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0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91)
Chapter 219. 재앙 사냥 II
“아무 생각 말고 일단 잘 자.”
“주변 상황을 보다가 급하면 바로 깨울 테니까, 부담 없이 자.”
쥴과 툴로쉬의 권유는 투란의 예상보다 강했다.
―가능한 한 몬스터의 형상을 오래 지속하길 바라는 모양이군. 뭐, 상식적으로 옳기는 해. 네가 비정상적이고 몰상식한 특성, 비전을 지녔다고 말하면 그냥 바로 보내려나?
드라고니아가 미묘하게 놀리는 것처럼, 하지만 그 내막은 꽤 신중하게 짚어 말하고 있기도 했다.
때문에 투란은 그냥 얌전히 누웠다.
하이로드와 엘더 헌터가 섣불리 깨울 일도 없을 테지만, 간단히 이 은신처를 들통 내고 난리를 쳐 댈 리도 없고…… 모처럼 찾아온 샛잠의 여유를 거부할 까닭을 찾기 어렵기도 하잖나.
‘번개처럼 지나가지 않는 잠이었으면 좋겠네.’
눈을 감으면서 투란이 기원한 것은 이 정도였다.
* * *
‘꿈?’
현실과는 확실히 격리된 풍경이었다.
어딘가 사실적이지만, 현실의 파편을 가져와 꾸며 놓았을 뿐인 듯했다.
기억의 조각이 망각의 망치에 처맞고 흩어져 있는 것일까?
이어지지 않고 흘러가는 풍경이었다…….
시커먼 어둠이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하늘.
사방을 불태우듯이 붉게 물들인 채로 치솟는 폭포.
모든 것의 중심이란 듯이 붉은 휘광(輝光)을 두른 해는 지상에 박혀 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투란은…….
“자라.”
느닷없이 마음에 새겨지는 한마디와 함께 꿈을 지운 채로 잠의 심연에 빠져들어야 했다.
* * *
“음?”
눈을 뜨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어렴풋이 꿈이 기억날 듯 말 듯 한데, 그보다 먼저 느껴지는 바가 투란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미묘하게 코끝을 맴도는 피 내음, 바람처럼 스며 오는 상쾌함…… 뒤엉킨 기묘한 느낌은 아련하기도 했고 유쾌하기도 했다. 그 까닭을 전혀 알 수 없지만, 딱히 파고들어 알고 싶다는 생각 또한 들지 않는다.
“깼냐?”
간단히 묻는 소리에 투란이 돌아보니, 으적거리면서 뭔가 뜯어먹고 있는 쥴이 탁자 위에 걸터앉은 채였다. 잠은 잘 잤는가 궁금하다는 듯한 그 눈길에 투란이 슬쩍 어깨를 꿈틀거리고 고개를 이리저리 누이면서 중얼거린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상쾌한데요? 자는 동안 무슨 마법에 걸려 있었나 싶기도…… 쥴?”
쥴의 고개가 끄덕여지다니, 정말 누가 마법이라도 걸었단 말인가!
어이없어하는 투란을 보며 피식 새는 웃음과 함께 쥴이 입안을 비우고 말한다.
“그 담요, 자는 동안 깔고 덮고 있던 그거 아티팩트야. 엘더 헌터 녀석들에게 대마도사가 친절하게 만들어 준 것이지. 느껴서 알겠지만 몬스터 로드에게도 넉넉하게 그 효과를 들이대는 굉장한 마도구이고 말이야. 어때? 그 정도면 며칠 푹 쉬고 깨어난 것 같잖아? 며칠 마구 날뛰어도 될 것 같잖아?”
“딱 그런 느낌이네요.”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울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한 담요를 새삼 투란의 손끝이 더듬는 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마력도, 마법의 힘도 느껴지질 않는다!
―불간섭(不干涉)의 비술, 아마 그렇게 불리는 괴이한 마법이 걸린 탓일 거야. 마법을 걸어 놓은 본인조차도 수놓은 문양을 통해서 담긴 술식이 뭔가 겨우 알 수 있다는 비술이다. 몬스터 로드도 그렇지만, 어지간한 마법 해제의 술식도 안 먹혀. 단지…… 그냥 불태우거나 찢어 버릴 수는 있을걸?
‘그게 뭐냐!’
투란은 슬쩍 침상에서 발을 내리고 얼굴을 두 손으로 비비적거리는, 잠 깨는 시늉과 함께 으르렁거렸다. 드라고니아의 설명 끝자락이 너무 이상하니까. 기껏 마법을 걸어 잘 감춰 놓고는 그냥 찢고 태우는 일에는 대비가 없다니…… 몰상식하잖나!
―비술 이외의 마법은 그냥 일반적인 수준이니까. 그 마법을 보호할 뿐인 비술이란 이야기야. 대마도사 카엘이 왜 대마도사인가를 알게 해 주는 비술이라고도 하지.
‘정상이 아니야, 정상이!’
후욱, 투란은 일어서면서 허리를 펴고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쥴이 이것저것 잔뜩 말아 놓은 간식의 마지막을 한입에 몰아넣고 뱀처럼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고는 묻는다.
“바로 갈 테냐?”
“다른 일 있어요?”
투란이 간략하게 되물었다.
쥴은 다시 피식 새는 웃음을 흘리고 고개를 젓는다.
투란이 문득 돌아보니 툴로쉬가 없었다.
“툴로쉬는?”
“경계. 나도 여기 있고 너는 자고 있고, 이 쉘터에 툴로쉬밖에 없잖아? 올라가 봐, 바로 툴로쉬가 엎어져서 등짝을 긁고 있을 테니까.”
쥴의 이야기에 조금 쓸데없는 부분이 많다 느끼면서도 투란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묻는다.
“교대 안 해 줘요?”
“음? 뭐…… 나도 나가 보기는 해야겠지만…… 경계는 영 취향이 아니라서.”
키득거리며 장난치는 듯한 대답을 하는 쥴이었다.
이번에는 투란이 픽 하고 새는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혹시 로드 오브 몬스터나 로열젤리 슬러그에 대해서 달리 해 줄 말은 없어요?”
“삼키지 말라는 상식적인 말은 안 해도 되겠지? 하이로드에게 기대하는 말이라면 역시 삼키고 먹히지 마라, 이런 것 아니겠냐?”
낄낄거리면서 나오는 말투가 여전히 장난스러웠지만 쥴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과 다른 진지함과 신중함이 맺혀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되물어야 했다.
“쥴, 몬스터 로드인 자신에게 어느 쪽을 권하고 싶어요?”
“삼켜. 먹힐 것 같으면 춤추는 산맥 깊은 곳으로 도망치면 되니까.”
빙긋, 장난기 없는 사나운 웃음과 함께 나온 대답이었다.
투란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를 되묻지도 않았다. 그저 쥴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들었으면 된다는 듯이 투란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마법의 반지를 사용해 복장을 바꿀 뿐이었다. 잠들기 전의 꽤 편안했던 차림새에서 사냥을 떠나는 몬스터 헌터의 것으로.
쥴도 더 말하지 않고 나서는 투란의 한구석을 지키듯이 따라 움직여 줬다.
쉘터의 꼬인 계단을 올라가 뚜껑처럼 닫힌 문을 열고 나가니, 곧바로 반쯤 엎드린 듯한 묘한 자세인 툴로쉬가 보였다. 저편을 향해 눈가에 얹은 고글을 이리저리 만지며 겨냥하는 듯한 모습이 계속해서 넓은 지역을 관측하는 중으로 보였다.
“툴로쉬, 별일 없죠?”
투란이 슬쩍 그 곁에 자세를 낮추고 앉으며 물었다.
달칵, 고글을 이마 위로 젖혀 올리면서 툴로쉬가 투란을 올려다봤다.
엎드리고 상체를 살짝 들어 올린 채로 툴로쉬는 투란에게 묻는다.
“몸 상태는?”
“상쾌해요.”
“다행이군. 우리 머리 위로는 깨끗해. 높이 올라가서 보이는 대로 바로 경로를 잡으면 될 거야. 예정과 다른 일은 아직 없으니까…… 내려다보다가 뭔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돌아와. 알았지?”
“그럴게요.”
간단히 대답하며 투란은 앉은 그대로 날개를 펼쳤다.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흘러나온 투란의 등 언저리에서는 옷감이 자연스럽게 지워진 듯이 보였다.
“쥴, 이 반지 정말 마음에 들어요.”
파아앙, 몇 마디와 함께 날개가 바닥을 쓸어 내는 돌풍을 일으켰다.
툴로쉬는 눈살을 찌푸렸고, 쥴은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혀를 차며 말한다.
“저건 또 어디서 얻은 거야…… 거의 소용돌이 군도 근처에서나 볼 수 있는 바다 괴물일 텐데…….”
“예? 쥴 님, 저게 그 폭풍을 타는 깃이라고요?”
툴로쉬가 움찔하며 확인하듯 물었다.
쥴은 툴로쉬가 약간이라도 놀라는 것이 희한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래, 그렇게도 불리지. 그런데 왜?”
“아뇨, 그저…… 가끔 폭풍을 타고 춤추는 산맥으로도 한두 마리씩 흘러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북벽 산맥 너머에 서식지가 있고, 거기 빙설(氷雪)과 한파(寒波)를 견디는 폭풍을 타는 깃의 무리가 있다는 말도 들었거든요. 흐음.”
“거긴 대마도사의 금역이잖아? 거기 저 날개 달린 놈들이 있다고?”
쥴이 다소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툴로쉬도 ‘그러니까요.’라고 갸웃하면서도 깊은 생각이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덩달아 쥴도 뭔가 기억난다는 듯이 ‘설마 그럴 리가…… 투란, 저 녀석이 설마…….’라고 웅얼거렸지만 너무 흐릿해서 그저 숨소리처럼 흐트러질 뿐이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서 투란은…….
‘뭔가 낯설어! 하지만 익숙해!’
날개에 대한 해괴한 감상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뭔 헛소리야? 그보다 이제 어쩔 거냐고. 얌전히 둘이 계획한 대로 따라갈 거냐? 아니면 무슨 음흉한 수작을 부리려는 거냐?
‘음흉? 누가 음흉해! 난 그저 최선을 다할 뿐!’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일단 더 높이!’
투란의 날개에 금빛 비늘이 살며시 맺혀 들었다.
바람이 저절로 날개 안으로 스며드는 듯했고 투란은 치솟았다.
지상의 풍경이 작은 탁자 위에 올려진 지도 안에 갇힌 것처럼 오그라들 지경에 이르러서야 투란은 상승을 멈췄다. 발아래에 구름 몇 점이 깔려 있었고, 수백 미터의 거대한 몬스터도 손톱보다 작은 반점처럼 보일 뿐이었다. 때문에 그 반점 주변에 어른거리는 것은 그저 티끌에 불과할 뿐!
강화된 시각을 통해 그 티끌의 형상을 주욱 둘러보고 전체적인 범위를 가늠하는 채로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날개가 한층 더 견고하게 주변의 바람을 끌어모은 듯이 허공을 움켜쥐었고, 살짝 더 높은 곳으로 투란을 옮겨 갔다.
―야, 뭘 하려는 거냐고!
드라고니아가 조금씩 불안하다는 듯이 외쳐 묻고 있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면 좋겠다 싶었던 일.’
슬쩍 자신의 손가락을, 거기에 꽂힌 백금의 반지가 아다만투스에 둘러싸인 채로 그 마법을 거침없이 발휘하여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에 영롱하다 싶을 정도로 반응해 오는 것을 느끼며 투란이 대꾸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야, 왜 갑자기 문장을……!
으르렁거리려던 드라고니아는 금방 당황했다.
투란이 돌연 날개를 거둬들였고 그 형상을 해체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마력 장벽을 펼치며 허공에 부양(浮揚)하는 방식으로 바꾸는가 싶더니 몬스터 엠블럼을 바꾸고 있는 탓이었다.
‘천칭’으로부터 황금매로.
순식간에 투란의 가슴과 등 쪽으로 금빛이 아롱지며 드러났다.
높은 하늘의 훤한 햇빛에 한층 더 반짝이는 듯한 문장을 느끼면서 투란은 문득 생각했다.
‘나, 하루 정도 잔 모양이다? 한참 자고 일어났는데 해가 오히려 덜 뜬 것 같잖아?’
―그래, 툴로쉬도 쥴도 네가 완전한 기량을 발휘하려면 자신도 모르는 피로까지 완전히 덜어 내야 한다면서 그 마법 담요를 덮었지. 나로서는 방해할 까닭도 없었고.
윌 라이트의 마력을 통해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뇌리에 속삭여 왔다.
새로 구성해 낸 프로브가 투란의 주변을 맴돌았고, 그 프로브로부터 활성화된 감각을 공유하면서 투란은 자신의 마력 장벽이 원하던 바를 그대로 이뤄 낸 것을 확인했다. 당장 주변에서 무엇이 날아들어도 막아 내며, 날갯짓 없이도 허공에 못 박힌 것처럼 둥실거리는 상태…… 더불어 까마득한 저 아래에서는 아무리 강화된 시각이라 하더라도 살갗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과 황금매의 문장이 반짝이는 것을 분별할 수 없도록 적당히 시야를 방해하는 효과까지!
‘자, 그럼 해볼까!’
파스슷, 투란의 살갗이 금방 거뭇하게 물들면서 검은 재를 얼룩덜룩하게 머금기 시작했다.
―블랙애쉬…… 아니, 마그마 로드라면 굳이……? 야, 야, 야아!
드라고니아가 잠시 지켜보고 의아해하다가 비명처럼 투란에게 외쳐 댔다.
하지만 이미 청각(聽覺)이고 뭐고 오감(五感)을 모두 닫아걸었다는 듯이 투란은 집중할 뿐이었다. 지난날 황금매의 문장을 얻고 살아남기 위해서, 간신히 알아냈던 블랙애쉬와 마그마 로드의 관계를 활용하기 위해서 허우적거리다가 장시간에 걸쳐 삼켜 버렸던 마그마의 호수…… 투란은 그 형상에 집중하며 황금매의 문장으로부터 마력을, 몬스터의 정수를 가득 담은 형상을 끌어내며 허공을 채워 나가고 있었다.
파팟, 퍼펑.
거칠고 잘게 흩어져가던 블랙애쉬 덩어리가 곳곳에서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너무나 빠르게 거대해지는 형상은 그 폭발을 가볍게 무시하고 지워 버릴 뿐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질량을 품은 검은 결정질이 구름처럼 하늘을 메우고 질주하며 번져 나가는 광경, 그 아래로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짙어지는 상황…… 이 괴이한 현상이 수 킬로미터를 장악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단단하고 무거운 먹구름이 지상의 한 곳을 차지한 몬스터의 영역을 완전히 덮어 누르고, 몇 겹의 울타리를 만들 정도가 되었을 때…… 지상을 향해 용암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놈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