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926
마탄의 사수 (926)
프레아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하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흥분이 극에 달하여 떠들지도 않는 상태였으나, 족장을 쫓는 그녀의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기 때문이다.
처음 볼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맨발로 걷고 있었다.
이하는 우드 엘프의 새하얀 발을 보며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근데 발 안 아파요? 여기 숲이라 그냥 걷기에 제법 아플 텐데? 동화율이 낮으신가?”
“어머, 발이요?”
“네. 맨발이잖아요.”
“아! 하이하 씨는 모르시는구나? 보기에만 맨발일 뿐이죠! 우드 엘프 중에서도 정령사나 드루이드, 샤먼 같은 직업군은 신발을 장착해도 투명하게 보여요.”
“어? 네?”
“미들 어스의 컨셉을 너무 우습게 보시네요. 히힛.”
평소와 다른 웃음소리에,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고 비밀로 부칠 법한 말들. 아니면 그냥 웃음으로 넘기며 자신의 신비성을 강조했을 프레아였건만, 지금은 이하의 허접한 질문에도 친절히 답해 주고 있었다.
말똥말똥 빛나는 눈으로 그녀는 이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근데 분노의 정령은 어떻게 아셨어요? 다른 정령도 알고 계셨어요?
―분노의 정령은 대강 짐작했지만 다른 건…… 저도 처음이네요. 오히려 제가 프레아 씨한테 묻고 싶은데요.
―몰랐죠, 몰랐죠! 셰이드 녀석들이 얼마나 개구진지, 물어봐도 순 장난만 치려고 하고 답을 안 해 준단 말예요! 공포의 정령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다른 암暗 속성도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아니, 그나저나 ‘어둠의 정령’ 계약이 암暗 속성 정령 친화력 상승의 주 요소였거든요. 차암, 그런 거 생각하면 하이하 씨가 은인은 은인이야. 안 그래요? 어둠의 정령과의 계약 제한을 풀어 주지 않았다면 저는……,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뒷걸음질로 이하와 눈을 마주치며 귓속말을 하던 프레아가 돌연 윙크를 날렸다.
평소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행동임이 확실했다.
―프레아 씨한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하핫, 세상 참.
―어머나, 왜요, 왜요? 제가 예전에도 몇 번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프레아는 뭘 이런 걸로 놀라냐며 이하에게 장난스레 말했으나 이하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때는 거짓말이였잖아요. 그냥 음, 저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정보 하나라도 빼내려고. 맞죠?
같은 칭찬이어도 과거의 것이 현재와 다른 이유는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 상대에 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하도 많은 유저와 많은 NPC들을 만나 왔다.
거짓말이나 아부, 협박 등을 일삼는 건 미들 어스의 ‘기본 소양’이라 할 정도로 많은 개체들이 써먹어 왔던 것이다.
프레아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걸 이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눈을 크게 떴다. 곧 그녀의 새하얀 눈동자가 반달로 휘었다.
―그럼 지금은 진심으로 느껴지시나 보죠?
―이게 연기라면 프레아 씨는 아마 배우겠죠. 현실에서 아카데미 상 정도는 휩쓰는 배우.
눈짓, 몸짓, 말짓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의 본심.
이하는 이제 조금 알 것만 같았다. 프레아가 원래 어떤 인물인지.
‘어쩌면…….’
자신이 만나 본 미들 어스의 유저 중 가장 순수하고 순박한 사람이 아닐까.
정령에 대한 친화력을 남들보다 빠르고 다양하게 올릴 수 있었던 이유도 그녀의 본바탕 때문일지도 몰랐다.
“타타르.”
“예, 족장님.”
그렇게 족장과 항아리를 든 다크 엘프들을 따라 걷기를 잠시. 마침내 족장은 멈춰 섰다.
“그곳에,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 반경 50m 안에 그 어떤 일족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하의 체감으로는 다크 엘프의 부락에서 약 2km 남짓 떨어진 장소였다.
주변은 일반 숲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타타르와 다크 엘프들이 단지 네 개를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곧장 주변을 호위하기 시작했다.
족장은 그들이 전부 이동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이하와 프레아를 보았다.
“수호령과의 접촉 권한은 일족의 수호자이신 하이하 님만이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이하 님께서 단지들의 뚜껑을 열어 주시는 순간, 그분들이 반응할 겁니다.”
“족장님은 옆에 안 계시는 건가요?”
“보통의 경우라면 저 또한 수호령들께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일주일 이상 그분들께 충분한 기도를 드린 다음에, 그 기도에 응답이 있을 경우에만 접촉하곤 하지요. 하이하 님의…… ‘동료’분이 위험에 처할 수 있듯, 저 또한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크 엘프의 수호령임에도 다크 엘프들이 함부로 다가설 수 없는 존재.
족장은 의식이 끝난 후 자신을 불러 달라며 타타르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이동했다.
“헤! 역시 암暗 속성 정령군은 다르네요.”
프레아가 중얼거렸듯 이하 또한 암暗 속성 정령들이 어째서 희귀한지 알 것만 같았다.
일반 정령들과 달리 어둠이나 공포 등의 정령들은 애당초 그들을 만나기 위한 방법 자체가 터무니없는 비밀에 감춰져 있던 것이다.
“그렇죠? 크흠, 준비는 되셨습니까?”
“네! 빨리! 얼른요!”
프레아는 이하의 뒤에 찰싹 붙어 마른침을 삼켰다. 이하는 조심스레 오래된 항아리 네 개를 향해 다가섰다.
네 개의 항아리 뚜껑에는 서로 다른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이하는 그것들을 잠시 바라본 후, 네 개의 뚜껑을 빠르게 열어젖혔다.
“갑니다!”
파아아아아────────ㅅ!
항아리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항아리 앞에 서 있던 이하와 프레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꺄아아아악!”
“이, 이건 무슨―”
프레아는 비명을 지르며 양팔을 휘둘렀다.
이하 또한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어지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적어도 이하에게 있어선 언젠가 한 번 봤던 공간과 유사했다.
‘왕실기록원! 그 우주다!’
위와 아래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공간.
사방에 알알이 박힌 것들은 마치 ‘별’처럼 보였으나, 이곳은 우주가 아니다.
이하와 프레아는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뭐, 뭐예요, 여긴?! 실레스틴! 나와! 엘레스트라! 이그니스!”
프레아는 마구잡이로 정령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하는 충분히 이해되었다.
처음 왕실기록원에 들어갔을 때 자신도 그녀만큼이나 당황하지 않았던가?
‘왕실기록원 때와 다르다면― 역시 이 추락감인가?’
발에 닿는 것도 없지만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은 아니다.
무언가가 서서히 아래로 잡아당기는 듯한, 중력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가속도가 붙지는 않는다.
하물며 주변에 박힌 조명, ‘별’들은 이하와 프레아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와중에도 그 위치가 변하질 않고 있었다.
고정된 상태에서 떨어진다, 라는 말도 안 되는 기분으로 현재를 표현할 수 있겠다고 이하는 생각했다.
“하이하 씨!”
“네, 네!?”
“정령들이 반응하지 않아요!”
“정령!?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두터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목소리는 이를 악문 남자의 그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르려는 자의 목소리가 꼭 그것과 같을까. 그러나 두 번째에 비하면 오히려 나은 편이었다.
두 번째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다. 첫 번째 목소리가 끝끝내 주먹을 휘두르지 않을 자의 목소리라면, 두 번째 목소리는 이미 모든 각오를 끝낸 자의 억양이었다.
상대방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주먹을 내뻗으려는 자의 각오.
공통적으로는 두 개의 목소리 모두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으으음―! 저걸 갖고 있어? 인간인데도 알렌 스르나의 환생처럼 느껴질 지경인걸? 저 생명체들이 우리 본질들과 같은 윤회를 겪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귀찮은 놈들을 보내온 거잖아. 다음에 혼내 줘야겠어.]다음 둘은 여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첫 번째 목소리는 어미가 올라가며 마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았으며, 두 번째 목소리는 이하와 프레아에게 조금 멀게 들려, 마치 등을 돌리고 있는 자가 말할 때와 유사했다.
물론 중요한 건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 내용이었다.
이하는 첫 번째 목소리에 담긴 정보를 들었다.
프레아에게 직접적으로 묻고 싶었어도 아직은 눈치가 보여 차마 이야기하지 않았던 바로 그것!
‘열두 개의 정령?’
4대 원소와 어둠, 빛. 그리고 ‘얼음’의 정령까지는 이하도 알고 있다.
즉, 현재 파악된 게 7개이며 이하가 모르는 한, 두 가지를 더해 8개에서 9개 정도의 정령과 연이 닿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열둘이라니?
이하가 놀란 눈으로 프레아를 흘끔거리는 바로 그 타이밍에 프레아도 이하를 흘끔거리며 보고 있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뭘 갖고 있지는 않아. 그런데 ‘인간’이라고 말하며 ‘우드 엘프’인 알렌 스르나의 이름을……, 나 때문이 아니야. 이곳의 인간은 한 명뿐! 도대체 뭘 갖고 있기에―’
그녀 스스로 자신이 미들 어스에서 가장 뛰어난 정령사라는 건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또한 알고 있었다. 알렌 스르나는 모든 정령사들이 쫓는 가장 큰 목표이지 않은가.
아직 미들 어스에 존재하는 정령의 종류조차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자신에게, 심지어 처음 보는 ‘정령왕’급 존재들이 알렌 스르나 운운을 할 리가 없다.
하물며 ‘갖고 있다’는 말은 아무리 봐도 아이템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가?
‘알렌 스르나와 연관되는 아이템? 설마…….’
프레아와 이하가 눈을 마주친 그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끝도 없이 펼쳐진 우주에서 갑작스레 무언가가 나타났다.
이하와 프레아의 정면에 나타난 두 개의 남성형 개체와 두 개의 여성형 개체는 제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이하와 프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담겨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이하와 프레아를 향한 적대감을 비롯하여 압도적으로 거대한 부정적인 기운!
두 사람은 더 이상 서로를 바라볼 수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하였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하이하라고 합니다! 이번에 다크 엘프 부족의 일을 하나 해결하며, 여, 여러분들을 뵐 권한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사, 크흠, 그― 인사나 조금 드리고자 해서 왔습니다만…….”
첫 번째 여성형 개체와 첫 번째 남성형 개체가 각각 말했다.
이하는 움찔거렸으나 뒤로 물러설 수조차 없었다.
[너는.]두 번째 여성형 개체는 프레아에게 짧게 물었다.
하얀 눈의 정령사는 전에 없이 당황하며 황급히 인사를 올렸다.
“저, 정령사 프레아라고 합니다. 이번에 고명하신 정령왕 여러분을 뵙게 되어 큰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셰이드와 계약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나 항상 노력하는―”
[턱을 부수기 전에 다물라.]두 번째 남성형 개체가 프레아에게 강하게 말했다.
그녀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적개심을 드러내는 얼굴이거나 또는 짜증이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이하와 프레아를 몇 번 정도 번갈아 볼 때까지 어떤 개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적어도 이들이 4대 원소 정령을 포함하여 암暗 속성이 ‘아닌’ 정령들에게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뭐,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저도 몰라요. 수호령과 접촉 권한이 있다고만 했지 ‘호의적’이라고 되어 있진 않았는데, 설마 그렇다고 공격까지 할까요? 분위기상 정령왕급 같은데―
―정령왕일수록 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아시잖아요.
이하도 새삼 기억해 냈다.
눈과 얼음의 정령왕과 물의 정령왕만이 정령왕으로서의 격조를 지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불의 정령왕은 제멋대로인 성격이었으며,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바람과 땅의 정령왕도 자신들의 목적인 ‘세계수 보호’를 위해서라면 이유 불문, 접근자를 공격하려 했던 적도 있지 않은가.
정말 공격을 당하는 건 아닐까.
두 사람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길 잠시, 마침내 단호한 목소리의 남성형 개체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피조물인 다크 엘프를 구해 준 놈과 어둠의 정령왕을 꼬드긴 녀석을 바로 죽여 버릴 순 없겠지. 파괴의 정령왕, 보즈막이다.]파괴의 정령왕, 보즈막. 남성형 목소리 두 번째 개체.
보즈막이 말하자 첫 번째 남성형 목소리였던 이를 악문 개체도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인간과 우드 엘프에게 이름을 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진짜 알렌 스르나 때 생각이 나는구만. 오프케. 분노의 정령왕이다.]분노의 정령왕, 오프케.
자문自問하듯 말하던 여성형 목소리 첫 번째 개체는 혼돈의 정령여왕 카르가샤였으며, 고유명사만 덜컥 얘기한 개체는 무력과 무기력, 나태의 정령여왕 할시즈릭이였다.
다크 엘프 부족을 이루는 네 개의 기본 정령왕들이 마침내 이하와 프레아를 받아들인 셈이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머릿속에 팡파르가 울렸다.
빠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