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886
마탄의 사수 (886)
공룡화를 한 상태에서도 손과 팔, 어깨가 부르르 떨릴 정도의 힘이 전해질 정도였으니 스킬이 해제되는 순간 그의 몸이 반 토막 날 건 뻔한 일이리라.
단순하고 무식한 공격도 극에 달하면 기술 따위가 필요 없어지는 걸까.
기정은 반격의 여지조차 없이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정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토온의 갑주로 완전히 보호된 투구 속, 그의 눈은 다른 곳을 노리고 있었다.
‘한 번이면 돼. 딱 한 번만 쓰고, 놈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를 노리면―’
기정의 눈이 움직임과 동시에 푸른 수염의 눈도 움직였다.
그러나 푸른 수염은 기정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음? 뭐야, 언제부터 있었지?”
푸른 수염이 미간을 찡그린 채 기정의 뒤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뭘 보는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기브리드의 맹공 때문에 기정은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때 루비니의 귓속말이 파고들었다.
―누군가 있어요, 마스터케이 님! 아까, 아까 마스터케이 님의 뒤에 점이 잠시 보인 적이 있었는데…….
―네?
그때 뒤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후우우우웅──────…….
바람 소리가 점차 강해졌지만, 그럼에도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속이 시원했― 냐──!”
콰콰콰쾅──────!
거친 타격이 사방을 휩쓸었다.
동시에 기정은 푸른 수염이 어째서 놀랐는지, 갑자기 누가 나타난 것인지를 깨달았다.
[뭐, 뭐야? 당신이 어떻게―]기정의 머릿속으로 루비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지원이었어요! 이지원이 마스터케이 님을 쫓아간 거예요! 하지만 어떻게…… 제 지도에서 숨을 수 있었는지…….
이지원은 라파엘라가 초광역 스킬을 사용하고 기정이 키메라들을 뚫고 갈 무렵부터 줄곧 기정의 뒤를 쫓고 있었다.
공간 이동이 되지 않는 신대륙 동부에서 그가 원하는 목표물을, 자신에게 수치를 안긴 목표물을 찾아내기 위한 집념의 결과였다.
마왕의 조각에게 누구보다 분노하고 있는 유저!
랭킹 2위의 마검사 이지원이 전장에 난입했다.
* * *
사상 최초 S+급 업적 획득자에 대한 이야기가 커뮤니티에 떠돌지 않을 리 없었다.
죽어서 로그아웃 상태였던 이지원도 그것을 보았다.
업적의 획득자는 이지원이 라이벌로 생각하는 알렉산더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활약을 내비쳤던 하이하도 아니었고 개척왕 페르낭도 아니었다.
이지원의 입장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유저, 마스터케이였다.
유저 최초의 추기경? 그런 데에 관심을 두지도 않는 이지원에게 해당 업적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렇게 무시하는 수준의 마스터케이가 어떻게 S+급 업적을 획득할 수 있었는가.
“피로트-코크리…… 너어는 진짜……. 용서할 수 없어.”
이지원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의 신체가 언데드로 변했다는 소문도 들려왔고, 피로트-코크리가 그것을 부렸다는 목격담도 있었다.
〈제목: ㅋㅋㅋ죽은 거 아니냐 급식충쉐리 ㅋㅋ〉
〈제목: 치요처럼 마왕군에 붙은 거 아님?〉
〈제목: └re: 스샷도 없는 말을 믿냐〉
〈제목: └re└re: 지랄 내 친구가 공격당해서 시스템 알림창도 떴다는데〉
〈제목: └re└re: ㅇㅇ언데드로 변했다는 말이 맞는듯〉
〈제목: 이지원이 피로트-코크리 깨운 건가?〉
〈제목: └re: 개꿀잼 몰카인거임 ㅋㅋ엌ㅋㅋ〉
“으으으…… 으으으으으…….”
한때 해외 매체를 통해 인터뷰까지 진행했던, 한국 랭킹 1위이자 세계 랭킹 2위, 미들 어스 최강의 마검사가 지닌 프라이드는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타닥, 타다닥― 타다다다다닥―!
키보드 위 이지원의 손놀림이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세 개로 연결된 모니터에선 이지원의 손놀림에 맞춰 새로운 창이 뜨고, 또 떴다.
“피로트-코크리…… 마왕의 조각…….”
처참하게 짓밟힌 프라이드를 그냥 두는 것은 세계 랭킹 2위가 할 일이 아니다.
이지원의 안경이 모니터의 빛을 반사시켰다.
반짝거리는 렌즈 속에서 이지원의 눈은 불타고 있었다.
“님들 다 뒤짐.”
절치부심, 와신상담. 미들 어스에 접속하든 하지 않든 이지원의 모든 회로는 오직 ‘복수’라는 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오늘, 기정의 뒤를 밟아 푸른 수염과 기브리드를 찾을 때까지!
* * *
“코크리의 냄새가 나는군. 아마도 코크리에게―”
“여물어~ 〈코로나 제트〉!”
푸른 수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이지원은 스킬을 발동시켰다.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듯, 그의 흑색 검에서 열기 덩어리가 쏘아져 나갔다.
푸른 수염은 자신의 모자를 벗어 머리를 얹는 구멍을 코로나 제트 방향으로 향한 후, 지팡이로 그것을 톡, 톡 쳤다.
공중에 떠 있던 푸른 수염의 모자 속으로 코로나 제트의 열기는 모조리 흡수되어 갔다.
“그럴 줄 알았어. 〈솔 블레이드〉!”
이지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스킬 하나, 둘 정도가 ‘씹히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화르르륵!
검은 불이 타오르는 검을 쥐고 마검사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블링크를 조합할 수 없어 그의 컴비네이션은 다소 반감된 위력이었으나 여전히 매서웠다.
“이런, 이런. 개처럼 달려들어 봐야 자네만 피곤해지는 거 모르나?”
푸른 수염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지팡이의 손잡이를 쥐고 검처럼 치켜들었다.
순식간에 줄기처럼 뻗은 마기의 검으로 그는 이지원의 검을 막아 냈다.
──────…….
검과 지팡이의 부딪침은 아무런 효과음도 내지 않았다.
타오르는 흑색의 불과, 지팡이에서 새어 나온 흑색의 마기가 서로를 집어삼킬 듯 기세를 떨치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무기가 맞붙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기가 스파크〉, 〈스티키 일렉트릭〉!”
오른손으론 검을 휘두르고 왼손으론 마법을 쓴다.
이지원은 마검사의 정공법답게 공격을 계속했다.
“크으으, 이 자식이―”
전력계 마법을 손톱으로 받아 낸 푸른 수염의 털이 주뼛거리며 곤두섰다. 그러나 그는 마땅히 반격할 수 없었다.
이지원의 공격 속도는 푸른 수염의 그것을 상회할 지경이었으니까.
이미 ‘풀 버프’ 상태로 자신의 신체 능력을 최대한 강화시킨 마검사의 움직임은, 그것도 세계 랭킹 2위의 움직임은 웬만한 육체파 탑 랭커 이상이었다.
“언제까지 이 기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나. 내가 움직이는 순간 네 녀석은 끝이야.”
“그럼 움직여 보쉴? 그게 안 된다는 내용도 이미 확인했는데?”
“뭐?”
“피로트-코크리가 날 죽였다고? 언데드를 만들었다고? 풉, 그런 걸 우리 업계에서는 포상이라고 함.”
푸른 수염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는 한국인의 집념을 유저 평균으로 얕본 셈이었다.
이지원이 로그인을 하지 못하던 지난날을 어떻게 보냈는가? 로그인이 가능하자마자 그가 돌아다녔던 행적은 어떻게 되었는가?
푸른 수염의 시선은 이지원의 검을 빠르게 훑었다.
그의 검에서 뻗어 나오던 검은 화염의 기운이 점차 바뀌고 있었다.
가까이 붙기만 해도 치직, 거리며 옷을 태울 정도의 열기는 어느새 식어 없어진 상태였다. 여전히 그의 검면은 새카만 색을 자랑하고 있었으나 이제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어둠 그 자체였다.
단순한 어두움, 깊은 땅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는 조금 달랐다.
“……빌어먹을 놈. 열쇠를 갖고 있었나.”
“응~ 솔Sol이 뭔지 나도 알아~ 피로트-코크리는 나한테 아무런 단서도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이지원은 웃으며 외쳤다.
“〈솔 블레이드 리버스Reverse〉.”
솔 블레이드의 모든 기운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것.
태양이 폭발하는 흑점의 기운과는 다르다. 그것은 피로트-코크리가 말했던 대로, 지하 가장 깊은 곳의 무저갱과 같은 힘을 발현하는 스킬이었다.
발산하는 게 아니라 수렴하는 어둠.
모든 것을 삼키며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어둠이었다.
슈우우우우─────────……!
검면의 흑색은 점차 짙어졌다.
마치 그래픽에 문제가 생겨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 검은색처럼, 그것은 점차 크기를 키워 나가고 있었다.
검면에서 시작된 흑색 배경은 주변의 배경을 잠식하고, 이지원의 모습을 삼켜 가며 푸른 수염의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그것은 마기魔氣와는 또 다른 형태의 스킬이었다.
루비니의 지도에서조차 이지원이 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이자, 지근거리에서 기정과 기브리드의 전투를 관찰하며 난입할 때를 확인하고 있었음에도 ‘마왕의 조각’들이 이지원을 명확히 인지할 수 없던 이유!
퍼져 나간 흑색의 공간은 푸른 수염을 감싸고 있었다.
잘라 내기 후 제대로 붙여 넣지 못해 덩그러니 남아 버린 공간처럼, 푸른 수염은 주변이 온통 새까맣게 된 중앙부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우주에 홀로 떠 있는 소행성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여튼 피로트-코크리 녀석, 귀찮기 짝이 없군!”
푸른 수염은 숨조차 돌릴 수 없었다. 그는 황급히 뒤를 돌았다.
그의 뒤에서 이지원의 검이 내려쳐졌다.
────────────……!!!!
우주의 소행성과 다른 점이라면 그를 둘러싼 흑색의 공간이 모조리 이지원의 소유하에 있다는 점이리라.
“난 꿀잼인데? 풉키풉키!”
푸른 수염은 즉각 이지원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으나 흑색의 공간 속으로 사라진 이지원에겐 닿지 않았다.
“망할 자식!”
그럼에도 푸른 수염은 지팡이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이지원의 공격은 푸른 수염이 예측할 수 없는 각도와 방향에서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 ─, ─, ─, ─, ─, ─…….
원근감을 전혀 잡을 수 없는 공간 속에서 푸른 수염의 지팡이와 보이지 않는 이지원의 검이 검격을 이어 나갔다.
그의 셔츠 복부가 푸르게 물들고 있었다.
바하무트에 의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푸른 수염과, 자신의 무기의 새로운 면을 찾아낸 세계 랭킹 2위의 대결은 박빙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 * *
[대단해……. 어찌 저런―]“한눈을 파는가, 홀리 나이트.”
콰아아아앙────────……!
한없이 조용한 푸른 수염과 이지원의 대결과 달리, 기브리드와 기정의 대결은 소리를 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음?”
흙먼지가 가라앉을 즈음 기정이 입을 열었다.
공격 자체의 묵직함은 여전히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나 기정은 점차 그에게 반응할 수 있었다.
[원래 힘만 믿고 까부는 놈들이 제일 상대하기 쉬운 법이거든.]공격 패턴의 단순함.
한 번 휘두르고 기정이 물러서면 다시 쫓아와 휘두른다.
휘두르는 방향 자체도 번갈아 사선 베기와 수직, 수평 베기를 반복할 뿐.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것도 두 사이클이나 그의 공격을 받아 넘긴 시점에서 기정이 반응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신념의 일격〉!]이번 공격은 수직 베기다.
기정은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몸의 축을 틀었다.
아직 기브리드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이었으나 기정은 자신 있었다.
횡으로 한 발을 빼며 축을 돌리는 것만으로 기브리드의 공격은 타깃을 잃을 수밖에 없다.
공격의 방향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반적인 근육을 사용한다면 그래야 했다.
그러니 기정의 공격은 기브리드의 심장을 꿰뚫어야만 했다.
콰드드득─────────……!
기브리드의 근육이 일반적이었다면 말이다.
[무슨……?]기정은 당황했다.
신성력으로 도포된 〈이름 없는 팔라딘의 검〉은 분명히 무언가를 찌르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살갗이 아니었다.
“……얕봤군, 홀리 나이트.”
기브리드가 수직으로 내리친 팔은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팔뚝을 ‘찢고 나온’ 새카만 덩어리가 기브리드의 가슴 부위를 막고 있었다.
“이제 와서…… 이까짓 껍데기는 귀찮기만 할 따름이다.”
인간의 육신을 입었다는 기브리드의 표현 그대로였다. 그의 얼굴 근육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까드드득, 까드드드득―
[미친―]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인간의 가죽을 마구잡이로 찢어 내며 새카만 덩어리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젠가 기정이 보았던, 미들 어스에서 가장 끔찍한 혼종의 정체였다.
이지원의 순수한 흑색과는 전혀 다른 어둠. 때가 탄 것 같은 더러운 어둠 덩어리에서 수백 개의 눈과 수백 개의 입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