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329)
#재능만렙 플레이어 329화
“물론 철혈사자 길드장의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김혁진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송정희가 움찔했다. 송정희는 불안한 눈빛으로 송기영과 김혁진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봤다. 그러나 이내 그 불안함을 숨겼다.
“네까짓 게 무슨.”
그녀는 김혁진을 인정할 수 없었다. 송정희에게 있어 김혁진은 갑자기 튀어나온 변수. 명문가의 자제도 아닐뿐더러, 세계가 이렇게 변하기 전까지는 그저 변변찮은 어린 놈 아니었던가.
‘시대를 잘 만났을 뿐인 놈이.’
김혁진의 모든 능력은 행운이다. 시대가 변했고 세계가 변했다. 그래서 얻어낸 결과물에 불과했다. 적어도 송정희에게는 그랬다. 그 마음을, 송기열은 읽을 수 있었다.
‘저렇게 멍청한 아이가 아니었는데.’
마음이 착잡해졌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전에는 정희가 두려웠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김혁진의 등장과 동시에 송정희가 많이 달라졌다. 나쁜 쪽으로.
‘김혁진과 연관된 일이면 머리가 굳어버리는 건가.’
그렇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김혁진이 다시 말했다.
“회장님께서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알고.”
송정희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고유능력. ‘소멸’을 사용합니다.]대상은 송정희. 김혁진이 알고 있는 요소들을 바꾸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잭슨의 행보를 읽어내기 위해. 송정희에게 제재를 가하지 않았었다.
‘이제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어.’
‘백안의 예언자’가 과거에는 하지 않았던 예언을 하고,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 피로 물든 거대한 비석이 동해에 떡하니 생겨났다.
대도적 라스본은 원귀가 되어 동해를 떠돌고 있으며, 원래는 나타나지 않았을 플레이어인 침략자 카구라 역시 비석 곁을 머물고 있다. 많이 바뀌었다.
‘송정희라는 조각은…… 작은 조각.’
이제부터 김혁진이 그려나가는 미래에, 송정희는 없을 것이다.
[고유능력. ‘소멸’이 적용됩니다.]그와 동시에 송정희가 비명을 질렀다.
“뭐, 뭐하는 짓이야!”
김혁진에게 달려갔다. 김혁진의 멱살을 잡았다. 어떻게든 김혁진을 멈추려는 것처럼 보였다.
송정희는 느낄 수 있었다. 김혁진의 멱살을 잡고 있던 팔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충만했던 힘이 없어지는 느낌.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 버리듯. 온몸의 힘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혁진에게 알림이 들려왔다.
[‘소멸’ 권능이 부분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소멸은 소멸의 개척자가 구사할 수 있는 고유 능력.
──────────
[소멸(消滅)]소멸의 개척자가 구사할 수 있는 고유 능력입니다. 소멸은 두 가지 경우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1. 플레이어
-하위 레벨 플레이어에게 ‘소멸’ 사용시, 플레이어의 자격이 박탈 되거나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이 감소됩니다.
2. 비플레이어
-비플레이어에게 ‘소멸’ 사용 시, 플레이어로서의 각성 가능성이 사라지거나 감소됩니다.
──────────
플레이어의 자격을 박탈시키려고 했는데 그건 실패했다.
[‘소멸’의 대상 송정희 플레이어의 레벨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소멸’ 권능으로 인하여 레벨을 비롯한 모든 능력치가 초기화 됩니다.]다시 말해 송정희의 레벨이 1이 되었다. 플레이어의 자격은 유지했으나 모든 힘을 잃어 버렸다.
송정희는 어마어마한 탈력감에 빠져들었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탈력감을 넘어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운이 좋네. 송정희.”
이내 그 절망감은 김혁진을 향한 분노로 바뀌었다.
“반드시……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송정희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그러나 잊지 마.”
송정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살짝 허리를 숙였다. 주저앉은 송정희의 귀에 속삭였다.
“다음엔 나도 널 죽일 거야.”
* * *
그날 밤.
송기영은 송기열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회장실이 아니었다. 평창동에 위치하고 있는 자택으로 불렀다.
송기열은 오랜만에 이곳에 왔다. 송정희와 후계전쟁을 시작한 이후로는 거의 오지 못했었다.
평창동. 송기영의 대저택 내 서재.
송기영은 다소 편한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차를 마셨다.
“기열아.”
“네. 할아버지.”
이곳에서는 회장님이 아니라 할아버지다. 지금 송기열은 성신의 후계자 자격이 아닌, 손자의 자격으로 이곳을 찾았다.
“오늘 그 능력. 너도 기억하겠지?”
“네.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혁진이 왜 굳이. 내 앞에서 그 괴물 같은 능력을 선보였는지. 알겠느냐?”
“……시위였다고 생각합니다.”
“시위라.”
송기열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말을 정정했다.
“아니. 경고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 경고가 더 좋은 말이구나.”
송기영이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찻잔에서 새어나온 하얀 김이, 송기영 회장의 안경을 뿌옇게 물들였다.
“명심하거라. 그 능력은 이 세계의 절대적인 능력이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혁진에게 많은 능력이 있다는 건 진작 알았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을 박탈시키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니. 과거 LA의 경매장에서 미셸이 선보였던 능력이기도 했다.
“공식적으로는 한 명. 비공식적으로는 두 명이구나.”
송기영의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네게 너무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 것 같구나.”
“……할아버지?”
“나는 성신이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짐을 들 수 있어야, 그래야 내 손자라고 생각했다.”
원래의 성신은 그랬다. 성신은 당연히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같은 것. 그런데 거기에 김혁진이라는 무거운 변수가 발생했다. 짐이 너무 무거워졌다.
“김혁진과 경쟁해야 하는 짐은, 지나치게 무거울 것이다.”
송기열이 참고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저는 김혁진과 경쟁해야 합니까?”
“왕은 한 명이다.”
왕은 한 명이다. 왕은 두 명이 될 수 없다. 그 말을 하려던 송기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손자를 사랑하지만, 손자가 과연 김혁진을 이기고 왕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솔직히 대답할 수 없었다.
“답은 네가 찾아야 할 것이다.”
송기열이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의 서재를 빠져나왔다. 송기열의 발걸음은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답은 네가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말은 곧 답을 찾으라는 의미다. 미래를 송기열 자신에게 맡긴다는 뜻이었다.
동생인 정희는 이제 후계자 후보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더 동생인 진철은 아직 너무 어리고.
오늘따라 밤하늘이 밝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 * *
광화문 D타워.
한국의 튜토리얼 빌딩인 이곳의 워프게이트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플레이어들이 그를 알아봤다.
“명인 페드로?”
페드로는 굉장히 유명한 ‘제작’계열의 플레이어다. 이미 많은 랭커들의 아이템을 제작해준 것으로 유명하며, 벌써 사람들 사이에서는 명인이라고 불리는 중이다.
미래에 ‘검후’라는 이명을 갖게 될 신연서가 지금 시점에서는 ‘미소 검객’이라고 불리고 있고, ‘권왕’이라고 불리게 될 마상현도 아직 ‘튜토리얼 종결자’로 불리고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페드로는 입지를 훨씬 더 빠르게 다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마르칸’이라는 철제 갑옷. ‘은도끼’라는 손도끼. ‘카톤 곡괭이’라는 곡괭이. ‘흰고래의 수염’이라는 건틀렛 등이 있었고, 모두 랭커들이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벨라의 벼락망치도 페드로의 작품이라며?”
이탈리아의 유명한 투사 벨라의 ‘벼락망치’도 페드로가 제작해 준 것으로 알려진 상태.
플레이어들이 조금씩 모여 들었다. 명인 페드로는 유명했지만 직접 전투 능력이 상당히 약했기에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웠다.
“페드로에게 뭐 하나 얻기라도 하면 개꿀이지.”
“일단 말이나 한 번 걸어볼까?”
그런데 그때 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또 누가 왔는데.”
유명 플레이어, 이탈리아의 투사 벨라였다. 벨라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눈을 부라렸다.
“썩 안 꺼지냐?”
벨라의 고약한 성미는 이미 유명했다. 말이 통하지는 않았으나, 플레이어들은 벨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벨라의 눈을 피하고 여기저기 흩어졌다.
“거봐. 같이 다녀야 한다니까? 승냥이 같은 놈들이 어지간해야 말이지.”
“상남자는 그런 걸 두려워하지 않아. 정면으로 길을 뚫고 갈 뿐이지.”
그렇게 말을 하는 페드로의 얼굴이 평소보다 해쓱하게 질려 있었다.
“우웩!”
단순히 구토를 한 것이 아니었다. 피가 섞여 있었다. 핏덩이가 한 움큼 토해졌다. 벨라가 페드로를 업었다.
“시간 없다. 빨리 가자.”
벨라는 페드로를 업고서 김혁진의 보금자리 DMC리버뷰자이로 향했다.
쾅! 쾅! 쾅!
벨라가 세차게 문을 두드렸다.
마침 김혁진은 집에 있던 차였다. 감각안으로 벨라와 페드로의 기세를 읽어낸 김혁진이 문을 열어줬다.
씩씩대고 있는 벨라가 보였다. 벨라가 통역구슬을 사용한 상태.
“개자식아, 책임져.”
“무슨 소리야?”
벨라의 등에 업혀 있던 페드로가 땅으로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례를 범하지 마. 상남자는 이런 식으로 인사하는 게 아냐. 박력과 무례를 혼동하면 안 되지.”
김혁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벨라. 이곳은 나와 내 가족이 쉬는 집이야.”
경고였다. 정확한 전후사정은 모르겠으나 벨라는 분명 무례했다. 김혁진은 그 무례를 마냥 용납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딴 거 모르겠고! 얘가 죽어가잖아.”
김혁진은 페드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벨라의 무례는 잠시 눈감아 주기로 했다. 감각안에 잡히는 페드로는 정말로 위험해 보였다. 심장만 간신히 뛰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무슨 일이야?”
일단 둘을 거실 소파로 안내했다. 페드로의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손수건을 꺼내 기침을 했는데, 또다시 각혈했다.
김혁진은 그 피에서 ‘원념’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이 원념. 그리고 이 피냄새.
“피로 물든 비석에서 나는 피냄새인데.”
“맞아. 그거.”
벨라가 랩을 하듯 빠르게 말했다.
얘기를 들어봤다. 페드로가 일이 있어 싱가폴에 들렀다가 ‘피로 물든 비석’을 찾았다고 했다. 피로 물든 비석은 녹아 없어졌고 말이다.
“……그렇게 된 거야.”
페드로의 호흡이 가빠졌다. 가빠졌고 약해졌다. 벨라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급해했다.
“그때의 시각이?”
“2019년 5월 27일. 새벽 2시 정도.”
원귀가 나타났던 시간은 새벽 3시 30분경이었다. 시차를 감안하면 시간이 얼추 맞는다. 감각안으로 살펴본 페드로는 거의 산송장이었는데, 겉으로는 제법 괜찮은 상태인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획득했죠.”
페드로가 인벤토리에서 ‘피’를 꺼냈다. 피가 반고체 형태로 뭉쳐 있었다. 이름이 ‘원념이 서린 피’였다.
“이 피 웅덩이 안에, 김혁진 씨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쿨럭!”
피를 또 한 웅큼 토했다.
피 안에 떠오르는 김혁진의 얼굴을 본 이후부터 페드로는 시름시름 앓다가 이렇게 피를 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피에서 내 얼굴이 보인다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잠깐 보죠.”
김혁진이 피를 받아 들었다. 순간 김혁진의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삐이이이-!
이명이 들려왔다. 머리도 깨질듯이 아파왔다. 추악하고 끔찍한 살의(殺意)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린 세상. 이곳에 또 다른 ‘붉은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 생겨난 커다란 붉은 눈동자. 그 붉은 눈과 눈을 마주쳤다.
‘컥.’
김혁진의 온몸이 굳었다. 몸에 존재하는 털이란 털은 모두 바짝 서버리는 느낌이었다. 순간이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끔찍한 살의(殺意)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