배리어를 보유한 NPC라도 그는 죽일 수 있다.
“그들이 오면 마탄을 쓸 거야. 그건 막아야 해.”
그는 마탄의 사수니까.
이하의 말을 들은 블라우그룬은 곧장 반응했다. 그사이 키드가 이하에게 다가와 물었다.
“당신은 카일이 보입니까.”
“카일은…… 이제 피탄 각도로 방향을 찾을 수 없어. 당장 찾는 건 불가능할 거야.”
이하는 안타까운 표정을 없애지 못한 채 고개를 저었다.
람화연도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그럼? 이렇게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단 얘기야?”
칼라미티 레기온마저 중간에 내버려 둔 채 황급히 그들만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
이하는 카일이냐, 엘리자베스냐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연아, 카일은 혼자 움직인 게 아니야.”
그것은 람화연도 곧장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적이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카일이 확실하다면, 그가 움직일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치요가 포섭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서로 눈 한 번 마주친 적 없다.
서로의 소식을 들어 본 적도 없다.
귓속말이 서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두 사람은 접속을 했는지, 안 했는지 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타이밍에 이런 공격을 실행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포섭에 성공한 정도가 아니라…… 마왕군과 다시금 협력하고 있다는 거지.”
아직 자신이 건재함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에윈을 죽이기보다 카일과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루비니를 먼저 죽임으로써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려 한 것이다.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된 이상, 라르크와 신나라는 더 이상 이곳에 군세를 데리고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우선 후퇴한 후 전선을 더 넓게 펼치는 수밖에 없겠군. 카일이 아무리 뛰어난 명사수라도, 신대륙 중앙부에 몇 킬로미터의 전선을 동시에 진격시키면 전원 상대는 불가능할 테니까.”
“그리고 메탈 드래곤의 지원도 별로 기대할 수 없겠죠. 에윈 총사령관도 내세울 수 없고…….”
그들의 재빠른 태세 전환에 람화연도 가세했다.
“하이하, 당신의 칼라미티 레기온도 활용하기 아까워. 다시는 구할 수 없는 디스펠 전문 생명체를 잃을 순 없어.”
보존할 수 있는 전력과 마탄의 피격 위험이 있는 모든 전력을 전선에서 배제해야 한다.
당연히 〈신성 연합〉의 세력도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아직 30만 전후의 1, 2세대 마왕군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뼈아픈 감축이 될지 모른다.
이하는 무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선 내가 온 거야.”
주변 유저들이 이하의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약 다섯 걸음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 * *
“지금 그 말은 조금 허세라는 걸 생각해도 쫌 멋졌어요.”
“키킷, 역시 보배 님이 제가 할 말을 먼저 하네요. 단, 저는 뒤의 문장은 빼고 하려 했지만. 하이하이 씨가 랭커가 된 것과 지금 저 괴물을 상대하는 건 난이도가 전혀 다른 일이라고요.”
이해는 했지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당돌한 이하의 선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역시 보배와 비예미 두 사람이었다.
길드 별초에서 ‘말싸움’이나 ‘비꼬기’ 등을 담당하는 목청 큰 두 명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이하를 향한 진심 어린 칭찬과 존경 그리고 걱정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
오히려 이번엔 다른 유저들이 더욱 이하의 선언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미친놈. 잡을 수 있다고?”
“해 봐야지. 어쨌든 카일은 나를 쐈으니, 날 보고 있다고 인정해야 해. 아니, 보든 안 보든 시스템으로 나를 인식한 후, 그 사실을 치요에게 말해 주고 있겠지.”
루거가 반박하기도 전 키드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상대한단 말입니까.”
“일단 숨어 보고, 관찰해야지.”
키드를 향한 이하의 간단한 답변 후, 지금까지 생각을 정리하던 기정이 말했다.
“형? 아무리 마탄이 제한된 기회라고 하지만! 치요가 붙어 있는 데다, 형이 남아 있는 걸 알면 반드시 마탄을 쏘라고 할 텐데? 지금까지 마탄에 맞은 유저가 한 명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정말 적이 카일이라면, 정말 적과 치요가 함께 있는 것이라면…….
이하를 향한 치요의 분노는 장난이 아니다. 그는 카일을 꼬드겨 어떻게든 마탄을 사용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어쨌든 엘리자베스, 브라운 그리고 뱀파이어들과 함께 다니던 때와는 다르다.
믿을 수 있는 자신의 힘이 있고 여전히 세력이 건재할 때 마탄은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 두었던 그녀다.
그러나 지금은?
잃을 것 없는 수준까지 간 치요는, 비록 한 번의 기회를 날리는 한이 있어도 카일에게 마탄의 사용을 유도해 내리라.
기정의 머릿속에서 오랜만에 길고 긴 추측과 생각을 통해 나온 말이었다.
“알고 있어, 기정아.”
이하는 그것을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람화연과 신나라 그리고 라르크 등 오히려 평소에 간섭을 많이 하고 생각이 많던 유저들은 이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이 자리에서 이하가 카일을 상대해 낼 수 있다면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선을 펼칠 필요도 없고…….’
‘메탈 드래곤과 총사령관의 그 막강한 전력을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어.’
‘그리고 카일의 이런 활약이 소문으로 퍼지기라도 하는 날엔……. 유저들의 이탈이 발생할 거야. 그걸 막을 수도 있다.’
카일을 제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무수한 이득이 있다.
평소라면 작전의 효과와 리스크의 무게를 비교해 보아야겠지만 지금 말한 자가 누구인가.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뭐, 결과는 해 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
언제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자다.
이미 모든 생각을 끝내고 꺼내는 말이라면 반드시 믿는 구석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럼 하이하 씨? 우리가 도울 일은?”
“블라우그룬 씨는 즉시 돌아가셔서 칼라미티 레기온 다시 옮겨 주세요. 그리고 다른 분들은 시간을…… 좀 끌어 주면 됩니다.”
“시간이라……. 지금 그걸 못 끌어서 도망가고 있는 거 알고 있죠?”
이하는 가볍게 말했지만 결코 가벼운 주문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이하와 카일의 싸움은 오랫동안 지속될 만한 게 아니다.
이하가 만약 카일을 죽이려고 한다는 걸 눈치채는 순간 마탄은 쏘아질 것이며, 그 마탄이 사용되기 전에 빠르게 카일을 찾아 그를 사살해야 하는 싸움이다.
‘게다가 젤라퐁도 한 번 죽어 버렸기 때문에…… 들켰어. 카일이 나한테 연사를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을 텐데.’
〈플래티넘 쉴드〉가 사라지고, 젤라퐁이 잿빛으로 변해 버린 걸 카일은 보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기반으로 치요에게 ‘하이하가 죽었다’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 있다면?
당연히 젤라퐁의 능력에 대해 치요는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들 ‘시간을 끌 만한’ 각자의 준비를 하는 사이에도 키드와 루거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얼굴로 이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하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웃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죽지들 마. 시간 끈다고 까불다가 죽어 버리면 더 큰일인 거 알지?”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인지 모르겠군. 캬하핫, 유저 최초로 마탄 맞고 뒤져 버리던가. 흥.”
“적어도 하이하 당신보다 우리가 죽을 확률이 더 적을 겁니다.”
두 사람은 곧장 자신들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외형상 크게 다른 점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이하는 그들의 자세만으로도 무언가가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이하, 나는―.”
“화연이는 돌아가 있어. 여기 있는 사람들로도 충분할 거야.”
“알았어. 팔레오들 수습해서 먼저 갈게.”
람화연은 감정적으로 이곳에 남겠다는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가장 냉철한 판단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산해 냈다.
그녀가 수정구를 꺼내어 들고, 이하가 주변의 유저들을 한 번씩 훑어보는 순간…….
콰아아아아────────ㅇ!
“꺅― 브, 브라운의 공격 같은 게―.”
라파엘라의 쉴드 위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주변의 몇몇 유저는 폭염에 휩쓸려 죽어 버릴 정도였지만, 라파엘라의 쉴드 뒤에 있는 이하는 이것이 기회임을 알 수 있었다.
“다 흩어지세요! 화염이 사라지기 전에, 지금!”
제아무리 카일이라도 이것을 볼 수는 없으리라.
“만약 나 죽으면 하이하 씨한테 반드시 책임 물을 겁니다! 〈화이트 윙〉!”
“모두 살아서! 다시 만나요! 하앗!”
라르크와 신나라의 스킬을 시작으로, 유저들은 사방팔방 흩어졌다.
“〈녹아드는 숨결〉.”
그리고 이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포복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