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26
226
마야 10
명창암전(明槍暗箭) ― 드러난 적과 은폐된 적
제1장 거상풍(居上風) ― 우위를 차지하다
1
‘실전 경험…… 너무 부족했어.’
다담선자의 우려가 옳았다. 조금 더 신중하게 실전 경험을 쌓았어야 한다.
마도나 수검이 불의의 기습을 가해왔을 때, 웃어넘길 게 아니었다. 상대하기에 가장 쉬운 능력을 쓸 게 아니라 여타의 능력을 모두 배제시키고 본신 무공으로만 싸웠어야 한다.
몸과 몸이 부딪치며 싸우는 경험은 확실히 너무 부족하다.
실전에서는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수가 튀어나온다. 멀쩡하던 두 팔이 마비되는 수도 있다. 또 싸움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는 항시 치명적이라 더욱 위험하다.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건 본신 무공이 아니다. 육신에 배어 있는 실전 경험, 본능이다.
무공만 강한 자보다 다소 무공이 약하더라도 풍부한 경험을 지닌 자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
무공이 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무공을 쓰지 못할 때도 마음껏 무림을 활보했다. 경험도 적지 않게 쌓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다양한 경험으로 따지자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인생행로가 다난하다.
옛날에는 부족함을 몰랐는데, 무공도 사용하게 된 지금은 실전 경험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낀다.
콘과의 싸움은 이겼다고 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졌다.
이유야 어쨌든 그는 자신을 알고 단도를 들었는데, 자신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정보에서 뒤처졌으니 처음부터 지고 시작한 싸움이다.
싸움 내내 그에게 압도당했다.
적멸주가 통하지 않고, 마령음도 통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통하던 비기가 통하지 않았을 때 난생처음으로 당황했다. 사실이다. 정말 당황했다.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판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이길 수 있을까?
콘과는 반드시 다시 만난다. 그것도 조만간 만난다. 그의 뒤를 쫓고자 하니 하루, 이틀 사이에 만날 것이다.
만나면 싸워야 하고, 싸우면 승패를 갈라야 한다.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은 필요없다. 그와 만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와 싸우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선택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다.
다행히 지금은 선택할 기회가 있다.
자신의 의지, 행동 여하에 따라서 삶을 선택할 여지가 있다.
미적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시간은 죽음 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내려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죽음은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미 늦어서 뼈를 깎아내며 분투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게 된다.
‘촌음(寸陰)까지 아껴서 싸운다. 걸을 때도, 밥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싸운다.’
소립파는 해결 방법을 안다. 하기 싫지만 효과는 뛰어난 수련 방법이 있다.
마군을 사부로 모신 이래 딱 한 번 사부를 증오한 적이 있다. 칠백광(七魄狂)이라 불리는 수련을 강요받았을 때다.
하루 열두 시진 동안 긴장을 풀지 않는다.
마음은 늘 싸움 한가운데 있다.
웃을 수도 있고, 술을 마실 수도 있지만 언제 어느 때나 항상 싸움 중이다. 웃을 때는 웃음과, 술을 마실 때는 술이나 음식과 싸운다. 혹은 식탁과 싸울 수도 있다.
세상 만물이 적이다.
수련 기간은 칠 일이 한계다. 칠 일을 넘기면 미치고 만다.
설렁설렁하면 일 년도 우습지만 전심전력을 쏟으면 사흘을 버티기 힘들다.
소립파가 그랬다. 나흘째 되는 날부터 감각이 육신을 떠났다.
사물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밥을 먹어도 아무런 맛이 전해지지 않았다. 이빨이 쌀을 씹을 때, 야채를 씹을 때마다 짓이기고 내리찧고, 쳐올리고, 굴리는 온갖 초식을 사용하다 보면 맛을 느낄 틈이 없었다.
살아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 저승에 있는 느낌이었다.
세면을 하기 위해 물을 만질 때도 싸움은 지속된다.
물살을 가르기 초식은 많다. 검을 사용할 수도 있고, 도를 사용해도 좋다. 물을 낚아채기 위해서는 금나수(擒拿手)를 사용한다.
물이 얼굴에 닿을 때는 어떤 싸움을 할까?
물의 입장이라면 암기술(暗器術)이 될 수 있지만, 얼굴 입장에서는 변환공(變幻功)이 적절하다.
하루는 물의 입장에서 싸우고, 하루는 얼굴 입장에서 싸우며, 또 하루는 손의 입장에서, 또 공기의 입장에서…….
싸움 방법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닷새를 넘기고 엿새째 들어섰을 때, 마군은 혼혈(昏穴)을 짚어왔다.
혼혈을 짚이지 않으려고 참 처절하게 싸운 것 같다. 사부에게는 별것 아니었겠지만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다른 때 같으면 편안하게 받아들였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세상 만물이 적이니 사부도 적이다. 사부의 손길은 호의가 담겼든 적의가 담겼든 무조건 싸워야 할 상대에 불과하다.
당시에는 칠백광을 수련해 내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련해 낼 자신이 없다. 자칫, 전처럼 수련에 너무 깊이 빠지면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적으로 오인하고 살수를 전개할지 모른다.
하지 말까? 마지막에는 콘을 거의 궁지로 몰아넣었지 않나.
음양이기를 한꺼번에 쏟아내면 진공상태가 급속히 메워진다는 사실도 알았고.
영매술을 좀 더 연구하여 심공으로 발전시키고, 심공을 뒷받침해 줄 무공을 창안하고……
콘을 상대하는 데 반드시 처절한 수련을 할 필요는 없다. 안전하고 편안한 방법도 많다.
소립파는 고개를 흔들었다.
콘은 야수다. 그의 눈은 맹수의 눈빛이었다.
콘에게 왜 싸우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배고파서, 살기 위해 먹이를 잡는 맹수처럼 살기 위해 싸운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콘에게 자신은 살기 위해서 반드시 죽여야 할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지금의 상태로는 마야와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다른 무공을 생각해 냈을 것이며, 수련하고 있으리라.
콘을 다시 만나면 전혀 다른 싸움이 된다.
‘아무래도 경험을 늘려야겠어.’
소립파는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칠백광, 자신과의 싸움, 타인과의 싸움, 세상 만물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타탁! 타타탁!
진기가 경락을 후려친다.
‘자…… 잘못됐어!’
콘의 명문혈에 장심을 얹고 진기를 불어넣는 순간, 의도했던 바와는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진기가 끊겼다. 엄밀히 말하면 콘의 몸에서 일어난 미지의 힘이 그녀의 진기를 흡수해 버렸다. 그리고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폭발적인 힘으로 경락을 두들긴다.
투욱! 툭!
경락이 풀려간다.
콘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명문혈에 대어 있는 장심을 통해 여실히 느껴진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냥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바람이 스며들지 않는 골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렇게 경락을 훑고 지나가야 한다.
서군봉은 급히 손을 뗐다.
하나 이미 늦었다.
투툭! 투투툭!
콘은 마치 제압된 혈도를 풀어내듯 전신 경락을 타통시켜 갔다.
‘왜 이런 일이!’
원인도 모르고, 진행 과정도 모르지만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콘이 깨어나면 수와 산주를 깨우는 건 시간문제다. 아무 짓을 안 해도 시간만 지나가면 깨어난다.
수가 깨어나는 건 상관없다. 하나 산주가 깨어나면 곤란해진다. 그는 목뒤가 따끔했던 순간을 기억해 낼 것이고, 누가 그랬는지는 바보라도 안다.
콘과 산주는 절대 깨어나서는 안 된다.
“이것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어.”
서군봉은 품속에서 침통을 꺼냈다.
‘단정침(斷情針)…….’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물건 중에 하나다.
사악한 사람들이 대거 모여 있는 곳이라면 유계다. 유계의 마인들이라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친다. 하나 그토록 사악한 마인들도 단정침이라는 조그만 침 앞에서는 마른침만 꿀꺽 삼킨다.
단정침은 세침(細針)이다. 침 중에서 가장 작다는 우모침(牛毛針)보다도 더욱 가늘고 작다. 끝 부분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활짝 펼치면 손가락을 펼친 것 같다고 해서 오지침(五指針)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
단정침을 꽂아보자.
침은 혈도 속으로 파고들어 기류(氣流)를 만나게 되고, 기류에 휩쓸리면서 오지를 활짝 펼친다. 그리고 곧바로 혈도 깊이 틀어박힌다.
영원한 고통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단정침은 진기가 흐를 때마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건드린 것처럼 극렬한 통증을 안긴다.
살에 박힌 가시는 건드리지 않으면 아프지 않다.
단정침도 마찬가지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통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무인에게는 죽으라는 소리다.
진기를 일으키면 극통, 일으키지 않으면 무기력한 인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제삼의 방법이 있다.
진기를 일으켜 정상적으로 무공을 사용할 수 있지만 통증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
일시적으로 단정침이 꽂힌 부위를 마비시키면 된다.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실제로 간단하다. 하지만 의원에게 혈도를 부분적으로 마비시키는 약을 달라고 하면 미친놈 쳐다보듯 할 게다. 세상에 그런 약도 있냐고, 그런 약이 있으면 자기도 좀 달라고 할 것이다.
약이 있다고 말하는 의원도 있을 수 있다.
남도문 제일 의원인 만약은사(萬藥隱士)나 중원 제일 신의(神醫)라는 일수성의(一手聖醫)라면 약의 존재를 말해줄지도 모른다.
약이 있다. 있는 건 사실이다. 사천당문에, 지저 사백 장 깊이에 묻혀 있다. 그래, 맞다. 천금동(天禁洞)에 묻혀 있다. 세상에 나타나서는 안 될 저주의 마물들만 가둬놓은 그곳, 천금동에 있다. 그러니 차라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단정침은 침 자체만으로는 고문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 혈도를 부분적으로 마비시켜 주는 약과 함께한다면 사람을 조종하는 마물이 된다.
서군봉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정침을 콘의 백회혈(百會穴)에 쑤셔 넣었다.
“끄으으윽!”
콘은 혼절한 와중에도 신음을 토해냈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시커멓게 죽어서 흙빛으로 변했다. 손과 발은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퍼덕거린다.
서군봉은 콘의 얼굴을 옆으로 돌려주었다. 그러자 입 안에 잔뜩 고였던 침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대로 놔뒀다면 자신이 쏟아낸 침에 기도가 막혀 죽었으리라.
두 번째 침과 세 번째 침은 팔꿈치 부근, 완후(腕後) 오 촌(五寸)에 있는 온류혈(溫溜穴)을 찔렀다.
온류혈은 기혈이 모이는 곳이다.
다기다혈(多氣多血)의 특성을 지닌 곳으로 양기(陽氣)가 온열(溫熱)하다.
온류혈에 침을 꽂아놓으면 기혈이 응체(凝滯)되어서 심한 두통을 일으킨다.
전신을 폐맥(廢脈)시키는 단정폐맥술(斷情廢脈術)에서 빠질 수 없는 요처다.
“끄으으으!”
콘의 신음은 점점 높아져 갔다.
정신을 잃지 않은 사람이 고문을 당할 때 내지르는 비명과 비교할 수 있는 정도다.
“그러게 왜 이상한 짓거리를 해. 나도 이걸 써먹고 싶지는 않았어. 백일몽으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나도 아까워. 혹시 마야를 잡으면 써먹을까 생각한 건데 여기서 쓸 줄이야.”
“끄윽! 끄으윽!”
“비명도 이제 그만. 충실한 종은 말이 필요없지. 눈빛만으로도 주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할 수 있어. 할 수 없어도 해야 돼.”
네 번째 침은 턱밑, 목울대와 혀뿌리 사이에 있는 염천혈(廉泉穴)에 박혔다.
염천혈에는 타액선이 있어서 진액이 나온다. 진액이 맑은 샘[泉]처럼 솟아서 염천혈이라고 부른다.
설강불어(舌强不語), 앞으로 말하기가 곤란할 게다.
서군봉은 서둘지 않았다.
단정폐맥술이 시전되면 천하장사라도 꼼짝 못한다. 반항이라도 할 양이면 첫 침이 백회혈을 뚫기 전에 무엇인가 했어야 한다. 일단 첫 침이 틀어박히면 단정침의 극통은 평생을 두고 지속된다.
침통 속에 있는 침이 서른일곱 개나 들어 있다.
그녀는 천천히, 즐기는 마음으로 침을 꽂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두 개만 꽂아도 순한 양이 된다. 하나 콘 같은 자는 서른일곱 개를 다 꽂아야 한다. 그래야 진기를 휘돌릴 때마다 벼락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배신의 ‘배’ 자도 떠올리지 못할 만큼 완전한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한 시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침통 속의 침도 바닥을 드러냈다.
이로써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준비는 끝났다.
콘이 미혼산의 약기운을 밀어내고 정신 차려도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백일몽이 효력을 발휘하는 십칠 일 후에는 정신까지 육신을 떠나게 되니 그야말로 아주 든든한 애완동물이 된다.
“얌전히 있는 거야. 순한 양처럼.”
그녀는 콘의 비밀을 알기 위해 두 번째로 명문혈에 손을 댔다.
스으으으……!
진기가 미풍보다도 더 가볍게 흐른다. 시냇물에 떨어져 물길따라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부드럽다.
그럼에도 진기가 단정침을 건드릴 때마다 콘의 몸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일주천(一週天)이 끝났다.
명문혈에서 시작해 전신을 한 바퀴 휘돈 다음, 다시 명문혈로 돌아왔다.
“이……!”
서군봉은 아미를 찡그렸다.
할 말이 없다. 놀람도 없고 흥밋거리도 없다.
이게 뭔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