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134
134. 고인물?
게임에서 이동 수단은 매우 중요하다.
워터랜드니까 이벤트 초기 이동 수단은 배다.
배는 두 종류가 있다.
수동과 자동.
수동은 말 그대로 현실적인 배의 조종 방법을 채택했다.
값이 매우 싸다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장점이 없다.
소형 배가 아니라 대형 배로 넘어가면 배를 움직이는 것에 수많은 사람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필요해진다.
잘하면 자동 배 이상의 움직임도 보일 수 있을 테지만, 그것도 긴 경력이 쌓였을 때나 가능하겠지.
취미 영역의 배다.
자동 배는 움직임이 아예 다르다. 현실적인 조타는 배제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에 가까운 조작감을 선택했다.
환경이 다르니까 차이는 당연히 있다.
하지만 배보다는 자동차 게임을 하는 것에 가까운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배의 편리성을 챙겼으니 다음은 이동 속도다.
섬에서 섬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만들면 게임이 지나치게 늘어진다.
해저를 탐험하기는커녕 섬에서 섬으로 몇 번 이동하는 것만으로 한 달이 지나갈 수도 있다.
몇 시간이나 가만히 배에 타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
사람들을 배 위에서 고생시키려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그래서는 안 되지.
그렇다고 이동 과정을 아예 생략해버리면 거기서 탄생할 수 있는 드라마가 사라진다.
그래서 도입한 게 해역 시스템이다.
낚시를 할 수 있을 만큼 느긋한 일반 해역.
배의 이동 속도가 대폭 상승하는 가속 해역.
급류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급류 해역.
어떤 해역을 통해 이동하느냐에 따라서 이동 속도가 몇 배는 차이가 난다.
가장 느긋한 일반 해역은 가장 가까운 섬까지 가는 것에 한 시간 넘게 걸린다.
급류 해역을 통하면 10분이면 간다. 장거리를 이동해야 할수록 급류를 타고 이동하는 게 낫겠지.
하지만 그냥 이동할 수 있고 아무런 페널티도 없으면 재미가 없지.
급류 해역은 레이싱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넋 놓고 있다가는 엉뚱한 장소로 가거나 배가 침몰할 수도 있다.
이동하려는 거리가 멀수록 속도는 빨라지며 사고가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급류만이 위험한 게 아니다.
배짱이 넘치는 해적이 함께라면 영화 속 자동차 추격전을 뺨치는 장면을 바다에서 재현할 수 있겠지.
배의 이동 속도가 대폭 상승하는 가속 해역.
여기는 다양한 위험이 산재한 곳이다.
태풍 슬라임을 만날 수도 있고.
거대 괴수를 만날 수도 있고.
해적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게임으로 따지면 위험이 가득한 PK 구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가 해저로 옮겨가면 여기에 판타지 느낌이 대폭 증가한다.
아직 해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정확히 어떤 느낌으로 진행되는지는 조금 기다려야 알 수 있을 거다.
그나저나 슬슬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상정하지 못한 괴상한 행동으로 버그 같은 플레이를 하는 인간들이.
밸런스가 아예 망가진다 싶은 행동이 아니라면 일단은 두고 볼 생각이다.
그런 플레이 방식도 재미의 하나니까.
***
게이머는 바다를 빤히 봤다.
다른 게임에서는 고인물로 불리는 사람이었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어쨌든 이 게임은 처음이었으니까.
‘어떻게 활용할 수 없을까.’
그의 시선의 끝에는 영역과 영역의 경계가 있었다.
경계에는 비밀과 꼼수가 잠들어 있기 마련이다.
규칙이 바뀌는 곳이니까.
인류는 언제나 경계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삼투압을 사용해 채소에서 수분을 빼내 절이기도 하고.
밀도 차이에 의한 빛의 굴절을 이용하여 망원경을 만들고.
표면장력을 응용해 구체를 만든다.
무엇보다 경계는 게임에서 버그가 많이 나는 부분이다.
평범함에서 남들을 알아차릴 수 없었던 특별함을 찾아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
그것의 짜릿함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렸을 때 그 짜릿함을 맛본 뒤로 게이머는 무엇을 보든 다른 활용 방식을 찾았다.
어렸을 때는 들인 공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작았다.
하지만 무대를 게임으로 옮긴 뒤로는 달랐다.
정교한 물리 법칙으로 이뤄진 현실과 다르게 게임의 세계는 허점이 잔뜩 있었으니까.
버그는 많았고 그 버그들은 방송 콘텐츠가 돼서 생업을 유지할 수단이 됐다.
‘워터랜드에도 그런 허점은 반드시 있다.’
연금슬라임은 완벽하지 않다.
그가 만드는 세계는 완전하지 않다.
이는 「내가 바꾸는 이야기」에서 증명됐다.
작가가 완전한 자유를 줘서 이야기가 막장으로 가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작가가 거의 자유를 주지 않는 작품에서도 사람들을 기어코 버그를 일으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작가가 절대로 살리는 루트를 두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놓은 캐릭터를 기어코 살리거나.
작가가 절대로 아군이 되지 않는다고 공언한 적이 아군이 된다거나.
핵심 인물을 어떻게든 죽여버려서 이야기의 진행을 막아버리기도 했다.
이것들은 연금슬라임의 실수가 아니라 작가의 실수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금슬라임도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일화가 많다.
연금슬라임이 막아놓은 방식으로 기어코 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나온 .
이 자전거는 탑승자의 안전을 중시한다. 그래서 내려가는 계단을 앞뒀을 때는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걸린다.
좋은 기능이다. 계단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건 매우 위험하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하지 말라고 하면 도리어 더 하겠다고 달려드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을 들고 달려서 계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공중에서 에 올라탔다.
계단 위에 착지한 은 브레이크가 풀렸다.
은 충격까지는 흡수했으나 탑승자의 관성마저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으니까.
너무 강한 브레이크가 걸리면 탑승자만 튕겨 나가 도리어 더 위험했다.
브레이크가 풀리고 은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속도 제한은 여전히 걸려 있었다.
이 속도 제한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발상을 달리했다.
바퀴가 빠르게 굴러가지 않아 가속이 막힌다면 바퀴를 땅에서 떼어내겠다.
그들은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이 방식으로 그들은 내려가는 계단만이 아니라 내리막길도 정복했다.
그렇게 은 프리러너들의 장난감이 됐다.
연금슬라임 본인의 실수든, 협업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어긋남이든, 현실과의 타협이든 버그가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설령 버그가 아니어도 숨겨진 요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주로 경계에 잠들어 있기 마련이다.
혼자서 하는 것도 좋으나 사람이 많을 때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있는 법.
게이머는 자기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모아 여러 가지 실험했다.
‘배에서보다 잠수한 상태가 이동 속도가 빨라.’
급류 해역에서 사람을 밧줄로 묶고 배 밖으로 던져봤다.
그러자 잠수한 사람 쪽이 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밧줄로 묶은 물체를 대량으로 던지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는데?’
게이머는 동료를 건져냈다.
“어때? 아래에서 움직일 수 있겠어?”
“무리. 더 좋은 장비를 갖춘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로 바다 아래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무리야.”
아쉽게도 현재 장비로 수면 아래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밧줄로 묶은 물체를 대량으로 던지면 배가 예기치 못한 장소로 떠밀려가고 말겠지.
나중에 다이빙 장비를 갖춘 뒤에 다시 시도해도 됐다.
하지만 찾아낸 것을 활용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뤄둘 생각만 한다면 게이머라고 할 수 없었다.
지금 수준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이건 어때?”
또 다른 동료가 한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와···. 미쳤네.”
“그렇지?”
“당장 하자.”
그들은 필요한 장비를 갖춘 뒤 가속 해역과 급류 해역의 경계를 따라 돌아다니면서 사냥감을 찾았다.
“배 발견!”
이쪽은 전투선. 저쪽은 무역선이라서 이쪽의 이동 속도가 더 빨랐다.
게이머 해적단은 사냥감 뒤로 쫓았다.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인간 어뢰 발사!”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인간 어뢰로 선택된 사람이 허리에 밧줄을 묶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급류 해역에 들어간 인간 어뢰는 단숨에 가속했다.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속도는 인간 어뢰 쪽이 훨씬 빠르더라도 질량은 배가 압도적이다.
인간 어뢰는 구심력에 의해 곡선을 그리며 가속 해역으로 들어왔고.
쾅.
사냥감의 옆구리를 때렸다.
“명중! 한 발 더!”
두 번째 인간 어뢰가 발사됐다.
이번에도 앞선 배에 명중했다.
두 번째 인간 어뢰는 앞선 배와 함께 배의 밑바닥에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
양측 모두 초보자용 함선. 방어력이 낮았기에 구멍이 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대로 침몰하고 싶지 않다면 재화를 내놔라!”
배가 침몰하는 것보다 재화를 나누는 게 낫다고 생각한 무역선은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게이머 해적단의 노략질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 뒤로도 게이머 해적단은 같은 방식으로 성과를 더 냈다.
머지않아 대책을 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아직 소문이 그다지 퍼지지 않아서 많은 사냥감이 걸렸다.
무슨 게임이든 자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일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들은 얻은 자원으로 배와 인간 어뢰를 업그레이드했다.
더욱 강해진 배로 해적질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도 새로운 꼼수가 없나 열심히 고민하며 수법을 더욱더 효율적이고, 강력하고, 재밌게 바꿔갔다.
슬슬 인간이 아니라 다른 것을 발사해도 될 것 같았으나 인간 어뢰를 고수했다.
그게 더 재밌으니까.
“인간 어뢰 발사!”
매우 강력해진 인간 어뢰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
그리고 지나가던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인지하지 못했으나 그들의 현재 모습은 낚싯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고기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
배보다 훨씬 커다란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자 배가 급가속했다.
“밧줄 끊어! 끊으라고!”
게이머가 소리쳤으나 그 말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리저리 헤엄치는 물고기에 끌려가는 것은 안전바 없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과 마찬가지.
어디든 필사적으로 붙드는 게 최선이었다.
고인물이라고 해도 될 만큼 게임에 깊게 파고들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고 넓은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거나 컨트롤러를 누르며 생활하던 사람들이었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화면에 집중하는 자세가 먼저 나왔다.
슬라임랜드가 생겨난 뒤 육체 활동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해적선을 몇 번이나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에 그들은 상당히 오랜 시간 끌려다녀야 했다.
결국 밧줄이 못 버티고 끊어지며 겨우 해방됐다.
“으···. 몇 명 남았어?”
그들은 남은 수를 셌다.
“절반은 없어졌네.”
절반 정도는 못 버티고 배 밖으로 튕겨 나갔다.
“못 돌아오겠지?”
“어. 지도를 봐.”
게임의 편리성을 위해 주어진 지도가 있었는데 이 지도는 주변만 보여줬다.
기다란 줄을 제외하면 지도가 깜깜한 것을 볼 때 한 번도 온 적도 없는 장소에 끌려온 게 분명했다.
“죽어도 랜덤 리스폰하겠네.”
그들은 리스폰 규칙도 어느 정도 파악해뒀다.
자살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일부러 죽을 법한 장소로 가는 것도 안 됐다.
그 지옥에도 흥미가 있었으나 아직은 갈 생각이 없었다.
사고로 죽은 동료도 있었는데 이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되살아났다.
지정된 위치에서 리스폰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지도 해적질 상대로 실험해봤다.
주변 무작위 장소에서 리스폰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리스폰 장소에서 너무 멀어졌을 때도 엉뚱한 장소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는 것도.
물고기에 한참 끌려다녔으니 동료와 합류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과연 합류하려고 할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코앞에 재밌는 콘텐츠가 있으면 그것부터 파헤치는 게 그들의 습성이었으니까.
“육지다.”
흔들리지 않는 땅이 그리웠던 그들은 바로 육지로 향했다.
“살겠다···.”
바닥에 드러누워 잠시 육지를 만끽한 그들은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적질이 중단된 것은 아쉬웠으나 새로운 콘텐츠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게이머들은 숲으로 들어갔다.
탐험하기를 잠시.
“미친! 공룡이다! 배로 돌아가!”
그들은 인간 어뢰 빌드를 충실히 올렸기에 육상에서 공룡과 싸우는 것은 어려웠다.
배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닭처럼 생긴 소형 공룡들은 날렵하고 교활한 사냥꾼들이었다.
게이머들의 앞길을 막아서며 그들을 더 깊은 숲속으로 유도했다.
결국 그들은 소형 공룡들에 완전히 포위당했다.
‘리스폰이네.’
죽음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맞으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은 빠르게 받아들이는 게 게이머였다.
‘발버둥은 칠 거지만.’
패턴 하나라도 더 볼 생각으로 전투 준비를 하는데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운석처럼 땅을 뒤흔들며 떨어진 그것은 거대한 돌도끼를 휘둘러 공룡들을 도륙했다.
“괜찮나?”
공룡들을 모두 정리한 남자가 돌아섰다.
그 모습을 본 게이머들은 직감했다.
‘저건 동료다!’
워터랜드가 시작되고 며칠이나 지나갔다고. 벌써 심상치 않은 고인물 포스를 풀풀 풍기는.
야만 전사 콘셉트의 전사가 그들 앞에 있었다.
***
워터랜드가 시작되고 며칠.
게임은 잘 진행되고 있다.
가끔 앞서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바다에는 태풍, 해일, 암초, 바다 괴수 등 다양한 재앙이 있는 법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좌초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애쉬를 제외하면.
거의 버그나 다른 없는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애쉬가 하는 짓과 비교하면 귀엽다.
애쉬는 존재 자체가 버그나 다름없으니까.
애쉬를 기준으로 만들면 워터랜드는 지옥이 된다고.
애쉬가 지나간 곳은 복구하면 되니까 최초 업적 달성에서만 제외했다.
헌터들도 있기는 한데 크게 문제는 되고 있지 않다.
슬라임랜드는 평온하다.
슬라임랜드 외적인 일이라면 해저 던전이 있다.
보랏빛을 흩뿌리는 가발을 쓴 우리 한스는 외국으로 떠났다.
전권을 쥐고 떠난 그는 세계의 절반을 가지고 돌아오겠지.
세계의 절반이라.
마왕인가?
떠나기 전에 하나 확실하게 한 것이 있으니.
비교적 만만한 한국 정부와의 협약을 나누는 일이었다.
한국 근처 바다에 있는 던전부터 처리하려고 협의를 봤다.
던전 자체를 공략하는 게 아니라 던전이 자멸한 뒤 남은 마석, 몬스터 소재, 아티팩트를 수거하는 일은 매우 간단했다.
전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는 로드를 불러올 필요도 없었다.
한국 지하를 차지한 루트가 촉수를 뻗었다.
그 아이가 주워온 것으로 나의 스킬 경험치 올리고 얻은 마나는 해저의 죽은 땅에 주입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처리하지 못해서 지금까지 방치했다니.
뭐, 나와 아이들에게는 쉬운 일이다.
우리가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