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941
마탄의 사수 외전 (590)
감염체들을 상대하던 키드와 루거는 굳이 을 통해 보지 않아도, 그들의 ‘눈’으로 비예미를 볼 수 있었다.
“비예미는……. 저 상태는……. 으음, 복잡한 기분입니다.”
“쳇…… 혼자 멋있는 척은 다 해 놓고 갔군.”
지금 캐슬 데일에서 그 누구보다 눈에 띄는 건 누구인가.
블라우그룬을 타고 날아다니며 을 쏘아 대는 이하도 아니고, 감염체들을 요리하듯 상대하는 키드나 루거 자신들도 아니며, 이하와 함께함으로써 힘을 얻어 팔레오 연합을 다시 규합하고 그들을 진두지휘하며 온갖 스킬을 퍼부어 대는 신나라와 팔레오 연합도 아니다.
보랏빛 증기를 온몸으로 내뿜으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리자디아, 비예미야말로 캐슬 데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라고 할 수 있을 터.
따라서 그들은 곧장 눈치챘던 것이다.
의 인원들이 곧이어 눈치채기 시작했던 사건의 전말을.
* * *
“기정 씨……. 저건―. 비예미 씨는…….”
“아―읏, 큭?! 비예미 씨…….”
보배는 입을 가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기정도 곧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발바닥, 손바닥에서 뿜어지는 가스의 압을 통하여 허공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비예미의 모습이 멋지거나 놀랍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 또한 비예미가 ‘검은 소용돌이’의 가스를 제압하며 이하와 블라우그룬이 피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 주었을 때는 기쁨의 환호를 지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곧 이어진 비예미의 ‘모습’을 보았기에 이러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었기에 가장 늦게 눈치채야 했던, 비예미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볼 수 없었으므로 뒤늦게 인지한 그의 ‘상태’에 대해, 마침내 징겅겅과 이하도 알 수 있게 되었다.
* * *
―하, 하이하 씨……. 비예미 씨는―.
징겅겅은 이하에게 귓속말을 보냈지만 이하는 미처 답하지 못했다.
“블라우그룬 씨! 비예미 씨는 살아 있는 거 맞죠? 지금 귓속말에 답변은 없긴 한데―.”
[하이하 님…….]“우, 움직이잖아요!? 저렇게나 명확하게 의지를 갖고―. 가스를 제독하고 있잖아요? 더 이상 캐슬 데일에 오염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블라우그룬은 이하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하 또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횡설수설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살아 있잖아요? 그쵸? 비예미 씨는 저렇게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살아 있다’는 것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블라우그룬이 답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이런 수준이었다.
비예미는 움직였다.
분명 지금까지 봤던 초록색 리자디아의 외형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는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의 정의…….”
그러나 살아 있다는 뜻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움직이고 있으면 살아 있는 것인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살아 있는 것인가.
이곳은 미들 어스다.
푸쉬이이익──────!
보랏빛 증기를 내뿜으며 가스를 제독하는 리자디아는 살아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건 외형의 변화였다.
“방독면……을 쓴 게 아니었어요.”
이하 자신이 을 통해 보았을 때에는 방독면을 쓴 리자디아의 형태처럼 보였다.
기본적으로 열원에 의한 형상 구분이 기본이므로 세세하게 알아볼 수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 본 비예미는 다소 다른 외형을 띄고 있었다.
“을 한 게 아니었어…….”
이하는 그것이 에 따른 외형 변화라고만 생각했다.
인간이나 우드 엘프, 자이언트 종족들이 한 것과 달리, 리자디아나 미야우 등 수인족의 전직은 언제나 특별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삐뜨르도 그랬고…… 아니, 영계에서 삐뜨르의 변화가 아니었어도―. 과거에도 그랬지. 화 되었던 파우스트도 그랬고. 비예미 씨도 조금 특수한 경우였으니 과거 전직 때와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붉은 점이 돋아난다거나 비늘의 색이 변한다거나 했던 수인 종족 캐릭터들의 전직에 비추어 보아 비예미의 경우를 예단한 것이었건만.
지금 비예미의 경우는 그러한 것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변형이 일어난 상태였다.
푸쉬이이이잇────────!
방독면이라 생각했던 얼굴은 보랏빛으로 변해 울퉁불퉁한 수포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리자디아의 툭 튀어나온 입이 아니라 눈, 코, 입이 곤충의 형태처럼 변해 버렸기에 발생한 변형을 이하는 그 실루엣을 통해 ‘방독면’이라고 인지한 것이었다.
하물며 그 얼굴에서부터 등으로, 가슴으로, 팔뚝으로 이어진 튜브는 어떤가.
제독용 가스가 들어 있는 어떤 종류의 가스통과 연결된 느낌이라고만 생각했건만 그저 키메라로 변하며 발생한 비정상적인 힘줄의 돌출이었을 뿐.
―그래도…… 비예미 씨가 원한 거였으니까요. 자신이 어떤 형태로 변할지까지는 몰랐어도―. 죽게 될 거라는 건 알았을 거예요.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하이하 씨.
―징겅겅 씨…….
그 순간 이하의 마음을 읽은 건 역시나 징겅겅이었다.
그 또한 이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비예미 씨는 재미있어 하지 않을까요? 하핫, 마치 [생화학 병기]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자신의 모습을―. 아마 저런 전투 방식과 구조를…… ‘다시 로그인했을 때’ 자신의 전직 방향으로 참고하려 할지도 모르죠. 저는 그때를 대비해서 비예미 씨의, 아니, [비예미 씨였던 것]의 전투 스타일을 녹화하겠습니다.
그리고 이하보다는 조금 더 오래 함께 생활을 해 왔던 덕분일까.
같은 소속으로 대화를 조금 더 나눠 봤기 때문일까.
단순히 안타까워만 하는 게 아니라, 징겅겅은 비예미의 ‘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이미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하는 ‘검은 소용돌이’를 중화시키는 [비예미였던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네. 부탁드립니다. 제 쪽에서 녹화하는 것보다야 징겅겅 씨 쪽이 아무래도 각도가 좋겠죠.
블라우그룬을 타고 정신없이 캐슬 데일의 상공을 날아다니며 촉수를 상대해야 하는 자신보다, 아무래도 징겅겅 측이 훨씬 더 여유가 있는 건 자명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징겅겅 또한 ‘캔들 캐슬의 삼인방’ 중 하나.
―그럼요.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테스트해 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단순히 비예미를 태워서 검은 소용돌이로 접근하는 역할에만 만족할 유저가 아니다.
* * *
―테스트요?
―그건 비밀입니다. 아니, 비밀이랄 것도 없이 아마 ‘곧’ 알게 되겠지만 말이죠. 그럼 하이하 씨는 ‘나머지 다른 일들’을 부탁합니다!
목소리는 다소 작았지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힘 있는 그의 발언에, 촉수를 상대하던 이하가 잠시 정신이 팔려 물어봐야 할 정도였지만, 그는 답해 주지 않았다.
어차피 ‘곧’ 알게 된다면 이하 또한 자신이 더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의 바람대로 ‘나머지 다른 일들’을 처리하면 될 뿐.
이하는 ‘검은 소용돌이’에서 완전히 신경을 떼고 크툴루의 촉수들만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탄환을 몇 발이나 더 쏘아 냈을까.
을 사용하지 않고도 일반 탄환을 연사에 가깝게 격발함으로써 크툴루의 촉수들을 상대하기를 몇 번이나 더 했을까.
“꺄아아아아아악―!”
“으, 으어, 으아아아, 괴물! 괴물이다!”
“뭐야, 이건!? 저, 저리 가! 가스나 처리하라고, 아까처럼!”
이하의 귀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하이하 님! 그―. 그 키메라 리자디아가…….]“아!?”
그제야 이하도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키메라가 된 비예미는 적어도 한 가지의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검은 소용돌이’, 즉, 크툴루가 뿜어낸 오염 가스를 제독한다는 것.
유저의 통제가 아니라 오직 그러한 본능만이 남은 생명체로 변해 버린 키메라가, 해당 목적을 전부 이뤘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비, 비예미 씨! 안 돼, 사람들을 공격했다간―.”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짐승이 되어 주변의 유저들까지 모조리 도륙할 뿐.
기브리드의 키메라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처리해야 합니다. 적어도 오염 가스는 키메라 리자디아가 전부 처리한 것 같으니…….]“하지만―. 그랬다가 다시 쏘면요? 크툴루가 다시 오염 가스를 뿜어 대면―.”
[으, 으음…… 하지만 하이하 님께서 처리하지 않으셔도……. 이곳, 캐슬 데일에는 아직 잔여 병력이 많습니다. 키메라 리자디아가 뛰어나다 한들 그들 모두를 이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블라우그룬은 이하에게 키메라 비예미를 죽이라 종용하고 있었다.
이하가 처리하지 않아도 어차피 제압당하거나 죽임당하는 거라면, 차라리 여러 사람의 손이 가지 않도록, 키메라 비예미가 일반 유저와 NPC들에게 더 해를 가하지 않게끔 ‘가장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이하의 손을 거치는 게 낫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하도 그 의미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차마 손이 나가지 않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크으, 그럼―…… 응?”
어쩔 수 없이 를 들어 올린 이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줄곧 ‘검은 소용돌이’의 근처를 비행하며 키메라 비예미의 활약상을 담고 있던 흰꼬리수리.
거대한 새를 중심으로 휘광이 번쩍거렸을 무렵, 지상에서 키메라 비예미를 막아서며 대치하고 있는 건 자이언트였다.
“징겅겅 씨?”
―하이하 씨, 쏘지 마세요.
블라우그룬을 타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촉수들을 처리하는 와중에도 이하의 시선은 계속 그쪽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양팔을 쫙 벌린 채 키메라 비예미의 앞을 막아선 징겅겅이 무슨 의도로 그곳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으니까.
―자, 잠깐. 징겅겅 씨! 지금 비예미 씨는―. 알잖아요? 키메라 상태예요! 대화가 통할 리가 없는 데다…… 하물며 테이밍Taming도 안 될 텐데, 아니, 애초에 징겅겅 씨는 테이머도 아니잖아요!
만약 키메라 비예미가 징겅겅을 공격하려 한다면 이하 자신이 재빨리 반응해야 할 테니까.
그러나 징겅겅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했다.
―네. 저는 테이머가 아니고…… 예전에 테이머 영웅의 후예, 용용 님이였나? 그분도 기브리드의 키메라를 길들인 적은 없었죠. 아마 길들이는 시스템 자체가 불가능하게 설정되어 있을 확률이 높을 거예요.
―그, 그러니까! 근데 왜―.
―하이하 씨가 말했잖아요. 전 테이머가 아녜요. 제 직업은 테이밍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단순한 후방 지원 직업군이 아니다.
힐과 버프 그리고 약간의 탱킹 능력만 지닌 게 아니다.
애당초 자유자재로 동물형 변신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드루이드.”
한때 로페 대륙과 에리카 대륙을 통틀어 가장 많은 생명체들과, 가장 높은 친밀도를 올린 유저.
징겅겅은 이하와 비예미의 ‘지인’ 자격 따위로 에 입단한 게 아니다.
‘나처럼…… 어떤 의미로는 반강제적으로 드루이드라는 직업을 선택해 버렸지만―. ‘나는 빡빡이다’ 따위의 소리나 할 정도로 순박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 순박함이 무기가 되어 주는 게 바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생명체와의 교류가 아닐까.
순박함을 기반으로 한 진실성이 있었기에, 징겅겅은 미들 어스에서 손꼽는 드루이드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캬앗, 캬아아아아아―!]“괜찮아요, 비예미 씨. 비예미 씨가 직접 컨트롤하고 있지 않더라도…… 지능이 사라져 본능만이 남아 있더라도……. 비예미 씨라면 분명히 알겠죠?”
쫙 펼쳤던 양팔 그대로 징겅겅은 키메라 비예미를 향해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키메라 비예미는 징겅겅이 다가설 때마다 푸쉿, 푸쉭 하는 증기 배출음과 함께 보랏빛 가스가 뿜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럼에도 징겅겅은 아랑곳 않고 보랏빛 가스를 헤치며 그에게 다가갔다.
[제아무리 제독용 가스라곤 하지만……. 오래 노출된다면 자이언트 드루이드라 할지라도 버티기 힘들 겁니다. 세포의 회복을 빠르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쉿, 괜찮아요, 블라우그룬 씨.”
블라우그룬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하는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징겅겅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저 다가설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접근할 때마다 비예미는 한 걸음씩 물러서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키메라 비예미는 리자디아 종족 특유의 날카로운 발톱을 허공에 휘두르며 징겅겅에게 위협을 가했다.
징겅겅은 여전히 양팔을 쫙 펼친 상태로, 그의 발톱에 자신의 가슴 앞섶이 찢어져 나감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비예미 씨, 당신의 실력이라면 저 오염 가스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리란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 거잖아요. ‘내가’ 이렇게까지 할 거라는 것까지도 예측했을 거잖아요? 그러니…… 마음을 여세요. 우리를―.”
[캬아아아아아―!]그러곤 소리 지르는 키메라 비예미를 끌어안았다.
“―도와주세요.”
푸쉬이이이이이───────!
그 순간, 키메라 비예미의 전신에서 보랏빛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