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63
00063 3-4. 패밀리 충원 =========================================================================
벌레들의 정체에 대해 헌터들에게 모두 밝혔다.
당연한 얘기지만 난리가 났다. 헌터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들썩일 초유의 사건이었다. 몬스터 사태가 일어난 지 21년 만에 몬스터 일부와 편을 먹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 몬스터가 기존의 무리에서 이탈해 완전히 새로운 종족으로 탄생했으며, 메타트론의 패밀리가 되어 보호를 받는다는 점까지, 떡밥이 아주 넘쳐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헌터뿐 아니라 일반인까지 상대해야 할 지경이었다. 방송사들 쪽에선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제아씨. 저는 M모 방송의 PD 감우혁입니다. 이번에 저희가 특집 방송을 기획하고 있는데….”
그 뒤로 어쩌고저쩌고 이어지는 내용인 즉, 출연을 위해 방송국에 와 달라는 얘기였다.
“메타트론 패밀리 뿐 아니라 유제아씨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황금 시간대인 거 아시죠? 저희가 어지간하면 이런 편성은 안 하는데 특별히 노력한 부분입니다. 그러니 응해 주시는 걸로 생각해도 되겠지요?”
말투는 문제가 없었는데 느낌 자체가 좀 무시하는 기색을 받았다. 미카엘라 패밀리를 상대라면 이 감PD란 놈이 감히 이러지 못할 텐데, 그저 요즘 핫한 신생 패밀리 취급이네.
우리가 이번에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는 거니까 너는 알아서 기어 들어와라, 란 뉘앙스였다.
솔직히 좀 어이없었다.
방송국 PD주제에 서열 1위 대천사 메타트론의 화신인 내게…. 이게 다 저자가 메타트론 패밀리의 규모나 최근 위용을 체감하지 못해서 그런 듯하다.
하긴 일선에 있지 않는 이상 피부로 느끼긴 어렵겠지.
“말씀은 감사한데 바빠서 어려울 듯합니다.”
“네? 아니, 이런 좋은 기회를.”
좋은 기회는 너한테나 좋은 기회겠지.
무슨 선거를 나갈 것도 아니고 패밀리가 유명해져 봐야 뭐하겠는가. 패밀리의 명성이 오르면 가장 좋은 건 신규 헌터 모집하기 좋다는 정도일까.
하지만 그것도 벌레 헌터들로 대규모 충원을 한 데다가 최근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갈되어 가는 한국의 헌터 자원 때문에, 메타트론 패밀리의 신규 헌터는 전세계적으로 모집하는 기획이었다.
메타트론은 미카엘라, 가브리엘 등보다는 유명하지 않지만 서열 1위에다 신비한 존재란 위치 때문에 나름대로 인터넷에선 인기가 많았다.
천사나 헌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포럼에선 컬트적 인기를 구가하는 게 메타트론이다.
다만 그간 너무 정보가 없어 설왕설래만 했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메타트론에 대해 알리고 헌터도 공개모집할 작정이었다. 물론 이걸 위해서 방송에도 나가면 좋겠지만 이쪽에서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곧 오픈할 예정인 공개 모집 홈페이지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럼 끊겠습니다.”
“아니! 유제아씨! 좋은 기회를 이렇게 발로!”
거기까지 듣다가 끊어버렸다. 다시 벨이 울렸지만 액정을 손가락으로 한 번 그어 수신 차단을 먹였다.
쯧, 별 것도 아닌 게 남의 시간 뺐고 있어.
그렇게 다시 서류를 뒤적이고 있는데 또 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이번에는 K모 방송의 윤PD란다. 그런데 이쪽은 태도가 달랐다.
“허락해 주시면 장비 챙겨서 찾아뵙겠습니다. 세트도 저희 쪽에서 설치할 테니 귀한 시간 조금만 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쪽은 아주 극히 공손한 태도로 어필하려나 보다. 게다가 지들이 알아서 온다고 하니까 딱히 거절하기도 뭐하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수락을 했다.
최근 노량진에서 일어났던 일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고 있으니, 오해가 없게 해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렇게 오케이 하자 윤PD는 무척이나 밝은 목소리로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뭐, 선생님씩이나.”
“하하하. 그런데 혹시 좋아하시는 연예인 없으십니까? 패널로 몇 데려가려고 하는데, 원하는 애 있으면 적극 섭외해 보겠습니다. 요즘 걸그룹 애들 중에 예쁜 애들이 많습니다.”
나름대로 비위 맞춰주려는 듯한데 내 입장에서는 시큰둥하다.
걸그룹 애들이 아무리 깜찍하다고 해봐야,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천사에겐 안 된다. 메타트론이나 미카엘라까지 갈 것도 없이 평천사인 스이엘만 해도 엄청나게 예뻐서, 게임이나 만화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처럼 완벽했으니까.
게다가 나는 평천사 아리엘을 지배하고 있기까지 하다.
걸그룹 따위가 어딜 감히.
그러고 보니 아리엘 패밀리도 모집해야겠구나. 아리엘은 내 지배를 받는다. 하니 그녀의 패밀리는 실상 내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메타트론 패밀리와는 별개로 아리엘 패밀리의 육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
“패널은 됐습니다. 그냥 아무도 데려오지 마시죠. 진지한 분위기로 가고 싶습니다. 최근에 국민 여러분들께서 우려하거나 궁금해 하시는 부분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방송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죄송합니다. 저희 쪽이 최초에 생각하던 기획과는 좀 다르긴 한데 유제아씨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수정하겠습니다.”
원래는 좀 가벼운 분위기에, 가능하다면 메타트론의 출연까지 기대했다고 했다.
어림없는 소리, 그 방구석 폐인인 천사가 방송에 나간다고?
대한민국이 망해도 그럴 일은 없다. 뭐, 초코우유 회사를 하나 선물하면 모를까.
“메타트론님께서는 방송 출연은 안하십니다. 이 부분은 협의 자체가 불가한 부분이니 재론이 없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한 번 찔러본 윤PD는 단호한 내 말에 진땀을 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날짜는 언제가 좋으십니까?”
“그건 저희 쪽 실무자랑 협의하시길.”
“알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신 것 감사합니다.”
***
방송 당일.
노량진에는 이미 간이 스튜디오가 완성되어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방송국 사람들이 분주하더니 마침내 준비가 끝났다. 방송국도 메타트론 패밀리를 처음 섭외하는 터라 여러 가지 준비로 부산했다.
화제가 되고 시청률이 보장된 터라 그런지 상당히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방송의 분위기는 아침 방송과 뉴스 인터뷰의 중간 정도 되는 것으로 협의됐다. 내용은 진지한 부분을 다룰 예정이었지만 세트 자체는 편안한 분위기로 꾸며졌다.
그래도 방송이라고 사전에 이것저것 숙지할 게 많았다. 입장할 동선이나 인터뷰 때 질문할 내용이나, 기타 등등. 이후에는 방송을 더 하기 싫단 생각이 팍팍 들었지만 기왕 하는 거 뭐든 제대로 하자는 게 내 주의라, 열심히 준비했다.
“시간 됐습니다.”
AD가 오더니 나를 세트 뒤쪽으로 안내한다. 앞쪽에서는 스탠바이라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뭐가 시끄러웠다.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녹화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되요. 실수하시면 저희가 잘 편집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PD가 저자세라 그런지 AD는 더욱 깍듯하다.
곧 사회자가 날 불렀고 나는 세트 앞으로 나갔다. 가볍게 미소 지으며 나갔는데 조명이 생각 이상으로 눈부셔서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자리에 앉자 MC가 입담을 발휘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농담도 잘 던지는 게 상당히 능수능란했다. 그러고 보니 어쩌다 TV를 틀면 가끔 봤던 듯하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누군지는 모르겠다. TV를 평소에 봐야 알지.
“오늘 분위기 어떠십니까? 유제아씨.”
“좋네요. 편안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호식씨와 비교하면 어떠세요? 연말에 저랑 대상을 다투실 분인데.”
“…….”
너도 모르는데 강호식이 누군지 어떻게 아냐.
아마 이 눈앞의 MC와 라이벌 구도를 연출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만. 그는 내 표정을 보고는 상황을 눈치채더니 재치 있게 상황을 넘겨버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자신을 모른다는 점에 약간은 당황한 듯했다.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몇 개 더 잡아야지 싶습니다. 하하하.”
더 멀뚱멀뚱하게 대응하긴 예의가 아닌 듯해서 대강 웃고 넘겼다. 다행히 그 후로는 본격적인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준비해간 얘기를 차분히 설명했다.
메타트론 패밀리에 대해, 벌레를 패밀리로 받아들인 결정에 대해, 향후 목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건 좋았는데 방송 분위기가 점점 시사 프로그램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애초에 그리 가자고 했으니 불만은 없겠지.
그런데 대화를 해보니 방송의 포커스 자체가 메타트론 패밀리보다 유제아에 맞춰진 듯해서 속으로 약간 의아했다. 그리고 MC가 내게 인터넷의 유명인,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뜨는 인물이란 호칭을 붙일 때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통령보다 더 유명하다고 했을 때, 그냥 방송이라 오바하는 건가 싶었다.
솔직히 궁금증이 피어올랐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곧 끝나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순서가 남아있었다.
“자, 이번에는 유제아씨를 보러 와주신 깜짝 게스트를 모셔보겠습니다.”
뭐? 지금 무슨 연예인 출연하는 예능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야. PD를 향해 눈을 부라리자 그는 연신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인다.
어이없어서 방송을 끊을까 했지만 녹화 흐름이 너무 좋아서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터무니없는 짓을 하면 다 엎어버려야지.
“누군지 정말 기대되지 않습니까?”
“네, 정말 기대가 되네요. 으득.”
약간 이를 갈며 대답하자 국민MC라는 사회자가 식은땀을 흘린다.
“자, 나와 주세요!”
MC의 말과 함께 나온 게스트는 정말 뜻밖의 인물이었다.
바로 지아 누나였다.
긴 흑발을 찰랑이며, 정장을 입은 미모의 여성이 우아하게 걸어 나온다.
내 누나지만 천사랑 비교해도 자웅을 겨뤄볼 만한 절색이다. 그런 누나인데 풀 메이크업에 스튜디오 조명 아래서 보니 동생인 나도 입이 떡 벌어졌다.
얼굴 하나는 타고났구나, 역시.
스텝들의 시선 역시 일제히 누나에게 쏠린다. 민감한 내 귀에는 소리 죽여 감탄하는 게 모두 들렸다.
“제아야.”
화사하게 웃으며 등장한 누나는 MC와 인사를 하더니 내 옆자리에 앉는다.
이거 완전 아침 방송 분위기네.
어쩐지 연예인도 아닌데 깜짝 게스트라니, 가족이라 그랬구나. 내가 TV는 잘 안보는데 가끔 아침 방송은 시간대가 맞아서 몇 번 봤다. 아침 방송에는 기구하거나 특이한 사연을 가진 일반인도 많이 나오는데, 가족이 이런 식으로 깜짝 출연하곤 하더라.
꼭 깜짝 출연은 아니더라도 중간에 나와서 우리 아빠는 이래요, 우리 엄마는 이래요 등등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역할이었다.
이제 보니 PD녀석이 프로그램이 너무 딱딱해질까 싶어 누나를 섭외했던 듯하다. 이 문제는 녹화가 끝나면 제대로 따져봐야겠다.
“정말 놀라운데요. 미모의 누님께서 출연해 주셨습니다. 혹시 소속사 같은데 이미 들어가 계신가요? 조만간 방송에서 볼 듯한데요.”
“호호호, 과찬이시네요. 안산남부지검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 검사님이셨구나! 안타깝네요. 저는 꼭 방송에서 볼 줄 알았습니다만. 이 정도 미모는 제가 방송 10년 하면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주 지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난리가 났다.
옆에서 나는 누나의 가증스러운 내숭에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걸 애써 참고 있었다. 분명히 내 가족이 맞는데 어째 말하는 거나 태도가 이리 낯선 건지.
지금 누나는 아주 우아하며 지적인 여성 같았다. 너무 매력적이라 MC조차 흐뭇한지 입을 벌리고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말만 안 하고 있지 속으로 아이구, 예쁘다란 말을 연신 되뇌고 있어보였다.
한껏 그리 너스레를 떨던 MC는 누나에게 가족사나 내 과거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나는 일단 누나가 어떻게 처신하나 보기로 했다.
누나 성격에 생각 없이 방송에서 떠들고 싶어 출연했을 리 없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세상에 제아랑 저 둘 뿐이었죠.”
거기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구구절절한 사연의 감성팔이였다.
나는 듣다보니 누나가 우리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포장하려는 것일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나는 추억에 잠겨 잠자코 있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사실 아리송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곧 누나는 그때 겪은 여러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돈이 다 떨어져서 김치도 집에 없었거든요. 제아가 김치를 좋아하는데 배추가 그 해에는 유난히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양배추로 김치를 만들었어요.”
“양배추요? 그걸로 김치가 만들어지나요?”
“네, 의외로 먹을 만하답니다. 제아는 처음 보는 양배추 김치도 묵묵히 잘 먹어주더군요. 누나로서 미안하고 고맙고….”
약간 말꼬리를 흐리는 누나.
와, 저 가식….
지금 들으면 미담 같지만 누나의 양배추 김치는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나는 그때 철도 없어서 못 먹겠다고 짜증을 냈고 화가 있는대로 난 누나와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팩트가 어찌 불우했던 남매의 서글프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각색되는 걸까. 그 사연에 낚인 MC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내게 묻는다.
“양배추 김치는 어떠셨어요?”
“나쁘지 않습니다. 그냥 양배추에 매운 양념해서 먹는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문제는 익으면 맛이 없다는 거랄까…. 익기 전에는 샐러드 느낌인데, 발효된 양배추는 참 난처했죠. 그래도 먹을 게 그것밖에 없어서요.”
옆에서 누나가 거들어줬다.
“맞아요. 라면도 꼭 반으로 나눠서 끓여먹곤 했죠. 전기도 끊겨서 촛불을 켜놓고 있을 때도 있었고… 추운 날에는 버너로 물을 끓여서 방 한 가운데 뒀었어요.”
“물이요?”
“네, 버너 불로는 방이 따뜻해지지 않으니까요. 물을 끓이면 온기가 방에 돌거든요. 뭐, 식으면 추운 건 똑같지만요.”
얘기는 그렇게 진행됐고 곧 내가 왜 하이에나가 된 건지로 들어갔다.
지아 누나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는 듯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역시 수상하다.
“힘들지만 그래도 저는 제아랑 둘이 있으니까 버틸만 했어요. 그런데 결국 제아가 어느 날 말하더군요. 하이에나가 되겠다고 말이에요. 진짜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