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어른 흉내
저마다의 표정이 아리송했다.
“사랑 노래네.”
“그러게, 애절하다.”
“뭐, 요새 애들이 빠르다지 않냐.”
“음···.”
다들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옷을 억지로 입었다거나,
엄마 화장품을 몰래 바른 초등학생,
아직 수염도 채 자라지 않았는데, 아빠 면도기로 턱을 베인.
한 마디로,
‘어른 흉내.’
모두가 진혁의 얼굴을 살폈다.
잔뜩 좁아진 미간.
이미,
꼭지가 돌아버린 것 같았다.
“뭐, 제법 들을 만은 하네.”
“그러게, 연주도 잘하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
“애들 수준이라고 치면, 그래도···.”
“이거 완전히 엉망인데?”
“그렇긴 하지···. 어···. 응?”
갑자기 끼어든 진혁의 적나라한 평에, 영혼 없이 말을 잇던 상정이 ‘아차’하며 입을 닫았다.
아련한 사랑을 되짚으며 과거의 거리를 걷는다는 노래는, 어설프게 어른들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진혁의 미간이 더 좁아졌고,
저마다 딴 곳을 쳐다봤다.
“아니, 3년 전에 만났다면, 적어도 중학생일 때 아냐? 은서는 초등학교 다닐 때겠네? 무슨 흉내를 내도, 뭔, 그 첫 키스가 기억나? 키스? 이거 완전 엉망진창·········.”
진혁의 신랄한 비판이 시작됐다.
자기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터진,
리더의 가차 없는 비평은 멤버들의 몸을 움츠리게 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자,
모두가 비슷한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저 애들에게 직접 연결해주면 안 되겠다.’
***
“그 동네에 그만큼 모일 장소는 있어?”
“어···. 없네?”
“거봐. 그냥 무작정 하면 안 된다니까?”
얼마 전, 새로운 앨범을 낸 래퍼 ‘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 회사에서 기획한 거라서 맘대로 하면 안 돼. 나도 도와주고 싶지. 그 연습실 있을 때, 할아버지한테 도움도 많이 받았었는데.”
입을 꾹 닫은 다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방법이 없을까?”
“나도 거기 가봤으니까 이러는 거야. 그 동네 길도 좁아터져서 스무 명만 모여도 아슬아슬할걸?”
“아니면, 거기 나무 있는 언덕이라도···.”
“야! 경사진 흙구덩이에서 춤추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악! 그럼 어떡해!”
“그걸 왜 나한테 난리야!”
“아! 그건 미안하고!”
“쳇!”
“미안···.”
발작하던 다온이 축 늘어졌다.
로이도 그런 그녀를 보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뭣보다, 내용을 들어보니 단발성으로 기획해서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홍대와 같은 문화적 거리를 만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지속성’이었다.
또는, 그걸 뛰어넘는 ‘상징성’이 필요했다.
자신들이 반짝 사람들을 모은다고, 그 대단한 공무원님들이 말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야.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알아.”
“포기해.”
“후···.”
다온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 앞에서 자신 있게 소리쳤는데,
현실적인 부분에서 꽉 막혔다.
‘그 아저씨는 어쩌고 있을까?’
다온이 소파에 몸을 파묻고, 핸드폰을 들었다.
며칠째 이 문제에 정신이 팔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밀린 웹툰이랑, 웹소설이라도 보며, 마음을 달랠 생각이었다.
“응?”
핸드폰 화면, 유투부에 뜬 알림을 지우려다, 어떤 ‘타이틀’을 보게 된 다온의 눈이 동그래졌다.
[토끼의 정체는 과연 누구인가?]썸네일의 가면은, 다온도 잘 아는 가면이었다.
***
한바탕 혹평을 쏟아낸 진혁은, 한참 말이 없었다.
몇 번이고 노래를 다시 들었고, 그럴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거나 끄덕이기도 했다.
다만, 일그러진 표정은 도저히 풀리질 않았다.
갑자기 진혁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자, 상정이 팔을 잡았고, 장하가 서둘러 그 핸드폰을 빼앗았다.
“어. 너 맹세했다.”
“일단, 폰은 압수.”
장하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노려보며, 씩씩대던 진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언뜻 듣기에 멜로디라인은 잘 잡았다.
하지만, 그 제각각인 감정과 어설픈 흉내는, 도무지 좋게 들어줄 수가 없었다.
금쪽같은 딸이,
그런 수준 이하의 곡으로 데뷔하게 된다니.
진혁은,
딸과 관련된 이상,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씩씩대던 진혁의 숨이 조금 잦아들었다.
“자. 진정했으면, 내 말 들어봐.”
상정이 진혁의 팔을 놔주며, 말했다.
“너 참견하고 싶어 죽겠지?”
진혁이 상정을 노려봤다.
“이 형님이, 너 대신 애들 도와줄까?”
팔짱 낀 상정이 턱을 세웠다.
이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일 것이다.
“어떻게?”
“니가 전하고 싶은 걸 내가 전하면 되지?”
“어···.”
“어차피, 나한테 부탁한 거야. 그 피드백.”
“그럼···.”
“너의 아바타가 되어주마.”
“아바타?”
“그렇게라도 할 거면 도와주고.”
선하가 손뼉을 짝 쳤다.
“그럴듯하네. 우리 남편.”
진혁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상정이 입꼬리를 올렸다.
***
홍대에서의 버스킹도 충분히 화제는 되었었다.
다만, 그들의 문화는 조금 마이너한 경향이 있어서, ‘대중’적으로는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버스킹 문화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그 지역만의 감성이 강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중파에 나오는 가수들에 비하면, 어차피 아직 데뷔하지 못한 아마추어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영상으로 전달되는 분위기로는 한계점이 명확했다.
큰 연출이 섞인 것도 아니었고,
그들의 퍼포먼스가 자극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가슴 깊이 느꼈지만, 영상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어떤 울림.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공연영상은, 잠시 귀를 즐겁게 하는 정도였다.
편곡이 예술이니, 연주가 좋다느니, 보컬의 실력이 엄청나다느니, 하는 말들은 음악인 또는, 관련 업계의 전문가들에게서나 오가는 말이었다.
이미, TV에서는 훨씬 더 고급스러운 음질에 디지털로 정형화된, 깔끔한 연주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남역의 영상이 뜨자,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뜬 것들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생 영상들.
편집도 되지 않았고, 마구 흔들린 영상들이 SNS와 유투부를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이번 영상은,
일반적인 대중에게도 폭발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 이유가 ‘테일’이었다.
[보기 힘든 강남 버스킹. 테일 난입. 발라드 황제의 생라이브.]하루 전에 올라온,
[홍대를 뒤집은 대박 버스킹!]이라는 제목은 패스했을지 몰라도,
오늘 올라온 ‘테일 생라이브’라는 동영상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이 동영상으로 인해,
동물 가면 밴드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덩달아,
어제 패스했던, 홍대 버스킹 영상들도 조회 수가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단 이틀 만에,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존재를 알리게 된 것이다.
***
“니네 기획사에서 키우는 애들이냐?”
“뭐?”
“홍대에서도 대단했다던데? 그 애들.”
“흠···. 애들이라 불릴 나이는 아니고, 우리 기획사 소속도 아니고.”
“응?”
“나도 정확히는 몰라. ‘일단은’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럴 리가. 내가 아는 테일은, 제대로 준비된 무대가 아니면, 절대로 노래할 리 없는 놈인데. 그런 놈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남의 공연에 난입해?”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추궁하는 친구를 보며 테일이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궁금했으면, 열 두시는 넘어야 일어나는 놈이 이 시간에···.
얼굴을 보아하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았다.
연락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아. 전화기 꺼놨구나.’
새벽부터 계속해서 울려대, 짜증 내며 꺼버린 기억이 났다.
지금 들이닥친 친구만큼이나 궁금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었다.
“너도 흥얼거렸잖아?”
“그거야···.”
“그 정도 되는 공연에, 끼어들지 않을 가수가 몇이나 되겠어?”
“뭐, 그렇긴 한데···.”
“끝?”
진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지! 아니지! 음향이 좋지 않다고, 공연 당일에 연기까지 했던 놈이, 생목으로 끼어들 정도로? 믿을 걸 믿으라고 해라.”
“분명히 해야 할 건, 니가 거기로 끌고 갔다?”
깜빡 넘어갈 뻔하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서둘러 대꾸하던 진훈의 말문이 다시 막혔다.
강남에서 보자고 한 것도 자신.
그 공연으로 끌고 간 것도 자신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진짜 모르는 사람들이야?”
“일단은.”
애매모호한 대답만을 남긴 테일이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 쫌!”
진훈이 발작하듯 소리쳤고,
이불속 테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기까지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말해 줄 수가 없었다.
***
“아빠! 출근 잘해!”
“어? 아···. 어!”
“왜? 뭐 할 말 있어?”
“아니···. 그···.”
“근데 왜 그러고 서서···.”
현관 입구를 막듯 서 있던 진혁이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아···. 잠깐 딴생각 좀 하느라···.”
“흠···. 뭔가 있는데···. 아무튼 나 먼저 가요!”
“어. 차 조심하고.”
“아빠도 조심하시고!”
은서가 나가고 나자, 진혁이 참았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녀 사이가 파탄 날 거야.’
친구들의 말을 떠올리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
“야! 학원에서 집으로 전화 한 거 아니지?”
-응. 엄마한테서 별 얘기 없었다니까?
“휴. 일단 알았어.”
-왜? 꼰대 눈치챘어?
“너 울 아빠한테 꼰대라고 하지 말랬다.”
-아. 쏘리. 입에 붙어서···.
“몰라. 아침에 뭐 할 말 있는 거처럼, 그래서···.”
-암튼, 우리 엄마한테는 신신당부해놨으니까 걱정하지 마!
“응. 있다 보자.”
은서가 입술을 질끈 씹으며, 다가오는 버스를 바라봤다.
방금 통화한 친구의 엄마가, 지금 다니는 학원의 원장이었다.
미리 사정을 설명했고, 굉장히 흥미로워하시며 은서를 응원해주셨다.
평소, 성적도 잘 나왔고, 모범적인 은서였기에, 친구 엄마도 아이를 믿고 이번 계획에 동참해주신 거였다.
어차피,
본선에라도 올라가게 된다면, 아빠에게 얘기해야만 할 것이다. TV에 얼굴이 나올 테니···.
그때까지만 비밀을 지켜주기로 하셨다.
만일 그사이 성적이라도 떨어지면,
바로 아빠에게 알리겠다는 단서는 붙었다.
일단, 가슴은 쓸어내렸지만,
역시 사람은 죄짓고는 못 사는가 보다.
학원을 빼먹기 시작한 날부터, 아빠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은서였다.
***
“법안은 통과됐습니다.”
“그래? 그럼 도로도 그 가운데 나는 건가?”
“네. 다만···.”
회장 김충석에게 보고하던, 창천 건설의 부사장이 말꼬리를 늘이자, 서류를 살피던 충석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희가 지분을 많이 확보한 건 맞으나, 청강 건설도 약 20퍼센트의 지분을 남겨 뒀었습니다. 물밑에서 협상은 하고 있지만, 넘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도로 인근의 개발권인가?”
“네. 거기서 한 번쯤 경합을 벌일 것 같습니다.”
김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우리가 더 잘하지 않나? 공무원들 입맛에 맞춰서 설계 뜨는 거.”
청강 건설은,
국가 정책이 끼어있는 현장만큼은 그다지 강한 힘을 쓰지 못했다.
이유는,
그 알량한 친환경적 기업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나라에서 하는 일은, 그들의 입맛에 맞춰줘야 하거늘,
청강은,
자신들의 신념을 너무 중시했다.
“물론 국가 정책 사업인 만큼, 저희가 밀릴 일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단가만 봐도 저희 쪽이 빼먹을 구석이 더 많을 겁니다.”
회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장 윗선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자리에 맞는 ‘뽀찌’를 적당히 챙기기 마련이었다.
이런 면에서도, 청강은 한 수 아래였다.
“그 지역 부동산 쪽은?”
“한 명 섭외했습니다. 그 지역 부동산 업자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지역 유지들과도 친밀한 사람입니다. 지난 유성건설 주상복합 입찰 때 동네 건달들도 동원한 것을 보면, 수완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
부사장이 올려놓은 파일의 한구석을 바라봤다.
[창조 공인중개사 대표 최광엽]이름까지 ‘창조’라···.
느낌이 괜찮았다.
“아무튼, 뒤탈 안 나게 잘하고.”
“네. 회장님.”
김충석이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서울에서도 가장 공을 들였던 응수동에, 창천의 왕국이 세워지기 일보 직전까지 왔다.
자그마치, 10년을 웅크린 대가였다.
각 재벌가는,
나름 서울 땅 이곳저곳에, ‘랜드마크’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이제야, ‘창천’에게도 그런 상징적인 ‘땅’이 생기는 것이었다.
책상 위,
펼쳐진 지도를 바라보며 그 위에 세워질 높은 아파트와 상가들을 떠올렸다.
외벽엔, ‘Blue Sky’라는 글자를 새긴 건물들이 지도위에 그려졌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
며칠 후.
신촌에 동물 가면 밴드가 나타났다.
옛날 향수 가득한, 국내 인기곡들을 트랜디하게 편곡했고, 엄청난 공연을 선보였다.
소름 돋는 가창력.
사람들의 심장을 쥐었다 폈다 하는, 예술적인 라이브.
그들을 구경하던 관중들은, 지난 두 번의 공연을 이미 알고 있었다.
분명, 마지막 곡이 끝날 무렵 도망칠 것이 뻔했다.
몇몇이 퇴로가 될만한 곳에 미리 서 있었고, 공연 막바지에 다다르자 맨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물 샐 틈 하나 없이, 꽉 막힌 인의 장벽.
결국,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밴드는, 두 손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이전의 공연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데도 확신했던 건, 역시 소문대로 엄청난 공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나타났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나름 역사적인 순간에 자리할 수 있다니.
모두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포위당한 밴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면에 손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