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323
323
육능자는 구석진 곳에 숨어서 사태를 지켜봤다.
혈일뢰가 반역을 일으킨 것인가? 아니다. 혈일뢰는 북검문주를 배반하지 못한다. 북검문주에게 대항할 생각도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네 사람을 싸잡아 무신이라고 하지만 육능자만은 한 명의 무신에 세 명의 수하라고 생각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혈일뢰는 북검문주의 명을 받들고 있으리라.
‘일단은 자리를 피해야겠군.’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했다.
어떤 조직이든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바꾸는 경우는 없다. 헌데 북검문은 한다. 그럼 남은 사람은 어떻게 처리할까? 그냥 내치는 것은 위험하다. 불만을 품고 내쳐진 아군은 적보다 무섭다.
십중팔구 화(禍)를 당한다.
더군다나 새로운 자들은 예전 북검문도보다 한층 강해 보인다. 천비대주 강했다. 천랑대주는 호한이었다. 천검대주는 아직 살아있지만 그의 검공 또한 매섭다.
능히 한 문파를 이끌 정도는 된다.
헌데 이들은 더 강해 보인다. 대주라고 불린 자들은 그렇다 치고, 그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자들까지 굳세 보인다.
도대체 이런 자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나. 어떻게 이런 자들이 무림에 알려지지 않았나.
방법은 딱 하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길러진 정예 무인들이다.
그럼 누가 이들을 지도했을까?
북검문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이들이 살아남은 칠성군과 천검대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결정된다. 그 전까지는 절대 나서서는 안 된다. 그건 매우 위험하다.
육능자는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북검문을 나서는 것조차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몰래 숨어나가야 하는 팔자가 되었다.
저녁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번질 무렵, 칠신녀의 모습이 비쳤다.
반갑다. 북검문에 몸 담은 사람치고 칠신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녀는 권력에 초연했다. 후계자 다툼에도 한 발 물러서 지켜만 봤다. 재질이 뛰어나 칠성군에는 끼였지만 뒷받침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묵묵히 지켜만 봤다.
무척 순진한 여인이다.
아니다. 반가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달려 나가 북검문에서 벌어진 일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우선은 몸을 숨겨야 한다고 말해줘야 한다.
육능자는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다시 숨었다.
이미 늦었다. 새로 온 자들이 그녀를 발견했고, 마중 나갔다.
칠신녀가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새로 나타난 자들은 칠신녀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까?
헌데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오셨습니까?”
사내들이 칠신녀에게 공손히 읍했다.
칠신녀의 대답도 이상했다.
“여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죠?”
“차차 적응해 나가면 여기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서둘지 마세요.”
“그러고 있습니다.”
칠신녀가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러다 무슨 문득 할 말이 생각나 뒤를 돌아봤다.
“백검(白臉). 같이 있어서 좋아요.”
칠신녀가 활짝 웃었다.
그토록 밝은 웃음은 처음이었다.
‘백검……’
육능자는 칠신녀가 한 말을 곱씹었다.
백검이란 말은 ‘젊은이’란 뜻도 있고, ‘무표정한 얼굴’이란 뜻도 지녔다. 아니면 사내의 이름이 백검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칠신녀와 사내가 서로 알고 있던 사이인 것만은 틀림없다.
‘도깨비에 홀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더더욱 움직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예민한 이목에 걸려들 것만 같았다.
스스슷!
육능자는 밤 고양이가 되어 담장을 탔다.
자신의 집을 몰래 기어들고 대문도 아닌 곳으로 기어나갈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그는 담장을 넘어 길 가로 내려섰다.
이젠 안심해도 좋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살겁을 저지를 사람은 없다.
“휴우!”
육능자는 참고 참았던 한숨을 토해냈다. 그때,
쉬익!
어느 새 다가왔는가!
검 한 자루가 그의 목에 대어졌다.
꼼짝도 할 수 없다. 검에서 흘러나오는 살기가 범상치 않다. 살인을 즐기는 마인도 이정도로 강한 살기를 흘리지 못할 터이다.
“밤이 되면 움직일 줄 알았죠.”
‘칠신녀!’
육능자는 검의 임자를 알아냈다.
“내 곁에 한 사람쯤 머리 좋은 사람이 있어도 괜찮은데, 어때요? 날 위해 일해 줄래요?”
칠신녀가 한 말 맞나? 칠신녀가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나?
“칠신녀, 우선 검부터 치우고……”
“아뇨. 이해해 주세요. 제 뜻과 다르면 죽이려고요. 병법에서 소제(掃除)가 뭔지 알죠?”
‘역시!’
육능자는 등골이 서늘했다.
병법에서 소제란 가장 잔인한 청소를 일컫는다. 주변의 모든 것을 깨끗이 태워버린다. 티끌만한 인연도 모두 끊어버린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다.
북검문주는 오래전부터 소제를 생각해왔다.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천비대도 뛰어났고, 천랑대나 천검대도 제 몫을 다했다. 칠성군의 아귀다툼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지만 크게 정도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어느 문파나 대문파의 후계자 다툼은 으레 그런 것이지 않나.
모두가 제 몫을 다하고 있었는데 모두 갈아치워 버린다는 생각을 왜 했을까?
“소저의 뜻을 따르겠소.”
육능자는 순순히 응했다.
칠신녀는 착한 여인이다. 한 번쯤 도와주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소제가 일어났는지 알아야 했다. 또한 가급적이면 밖에 있는 칠성군과 천검대를 살리고 싶기도 했다.
칠신녀가 검을 치우지 않고 말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마야와 칠성군의 싸움이에요. 그들을 싸우게 해서 한쪽을 끝내려고 해요. 소제가 시작되었으니 칠성군의 운명은 어차피 끝난 거고요.”
“소저!”
사람이 달라졌다.
“하실 수 있어요?”
“무엇 때문에 소제를……”
“바꿀 때가 되었으니까요. 사람은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엉뚱한 생각을 해요. 싸울 생각은 않고. 새롭게 개편된 북검문은 남도문을 무너트리는데 온 정신을 다할 거예요.”
“그것뿐이오?”
“그것뿐이에요.”
“소저 뜻대로 하겠소.”
대답은 했다. 그러나 역시 이해가 안 된다.
육능자는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하겠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칠신녀는 마야와 칠성군의 싸움을 독촉했다.
칠성군은 마야와 싸울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자신들이 병기를 들어 직접 싸우기보다는 군웅들을 선동하여 어부지리를 취하는 쪽으로 돌아선 듯했다.
육능자에게 맡겨진 첫 임무는 사흘 안으로 마야와 칠성군을 싸우게 만드는 비책을 뽑아내라는 것이다.
그런 건 간단하다. 생각할 거리도 아니다.
군웅들 중 몇 명에게 칠성군을 영웅처럼 떠받들라고 지시하면 끝난다. 영웅은 계속 부풀려지기 마련, 소문이 몇 순배 도는 사이에 칠성군은 하늘도 따올 수 있는 영웅이 되리라.
그러면 싫어도 싸울 수밖에 없다.
지금은 군웅들이 천검대, 천랑대의 죽음에, 그리고 흑균 살포에 분노하여 전후좌우를 살피지 못할 뿐이다. 그들 곁에 영웅이 있다는 사실만 살짝 건드려주면 일은 끝난다.
정작 고민거리는 그게 아니다.
역시 소제다. 무엇 때문에 소제를 시작했을까? 소제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육능자는 무림에서 일어난 사건을 하나씩 되짚어나갔다.
날이 밝아온다.
육능자의 머릿속에는 혈귀대주의 죽음으로 가득 찼다.
단문협 싸움, 승승장구하던 혈귀대의 몰살 그리고 마야의 등장.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의 이 모든 변화가 단문협 싸움에서 비롯되었다.
혈귀대주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단문협에 그토록 많은 문파가 모여들 줄은 몰랐다. 무신인 궁왕까지 화살을 쏘아대는데 어찌 살기를 바라랴.
여기에 실마리가 있다.
누군가가 단문협 싸움을 고의로 엮었다.
굉장히 뛰어난 자다. 만사무불통지 정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계획이다. 마야라는 자를 찾아내고, 그를 조금씩 키워나가고, 그러면서 마야를 치지 못하게끔 북검문주와 남도문주의 손발은 묶어놔야 하고……
수십, 수백 가지의 변수를 모두 고려한 끝에 결정된 계획이다.
치밀해도 너무 치밀하다. 마야의 등장부터 남북 무림이 뒤흔들린 유계 싸움까지 모든 것이 하나로 쭉 연결되어 있다.
멸신구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마야, 멸신구관에 숨겨진 무공, 콘의 등장, 콘과 마야의 동행…… 무림의 대 격동.
어느 누가 이런 머리를 지녔을까?
‘마군!’
만사무불통지도 마군만은 두려워했다고 한다. 북검문주와 남도문주도 마군과는 승부를 논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군이야 말로 문무쌍전(文武雙全)의 천하제일인이다.
마군이다! 마군이 아니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제부터 모든 생각을 함에 있어 마군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소제…… 소제는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다.
현재 북검문을 틀어쥔 무인들은 언젠가 나타날 마군을 상대할 자들이었다.
마군이 먼저 선수를 쳐서 천비대를 없애고, 천랑대까지 지웠다.
북검문이 유명무실해지니 마군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시켜 놨던 무인들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게다.
그럼 왜 칠신녀는 칠성군과 마야의 싸움을 독촉할까?
이것 또한 간단하다.
현 무림에서 그나마 마야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칠성군뿐이다.
문주는 칠성군을 희생시켜서라도 무림을 대혼란으로 몰아넣은 마야를 제거하고자 한다. 단지 그동안 제자로 거둬들인 칠성군을 이렇게 죽여야 한다는 게 마음 아파서 소제란 방법을 취했을 수도 있다.
‘문주께서 원하시면……’
싸움을 시킨다.
칠성군뿐만이 아니라 삼원로까지 가세시킨다. 그러면 완벽한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제10장 랑사강(浪死崗) ― 객사한 자의 무덤
1
배를 강가에 댈 수 없다. 강가 쪽으로 몰기만 해도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진다.
언제까지 강심에 떠있을 수도 없다. 무엇보다 먹고 마실 것이 없다.
호채마가 탄 배는 강을 건너기 위한 것이었지 생활을 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
“일 대 일 승부를 걸어보면 어떨까?”
수검이 강변을 노려보며 말했다.
“안 될 거예요. 전 같으면 응할지도 모르겠는데 지금은…… 우린 흑균을 퍼트렸잖아요.”
배를 몰고 올 때, 멀리서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그리고 인육을 태우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죽은 천랑대와 천검대 무인을 강변에서 바로 태워버린 것이다.
흑균이란 그렇다. 반각을 놔두면 반각만큼 사람이 죽고, 한 시진을 놔두면 한 시진 만큼 죽는다. 시신을 방치해놓은 시간만큼 많은 사람이 죽는다.
흑균은 지독한 전염병이다.
한 사람이 열 사람에 전달시키는 건 대화 몇 마디 나누는 동안이면 충분하다.
약도 없으니 말을 나눈 사람은 모두 죽어야만 한다.
제 아무리 지독한 마인일지라도 세상 사람들을 모두 죽일 마음이 아니고서야 흑균을 퍼트릴 생각을 어찌 하랴.
정도 무인들은 마야를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일 대 일의 승부? 어림도 없다. 정도 무인들은 개 잡듯이 때려잡을 생각만 한다.
왕벌을 부르면 길을 뚫을 수 있다. 허나 그렇게 되면 흑균을 뿌렸다는 오명을 벗을 길이 없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자력으로 벗어나야 한다.
흑균을 뿌리지 않아도 천랑대, 천검대를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오늘부터 사흘밤낮 정도는 싸워야 돼. 괜찮겠어?”
마야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흘밤낮까지 필요할까? 저놈들 정도는 두어 시진이면……”
마도가 자신 있게 말했다.
“절혼, 피를 묻히지 마.”
“그럴게요.”
절혼마녀가 순순히 대답했다.
“사망혈인, 절혼을 지켜.”
“그럼 너무 심심한데. 걱정 말고 맡겨둬요.”
“호호! 절 따라잡을 수나 있어요?”
“이거 한 방이면 백장이오. 귀적무가 아무리 신출귀몰해도 이거 한 방보다는 느리지.”
사망혈인이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사천제일룡, 부탁 하나 하자.”
“부탁? 후후!”
“싸움에 가담하지 마. 뒤에 남아서 절혼을 지켜줘. 이 싸움은 독이나 화약을 써서는 안 돼.”
마야의 눈빛이 뜨겁게 타올랐다.
사천제일룡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고 물러섰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렇게 정색하지 마. 그냥 지켜보지. 네가 죽는 모습을. 후후후! 그것도 재미있겠어.”
마야의 눈이 시마를 향했다.
“킬킬!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나도 지켜보지. 저놈이 수작부리면 내가 본때를 보여주고.”
시마가 사천제일룡을 쳐다보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 사람은 사천당문의 독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천하제일독공이라는 흑혈마공을 수련한 사람이다.
두 사람 중 누가 진정한 독인인가?
이런 의문은 싸워봐야 풀린다.
그런 연유로 두 사람은 호시탐탐 싸울 기회만 찾는다. 서로가 한 번쯤 겨뤄보고 싶은 상대인 것이다.
마야는 언장은마까지 열외 시켰다. 콘과 수도 뺐다. 한 사람은 싸움에 적합하지 않고, 다른 두 사람은 너무 강해 전율을 일으킨다.
정도 무인들과의 싸움은 똑같은 인간이 인간과 싸웠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마인의 모습이 엿보인다면 마야의 의도는 무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