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99
마탄의 사수 (199)
정보의 편린(片鱗)만을 가지고 상대의 상황을 추측, 약점을 잡거나 설득하는 태도.
테이블에 앉은 이하는 예전의 어리숙한 머스킷티어가 아니었다.
화홍의 세 사람, 람화연, 람화정, 자청을 앞에 두고도 능수능란하게 협상을 개시하는 이하의 모습에 람화연의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갔다.
자청은 알면서도 조용히 있었다. 애당초 화홍이 이하를 원했던 ‘실질적인’ 이유 중 하나가 신나라와의 친분 때문이었다. 이하와 신나라를 통해 퓌비엘 왕실과 연을 맺고, 그것을 발판 삼아 이권을 취하는 것!
지금 이하가 말한 것처럼, 이번 건은 오히려 화홍에서 끼워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나라고 안 알아본 거 아냐. 괜히 밀당할 생각하지 마, 람화연 씨. In or Out. 그것만 결정해.”
“흐음, 하이하 당신 말처럼 우리 화홍의 입장에서는 분명 이점이 있긴 해. 하지만 따져 봐야 할 게 있단 말이지.”
물론 그렇다고 덥석 미끼를 무는 건 람화연의 스타일이 아니다. 람화연이 일부러 인상까지 찌푸려 가며 턱을 괴었다.
서로가 원하는 협상이라도 최대한 아닌 척하며 많은 것을 끌어내야 한다. 이 자리에 람화연만 있었더라면 분명 그런 일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In. 같이할래, 오빠.”
람화정만 없었다면 말이다.
“응? 화, 화정아?!”
“우리가 하고 싶어 했던 거잖아, 언니.”
“너, 너! 협상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면―!”
있는 패를 다 보여 주면 안 되는 건데!
람화연이 아연실색했지만 람화정은 이하를 상대로 그런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푸른 머리의 소녀는 의자에서 뛰어내려 이하를 향해 달려갔다.
“끼워 줘, 오빠.”
“흐흐, 원래 화홍에서 ‘하고 싶어 했던 거’라 이거지?”
싱긋 웃는 이하를 보며 람화연은 이마를 쳤다. 이렇게 된 이상 협상이 이뤄질 여지는 없다. 일방적인 부탁밖에 남지 않았으리라.
“어차피 ‘하고 싶어 했던 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 내일 오전 6시에 최초 미팅이니까 늦지들 마시고.”
[초대 하지 않은 손님]참가 인원 (8/10)
화홍의 3인, 람화연, 람화정, 자청이 퀘스트에 참가했다. 몸뿐만 아니라 물약이나 스크롤의 지원까지 약속하면서.
* * *
“뭔 안개가…….”
“이것도 이번 퀘스트의 일환이지 않을까요.”
기정이 불평하자 태일이 답했다.
“잠입하기 쉽도록 말이죠?”
“음. 페이즈 2 이후로 미들 어스 기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으니까요.”
평소와 달리 퓌비엘 왕궁 근처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라 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이런 안개라면 왕궁에 불법으로 침입하는 녀석들에게 유리할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곧 여섯신데 우리밖에 안 온 것 같지 않아요? 이하 형이 사람은 다 모으기나 했을까?”
기정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왕궁 정문 앞에는 근위대 NPC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저도 걱정입니다. 퀘스트 창은 아직 아홉 명……. 한 명은 못 구한 것 같은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만날 수가 없어서 귓속말로 설득했다고 하더라고요.”
“아! 시, 신나라 님!”
태일의 말을 끊으며 나라가 정문에서 걸어 나왔다. 이하에게 이미 들었지만 수척해진 그녀의 모습은 기정과 태일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별초의 마스터케이 님, 그리고 태일 님 맞으시죠?”
“넵!”
기정이 우렁차게 답했다.
“와 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려요.”
“무슨 그런 말씀을. 저희야말로 진정한 무도인, 신나라 님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검도인 태일은 초롱거리는 눈으로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자리만 아니었다면 태일은 그녀에게 연습 대련을 청했을지도 모른다.
“길드 마스터가 되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축하도 못 드렸네요.”
“에이, 축하는요, 무슨. 저희가 특별히 좋은 일 때문에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요.”
신나라의 인사에 기정이 손사래를 쳤다. 확실히 하이하가 뽑은 사람들. 정감이라는 게 느껴지는 말투와 행동들이 신나라를 안심시켰다.
“여기 맞아요, 자청?”
“정문이라고 했으니 분명히 여기가―”
“맞아. 앞에 세 사람 있어.”
안개 속에서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기정이 눈을 크게 뜨고 반응했다.
“오, 다른 사람들인가 보다. 누구지?”
“어느 정도 예상은 됩니다.”
“예상되신다고요? 누군데요?”
“하이하 군이 선택할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저벅, 저벅, 새벽의 발걸음 소리가 점차 커졌다. 서로가 서로의 실루엣을 파악했을 때, 몇몇 사람의 근육이 움찔거렸다.
“별초?!”
“화홍!?”
람화연과 기정이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보았다. 캐슬 데일의 전쟁은 여차저차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는 적대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껄끄러운 상대가 아닐 수 없건만!
“설마! 하이하가 부른 다른 사람들이 별초 당신들?”
“우,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야! 이하 형이 왜 화홍을 불렀지?”
람화연과 기정이 서로를 은근히 돌려 깠지만, 정작 화홍과 별초의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가능한 일이었지요.”
“오빠가 연락하는 대상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태일과 람화정이 말을 주고받았다.
“후훗, 제 입장에선 힘이 되는 걸요. 불과 얼마 전 퓌비엘 왕국의 최고 수준 길드임을 증명했던 두 길드에서 도와주신다니. 아, 인사가 늦었어요. 화홍 길드의 마스터 람화연, 그리고 얼음 마ㄴ― 아니, 얼음 공주 람화정, 또 한 분은 부길드 마스터 자청 님. 맞으시죠?”
자기도 모르게 ‘얼음 마녀’라는 별명이 튀어나올 뻔했던 신나라가 황급히 말을 바꿨다. 람화정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지만 그뿐이었다.
“이렇게 자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화홍의 자청이라 합니다. 퓌비엘 국내 정세 문제로 상담하실 일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화홍은 신나라 님을 전심전력으로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청이 명함 비슷한 쪽지까지 나눠 주며 화홍의 힘을 내보였다.
처음부터 어떤 말을, 누가 해야 할지 화홍에선 어느 정도 정해 놓고 온 셈이었다.
“으, 이하 형, 하여튼……. 나한테 말도 없이. 그리고 사람들 다 불러 놓고 왜 본인은 안 오는 거지?”
“저기. 누구 한 명이 오는군요.”
화홍과 함께한다는 게 다소 마음에 들지 않은 기정이 툴툴대는 사이, 안개 너머로 또 다른 실루엣 하나가 접근하고 있었다.
사악― 사악― 하는 낯선 소리와 함께.
“어라랏? 키킷, 늦었네요! 아직 5분 전인데 이렇게 빨리들 오시다니.”
“누, 누구―”
“히익! 괴물!”
여성 유저들이 두 발자국씩 물러섰다. 기정조차도 소스라치게 놀랄 비쥬얼을 들이댄 사람은, 아니, 리자디아는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하이하 님 소개로 오신 분들 맞으시죠? 이번 퀘스트를 함께하게 된 비예미라고 합니다.”
비예미, 라는 이름에 모두의 두뇌가 풀가동 되었다. 그러나 어디서도 들어 본 적 없는 닉네임이었다.
애초에 리자디아 종족 유저 중 유명한 사람은 몇 명 없기에 다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랭커, 아웃사이더 그 어떤 쪽에도 속하지 않는 무명의 유저라는 것을.
“이, 이하 형이랑 아는 사이세요?”
기정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 퀘스트는 신뢰와 보안이 생명. 근데 어디서 이런 듣보잡 닉네임의 리자디아를 끌어들였지?
“키키킷, 그럼요. 별초는 요즘 신입 육성 때문에 바쁘던데, 그 정도 레벨 유저들이면 파츌라 정글로 데려가는 게 렙업에 빠를 거예요. 센티널 산맥은 너무 경쟁자가 많거든요.”
“네?”
“화홍도 노리고 있는 도시가 너무 다양해요. 조금 더 집약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누가 봐도 던전과 관련된 곳만 노리는 게 티 난단 말이죠. 아! 내정 간섭은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의견이니 들어만 주세요. 키키킷.”
“뭐? 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신나라 씨도 준비는 단단히 하셔야 할 거예요. 여기 모인 사람들이 만만치 않긴 하지만, 삐뜨르가 용의자인 게 확실하다면 [미드나잇 서커스] 전원이 움직일 테니까. 키킷.”
“비예미 님…… 이라고 하셨나요?”
기정, 람화연, 신나라 모두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길드 내부의 사정부터 보안이 필요한 일들, 심지어 이번 퀘스트와 관련된 일까지 알고 있는 이 도마뱀의 정체는 뭐지?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상황에서 다시 안개 너머 소리가 들려왔다. 힘차게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모두가 기다렸던 목소리가 나지막이 퍼졌다.
“다들 너무 궁금해하지 마세요. 비예미는 진짜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요. 하긴, 생긴 것만 봐도 사람이 아니긴 하구나. 대체 뭐하는 리자디아인지…….”
옛날 기타리스트처럼 가죽으로 된 길쭉한 소프트 케이스를 멘 이하가 웃으며 걸어왔다.
혹시나 싶어 연락해 본 비예미가 자신의 상상을 다시 한 번 뛰어넘어 있었기에, 만족스럽기도 했다.
“킷킷, 그렇게 말하면 이상한 사람 같잖아요, 하이하이 님.”
“이하 형!” “하이하 당신!” “오빠.”
“하, 한 사람씩 불러! 뭔 호칭이 이렇게 다양해?”
이 사람, 저 사람이 불러 대는 통에 이하가 당황한 틈, 신나라가 그를 향해 달렸다.
“이하 씨……!”
파악―!
그리곤 이하를 끌어안았다. 그것은 기습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또 이렇게 저를 위해서…….”
언젠가 이하는 그녀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이번엔 자신의 의지와 의리를 걸어왔다.
각자의 손익 계산은 차치하고라도, 위험천만한 퀘스트를 위해 모인 퓌비엘 왕국의 고수들을 이하가 직접 불러 모으며 말이다.
“어, 그― 저기―”
여자가 먼저 포옹을?! 이것만으로도 당황스럽다.
거기에 람화연과 람화정은 자신과 신나라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데다, 기정이 녀석은 옆에서 ‘뽀뽀해! 뽀뽀!’라는 입모양을 뻐끔거리고 있었으니…….
“당신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그런 모습 보여 주려고 우릴 부른 건 아니겠지? 게다가 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직 안 왔잖아!”
“어으으, 그, 그래! 그거야! 다른 한 사람이 올 때가 됐는데!”
람화연이 소리를 빽 지르자 이하는 신나라를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의 위치를 확인했다.
“어? 이 근천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아녜요. 분명 여기. 성벽 위?”
개략적인 위치가 아니라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있는 사이. 이하가 고개를 들기 무섭게 누군가 성벽에서 휙, 뛰어 내려섰다.
그의 모습을 본 신나라의 눈이 커졌다.
“키…… 키드?! 슬리핑 키드!”
“얼른 들어갑시다. 귀찮은 일은 싫어합니다만, 귀찮은 일을 미루는 것은 더더욱 싫어합니다.”
키드는 신나라를 무시하곤, 챙 넓은 자신의 모자를 푹 눌러쓰며 먼저 걸어 들어갔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벙 찐 틈에 비예미가 그 뒤를 이었다.
“키킷, 작전 회의를 할 여유도 얼마 없을 거예요. 저쪽은 암살의 대가들이니까. 얼른 가죠, 신나라 씨.”
참가 인원 (10/10)
“좋아요. 따라오세요. 퓌비엘 왕궁의 안내는 제가 맡겠어요. 키드! 멈춰요! 내 뒤를 따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