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919
마탄의 사수 (919)
이제는 알렉산더도 인정해야 했다. 자신의 계획이, 함정이 읽혀 버렸음을.
오닉스는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베일리푸스의 등장으로도 그를 유혹해 낼 수 없다면, 앞으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를 끌어낼 수 없으리라.
‘이렇게 된 이상 컬러 드래곤을 하나하나 잡는 식으로 가야― 아니, 그럴 순 없다. 이미 뭉쳐 버린 그들을 잡기 위해서 필요한 건 총력전뿐…… 메탈 일족이 모조리 움직이게 되면―’
북방이 빈다.
푸른 수염이 언제든 피로트-코크리를 깨우러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알렉산더!]“……돌아간다, 교우여. 지금은 우리의 계획만으론 부족한 것 같군.”
[좋은 판단이다.]베일리푸스는 즉각 선회했다.
컬러 드래곤들의 비행도 결코 느리지 않았으나, 유저가 합세해서 이동하는 알렉산더―베일리푸스 콤비를 쫓을 순 없었다.
공간 결계까지 쓰고 쫓는다한들 둘 또한 과거의 그들이 아니다.
이미 텔레포트가 불가능했던 신대륙 동부에서 숱하게 단련된 그들의 공중 육탄전 기술은 과거의 쿠즈구낙’쉬 이상이었다.
[도망치는 건가, 메탈의 수치여!] [우리의 여왕님께서 깨어나신 이상, 네 녀석들을 멸족시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컬러 드래곤들의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지만 알렉산더와 베일리푸스는 가볍게 회피하며 공간 결계의 밖으로 향했다.
움직임 자체를 제한하는, 물리적 결계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이들을 묶어 두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슉───!
결계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베일리푸스는 공간 이동을 사용했다.
온갖 마법과 드래곤 로어Roar가 난무하던 미니스의 영공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컬러 드래곤들은 잠시 주변을 훑어보았다.
[〈마나 탐지〉에 걸리는 건 없다.] [수색 또한 마찬가지. 주변엔 아무것도 없습니다.]마법을 사용하여 또 다른 침입자가 있는지, 혹 베일리푸스의 이러한 움직임도 함정이 아닌지 샅샅이 찾아본 이후에야 그들은 지상으로 착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보랏빛이 번쩍거렸다.
─────……!!!!
나타난 것은 부스스한 흑발을 휘날리는 노인이었다.
* * *
“그들은 돌아갔나.”
[예. 장로를 유인하려 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싸울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정말 홀로 장로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허허…… 어이가 없군. 중상을 입은 바하무트가 함께 와도 베일리푸스 놈이 나를 이길 순 없을 텐데, 정녕 혼자 왔다고.”
[그, 그렇습니다. 혹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마나 탐지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아―]“알았다.”
오닉스는 허둥지둥 답변하는 컬러 드래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고개를 돌리며 드래곤들의 면면을 살피던 오닉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녀석이 한 말이 또 맞아 버리다니.”
오닉스는 혀를 차며 말했으나 주변 드래곤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컬러 드래곤들은 반색하며 ‘그 녀석’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굴러 들어온 복이 아니겠습니까, 장로!] [그렇습니다! 여왕님의 부활과 함께 저희 일족에게 그런 지혜 주머니가 생겼다는 건 분명 좋은 징조입니다!]컬러 드래곤의 장로, 오닉스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시끄럽다! 멍청한 것들…… 그 나잇살을 처먹고도 인간 하나에게 휘둘리면서 기뻐하고 싶나? 이런 말도 안 되는 돌진을 ‘함정’이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그놈이 베일리푸스가 데리고 있는 인간과 내통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해도 부족할 판에…….”
슉────!
오닉스의 말을 끊으며 연보랏빛이 다시 한 번 번쩍거렸다. 흑발의 노인 곁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남성이었다.
그는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캬, 역시, 역시. 제 말이 맞았죠? 그렇다니까요. 저 알렉산더가 혼자 나타났으면 백 퍼센트― 아니, 천 퍼센트 뭔가가 있는 거라니깐. 마음 같아서야 ‘원거리 저격수’가 있을 확률도 있다고 봤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고…… 새로운 스킬이라는 게 거의 확정적이네요. 그것도 혼자서 컬러 드래곤 열 기쯤은 재껴 버리고 오닉스 장로님을 푸욱~ 해 버릴 수 있는 기술이라는 뜻이죠.”
경박한 목소리에 박수를 치는 과잉 행동까지.
오닉스는 벌레를 보듯 그를 보고 있었으나, 주변의 컬러 드래곤들은 모두 그의 즐거움에 동조라도 하듯 웃기 시작했다.
“……뭐 하러 쫓아온 거지. 네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그리고 여긴 공간 결계가 아직 남아 있다. 네놈은 이걸 어떻게 뚫었지?”
오닉스는 최대한 경계했다.
티아마트가 부활한 현재에도 그는 컬러 드래곤 일족을 이끄는 장로였기에 당연한 것이었으나, 남성은 허탈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 참. 우리 사이에 이런 결계가 문제겠습니까? 원래 옐로 드래곤의 주력 기술이 추적과 말살이잖아요. 그걸 조금 응용했을 뿐이죠.”
“……네가 옐로의 마나를 어떻게 사용했냐고 묻고 있는―”
“그리고 벌써 몇 번이나 검증된 일인데 아직도 저를 의심하신다는 게 저로서는 심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장로님.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도 더 도와드리기 힘들 것 같은데요.”
남자는 능숙하게 그리고 익숙한 말투와 표정을 보였다. 그를 더 추궁하려던 오닉스도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었다.
남자가 오닉스에게 일방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의 힘이 오닉스를 포함한 컬러 드래곤 일족에게 필요 불가결한 위치까지 올라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좋다. 의심이 아니라 그저 능력의 검증이라 생각해 주면 좋겠군.”
“뭐, 좋습니다. 원래 오닉스 장로께서 능력 지상주의인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남자는 검을 지팡이 삼아 짚은 채 짝다리로 서 있었다.
즉, 능력을 보이기만 한다면 이런 태도 또한 얼마든 상관없으며, 자신은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셈이었다.
“좋다. 돌아가지. 집결지로 모이도록.”
오닉스는 몸을 돌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신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컬러 드래곤들도 하나, 둘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텔레포트를 준비했다. 그중 한 개체가 갑자기 나타났던 남성에게 다가와 물었다.
“혼자 갈 수 있나.”
“텔레포트요? 으음, 그냥 같이 가시죠. 또 혼자 가면 장로가 지랄지랄 할 것 같아서.”
“하핫, 그럴 리가 있나. 한때 자네와 목숨을 두고 겨뤘던 우리이며 장로님이시지만…… 자네의 중요성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쳇, 그러면 좀 잘 대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싶네요.”
남성이 투덜대며 고개를 젓자 컬러 드래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텔레포트를 준비했다.
“자네의 여자는 잘 있는가.”
“집결지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른 돌아가야죠.”
남성은 검을 검집에 넣었다.
움직이는 검에서 무지갯빛 잔상이 뒤따랐다.
“그대의 혜안에는 언제나 감탄하고 있네. 가도록 하지, 라르크.”
컬러 드래곤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텔레포트를 시전 했다.
라르크는 오닉스와 컬러 드래곤들이 기다리는 집결지로 이동되었다.
생명체라곤 지나가는 전갈밖에 없는 황폐한 땅에서 움직임이 발생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여 분의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완전 서프라────────이즈잖아!? 부히히힛! 라르크!? 무지개의 기사라니!”
“……키킷, 미치겠네. 알렉산더가 움직인대서 따라왔더니 이건 또 무슨―…….”
뒤집어쓴 모래를 털어 내며 비예미와 삐뜨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 *
그들이 컬러 드래곤들의 동향을 조사하기 시작한 후 벌써 얼마나 시간이 지났던가.
삐뜨르는 기정에게 부탁받았던 그날 이후로 로그아웃마저 아껴 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컬러 드래곤 동향 파악을 하던 중, 어느 순간부턴가 드래곤 레어마저 비워져 있어 아무런 정보도 획득할 수 없는 나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드래곤 레이드에 관한 첩보, 가장 최근에 컬러 드래곤이 잡혔거나 또는 난동을 피웠다는 정보가 있다면 즉각 그곳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역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키킷…… 그나마 알렉산더가 남쪽으로 향했다고 해서 겨우겨우 찾아낸 거였는데.’
공중을 날아가는 골드 드래곤을 찾고 그 뒤를 쫓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암살자인 삐뜨르와 과거의 암살자였던 비예미가 아니었더라면 그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가까스로 알렉산더를 찾아 따라붙은 후, 그들은 은신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드넓은 전역 어디서라도, 조금의 정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부히히힛, 이제 어쩔 거지?”
“잠시만― 웁, 우웨에에엑.”
삐뜨르의 물음에 비예미는 고개를 숙이고 구역질을 했다. 리자디아의 입에서 곧 초록 액체가 쏟아졌다.
“언제 봐도 그 장면은 서프라이즈인걸!”
“휴우우…… 킷, 은신 스킬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그나마 이 아이템이 없었으면 마나 탐지에 걸려서 죽었을걸.”
삐뜨르 수준의 암살자라면 움직이지 않을 경우 드래곤의 마나 추적조차 넘길 수 있다.
그럼 독술사Venom mage인 비예미는 어떻게 할 것인가?
비예미가 애당초 삐뜨르와 함께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한 번 흡입한다면 마나는 물론 HP마저도 주변의 동물 수준으로까지 떨어지는 ‘독’.
새롭게 합성해 낸 아이템을 흡입한다면 거의 가사 상태에 가까운, 그럼에도 시각과 청각은 멀쩡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키, 키킷. 이거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째서 라르크가 컬러 드래곤들과 함께 있으며, 심지어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가?
‘컬러 드래곤의 말투로 보아 이미 꽤 됐어. 키킷, 벌써 붙어먹기 시작한 시간이 제법 흘렀다는 건데…… 라르크는 분명히 하이하이 씨와 길마님과 관계가 있었단 말이지.’
비예미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피로트-코크리 작전 때 분명히 라르크가 등장해 도움을 주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유저였다면 비예미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으리라. 허나 상대는 라르크다.
“부히히힛! 인류의 배신자를 처단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즐겁지. 미니스에서 라르크의 목에 현상금을 걸고 싶어 하는 귀족 NPC는 수없이 많을걸. 구엔의 도움이 없어도 나 혼자라면 놈의 목을 딸 수도 있을 테고 말이지.”
베르튜르 기사단 소속임에도 자국 NPC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
신대륙의 팔레오들 대부분을 〈제압〉할 정도의 인물.
실력은 있으나 검은 꿍꿍이 또한 있어 쉽사리 믿기 힘든 인물.
삐뜨르의 첨언이 없어도 비예미는 그를 알고 있었다.
“키킷…… 신나라 여사도 같이 있는 것 같으니 라르크를 죽이는 건…… 우선 나중으로 미뤄 보지.”
“좋아, 좋아. 어차피 〈마킹〉이라면 묻혀 놨으니까. 서프라이즈 파티는 기다릴수록 즐거운 거거든! 부히히히힛!”
삐뜨르는 지도 하나를 펼쳤다.
미니스 전역이 그려진 지도에선 작은 점 하나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표적의 위치를 확인한 후, 이동하기 시작했다.
컬러 드래곤들의 집결지에선 세이크리드 기사단의 유저, 신나라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 * *
홍콩의 야경은 언제 봐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호텔에 있다 끌려 나온 이하 또한 테이블에 놓인 음식보다 야경에 눈길을 빼앗길 지경이었다.
“좀 더 먹지 그래?”
“배, 배가 아파서…….”
다만 야경에 신경을 쓰게 된 이유는 야경이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만은 아니었다.
이하는 아랫배를 문지르며 답했다.
이하 머리보다 큰 랍스터가 쩍 벌어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나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먹어. 오빠.”
이하의 옆자리에 있는 람화정이 랍스터를 잘라 포크에 찍었다. 얼핏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으나 지금의 이하에겐 아니었다.
오랜만에 받은 ‘태클’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으, 응. 내가 알아서 먹을게요. 그나저나 람화정 씨, 키가 좀 큰 것 같네요.”
애초에 덩치가 커진 것에 가깝겠지만.
이하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나이이기 때문일까? 람화정은 예전에 봤을 때보다 확실히 키가 자라 있었다.
당연히 키만 자란 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몸무게도 늘어난 게 분명한데, 그 상태로 전속력 몸통 박치기를 하다니!
‘금 갔어. 부러지진 않았지만, 100% 금은 갔다. 크으으, 이게 얼마 만에 받아 보는 고통이냐.’
이하의 아픔은 그 정도였다.
미들 어스에서 동화율 100%를 만들어 놓고도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한, 뼈가 떨리는 아픔!
“그럼. 화정이가 지금 몇 살인데. 더 커야지.”
이하의 마음도 모른 채 람화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포크와 나이프는 이하의 손에 쥐어진 총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사삭, 스각 하며 움직이는 식기류는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와…….”
“왜?”
“아니.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예술 같아서. 어떻게 그렇게 움직이지? 젓가락도 그렇게 못 하겠는데?”
“네 살 때부터 배웠으니까 그렇지! 사교계 데뷔하려면 이런 건 필수라고!”
“나도. 해.”
람화연의 말을 들으며 람화정도 물 흐르듯 식기류를 움직였다.
몸에 배어 있는 그녀들의 행동과 ‘사교계’ 따위의 단어를 들으며 이하는 새삼 느꼈다.
“정말 뭔가 별나라 사람 같아. 아니, 실제로 별나라 사람이지. 나한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