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495
마탄의 사수 (495)
슈와아아앗─── 슈와아아앗───!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치요가 여전히 고정된 자리에서 가볍게 몸을 들썩였을 때, 허공에 생성된 것은 다섯 개의 검. 마나로 이루어진 검이 허공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심검心劍이자 이기어검以氣馭劍이었다.
치요는 언젠가 모두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암살자’라고. 특별한 무기도 없는 ‘무희’ 직군이 어떻게 암살을 하는가?
치요가 갖고 있는 최고 수준의 공격 스킬은 그 물음을 깔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물론 그녀를 둘러싼 이하 일행에게는 최악의 악몽이었다.
“꺅― 무슨―”
원거리 딜러에게 갑자기 발생한 근접전을 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완전히 제압되었다고 생각한 상대가 최후의 발악을 할 때는 더욱! 보배가 잠깐 당황한 틈을 치요는 놓치지 않았다.
공중에서 떠돌던 마나의 검 두 개가 보배의 명치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보배 씨!”
까아아앙―!
그러나 그녀의 곁엔 기정이 있다.
기정이 보배를 향해 가장 먼저 달려갔다고 해서 그것을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이제 연인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중에 생성된 마나의 검은 다섯 개.
이기어검 그 자체나 다름없는 치요의 〈칼춤〉이 노리는 것은 보배뿐이 아니었다.
마나의 검 세 개는 치요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장본인에게 향했다.
“혜인! 〈풍風, 바람장막〉!”
“태일 형ㄴ― 칵!”
파아아앙―!
세이지 같은 마법사 직군도 근접전에 약한 것은 매한가지.
혜인은 태일을 향해 달렸고, 태일 또한 간단한 방어 스킬을 사용했지만 다소 늦은 상태였다.
가슴과 배를 노리던 두 개는 가까스로 막아 냈으나 다리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마나의 검은 혜인의 허벅지를 완전히 관통하여 웅웅웅, 진동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혜인의 몸에서 연보랏빛이 잠시 번쩍, 했을 때, 스페이스 그랩은 이미 풀린 상태였다.
이 모든 일이 고작 2초 남짓한 사이에 이루어졌다.
“오호홋! 좋았어, 사스케!”
“핫!”
줄곧 멍한 눈으로 땅을 바라보던 사스케의 눈빛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인가?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치요의 칼춤에 의해 별초 전원의 움직임이 봉쇄되었다는 것! 그 시간은 고작 2초 남짓이었지만 시노비구미의 인원들에겐 충분했다.
이미 보배의 화살에 종아리가 뚫린 사스케라도, 최후의 한 수는 역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이하아아아────────!”
“이, 이하 형!”
거리를 좁힐 것도 없었다.
이미 사스케와 치요에게 붙어 있던 이하였으니까. 이하는 자책했다. 먼저 방아쇠를 당겼어야 했다. 승리에 도취되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치요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것을!
[뀨, 뀨뀨―]“젠장, 블라우그룬 씨라도―”
“〈공멸共滅, 동귀어진同歸於盡〉!”
이하의 왼손은 블라우그룬을 집어 던진다. 이하의 오른손은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린다.
사스케는 블랙 베스와 이하의 팔을 붙잡는다.
가슴 한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그의 몸이 빠르게 잿빛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몸이 전부 잿빛으로 변하기 전, 사스케의 몸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임무를 완수해야만 하는, 쿠로닌자 암살자의 비기가 발동되었던 것이다.
───────────────!
은빛 평원에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 * *
“푸휴우우, 이하 형! 이하 형!”
“기정 씨?!”
“보배 씨! 뒤로 물러서요, 더! 안전거리 확보할 때까지 다가오지 마세요!”
“기정 씨는―”
“멀리 물러서라고! 거리 잡고 딜 준비해 줘요!”
보배가 기정의 팔을 붙잡으려 했으나 기정은 이미 보배를 밀쳐 낸 다음이었다.
랭킹 10위의 궁귀라지만 상대는 랭킹 7위의 무희.
지금처럼 목숨 걸고 죽이려 한다면 치요가 보배를 죽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기정의 판단은 정확했다.
우선 보배부터 치요에게서 멀리 떨어트려 놔야만 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기는 태일과 혜인도 마찬가지였다. 근접 딜러와 세이지에게 유용한 방어스킬은 많지 않았다.
폭발 범위가 생각보다 넓었기에, 그것에 휘말려 버린 두 사람은 자신의 HP를 관리하기도 벅찼다.
포션을 나누어 마시며 거리를 벌리는 두 사람.
폭발의 근원지에선 아직도 새카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치요에게 이런 스킬이……. 자칫하면 놓칠 수도 있다.’
혜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공간 결계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자신이 새롭게 친 것이므로 치요가 그것을 깨부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달려서 도망친다면?
민첩이라면 결코 만만치 않을 그녀다.
연기에 몸을 숨기고 달리고 있다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터.
타박……. 타박…….
“아하하하핫! 감히 내 앞에서 잘난 척을 해!? 그래 놓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알았어?”
“음?”
혜인은 곧장 생각을 바꿔야 했다. 치요가 도망을 간다고? 왜?
그것은 궁지에 몰렸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 상황이 치요에게 불리한가?
‘서, 설마― 우리를 전부 이길 수 있다고―’
치요는 연기를 걷으며 걸었다.
기모노 유사하게 생긴 옷이 조금 불타고 해져 흐트러진 모습이었으나,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챙강, 챙강―!
부서지는 두 개의 포션병 소리만 들어도 그녀의 ‘상태’ 또한 제법 멀쩡하다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곁에 둥둥 떠 있는 다섯 개의 심검이 그녀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설마가 아니다!’
혜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스케와 이하의 1:1 교환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치요다.
보배가 있다지만 기정, 태일, 그리고 혜인 자신으로 랭킹 3계단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혜인 형님도 뒤로 빠지세요. 디버프 위주로, 캐스팅 짧은 것부터 부탁드립니다. 태일 형님, 보스몹 레이드 한다는 각오로 부탁드려요.”
“아니…… 그 레이드보다 힘들 거라는 각오가 있어야겠지.”
기정은 재빨리 그들의 앞에 섰다.
혜인이 생각한 걸 기정이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4:1 상황, 그러나 PvP와 몬스터 사냥은 다르다.
하물며 대규모 전투도 아닌 절정 고수 몇몇의 소규모 교전이라면 더욱 다르다.
“너희들 정도로 나를 막겠다고? 보배 따위의 원딜러로 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태일? 내 그림자도 못 밟을 실력으로? 혜인이 2초 만에 캐스팅 할 정도의 쓰레기 같은 디버프를 내가 튕겨 내지 못할 것 같나?”
저벅, 저벅, 저벅.
치요의 움직임은 거침없었다.
그녀의 자신감은 순수하게 실력에 기반한 것. 심지어 저 말이 맞다는 걸 별초 모두가 알고 또 인정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젠장, 저년을 어떻게― 이하 형이라도 있으면―’
기정은 다가오는 치요를 보며 침을 삼켰다. 그리곤 친구 창을 열었다. 사스케의 대폭발에 휘말려 로그아웃 당했을 이하를 살피기 위해서.
“응?”
“응은 무슨 응― 칵―!? 뭐, 뭐야, 이건?!”
기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치요가 버둥거리며 넘어졌다. 넘어져?
연기가 상당 부분 옅어졌다지만 랭킹 7위의 무희가, 평원의 돌부리에 걸려서 중심을 잃는다고?
“무, 무슨― 이게 뭐야?! 저리 꺼ㅈ―”
[묭묭, 묭묭묭묭―!]이상한 소리가 별초의 인원들에게 들린 것은 그때였다. 발버둥 치던 치요는 점차 그 몸부림조차 하지 못하게 되어 갔다. 벌레처럼 땅바닥에 누워 전신을 꿈틀, 꿈틀거릴 뿐.
“설마…….”
“저, 저 소리는…….”
보배와 혜인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꿈틀대는 치요의 너머, 아직은 제법 두꺼운 연기를 뚫는 실루엣이 있었다.
“푸휴우우……. 썅년이 하여튼. 끝까지 사람 힘들게 한다니까. 설마 사스케를 시켜서 자폭을 할 줄이야. 아니, 그리고 그 새끼는 배알도 없대? 하란다고 또 해? 어휴, 너네 무슨 군인이야?”
인상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연기를 뚫고 나오는 사람. 기정이 친구 창에서 확인하며 눈을 비벼야만 했던 사람.
이하가 걸어오고 있었다.
플래티넘 드래곤, 메탈 드래곤을 이끄는 수장, 로드 바하무트가 선사한 선물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셈이었다.
* * *
“혜인 씨. 공간은 계속 잘 막고 있죠? 혹시나 누가 소환 같은 거 해서 빼 가지 않게. 완전히 콱 틀어막아 버려요.”
“무, 물론…… 물론 그렇게 해야죠. 걱정 마세요.”
혜인은 한결 공손한 태도로 이하를 대했다.
연기를 뚫고 나오자마자 그가 보여 줬던 행동은, 평소 혜인이 생각했던 이하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블랙 베스의 개머리판으로 치요를 사정없이 구타하는 모습이라니. 그녀의 전신을 꽁꽁 감싼 젤라퐁은, 마치 이하가 어딜 때릴지 알고 있다는 듯, 개머리판이 휘둘러질 때마다 그 부분의 결박만 풀어내는 정교함(?)까지 보였다.
“꺼흑, 끄흐―”
“후우우, 이제야 좀 속이 풀리네.”
그렇게 때리길 대체 몇 분이 지났을까?
혜인이 공간 잠금을 두 번 더 사용했으니 거의 30분 가까이 타격이 이어졌을 것이다. 포션까지 먹여 가면서 저렇게 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정을 비롯한 그 누구도 이하를 막지 못했다.
“치요.”
“흐, 힛.”
치요는 제대로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녀의 ‘동화율’이 얼마나 될지 추측한 기정은 고개를 저었다.
이하의 목소리만 들어도 움찔, 움찔거리는 모습이라니.
“앞으로 시노비구미는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하라는―”
“하긴, 이런 거 묻는 게 무의미하지. 계약서를 강제로 쓰게 해 봐야 시노비구미라는 게 특정한 단체도 아니고. 돈을 벌지 말라고 제약할 수도 없고― 길드도 안 만들어 놓는 당신이 재산이라고 한 군데에 몰아 놨을 리도 없겠지.”
이하가 말을 꺼낼 때마다 치요의 얼굴이 굳어 갔다.
그녀가 이 상황에서 그나마 최선의 결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
표면적이나마 〈계약서〉를 작성해서 이하를 안심시키고 1회의 죽음으로 끝내는 것.
그러나 그런 수법에 걸릴 이하가 아니었다.
“라이징-선 같은 등신들도 그 수법으로 완벽히 깨부술 수 없었는데, 더 고차원적인 시노비구미가 그럴 리 없지. 평생 내 명령만 따라야 한다~ 이런 걸 계약서에 삽입할 수도 없고. 미들 어스가 그걸 제약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자, 그럼 내가 뭘 할 것 같아?”
이하는 치요의 얼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빙긋, 짓는 미소는 악마의 그것이었다.
“뭘 하려고?”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당신 정도의 머리라면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빌어먹을…… 정말 그렇게 나오겠다고? 나한테 그딴 짓을 하겠다, 이거야?”
치요는 입술을 악물었다. 오히려 이하가 잠시나마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라이징-선의 보스 때도 그랬지만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반드시 눈물, 콧물을 짜며 자비를 구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이하가 겪은 바로는 그랬다.
‘진짜 거물은 거물이다. 보통 여자는 아니야. 내가 뭘 할지 예측해 놓고도 절대 용서를 구하지 않아.’
물론 치요가 도끼눈을 뜨고 보는데 이런 생각을 들켜선 안 된다. 이하는 더욱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쉬, 쉬이이이…… 우리 그러지 맙시다. 여기까지 와서 서로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깔끔하게 결말을 받아들이기로 해요. 오케이?”
철컥, 이하는 블랙 베스의 노리쇠를 당겼다.
“그리고 우리가 ‘뭘’ 할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당신도 나름 대비하고 있을 거 아냐. 지금 벌써 시노비구미 여기저기에다 귓속말도 하고 있을 것이고……. 다 해 봐. 니년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털어놔 봐.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그치, 기정아?”
“어, 으, 응. 그거야 뭐. 예전 별초의 길드원들도 적극 참여해 주기로 했어. 아무래도 시노비구미, 사스케, 이런 단어만 나오면 치를 떠는 사람은 아직도 많으니까.”
기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하는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기서 죽으면 태어나는 마을이 ‘쳬시’. 미니스 국경 근처의 아주, 아주, 아주 작은 마을. 치안대는 고작 7명. 음. 완벽해.”
이하의 말을 들으며 치요는 입술을 더욱 세게 물었다.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이하가 별초와 연락하며 또 하나 생각했던 게 바로 이것이었다.
치요를 한 번 죽이는 걸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것.
어렵사리 잡은 기회를, 고작 퀘스트 성공의 보상 정도로 끝내야 하는가? 이하의 대답은 NO였다.
랭커들의 죽음 1번은 아주 큰 손실을 불러오지만 그래도 충분히 복구가 가능하다.
이하가 원하는 것은 시노비구미의 완전한 괴멸. 즉, 복구 불가능의 손실.
그것이 가능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랭킹에서 빠질 각오는 됐어?”
무한 척살.
별초의 길드원들은 쉼 없이 쳬시에 머물 것이다. 치요가 접속하면, 마을 안에서의 PK도 거리낌 없이 벌일 각오를 갖고.
물론 그런 작전이 가능한 것은 혜인, 보배, 그리고 이하가 있기 때문이었다. 48시간 후 다시 접속이 가능해져도 그녀는 쉽게 접속할 엄두를 내지 못하리라.
접속한다면 사망으로 인한 실질적 피해를, 접속하지 않는다면 시노비구미는 전체 통솔자를 잃게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치요에겐 지옥이다.
이하의 외통수는 치요에게 닿았다. 그리고 블랙 베스의 탄환은 그녀의 뒤통수까지 뚫을 것이다.
“나와 그렇게까지 싸울 각오는 됐어?”
그런 모든 상황을 인지했음에도, 오히려 블랙 베스를 들어 올리는 이하에게 먼저 입을 연 것은 치요였다.
“무슨 각오? 당신은 이제부터 무한 척살이라니까. 그리고 먼저 ‘그렇게까지’ 싸움을 걸어온 건 당신이면서 무슨 소리야?”
아직도 뭐가 남았을까? 그러나 이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런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치요는 정보를 다루고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는 데 있어서 천재라고 인정을 해야 한다. 저렇게 허세를 부리는 것도 오히려 협상의 여지를 찾기 위함이라고 봐야 한다. 저 말을 무시해야만 한다.
치요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비장의 수는 없을 것이다!
이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 하이하. 그렇다면 나도 모든 걸 사용하겠어.”
“그렇게 말하면 못 죽일 줄 알고?”
그러나 치요는, 이하에게 그 어떤 협상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무한 척살이라는 말을 듣고 눈빛을 번쩍이며 끝끝내 자신감만을 표출할 뿐.
“죽여.”
그녀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케이, 바이바이.”
투콰아아아아앙……!
이하의 몸에서 백색의 광휘가 일었다.
그러나 처형자의 입장이었음에도 어째서 불안한 예감이 드는지, 이하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