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21
21. 용도·용법을 준수합시다.
평화 길드 소속 헌터 최대헌은 슬라임에 푹 빠졌다.
발에는 한 쌍을 붙이고.
양쪽 겨드랑이와 목에 을 붙인다.
머리를 뒤로 넘기고 머리띠처럼 를 이마에 두른다.
가슴에도 를 하나 붙이고.
마지막으로 가랑이 사이에 를 딱 붙이면!
“으허허.”
“대헌이 형. 솔직히 좀 변태 같아요.”
“야! 형한테 변태가 뭐야 변태가!”
“그걸 왜 거기에 붙여요.”
“이게 땀 흡수 능력이 기저귀보다 낫다니까. 이거 하나 딱 붙여주면 팬티에 땀이 차서 찝찝할 일이 없다고.”
“그걸로 그렇게 된다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야! 연금슬라임 님께서 만드신 걸 못 믿어? 내가 준 깔창 도로 내놔!”
대헌이 달려들자 깐족대던 팀원 이도현은 잽싸게 도망쳤다.
대헌은 추격했으나.
“아, 형! 줬다가 뺏는 건 아니죠.”
“믿음이 부족한 너는 슬라임을 쓸 자격이 없어!”
“슬라임 좋은 건 저도 알거든요! 그래도 그거는 얼굴에 붙이는 거잖아요.”
대헌은 탱커, 이도현은 딜러. 몸놀림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잡는 걸 포기했다.
“아, 진짜. 이게 정말 좋은데 말로는 설득이 안 되네. 어쨌든 너는 앞으로 깔창 없어. 네가 직접 가서 사.”
“싫거든요. 아무리 필요해도 새벽같이 나가서 줄 서고 사는 건 아니죠.”
“그럴 가치가 있다니까 그러네.”
“탱커인 형이나 그렇죠.”
“그래, 무거운 갑옷 입을 필요 없는 딜러라 잘났다.”
대헌은 투덜거리며 갑옷을 입었다.
풀플레이트아머.
그가 입는 전신 갑옷은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전우지만, 한 가지 심대한 결점이 있다.
방어력을 위해 편의성을 희생했다.
밖이 건조하고 선선하면 그나마 낫다.
습하고 더우면?
입고 몇 발짝만 걸으면 열이 차오르면서 ‘나는 인간인가 아니면 찜통에 들어간 만두인가.’ 자아 성찰하게 된다.
마케팅인지 뭔지 때문에 출전할 때는 길드하우스에서 무장하고 나가라고 하니 습하고 더운 한국의 여름철에는 진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태양의 빛을 받아도 숨이 막히지를 않으니 등과 허리가 절로 펴지고 턱이 올라간다.
‘그래. 이게 인간의 삶이지.’
슬라임을 붙이고 나니 그제야 대헌은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대헌은 더운 것보다 찝찝함이 더 큰 문제였다.
지금은 각성하고 레벨이 오르면서 피부가 튼튼해져서 괜찮지.
그는 옛날에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었다.
지금도 그때의 트라우마 가시지 않아서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욕실로 달려간다. 몸을 깨끗이 씻고 꼼꼼하게 말린 뒤 전신에 빈틈없이 로션까지 바른다.
땀 때문에 피부병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언제나 따라다녔다.
땀투성이로 돌아다니는 것에 상당히 거부감이 있었다.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참았지.
그런 고민을 슬라임이 해결해줬다. 푹 빠질 수밖에.
게다가 오늘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오늘 가는 곳은 밀림형 던전. 한층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던전의 모기는 진짜 끔찍해서 전신 갑옷을 입어도 틈을 찾아 기어들어 온다. 어찌나 지독한지 레벨이 오르면서 질겨진 피부조차 뚫고 피를 빨아먹는다. 독은 또 얼마나 독한지 물리면 미칠 듯이 가렵다. 게다가 만족을 몰라서 한두 방 쏘고 끝이 아니다.
갑옷 때문에 긁지도 못하고 잡을 방법도 없고.
진짜 사람을 미치게 한다.
옷에 모기 기피제를 통째로 뿌리고 계피 우린 물을 수시로 마셔도 좀처럼 효과가 없다.
대헌은 을 손목에 찼다.
아직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디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에 까지 챙겨가니 적어도 하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대헌의 바람은 던전에 들어가자 실현됐다.
모기는 물론이고 다른 벌레들도 근처에 얼씬도 안 했다.
“아, 모기 진짜!”
밉상 막내가 성질내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대헌은 챙겨온 을 팀원들에게 나눠줬다.
밉상 막내를 제외하고.
“도현아. 갖고 싶어? 그러면 슬라임님 만세! 라고 해봐.”
“형, 진짜 유치하게.”
“필요 없으면 말고.”
“하면 되잖아요. 하면. 슬라임님 만세! 됐죠? 빨리 주기나 해요.”
“좋지?”
“네, 네. 좋네요.”
귀찮게 하는 벌레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그들의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집중력의 분산이 덜 되니 사냥 효율 또한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진행 속도가 빨라졌다.
“자이언트 웜이다! 조심해!”
거대 거머리들을 줄줄이 달고 다니는 대형 몬스터가 나타났다.
저것은 싸울 때 몸을 털어 그 거머리들을 던져댄다.
말이 거머리이지 고양이만 한 크기에 뱀처럼 재빠른 것들.
전열의 머리 너머로 날아간 거대 거머리가 후열을 노리기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다.
“여기다! 나를 봐라!”
대헌은 도발 스킬로 적들을 끌어들였다.
경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분쇄하며 다가오는 자이언트 웜.
대헌은 자세를 단단히 하고 충격에 대비하였다.
충돌이 경각까지 다가온 그 순간.
자이언트 웜이 움찔 몸을 떨며 진격을 멈췄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 자이언트 웜에 붙어 있던 거머리들이 슬금슬금 도망친다.
“죽여!”
이미 기세를 잃은 자이언트 웜은 순식간에 헌터들의 먹잇감이 됐다.
“저것들 왜 저래?”
대헌은 무심코 중얼거렸다가 자기 손목을 내려봤다.
거기에는 매끈매끈한 빛깔을 자랑하는 슬라임 팔찌가 있다.
‘설마?’
얼마 뒤. 다시 자이언트 웜과 격돌했을 때 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자이언트 웜은 갑작스럽게 멈추고 거대 거머리들은 딜러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이걸로 확정. 덕분이다.
‘이것도 실험해봐?’
대헌은 수명이 짧아 제아무리 연금슬라임 팬이라도 차마 두둔하기 어렵다고 여겼던 을 꺼냈다.
“도현아. 나중에 자이언트 웜이 나타나면 이거 돌린 뒤에 먼 곳으로 던져.”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대헌의 도발 스킬에 끌려오는 자이언트 웜은 도현이 던진 을 향해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했다.
자이언트 웜의 공격에 은 한순간에 망가졌다.
그 대신 자이언트 웜은 헌터들에게 완전히 옆구리를 내줬다.
공격이 쏟아졌고 몬스터는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다음 자이언트 웜을 상대할 때는 을 꺼냈다.
한껏 벌린 입에 쏙 던져 넣어주자 자이언트 웜은 꿈틀꿈틀 괴로워하다가 죽었다.
을 차고 있으면 자이언트 웜은 돌진을 못 하고 거대 거머리들은 도망친다.
. 한순간이라도 적의 표적을 돌릴 수 있는 도구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그야말로 목숨을 구해주는 물건이다.
이 있으면 레벨이 낮은 헌터도 자이언트 웜을 사냥할 수 있다.
을 집에서 사용하느라 가지고 오지 않은 게 아쉬울 지경.
이런 말도 안 되는 성능을 지닌 물건들이 고작 몇만 원.
몇만 원만 투자하면 던전 공략이 말도 안 되게 편해진다.
이러니 어찌 애용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야. 내가 슬라임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냐?”
“인정. 이건 진짜 대박이네요.”
“그렇지?”
“형. 이건 다른 길드에 알려지기 전에 독점해야 해요.”
“내일 오픈런 같이 가자.”
“네, 형.”
대헌은 동료를 붙잡고 한층 더 깊게 슬라임에 빠졌다.
***
“지금부터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 모기만이 아니라 다른 벌레는 물론이고 몬스터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 사실을 숨겼습니까?”
“저는 당당합니다.”
“어째서 숨겼습니까!”
“인간이 정한 생물 분류 체계를 슬라임인 제가 왜 따라야 합니까! 제가 모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모기입니다!”
“어찌 이리도 무도할 수가. 도 같은 의견입니까?”
“흡혈 벌레는 소독이다!”
“당신은 애초에 모기만이 아니라 모든 벌레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겁니까?”
“흡혈 벌레는 소독이다!”
“. 할 말 없습니까?”
“세상의 수많은 악 가운데 어찌 모기만을 특별히 대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구원이 필요한 모든 악에 평등한 자비를 내릴 뿐입니다.”
“. 당신만은 다르리라고 믿습니다.”
“크헤헤. 익사다. 박제다. 크헤헤.”
갑자기 시리즈가 모조리 동나더니 평화 길드가 연금센터로 연락했다. 시리즈를 독점 공급 받고 싶다고.
우리나라 탑 파이브에 들어가는 대형 길드의 제안에 박태양 상담사가 서둘러 내게 연락했다.
연유를 물으니 내 시리즈가 벌레 몬스터를 상대할 때 매우 효과적이란다.
왜 민간용으로 만든 시리즈가 몬스터 퇴치에 사용되냐고.
정작 헌터용으로 만든 은 먼지만 쌓여가는데.
용도·용법을 지키는 사람이 없어 사람이.
독점 계약?
내 대답은 당연히 NO.
내 모기를 향한 증오는 하늘처럼 넓고 바다처럼 깊어서 세상의 모기가 아니라 던전의 몬스터를 죽이는 데 낭비되는 꼴은 못 본다.
이건 당연히 농담이고.
농담이라니까?
좋은 연금술사를 자기네 길드에 묶어 두려고 하는 게 대형 길드의 생리다.
독점 하나 시작하면 이것도 독점, 저것도 독점, 이거 만들어줘, 저거 만들어줘, 우리 전속 계약 맺자, 계약 맺으러 우리 길드하우스로 와라.
어? 하는 사이 계약서에 도장 쾅!
평화 길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길드이기는 한데 그건 안 되지.
환영회를 연다는 연락이라도 와 봐. 상상만으로 소름이 돋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평화 길드가 모기약을 독점한다는 이상한 행동을 했으니 다른 길드들은 이유를 파헤치겠지. 머지않아 시리즈의 효과는 알려질 거다.
모기는 점점 더 기승을 부리니 민간 수요 증가.
길드들은 당장 쓸 것을 넘어 재고를 확보해두려고 할 테니 수요 대폭 증가.
품절 대란에 위기감을 느낀 일반인도 사재기에 동참.
수요 폭증. 내 일도 폭증.
기껏 이랑 을 우리 공돌이에게 떠넘겼는데 이제는 시리즈가 나를 괴롭히네.
우리 공돌이가 내 레벨 때 하루에 24,000개 이상의 물건을 찍어냈다.
당연히 나도 그 물량을 생산할 수 있다. 하루 24시간 일만 할 생각은 없으니까 5,000개만 만들 거지만.
그런 숫자라도 일반 가정집에서 택배로 보내면 하이에나들이 냄새를 맡겠지?
그래서 낸 꾀가 있다.
나는 밀폐용기에 자그마한 구슬을 대량으로 쏟아냈다.
콩알처럼 작고, 가볍고, 단단한 이것 하나하나가 하나의 제품이다.
이걸 소비자가 받으면 ‘애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겠지.
괜찮다. 이대로 판매할 건 아니다.
이것들은 수분을 최대한 날리고 [저장] 스킬의 효과를 최대한 적용하여 만든 물건.
물을 부으면 탱글탱글하고 매력적인 슬라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물 붓고 포장하는 거야 연금센터에서 하면 되는 일.
나는 제품별로 밀폐용기 하나씩 채워서 보내면 된다.
5,000개의 시리즈가 택배 상자 하나에 들어간다고 누가 생각할까.
택배의 움직임으로는 내 위치를 추적하기 어려울 거다.
5,000개 완성!
연금슬라임 일은 끝!
포장해서 현관 옆에 두고.
오랜만에 SLimelove가 얼마나 잘 나가나 확인해볼까.
구독자 48.7만 명.
저 숫자는 허수가 많이 섞인 느낌이라 큰 감흥이 없다.
SLimelove의 채널이라서 구독한 게 아니라 연금슬라임의 채널이라서 구독한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나는 동일 인물이라고 인정한 적도 없는데.
댓글을 살펴보면 왜 엉뚱한 사람 이야기를 여기서 하냐는 외국어 댓글이 종종 있다. 해외에는 연금슬라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국내 시장도 수요가 감당이 안 돼서 야단법석인데 해외까지 알려지면.
-이런 영상 찍을 시간에 이나 만들어라!
이런 댓글이 12가지 언어로 적힐지도 모르잖아.
어휴 끔찍해.
그나저나 댓글을 이대로 방치해도 되려나 모르겠네.
관리자라도 고용해야 하나?
아니면 아예 댓글 창을 닫아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 같은데.
부작용으로 구독자와 시청자가 떨어지겠지만,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위치는 아니잖아?
-, 이 쓰레기 다시는 쓰나 봐라 퉤!
역시 닫을까?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제대로 검수도 안 한 물건을 팔아! 우리 딸 눈이 퉁퉁 부었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냐!
응?
-피부에 좋다고 해서 엄마 선물 사드렸는데 짝퉁이었어요. ㅠㅠ
으응?
살펴보니 짝퉁 이야기가 많다.
뉴스가 있나 찾아볼까?
“―가짜 연금 제품이 유통돼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연금 제품 의 짝퉁입니다. 제품의 모양에서 포장지까지 고스란히 따라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포장을 뜯으면 심한 약품 냄새가 올라옵니다.”
“―이 가짜 연금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 화학 물질을 분석한 결과 발암물질인―”
“―최악에는 실명에 이를 수 있다고―”
“―이에 서울중앙연금센터는 불법 연금 제품의 유통은 상표권과 전용사용권의 침해, 무면허 연금 제품 판매,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강력히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악취가 나거나 피부에 강한 자극을 주는 제품은 단 하나도 없으니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통증이 느껴지는 경우 즉시 사용을 중단할 것을―”
“―온라인 연금상점과 서울중앙연금센터 오프라인 매장을 제외한 곳에서 절대로 연금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
벌써 짝퉁이 난리구나.
그런데 이거 나에게 따질 일은 아니잖아?
연금센터에 가서 따지라고.
나는 제조만 하고 나머지는 전~부 연금센터가 할 일이다.
고객상담도 당연히 그쪽에서 처리할 일이고.
그러니까 수수료로 40%나 주는 거다.
애초에 나에게 따진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짝퉁을 감별하는 슬라임이라도 만들어서 팔까?
그 슬라임 만든다고 제조 개수 줄인다고 하면 폭동 일어날걸.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우리 공돌이 시켜서 제품에 위조가 어려운 상표 붙이는 게 전부다.
그거라도 할까.
나중에 박태양 상담사에게 이야기하자.
***
-연금슬라임 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
지금은 욕해도 합법 아닐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