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25
225
“정말 괜찮아요?”
“웬만하면 좀 더 누워 있지 그래요?”
절혼마녀와 다담선자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다니까.”
마야는 팔을 들어 전신을 활짝 열어 보였다.
그의 알몸은 아름답다. 그의 근육은 장사처럼 크지는 않지만 조화가 잘 맞춰져 있다.
속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가 잘 아물었다.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정말. 다 아물었잖아?”
절혼마녀와 다담선자는 그녀들만 알 수 있는 미소를 띠며 상처를 살폈다.
“이제 그만 해. 대낮이야, 대낮. 주책들하고는.”
한구석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던 천멸도주가 한마디 했다.
그녀들은 알몸의 마야를 치료할 수 있고, 다 나은 상처를 볼 수 있으며, 안을 수도 있는 여자들이었다.
“이제 막 일어났는데…….”
“괜찮아. 말해.”
마야는 자신을 위해 비워놓은 상석(上席)에 앉았다.
모두들 근심스런 표정들이다. 멀쩡한 마야를 보고 놀라는 사람도 있고, 반색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어두운 낯빛으로 염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괜찮으니까 아무 걱정 마. 뭔데?”
마야의 눈길이 다담선자를 향했다.
“소문이 났네요. 콘을 상대한 자가 복마검법을 썼다고.”
“그 자리에 누구누구 있었어?”
“죄다요. 만사무불통지, 구환자, 사천제일룡, 그리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요.”
“제삼무신가 사람은?”
“알 수 있나요. 왔어도 모르죠.”
“그렇겠군. 이거 완전히 놀아난 기분인데? 생포하라고 해놓고 싸움 구경을 한다. 후후후!”
“콘의 무공과 가가의 무공이 궁금했던 거겠죠.”
“이청(二請)은?”
“여전히 콘의 생포예요.”
“콘은 지금 어디 있는데?”
“서군봉이 데리고 북상 중이래요.”
“북상? 북무림으로 가는 건 아니지?”
“불행히도 그런 것 같아요.”
마야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민에 잠겼다.
일이 너무 산만해졌다.
혈귀대주의 복수만 해주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어느덧 무림사에 끼어들고 말았다.
이런 일은 으레 잘하면 본전이요, 잘못하면 패가망신이다.
어떻게 하나. 계속 달려가나, 여기에서 멈추나.
“도주.”
마야는 천멸도주부터 불렀다.
“도주는 이번 일에서 빠져.”
잠시 천멸도주의 눈가에 파랑이 일었다. 하나 곧 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슨 개소리야?”
“낭군한테 하는 소리하고는. 도주, 천멸도를 버릴 거야?”
천멸도주의 눈에 또다시 물결이 출렁거렸다.
한정된 분량이나마 나병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을 얻었다.
천멸도는 이제 낙원이다. 하나 아직 남은 게 있다.
그들은 병을 고쳤어도 여전히 이방인이다.
뚝뚝 떨어져 나간 손가락이나 발가락, 문드러진 코와 입술을 보이면 누구나 ‘문둥이’라고 놀려댄다. 놀리는 정도가 아니라 돌팔매질을 당한다.
그들은 영원히 문둥이다.
천멸도는 일으켜 세워야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천멸도 소식을 듣고 천 리 만 리 걸어올 새로운 환자를 돌봐줘야 한다.
“그래서 종청호가 가 있잖아.”
“만사무불통지에게 약조받은 게 있어. 천멸도 살수들이 남무림에서 암약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매년 곡식 오천 섬과 청령단(靑零丹) 다섯 알을 보내줄 거야. 남도문이 존재하는 날까지.”
엄청난 조건이다.
곡식 오천 섬도 큰 재물이다. 천멸도 식솔이 전부 먹고도 남는다. 하나 더 큰 조건은 청령단에 있다. 청령단 다섯 알이라니. 그것도 매년마다.
주림의 백인수는 청령단 열 알에 팔려갔다. 그리고 이제 겨우 여덟 명만 살아 있다.
백인수 구십여 명의 목숨 값이 청령단 열 알이었는데, 매년 다섯 알씩 보내준다니.
“너, 너…….”
천멸도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천멸도…… 너무 타격이 크잖아. 북검문에 있는 십겁룡은 몇 명이나 살았는지도 모르고. 팔십일전혼이 열넷, 백인수가 겨우 여덟. 그들은 살아 있어야 천멸도의 전설을 이어가지. 빠져. 이 일 끝나면, 찾아갈게.”
천멸도주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마야를 사랑하지만, 그의 여인이 되었지만 천멸도 식솔을 거느려야 하는 그녀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마야의 시선은 금연화에게 향했다.
“제삼무신가로 가.”
“……?”
“궁왕 강창도, 비무를 받아줄 거야. 결전이라도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가서 검 한 번 마음껏 휘둘러 봐.”
“그런 약속도 있었어요?”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능력이 안 되면 물러서고. 어쨌든 제삼무신가에 들린 후,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아.”
“절 떼어놓는 이유가 뭐죠?”
“독한 듯하면서 독하지 못해. 죽기 딱 알맞아.”
“…….”
금연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야의 시선은 또 움직였다. 좌우를 쭉 둘러보다가 눈과 눈이 마주친 사람은 혈유다.
“나? 나는 왜?”
“시침 떼지 마. 사랑을 알았잖아.”
“뭔 소리야! 누군 아내까지 뒀으면서.”
“그래서 난 아내까지 죽이려고 하잖아.”
“관둬, 그런 말이라면. 쳇! 마궁은 뭐고 궁주는 뭐야. 궁주 대접을 해주니까 아예 기고만장해서. 궁주면 마음대로 사람을 버려도 되는 거야?”
“일령, 혈유와 함께 동정호로 가.”
“제가 왜요!”
일령도 펄쩍 뛰었다.
“동정호에 가면 금적금노가 있어. 거긴 우리 같은 마인들이 정도인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야.”
“그, 그것도 약속인가?”
시마가 놀라서 물었다.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경우에도 마인을 치지 않겠다는 불가침영역이야. 단, 마계의 마인만. 거기서 유계의 마인과 마계의 마인을 구분해 줄 사람이 필요해. 혈유, 네가 해.”
“지금은 누가 하고 있는데?”
“금적금노.”
“됐어, 그럼.”
혈유의 말에도 불구하고 마야는 단호했다.
“떠날 사람은 오늘 중으로 떠나. 뭐, 별로 가져갈 것도 없잖아?”
마지막 말은 농담조였다.
엄청난 조건이다.
호채마의 안전을 위해 십여 명의 목숨을 생으로 끊었다. 그것만 해도 만사무불통지와 연수하는 조건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모두들 그런 줄 알았다.
천멸도에 매년 쌀 오천 석과 청령단 다섯 알. 무신이라는 사람이 조건 없는 비무를 약속했고, 강남의 제일 명승지라고 할 수 있는 동정호를 마인들의 휴식처로 내줬다.
이보다 파격적인 대우는 없다.
파격? 절대 아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주는 게 있어야 받는 게 있다.
마야는 뭘 주기로 했나?
만사무불통지의 심부름 몇 개 하는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의 대가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밖에 없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바로 목숨이다.
생각할 것이 또 있다.
마야가 얻어온 것은 콘과 싸우기 전이라는 점이다.
당시 모두들 어떻게 생각했나? 콘을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콘과의 싸움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조건에 들어 있지 않다.
뭔데, 무슨 일인데 마야가 죽음을 각오한 것일까.
마야가 떠난 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지만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떠나겠습니다. 몸조심하시고…… 꼭 들려주십시오.”
주림이 살아남은 일곱 살수와 함께 인사했다.
“꼭 들려야지.”
마야는 그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하! 인사는 쑥스러운데.”
황전륜이 피식 웃었다.
그와 열세 명밖에 남지 않은 팔십일전혼, 그리고 열두 명의 십팔밀막검.
마야는 일일이 손을 잡았다.
한데 뭔가 이상하다. 이들을 인솔하여 떠나야 할 천멸도주가 보이지 않는다.
“도주는?”
“도주요? 도주님은 천멸도에 계시잖아요.”
“……?”
마야가 의아해 할 때 한 여인이 사뿐사뿐 걸어왔다.
그녀는 마야가 준 흑색 가면을 썼다. 전신을 뒤덮고 있던 무명천을 던져 버리고 몸에 착 달라붙는 흑색 경장을 입었다.
참으로 매혹적인 몸매다.
“보기 어때?”
“좋아. 그런데 지금 뭐 하는……?”
“내가 누구 좋으라고 곁을 떠나. 천멸도주, 종청호에게 물려줬어. 앞으로 도주라고 부르지 말고 염추라고 불러줘, 류염추. 오랜만에 그 이름 한 번 들어보자. 지금 불러주지 않을 거야?”
“여, 염추.”
“이름 한 번 부르면서 되게 더듬거리네. 야! 너희! 빨리 안 꺼지고 뭐 해! 내가 갈 때까지 팔십일전혼하고 백인수 고스란히 만들어놔! 종청호에게도 말해! 십팔밀막검 안 만들어놓으면 때려죽인다고!”
“갑니다, 가! 그런데 댁이 누군데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요?”
“너, 주림 이 자식!”
“하하! 간다니까요!”
천멸도 살수들은 가뿐한 걸음걸이로 떠나갔다.
희망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걸음이니 가벼울 수밖에 없으리라.
다른 사람은 떠나지 않았다. 금연화도 남았고, 일령과 혈유도 낄낄거리며 장난치기에 바빴다.
이게 남은 사람들이다. 모두 죽을 사람들이다.
마야는 그들을 불렀다.
“술 한잔할까?”
“만사무불통지는 선사께서 멸신구관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마야는 담담히 생각을 밝혔다.
“생각해 봤는데 네 사람이 걸려들어. 북검문주, 남도문주. 유계의 주공, 그리고 잔접.”
“잔접? 그런 사람도 있었나?”
혈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지간한 무림사는 다 꿰고 있는 그였지만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다른 사람도 혈유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마야의 입만 쳐다봤다.
“잔접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신비집단을 일컫는 말인데, 신비집단이니 거론한 것뿐이고.”
“그런 게 있었군.”
시마가 중얼거렸다.
“내 생각은 둘로 나눠. 하나는 유계의 주공이 만들었다는 거야. 자신이 만들었으니까 자신을 죽이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을 쉽게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콘이 수련한 것도 인성을 상실케 하는 마공이니.”
“그래서 얻는 건요?”
“무림 대혼란. 남과 북으로 고정되어 있는 무림이 뒤집어져야 유계의 마인들이 뛰쳐나올 구멍이 생기지 않겠어?”
“그럴 수 있겠네요. 두 번째는요?”
“북검문주 아니면 남도문주가 만들었다는 거지. 노리는 건 역시 혼란이지만, 유계의 주공과는 달리 상대 땅만 유린하는 게 목적이야.”
“어느 땅요?”
“후후! 그게 이상해졌어. 가만 내버려 두었다면 짐작할 수 있을 텐데, 서군봉이 끼어들어서 백일몽을 뿌리는 바람에 종잡을 수 없게 됐어. 이제는 지켜봐야 돼.”
“뭐를요?”
“누군가 반드시 콘을 서군봉의 손에서 빼낼 거야. 그자가 누구냐를 찾으면 돼.”
한숨밖에 안 나오는 말이다.
그자가 누가 되었든 싸움의 상대는 궁왕보다 더 커졌다. 북검문주 아니면 남도문주, 그것도 아니면 유계의 주공이 될 테니까.
이래서는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다.
“휴우! 만사무불통지는 어떤 입장이래요?”
절혼마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자신의 꿈이 무림재패라고 하더군.”
“어멋! 그런 말을 노골적으로 해요?”
“후후후! 잊었군. 우린 귀신이야. 우리 죽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생각이 맞아도 만사무불통지가 손해 보는 건 없어. 누가 되었든 콘을 만들어낸 사람은 무림공적이 되어 합공을 받을 테니까. 콘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효과도 크겠지. 그런 의미에서 콘은 살아 있어야 돼.”
“마인보다도 더한 놈들이네.”
“유계의 주공이 만들었다고 하면 딱 맞겠네요.”
마도와 다담선자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만사무불통지는 이 모든 걸 선사께서 계획했다고 생각해. 선사께서 나를 찾았고, 나의 특성을 살려서 멸신구관을 열게 하고. 여기까지가 내 임무고, 다음은 콘으로 넘어가. 콘이 무림에 대혼란을 일으키는 거지. 남과 북, 양쪽을 넘나들면서. 콘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니까.”
“유계의 주공과 같은 생각이네요?”
“그를 끌어내는 게 선사의 생각이라는 거야.”
“유계의 주공을!”
“무림은 혈란(血亂)을 맞이할 게고, 정도인들은 남과 북을 떠나 손을 잡게 돼. 오랜 원수관계를 청산하는 거지. 당연히 이 계획은 선사 혼자 짤 수는 없고, 북검문주나 남도문주가 개입했을 것이다. 아니면 둘 다 개입했을 수도 있고.”
‘만사무불통지다운 생각이네요.”
“후후후! 그러자면 내 존재가 사려져야 해. 콘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도록.”
“…….”
갑자기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마야가 이어갈 다음 말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내 죽음은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북검문주는 몰라. 남도문주만 알지. 내가 콘을 죽이려고 했으니까…… 남도문주가 개입했다면 날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낼 거야. 콘을 살려두기 위해.”
“사람을 보내지 않으면 북검문주고요?”
“그런 셈이지.”
“콘의 무공이 놀랍기는 했지만…… 결국 가가께 밀렸잖아요. 그 정도라면…….”
“콘의 무공은 계속 발전할 거야. 아직 절반도 깨우치지 못했을걸? 시간이 지날수록 죽이기 힘들어져.”
마야의 말은 차라리 저주였다.
콘의 무공이 절반 정도밖에 깨우치지 못한 것이라니.
이제야 모든 추측이 납득된다. 솔직히 한 사람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해진다고 그런 거창한 계획을 세웠겠느냐 했는데. 더군다나 이성까지 마비된 살성이라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진다.
“우린 콘을 따라갈 거야. 상당히 심하게 공격하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중원에서 제일 강한 세 사람에게 죽일 테면 죽여보라고 덤비는 격이니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