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34
마탄의 사수 (134)
“저 사람이야?”
“몰라.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첨이긴 한데…… 저 사람이 구름의 마법사라고?”
“좁밥같이 생겼는데?”
“에이, 그럼 아니야. 저 사람은 여기서 사냥하는 유저겠지. 구름의 마법사는 간지 개쩔 텐데.”
“사냥했다고? 아까 막 펑펑거리고 난리던데 숲속이…….”
“흐음……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저 사람 갑자기 PPAP 춤추는 거 아냐? 킥킥킥.”
유저들이 수근거리는 것도 당연했다.
동영상 속에선 라이징-선을 갓난아기 손가락 분지르듯 가지고 놀았던 사람이다.
정체는 몰라도, 추측 상 랭커급의 인물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
근데 저 차림새, 저 무기는 대체 뭘까? 랭커는커녕 레벨 100에도 근접하지 못한 사람의 냄새가 물씬 났으니…….
주변의 유저들이 이하를 보며 고개를 젓거나 웃고 있을 때, 웃지 못하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너, 너, 너―.”
“뭐야, 티칼 당신도 있었어? 푸핫! 복수하겠다고 그렇게 지랄을 하더니 레벨이 안 돼서 밖에 있었구나?”
이하는 머리와 어깨에 묻은 그을음을 툭, 툭 털어 내며 웃었다.
조롱 섞인 말이었지만 티칼을 포함한 라이징-선의 그 누구도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설마 정말로? 하이하가 살아 나왔고, 다른 FBA들 그 누구와도 귓말이 닿지 않는다면……?
“네가 나왔다는 말은…….”
꿀꺽, 티칼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 어쩌면 이하를 생포하여 먼저 내보내고 뒤에 이찌방과 쟈코 등이 쫓아올 수도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무조건. 절대로!
“보고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맞아. 다 죽었어. 아니, 다 죽였어. 내가.”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 오, 오백 명이 넘는 우리 전투요원들이 모두 죽었다고?”
“엄밀히 말하면 모두는 아니야. 몇 놈 정도는 살아서 도망쳤겠지. 근데 오백이나 됐어? 어쩐지. 내가 저기다 꼬라박은 것만 거의 18골드 어치야. 아이템 몇 개 주워 나오긴 했는데 이걸로 본전이나 찾을는지 모르겠네.”
씨익, 웃는 이하의 치아에도 그을음이 끼어 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숲 전역에 화약먼지가 퍼져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폭발물이 사용되었다.
사실상 이하의 군자금 전부가 지금 이 상황을 위해 투자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티, 티칼 SFM님!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치시죠!”
라이징-선의 나머지 유저들이 티칼을 재촉했다.
대체 숲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는 모른다.
허나, 아직 자신들은 서른 명에 가까운 인원이 있다.
1:30으로 한 번만 싸우면. 한 번만 싸워 이기면 라이징-선의 승리라고 봐도 좋은 것 아닌가.
“흐흐, 여기서 죽으면 수도에서 태어나는 거 알지? 니들이 자랑하는 ‘무한척살’도 불가능해. 뭐, 한 번 정도는 죽어 줘도 별 타격 없겠지만…….”
쉬익― 이하는 순식간에 머스킷의 장전을 마쳤다.
37초! 섬세한 손놀림의 효과가 없음에도 그의 장전은 이미 30초대로 들어와 있었다.
“완벽하고 철저하게 니들을 상대로 승리할 거야. 한 번 시험해 볼래? 내가 저 안에서 오백 명이나 되는 인간들을 어떻게 ‘학살’ 했는지?”
티칼과 라이징-선의 인원들은 적어도 한 가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하가 정말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 숲에서 오백을 죽였다는 것을.
예전처럼 멀뚱히 사람을 쳐다보며 존댓말을 하던 순둥이는 온데간데없었다.
머스킷을 들고 자신들의 머리를 번갈아 가며 조준하는 하이하에게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저마다 주눅 되었다.
그야말로 학살자. 구름의 마법사. 석양의 무법자.
뜨는 태양 라이징-선을 강제로 어둠으로 끌어 내리는 악마!
티칼은 입술을 꽉 깨물며 가까스로 정신을 일깨웠다.
어차피 자신은 끝났다.
이번 작전이 실패한 이상, 라이징-선에서 발붙이고 설 자리는 없다. 그리고 실패자는 용납지 않는 게 라이징-선.
라이징-선에서 쫓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미들 어스를 접을 때까지 반대로 티칼이 괴롭힘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그, 그런다고 우리가 봐줄 줄 알아? 전원 전투 준비!”
그나마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잡아야 한다. 오백삼십 명의 목숨과 맞바꾸더라도, 저 빌어먹을 하이하를 한 번이라도 잡아야 한다!
―그만하시죠!
“응?”
“뭐야?”
―보고 있자니 너무하네요!
“누, 누구야?! 나와!”
막 전투를 준비하려던 그들을 막는 목소리. 그러나 어디서 소리가 나왔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주변엔 하이하와 라이징-선을 둘러싼 유저가 이미 백 명 단위가 넘었으니까.
“나오라면 못 나올 줄 알았습니까?”
“맞아요, 라이징-선은 진짜 해도 너무해. 한 사람을 그렇게 괴롭히면 어떡해요?”
유저들 틈에서 나온 건 두 사람이었다.
키가 껑충한 기사와 피부가 새하얀 미녀.
라이징-선과 유저들의 눈초리를 한눈에 받은 두 사람은 이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하이하 님.”
“야호! 저희 기억하시죠? 예전에 셰이무어에서 맛 짱이랑 저랑 같이 파티도 했었잖아요!”
“켁! 마츠시게 님? 마메하나 님? 여긴 어떻게……. 아니, 도와주러 오신 거예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주변의 유저들이 몰린 것도 그렇고. 이하 자신이 라이징-선을 사냥하는 영상이라면 이미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달궈 놓은 상태다.
이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름의 마법사’의 정체는 누구나 추측할 법했다.
“혹시나 싶어서요. 얘기는 이따가 하시죠. 우선은 라이징-선부터 정리하고요.”
“맞아! 그동안은 당신들 숫자가 많아서 참았지만 이젠 아냐!”
처음엔 그저 둘이었다. 이하 곁에 선 기사와 시스터.
그러나 두 사람이 이하의 편을 들며 라이징-선을 비난하자 한 명, 두 명, 세 명― 점점 인원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 동생도 저 새끼들한테 템 뺏겼는데. 씨발, 그거 가져와! 내 동생 울던 거 아직도 기억나네.”
“나도 몇 번 당했어요! 우리 파티원 누구 죽인다고 나까지 같이 죽였는데……. 기억 안 나지?”
“나쁜 새끼들! 이번엔 우리가 머릿수가 더 많아!”
“한 번 해볼래!? 나 이제 레벨 80 찍었거든? 예전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
라이징-선의 압제를 참고 견디던 저렙들의 분노.
이하의 고군분투가 그들의 분노에 불을 지핀 셈이 된 것이다.
“티, 티칼 SFM님?”
“이래서야 원…….”
라이징-선의 전투요원들도 당황했다. 유저들이 이렇게 조직적인 행동을 할 줄이야.
항상 순한 양처럼 곁에서 지켜만 보던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그저 남의 일일 뿐이라며 안심하던 사람들이었다.
허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바꾼 것이다.
한 사람의 힘이 그들의 마음을 돌린 것이다.
“그렇다는데…… 어쩔 거야? 고? 스톱? 고 했다가 고박 나면 따블인 거 알지?”
그들의 마음을 돌린 장본인은 머스킷을 세운 채 웃고 있었다.
* * *
“그, 그럼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쿄쿠지츠 상이 올 때가 되었다 싶어 준비는 미리 해 뒀지요.”
“허어……. 과연. 유저들이 만든 정보 길드 중 최고라는 소문은 들었으나 이건…….”
대나무로 짜 만든 발이 쳐진 방 안.
미들 어스 안에 이런 집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인 분위기로 꾸며진 장소에서 쿄쿠지츠가 화들짝 놀랐다.
“말도 안 됩니다, 대표님! 아무리 저 녀석들이 정보를 사고판다지만 되도 않는 말로 가격을 올리려는 속셈이 틀림없습니다. 정보를 알아 봐야 얼마나 안다고―.”
“믿기 힘드시다면 이걸 한 번 보시죠.”
기획실장이 쿄쿠지츠를 뜯어말리자, 발 너머에서 종이 하나가 툭, 던져졌다.
“음? 이, 이건―!”
“우리……. 우리 지부 사무실의 위치가…….”
쿄쿠지츠와 기획실장의 고개가 휙, 들어졌다.
그들이 무슨 질문을 할지 뻔히 알았기에, 발 너머에선 먼저 답변이 나왔다.
“구름의 마법사에게 넘긴 건 우리가 아닙니다. 하이하라는 그 작자……. 아무래도 다른 정보 길드와 연이 닿아 있는 모양이더군요.”
“어딘지 파악은 안 되는 겁니까?”
“저희도 파악이 힘들어 조금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유저들 중에는 아닌 듯한데, 혹여 NPC가 만든 정보길드는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을 정도지요.”
“허어…….”
기획실장은 여전히 살벌한 눈을 띠고 있었지만, 쿄쿠지츠는 순순히 그 말을 인정했다.
이런 걸로 장난질을 쳐서 수익을 극대화하긴 힘들다. 애초부터 정보를 넘기기 전에 ‘줄타기’를 했다면 모를까.
“그럼 하이하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 준비 또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진행하고 있다고요? 지금 그놈은 우리 길드원들이 잡으러 갔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별동대처럼 꾸려진 약 오백의 인원이지요? 허나, 그들은 실패할 겁니다.”
그의 답에 쿄쿠지츠와 기획실장이 조금 놀랐다.
자신들도 보고를 받은 지 1시간밖에 안 됐는데, 벌써 규모까지 파악했다니.
“시, 실패라고? 그걸 당신이 어떻게―.”
“하이하는 진작부터 그곳에서 싸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우리 시노비들이 일찌감치 염탐하고 있었지요. 만약 실패하지 않는다고 믿으시면 보험으로 드시지요. 라이징-선에서 실패할 경우, 저희가 하이하를 죽이는 것으로 말이죠.”
“흐으음…….”
쿄쿠지츠의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저자의 말도 무시할 수는 없다.
“보험이라면 금액은…….”
“한 장.”
“한 장이라면…….”
“새삼스럽습니다. 천 골드지요.”
“천 골드? 천 골드요?”
1,000골드. 한화 약 1억 2천만 원. 현실의 살인청부업자도 그만큼의 금액은 받지 않을 텐데!
“이, 이 날강도 새끼들!! 대표님! 더 이상 이런 양아치들과 협상하지―.”
“거, 좀 조용히 있으라니까, 기획실장!!”
콰앙―!
자이언트 종족인 쿄쿠지츠가 바닥을 후리자, 방 전체가 울렸다.
벙 찐 기획실장이 고개를 푹, 숙이곤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1,000골드. 개인에겐 엄청난 돈이지만 ‘기업형 길드’ 라이징-선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그래도 큰돈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그간 하이하 때문에 손실 본 금액이 이미 1,000골드를 넘어가고 있는 상황.
쿄쿠지츠에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좋아…… 좋습니다. 한 장으로.”
“잘 생각하셨습니다. 라이징-선이 실패하면 저희가 나서는 조건으로.”
짝, 짝 대나무 발 너머의 인원이 박수를 치자 어디선가 흑의의 남성이 튀어나왔다.
기획실장이 화들짝 놀랐으나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종이뿐이었다.
“확실해서 좋군요.”
쿄쿠지츠와 기획실장 두 사람은 〈계약서〉를 재빨리 검토, 서명했다.
1,000골드짜리 보험. 이하를 잡기 위해 라이징-선은 그야말로 곳간을 연 셈이다.
“그럼 계약까지 끝났으니…… 바로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음? 바로요? 우리가 실패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바로지요. 이미 라이징-선은 실패했으니까요.”
“무, 무슨……?”
쿄쿠지츠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실패했다고? 시작한 지 얼마나 됐는데 무슨 실패를 해?
기획실장이 눈치 빠르게 티칼과 본사의 전투요원들에게 귓말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
“시작하겠습니다.”
대나무 발 너머의 인원이 입을 열었다.
* * *
“돌아……. 돌아가겠습니다.”
“티칼 SFM님!”
“우리가 졌습니다.”
티칼이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난다면 아마 뚝, 뚝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530명의 인원을 동원했다.
본사의 고레벨들, 라이징-선에 대항하는 자들이 나타나면, 그들을 찢어 죽이던 레벨 100 이상의 고렙들도 모조리 당했다.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티칼은 이 자리에서 이하에게 싸움을 걸어 괜히 레벨 다운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앞으로 미들 어스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평생 라이징-선에 쫓겨 다닐 각오를 해야 하니까.
아마 게임을 접는 게 가장 마음 편한 일이겠지.
“이잇― 하, 하이하 당신―.”
“두고 보자, 라는 말 하지 마. 그 말 꺼내는 순간 대가리 날아간다. 나는 두고 볼 놈들을 살려 보낼 정도로 착하지 않아.”
철컥, 이하가 머스킷을 다시 들어 올리자 라이징-선의 인원 하나가 벙어리가 되었다.
마지막 자존심, 쓸데없는 객기라도 부려 볼 작정이었겠지만 이하는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모두 돌아갑시다.”
슈욱― 슈욱―!
티칼의 한 마디에 다들 순간이동 스크롤이나 귀환 스크롤을 사용하여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티칼은 이하를 한 번 바라보고, 그냥 로그아웃을 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