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11
11.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연금슬라임 님께서 E 등급이 되셨구나.”
이민규는 그럴 줄 알았다고 흡족하게 웃었다.
첫 달 E 등급 연금술사 달성.
이는 하나의 업적이다.
이를 이루느냐 이루지 못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매출 200만 원 따위 본인이 직접 사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게 뭐가 대단하냐고 한다.
그건 뭘 모르는 이야기다.
그 어떠한 편법을 사용한다고 한들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안전성 검사다.
기본적으로 30%를 폐기장으로 보내 버리고.
불량품 개수에 따라 100%까지도 폐기장으로 보내 버리는 그 가혹한 안전성 검사다.
어떤 편법을 사용해도 수십에서 수백 개의 제품이 안전성 검사를 통과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첫 달에 E 등급 연금술사가 됐다는 말은 최소한 안정적으로 안전한 제품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을 사람들은 프로 연금술사라고 부른다.
프로가 만든 제품과 아마추어가 만든 제품.
사람들이 느끼는 신뢰감이 천지 차이인 게 당연하다.
매출에 차이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품절
이민규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준비는 충분히 하셨는지 모르겠네.”
현재 의 평점은 4.9/5.0(120).
재고가 너무 부족해 사기 어렵다는 이유로 깎였다.
그래도 말도 안 되게 높은 평점이다.
연금상점은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 혹은 ‘탈이 났다.’라는 이유로 평점이 깎이는 게 일상인 쇼핑몰이니까.
거의 언제나 붙어 있는 품절 표시.
드물게 기합이 들어간 상품 페이지.
4.9라는 높은 평점과 호평 일색인 리뷰.
효과 대비 터무니없이 싼 가격.
연금약보다 거부감이 덜한 연금 도구라는 품목.
2주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만에 달성한 E 등급.
수요가 폭발할 모든 요건이 갖춰졌다.
“윗선에서 연금상점 이용률을 높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민규 같은 말단은 담당했던 제품이 크게 성공한들 인생은 안 변한다.
하지만 윗선은 다르다.
성과에 따라 도달할 수 있는 위치가 달라진다.
“공급이 자꾸 지연되면 제조법을 공유하거나 제자를 받으라고 압박할 텐데.”
연금술사가 갑인 만큼 너무 강하게는 압박할 수 없다.
하지만 자꾸 오는 연락에 스트레스를 받고 잠적해버리는 연금술사도 종종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이유로 연금술사들은 무너진다.
댓글에 적힌 개선점을 제품에 적용하려다가 이도 저도 아닌 물건을 만들게 되는 연금술사.
생산력을 늘리려다가 품질이 나빠져 안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되면, 더 급해져 더욱 품질이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연금술사.
무작정 가격을 올렸다가 외면당하는 연금술사.
초짜는 아니게 됐으나 여전히 미숙한 연금술사가 빠지는 함정은 얼마든지 있다.
“괜찮으실까?”
***
“이예이~! E 등급 달성!”
F가 붙어있으면 낙제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잖아.
그런데 E는 다르다.
낙제는 아니잖아!
게다가 연금상점에서도 상품이 노출되는 장소가 다르다.
F 등급 카테고리와 E 등급 카테고리.
클릭 수가 다른 게 당연.
평균 판매량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E 등급부터는 안전성 검사 비율이 30%에서 20%로 줄어든다.
수수료도 50%!
이것만으로 28% 받던 돈이 40%로 부쩍 늘어난다!
하루에 500쌍을 팔면 안전성 검사로 20% 폐기니까 400쌍 판매.
나는 아직 첫 달이니까 수수료 면제.
하루에 80만 원.
“한 달에 2,400만 원?”
다음 달 중순부터는 수수료로 50%가 날아가서 1,200만 원이겠지만, 그래도 1년 수입이 1억을 가뿐하게 넘는다.
그리고 연금상점에서 장사하는 연금술사에게는 매우 특별한 혜택이 있으니.
연금상점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종합소득세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다!
면세!
통장에 들어온 돈이 빠져나가지 않아!
사실 수수료를 생각하면 조삼모사이기는 한데 세금 안 내도 된다고 하면 왠지 기분이 좋잖아?
그리고 종합소득세는 수입이 많을수록 내는 세금 비율도 늘어나는데.
수수료는 매출이 늘어날수록 연금술사 등급이 올라 도리어 줄어든다!
미끼다 미끼.
유능한 연금술사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미끼.
하지만 미끼고 뭐고 맛만 좋으면 되지!
E 등급 연금술사 최고!
“············하.”
텐션 올리기 힘드네.
E 등급 연금술사 달성.
본래라면 기뻐했을 일.
지금은 심란하다.
첫 달에 매출 200만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W튜브에 매진해야 하나.
W튜브로는 큰돈 벌기 힘든데.
이러한 생각을 했다.
사실 W튜브에서 조회수만으로 큰돈을 벌기는 어렵다.
협찬과 광고를 받아야지.
그런데 협찬을 받으려면 내 주소를 상대에게 알려줘야 한다.
광고를 받으려면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내 연락처 자체를 숨겼다.
그렇게 숨겨둔 주소를 연금상점 때문에 까발려질 수 있다니.
이거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판매를 중단해야 하나?
하지만 이것도 마땅치 않은 이유가 있었으니.
‘특별 관리 제품’이라는 게 있다.
내가 보낸 물건이 순식간에 검사를 통과하는 것을 보니 이걸로 지정된 게 분명하다.
이게 왜 문제냐?
권리에는 의무가 따라오는 법.
이렇게 관리되는 제품에는 ‘연금기술유출방지법’이 강하게 적용된다.
하도 연금 인력과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가니 신설된 법인데 이는 나를 보호해주는 동시에 나를 베는 양날의 검이다.
내가 개발한 제품이라고 해도 제조법을 해외에 유출하려고 하면 산업 스파이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생산량을 갑자기 줄이는 등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 ‘이 자식 해외로 튀려는 거 아닌가?’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채찍과 당근’은 인간을 다룰 때 사용되는 전통적인 방법.
나를 실제로 처벌할 생각이 없더라도 내게 압박을 주려고 소환할 수 있다.
소환을 거부하고 안 가?
영장 들고 찾아올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일을 당하면 끝장이다.
“진짜 어떻게 하면 좋냐.”
잘 팔리는 건 좋은데 너무 잘 팔렸잖아.
마키나에게 조언을 받을까 해서 스마트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이렇게 된 게 마키나 탓이라고 하는 것 같으니까.
내게 연금상점에서 물건을 팔라고 추천해준 마키나에게 악의는 없었을 거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대규모 제작소가 있다.
제작소에서 가까운 곳에 임대 아파트도 있고.
두 군데 모두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거기에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나는 못 들어가잖아.”
여장하고 여학교에 잠입하는 수준으로 빡세다.
위장이 벗겨지면 인생이 작살난다는 점에서도 똑같고.
어쩌면 내가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달에 1,200만 원.
큰돈이지.
큰돈이기는 한데 정부에서 예의주시하는 연금술사에게 손을 댈 정도의 금액인가?
그리고 물류를 이용하여 역추적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정부가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할까.
차분하게 생각하면 지금 당장 어떠한 문제가 터질 가능성은 작다.
아직 시간은 있다.
하지만 내가 현재 내 몸을 떠미는 흐름에는 악어가 산다.
빨리 뗏목이라도 만들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내게 뗏목은 [변신], [위장], [의태]와 같은 스킬들.
“모바일 게임도 아니고 탈 것을 랜덤 뽑기로 뽑아야 하냐.”
미친 듯이 레벨을 올려서 15를 찍으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나오지 않는다면 20까지 올리고.
그래도 나오지 않는다면 25까지 올리는 수밖에.
그리고 그렇게 레벨을 올리는 방법?
돈을 쏟아부으면 된다.
그리고 그 돈이라면 지금 미친 듯이 팔리는 이 준다.
“병 주고 약 주고냐.”
판매가 현재 기세로 이어지면 첫 달이 지나기 전에 2,000만 원을 쌓일 거다.
한 달 동안 식비로 2,000만 원을 쏟아부어 레벨을 올리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어?
만약 현재 추세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더 좋다.
폼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나를 노리는 사람이 없어질 테니까.
바로 쇼핑몰로 들어갔다.
비닐 롤을 검색했다.
영상을 찍으려고 [흡수] [분해] [분석] 스킬 레벨을 올리는 건 음식으로 한정 지었다. 하지만 순전히 레벨을 올리려고 먹는다면 내가 못 먹는 건 없다.
***
[PE를 일정량 이상 섭취했습니다. 습득하는 경험치가 줄어듭니다.] [PP를 일정량 이상 섭취했습니다. 습득하는 경험치가 줄어듭니다.] [PVC를 일정량 이상 섭취했습니다. 습득하는 경험치가 줄어듭니다.]“쳇. 그렇게 쉽게 갈 수는 없나.”
비닐봉지를 먹나 플라스틱 장난감을 먹나 둘 다 PE로 만들었다면 같은 것으로 취급됐다.
플라스틱이 무게 대비 값이 싸서 쉽게 갈 수 있나 했는데.
날로 먹을 수는 없나.
플라스틱을 익혀 먹으면 조금 나으려나?
아, 그러네. 발암물질 나오니까 조금은 나을지도?
마음 같아서는 물량으로 밀어붙이고 싶기는 한데 안 된다.
돈도 돈이고 집의 부피보다 많은 물건이 들어갔는데 나오는 게 하나도 없으면 얼마나 이상하겠어.
내가 진짜 밖에 나갈 수만 있어도 쓰레기장에 가서 폭렙 하는데.
딩동.
배달원이 떠날 때까지 기다린 뒤 문을 열었다.
“드디어 왔네.”
상자를 열자 안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돌이 잔뜩 있었다.
최하급 마석.
[분열] [조종] [변질] 스킬의 레벨을 올릴 때 마나가 부족할 때가 자주 있다.다른 헌터라면 연금술사가 마석을 가공하여 만든 마나 포션을 복용하겠지.
사람은 마석에서 직접 마나를 흡수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슬라임.
마석을 직접 먹을 수 있다.
아마도?
마석을 입에 넣은 순간 눈이 확 커졌다.
이거 엄청 맛있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착잡해졌다.
인간은 섭취할 수 없는 마석을 맛있게 느끼는 게.
인간으로부터 동떨어진 존재가 됐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서.
[분해 스킬의 레벨이 12로 올랐습니다.] [흡수 스킬의 레벨이 12로 올랐습니다.] [분석 스킬의 레벨이 12로 올랐습니다.]“하?”
빠르게 레벨을 올리기로 다짐하고 온갖 물건을 시켰다. 마석보다 빨리 온 물건을 몽땅 먹어서 [흡수], [분해], [분석] 스킬의 레벨을 11로 겨우 올렸는데.
최하급 마석 좀 먹었다고 바로 12로 올라?
[분해 스킬의 레벨이 13으로 올랐습니다.] [흡수 스킬의 레벨이 13으로 올랐습니다.]남은 상자의 절반 정도 먹었을 때 레벨이 또 올랐다.
이거 마석이어서 레벨이 잘 오르는 건지.
아니면···.
옛날에 기수가 선물로 준 깃털을 입에 넣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
네가 준 선물은 나의 살이 돼서 머지않아 이 될 거니까.
오? 화끈하고 맛있는데.
붉은색이라서 그런가.
[분해 스킬의 레벨이 14로 올랐습니다.] [흡수 스킬의 레벨이 14로 올랐습니다.] [분석 스킬의 레벨이 13으로 올랐습니다.]“아, 젠장. 짐작이 맞았네. 안 좋은데.”
레벨을 빠르게 올리는 방법을 발견했다.
몬스터를 먹으면 빠르게 오른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마석을 대량으로 사는 건 변명거리가 있다. 마석은 여기저기 많이 사용되는 소모품이니까. 꼭 연금술사가 아니라도 종종 사용한다.
몬스터 소재. 그것도 다양한 몬스터 소재를 대량으로 주문하는 건 여기에 연금술사가 산다고 광고하는 거다. 배송지가 가정집이라면 그냥 거기에 연금술사가 산다고 확정지어도 된다.
꼬리가 밟힐까 걱정돼 죽겠는데.
꼬리가 두 개로 늘어난 데다가 길이도 두 배로 늘어나는 꼴.
일단 몬스터 소재는 그만 사고 마석만 사자.
다른 것들을 먹으며 을 대량 생산하고 저장하여 [분열], [조종], [변질], [저장] 스킬의 레벨을 15까지 올린다.
그리고 몬스터 소재를 먹고 [분해], [흡수], [분석] 스킬을 단숨에 15까지 올려 [특성 : 슬라임]의 레벨을 15로 만드는 거다.
***
“현재 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악취 제거, 가려움 억제, 심지어 무좀까지 치료한다는 연금 제품인데, 인기가 과열돼 온라인 매장인 연금상점에서는 5분도 지나지 않아 품절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서울중앙연금센터는 더 많은 소비자가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매일 30개의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기로 하였습니다. 판매가 시작된 오늘.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오픈런이 벌어졌는데요. 김철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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