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24
00024 1-5. 격화하여 일어나라, 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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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뒤.
한 차례 몰아친 폭풍이 진정되었다.
일단 그 ‘존경하는 유제아 님’의 안건은 우리가 생존한 후로 유예하기로 했다.
우선은 메타트론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중하다.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 이 천사로 하여금 “존경하는 유제아님! 뒤통수가 위험합니다!”란 외침을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호칭은 메타트론을 침울하고 가라앉게 만드는 게 있었다. 이 녀석은 자존심이 너무 강했기에 견디질 못했다. 그러니 일단은 넘어가자. 하지만 후일 천천히 조교해 주도록 하지, 메타트론.
“감사한다. 그래도 유연한 사고를 가졌구나. 큼큼!”
메타트론은 겨우 살았다는 듯 헛기침을 하고는 잃어버린, 이제는 저 멀리 날아간 위엄을 찾으려 애를 썼다.
그럴수록 안타까웠지만 말은 꺼내지 않았다. 원래 다시 되돌리지 못하는 건 붙잡고 있어도, 버려도 마음 아픈 법이었다.
그래도 서열 1위인데 위엄이란 걸 아예 패대기칠 수도 없고, 이제와서 집착하기도 부질없었다.
그래, 뽕이 사실 결정적인 타격이었지.
게다가 남에게 안 들키기 위해 서열 1위의 솜씨로 자체 제작한 마법 물건이라고 한다.
내가 약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가슴을 쳐다보자 곧 메타트론은 서글픈 표정이 됐다.
“나라고 가지고 싶지 않았겠느냐.”
“…….”
그만해야지. 이미 메타트론의 HP는 0이었으니까.
“크흠!”
괜히 헛기침을 해서 분위기를 환기하고는 묻는다.
“메타트론.”
“말하거라.”
“지난 페이즈에서 넌 나와 함께 싸우자고 했지. 그래서 보조적인 임무만을 생각했는데 넌 그 정도로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느냐?”
어쩐지 알 것 같다는 미소를 짓는 메타트론.
“그래서 방패 외에는 특별할 게 없는 인간이라고 하자, 너는 적절한 수단이 있다고 했다.”
“과연.”
메타트론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숨길 수 없는 기대를 안고 물었다. 내가 여기 온 건 운명을 극복해 보기 위해서도 있지만 말 못할 간절함 역시 컸다.
10년 세월의 한.
누구보다 헌터가 되고 싶었다.
하이에나로서 분에 어울리지 않은 호행난주胡行亂走*는 세상을 향한 내 시위였다. 그러나 어떤 천사도 날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이레귤러한, 신성지조차 없이 떠도는 메타트론이라면.
“그래서 묻겠어. 같이 싸우자고 한 건 분명히 날 강화할 수단이 있기 때문이겠지. 나를….”
가슴이 마구 뛰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터져나오는 소망을 억누르고 침착을 가장하기란 쉽지 않았다.
“…헌터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거야?”
간절하고 애타는 질문.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허망하고 가슴 아팠다.
“아니, 불가하다. 그대는 헌터가 될 자질이 없다.”
털썩.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간절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일어났었나 보다.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답을 듣기 전 내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메타트론의 말투가 상냥한 걸 그걸 보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수치도 느낄 여력이 없었다.
“하하하….”
허탈한 웃음만 흘러나왔다.
그런가, 그랬던가. 메타트론조차 날 헌터로 만들어 줄 수 없는 건가.
이 몸! 유제아는 그 정도로 쓰레기였나!
피가 베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꽉 쥔 두 손에는 혈관이 터질 듯 두드러져 있었다.
고통스러웠다.
고통이 가슴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간다.
유제아, 이 개병신 같은 새끼. 존나게 쓸모없는 폐기물 같은 새끼.
지독한 자책이 이어졌다.
남에게 들었으면 결코 참지 못했을 말이 나 자신에게는 잔인하게 쏟아졌다. 나는 나를 상처 입히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혼자 자신의 속을 헤집고 있던 그때, 서늘한 손길이 날 어루만졌다.
메타트론은 있는 힘껏 쥔 내 주먹에 작은 손을 올리며 차분히 말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상처 입히지 말거라.”
올려다보니 메타트론이 자애롭게 웃고 있었다. 이 미소는 어디서 본 거지? 의아해하던 나는 어릴 적 몇 번 가본 성당의 마리아상을 떠올렸다.
메타트론은 성모처럼 미소 지으며 내 볼을 쓰다듬는다. 차가운 손길이 내 마음에 들불처럼 일어난 화를 여름비 내린 것처럼 시원하게 꺼준다.
“그대가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무슨 아픔을 품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구나. 헌터 결격이 무서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지?”
“…….”
“분명 그대는 헌터 결격이 맞다. 앞으로도 계속 헌터가 될 수 없다.”
나는 이 따뜻한 목소리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10년이라.
이제 포기할 때도 되었지.
“하아….”
가볍운 한숨이었다.
나는 마음의 짐을 그것으로 내려놓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불길 같이 뜨거운 손이 다시 나타나 날 일으켜 세운다. 차가웠던 손이 어느새 용광로의 쇠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메타트론은 주저앉아 있던 날 일으켰다.
그리고 내게 명했다.
“하지만 그대. 이제 내 화신이 되어서 격화激化와 함께 일어나라.”
대체 그게 무슨?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내게 메타트론은 강하게 주문한다.
그녀의 언사는 힘이 있었고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더는 그런 패배자의 표정을 짓지 말거라. 헌터가 되고 싶다고 했느냐? 그대를 헌터보다 더 뛰어난 위치에 세워주겠다. 나 메타트론이 어떤 인간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위지位地를 네게 주겠다. 본녀의 형제자매 누구도 인간에게 이렇게 베푼 이가 없었다. 그들이 원치 않아서가 아니오,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천사의 수좌인 나 메타트론만이 아는 법보法寶로 그대를 누구보다 높은 곳에 놓으마.”
“어째서 나 같은걸….”
“그대가 말하지 않았느냐? 스이엘이 운명을 읽었다고. 그대는 왕들의 심장에 검을 꽂을 운명을 타고났다. 하니 본녀가 그런 인간을 특별히 여기는 게 어찌 이상한 일이겠느냐?”
메타트론은 내게 확신을 갖고 말해왔다.
“자격지심을 갖지 말라. 그대의 과거가 어쨌든 그대는 누구보다도 기위奇偉한 인간이 될 것이다. 그대는 인간 중에 가장 높은 이요, 동시에 천사 중의 가장 높은 내 아낌을 받을 자다.”
나는 메타트론의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여기 볼을 붉히던 소녀는 더는 없었다. 그녀는 대천사였고 모든 천사를 능가하는 존재였다. 비록 그녀가 힘을 잃었다지만 그녀의 품계와 기품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무릎을 꿇으라, 그대. 그대는 이제부터 나와의 계약을 받아들이라.”
준엄하기까지 한 분위기에 나는 기사 서임을 받는 자처럼 한쪽 무릎을 꿇었다. 메타트론은 마치 세례를 하는 성직자처럼 내 이마에 손바닥을 대고 축복해 왔다.
“유제아, 그대는 열정이 일으킨 불꽃을 10년의 세월 동안 품고 고통스러워 한 자다. 그대는 그저 그 아픔이 꺼지길 인내하며 기다려왔다. 그대의 처지는 매일 걸어 다니는 부상자 같았고, 희망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고문에 가까운 기망으로 그대를 농락해왔다.”
어쩌면 이렇게 나에 대해 잘 알까?
의문을 품던 나는 지금 메타트론과 어떤 정신적 연결이 강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분명히 나의 감정들이 메타트론에게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반대로 메타트론에 마음 역시 내게 쏟아져온다.
“어떤 천사도 그대를 바꾸긴 무리였다. 하지만 그대는 이 몸과 만남으로, 마치 새로 태어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아이와 같아졌다. 이제 그대는 그대가 소망하는 힘을 얻을 것이다. 부디 심장에 용기를 햇살처럼 반짝이게 칠하라. 그리함으로 이 땅을 위협하는 존재에게 검을 들고 대답하라. 그대는 나의 화신이 됨으로써, 내 힘을 현현함으로써, 그대의 적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방황하고 잘못된 길을 가던 운명이 정해진 곳에 안착했음을.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 어떤 존재인지 알았다.
나는 지금껏 시작하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이제, 메타트론을 만나 비로소 사명 위에 올라선 사내가 되었다.
“이제 나 메타트론의 축복과 함께 새로이 태어나라. 그대여, 그대는 승리를 우리가 매일 마시는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는 전사가 될 것이다. 하니 이제 일어나 그대 자신을 세상에 선언하라.”
무릎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오롯이 다시 서는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보던 세상과 이제부터 보는 세상은 완전히 달려진 상태였다.
구오오오오옹! 콰아앙!
힘의 파동이 일어나더니 폭발과 함께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건물과 결계 전체가 날아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선 나는 선언했다.
“개수일촉유소작위鎧袖一觸有所作爲.”
내 포고를 들은 메타트론은 조금 놀라더니 곧 밝게 웃는다.
“과연 왕들의 심장을 꿰뚫을 남자다운 발언이구나. 오만하지만 그대와 어울린다.”
개수일촉은 갑옷의 소매로 적을 건드린다는 소리다. 나보다 약한 상대를 가볍게 물리친다는 의미다. 그리고 유소작위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뜻.
결국 적을 모두 쉽게 물리치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래서인지 메타트론은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그대는 본녀와 끊어낼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인정하겠느냐?”
“그래. 이제부터 우리는 항상 서로를 보게 될 것이야. 설령 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던지 상관없이.”
나와 메타트론은 이날 이어졌다.
지난 20년의 세월, 어떤 천사와 어떤 인간도 이런 특이한 관계를 맺은 적은 없었다.
***
“그대. 아까 굉장히 멋있긴 했는데 사실 너무 노골적인 것 아니냐?”
몇 시간 뒤, 우리는 흥분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차분히 대화했다. 주변에는 엄청난 몬스터가 죽어나자빠져 있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모두 보라매 공원에 살던 험악한 녀석들로 내 손에 다 쓰러졌다. 메타트론의 화신이 되어 그녀의 힘을 일부나마 사용가능해진 나는, 마치 신차의 시운전을 하고 싶던 것처럼 몸이 근지러워 참을 수 없었다.
마침 결계도 다 날아갔겠다, 근처의 몬스터들에게 돌격했고 그 결과가 이거다.
“노골적이라고?”
되묻자 메타트론은 손수건으로 내 얼굴의 피를 손수 닦아준다.
“개수일촉. 소매로 쳐 적을 물리친다는 건 그대가 결국 먼치킨이 되겠단 말이 아니냐?”
들켰네. 좀 일부러 근사한 말로 포장했던 건데.
“그리고 그대. 유소작위 역시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건 결국 갑甲질하겠다는 소리 아니느냐?”
뜨끔.
또 들켰다. 세속적인 욕망을 가리기 위해 뭔가 있어 보이는 선언을 했지만 이 천사를 속이긴 무리였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메타트론은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세상에, 내 화신이 되고 기껏 선언한 게 먼치킨에 갑질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내버려 두는 건데 그랬다.”
“그래, 좀 내버려 둬라.”
내가 즐겨보던 판타지 소설은 다 먼치킨에 갑질이었다.
나도 좀 해보겠다는 데 뭐 문제 있냐?
“어쩌면 이런 속물이 본녀의 화신이 되었단 말이냐. 한심한 일인지고. 쯧쯧!”
여기서 ‘시끄러워 가짜 가슴!’ 이라고 하면 메타트론이 익룡처럼 빼애애애애액! 할 테니까 그만두자.
어쨌든 내 힘의 근원이 된 그녀다.
존중하고 마땅히 존경하며 내 마음을 다해야 한다.
그럼 화신 시스템은 뭐냐?
간단하다.
게임으로 치면 전서버에 1명 있을 만한 히든 클래스인 거다.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니지만 이해를 위해 게임에 대입해 보자면, 메타트론을 만나고 타임 루프를 하고, 왕을 저격할 운명을 가지고, 등등의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달성함으로써 조건이 해결되고 ‘메타트론의 화신’이라는 히든 클래스가 출현한 거다.
제한은 전서버에 단 1명과 같다.
애초에 얻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직업인 거다.
화신이 되면서 내겐 메타트론의 권능이 강신하게 된다. 엄밀히 따지면 육체적인 화신과는 거리가 있고 힘만 강신하는 형태다. 궁극적으로 나는 그녀의 3분의 2정도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물론 그건 다 성장한 후의 얘기라 지금은 문제가 많다.
일단 내 근원인 메타트론이 힘을 잃은 상태고, 나 역시 화신 레벨1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었다.
이 화신 역시 천사들이 만든 게임 시스템에 속해있었다.
다른 천사들은 존재 자체를 몰랐고 메타트론만 안다고 했다.
현재 그녀는 타임 루프로 나와 만났던 모든 상황을 기억해 냈다. 화신 시스템으로 나와 정신적 감응을 한 결과 모든 걸 떠올린 거다.
그래도 역시 비범하긴 비범한 존재였다.
정신적 연결 정도로 타임 루프를 당사자도 아닌 데 기억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건데 말이다.
“그대. 그러고 있지 말고 상태창이나 띄워 보거라.”
“그럴까?”
게임 시스템을 가진 이상 나 역시 헌터들처럼 상태창을 띄울 수 있게 됐다. 그뿐 아니라 헌터가 가진 모든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다.
헌터는 나보다 하위직이다.
헌터가 할 수 있는 건 나 역시 모두 가능하다.
반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헌터는 못하는 일이 있겠지.
이것이야 말로 실로 갑의 위치… 아니 유소작위하며 고매한 뜻을 펼치기 좋은 위치가 아닌가.
실로 나는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위로 올라갔다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렙업을 열심히 해야 할 1레벨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상태창.”
작게 외치자 허공에 게임 시스템과 같은 내 상태창이 나타났다.
============================ 작품 후기 ============================
*호행난주胡行亂走- 오랑캐 호, 다닐 행, 어지러울 난, 달릴 주. 함부로 날뛰고 어지러히 행동함.
*메타트론은 캐릭터 특징상 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