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61)
Chapter 233. 재앙의 왕자(王者), 열전 Ⅰ
‘검은 심장’의 마력은 격류(激流)를 흉내 내고 있었다.
물을 담기 위해 준비한 항아리를 통째로 삼키고 떠내려가게 만드는 격렬한 물줄기처럼 둘이나 되는 ‘보이드 엠블럼’을 가득 채워 터뜨리려 하는 것이었다.
마치 몬스터 엠블럼이 품고 있는 심연의 각인, 그 고대 마법이 삼켜 없앨 수 있는 한계를 알고 맞서는 듯한 분위기가 시커먼 혼돈의 마력에 가득 맴도는 셈이었다. 그 규모와 농도는 옛날에 ‘검은 심장’에 맞섰던 심연의 각인자들이 어떻게 찢겨 죽었는가를 아주 쉽게 추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본능인지, 그냥 경험하고 기억한 것인지 모르겠다만…….’
―몬스터 엠블럼은 심연의 각인이 아니지.
투란의 상념을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받아 잇고 있었다.
그 바탕에 심연의 각인이 놓여 있기는 하지만, 몬스터 엠블럼은 오직 심연의 각인만으로 이뤄진 마법이 아니었다. 단순한 방식으로 전이되어 계승해왔다지만, 몬스터 엠블럼은 대마법의 위상을 잃은 적이 없었다.
천재라 불리며 미래의 대마도사라 인정받던 이조차 몬스터 엠블럼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해석하지 못했기에 시간을 벌기 위해 금기마저 범해야 했을 대마법, 몬스터 엠블럼은 그렇게 불리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심오(深奧)한 비전(祕傳)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 로드의 염원, 간원, 탄원에 응답해주지.’
투란의 확신이 담긴 선언, 그 소리 없는 단언에 드라고니아는 소리 없이 투덜거렸다.
―썩을!
그 사이에 ‘해골’과 ‘거미’, 두 문장이 투란의 결연한 의지에 호응하고 답을 했다.
치솟은 투명한 너울이 ‘해골’과 ‘거미’를 한 겹 더 덮으며 덧씌웠다.
‘해골’은 인간을 바탕으로 한 골격에서 벗어나 변형했고, ‘거미’는 바다에서만 볼 수 있다는 독특한 품종으로 변이하고 있었다. ‘천칭’이 두 문장에 호응하며 강렬하게 맥동했고, 보석은 투란을 향해 날카로운 경고를 알려왔다.
‘응?’
투란은 마음 한편을 움직여 보석이 알린 바를 확인했다.
‘그릇’에 담긴 심장이 서서히 오그라들며 활력(活力)을 잃고 시들려는 조짐이 보였고 그 쇠약해지는 상태가 바로 느껴졌다. 왕의 마법이 한층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심장을 혹사시키고 그 생명력을 더욱 빠르게 소모하는 탓이었다. 이대로면 그냥 시들고 말라가다가 부서지고 끝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굳이 예견의 힘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명확했다.
‘하나 더 넣으면 되나?’
아주 간단히 생각하며 투란은 갸웃했다.
다만 저 ‘그릇’이 연이어 채워지는 심장을 다룰 수 있는가 하는 소소한 부분만 확실히 하면 될 듯한데…….
두근, 문득 투란은 비어버린 가슴에 새로운 심장을 대신해서 자리 잡고 맥동하는 마력의 파동을 느꼈다. 그 파동은 심장을 대신할 마력장벽에서 일어났고, 마력장벽을 자극한 것은 투란의 의지가 아니었다.
‘셰이아?’
갑작스럽게 마력장벽의 기반을, 그 기초를 이루는 바탕이 되었던 그림자 정령을 부르며 투란은 갸웃했다. 어째서 지금 셰이아가 투란을 부르는가? 늘 얌전히 따르던 그림자, 투란의 그림자와 겹쳐진 채로 의도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결코 나서지 않던 정령 셰이아가 무엇인가를 호소하려는 듯하니?
투란은 눈가를 덮쳐오는, 살갗을 타고 올라와 잠시 눈을 가리는 듯한 그림자의 흐름을 느꼈다.
* * *
“어라?”
맹한 소리가 저절로 투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주변은 회색을 덧씌운 듯한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모두가 정지한 듯한 세상,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가 맞지만 전혀 다른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옮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금방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다.
바로 앞에 뭉클거리며 치솟은…… 펄럭거리는 깜장 담요를 뒤집어쓴 탓에 그 속에 뭐가 담겼는가를 알 수 없는 모습이지만, 어딘가 아이 같은 분위기를 가득 담은 그림자를 보고 있었으니.
“셰이아?”
유일하게 떠올린 이름을 투란은 불쑥 소리 냈다.
깜장 담요의 윗부분이 농도와 채도를 변화시켰다.
아이의 얼굴 윤곽이 흐릿하니 그 변화된 색채 속에 드러났다.
“셰이아…… 에아…… 룬…… 맹약…… 이름, 이름, 이름.”
희미하게 단락된 음절로 셰이아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모두 밀어놓고 그 마지막에 강하게 울려오는 ‘이름’이란 부분에 저절로 집중할 수 있었다.
“아! 그렇지, 그랬었지.”
퍼뜩 깨닫고 나니 저절로 쓴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매달렸다.
셰이아뿐 아니라 정령은 모두 투란과 제대로 된 계약, 맹약을 나눌 수가 없었다.
투란 자신도 모르는 이름, 부여된 채라지만 투란이 들어본 적도 없는 진정한 이름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지금 알고 있잖은가!
셰이아는 그 ‘이름’을 알려달라고, 맹약을 원한다고 요청하는 셈이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 투란은 의아했지만 따져 묻지 않았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기 전에 지금 이 기묘한 상황을 셰이아가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는가조차 알 수 없었고,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나는 투란, 카이람 켈 로그람, 아카인 툴 로그람.”
하나가 아닌 세 이름을 동시에 읊어주며 투란은 마음을 전했다.
셋 중에 셰이아가 골라도 된다는 뜻을 담은 마음, 셰이아는 투란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바로 대답하고 있었다.
‘나’란 한마디가 울릴 때 셰이아의 얼굴 중심에 하얀 점이 맺혔다.
연이어 ‘투란’, ‘카이람 켈 로그람’, ‘아카인 툴 로그람’의 이름이 울릴 때마다 점에서 작은 선이 쑥쑥 삐져나왔다. 점 하나에서 돋아난 세 가닥, 그 세 가닥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금방 하얀 점에서 떨어져 나온 세 가닥 흰 금이 되었고, 서로를 맞물며 세모꼴을 이뤄냈다.
“으흠?”
투란은 잠깐 갸웃하다가 금방 웃었다.
그림자 정령이 세 이름을 모두 새기고 있다니, 왠지 욕심 많은 장난꾸러기 같잖은가!
하얀 점을 중심으로 이뤄진 흰 금 세 가닥이 이룬 세모가 빙글거리며 돌았고, 삐죽한 꼭지를 아래로 내린 채 멈췄다.
그 순간 투란은 다시 셰이아가 전하는 ‘이야기’를 알아야 했다.
온전한 말투랑 전혀 다른 또박또박 끊어지는 몇 마디로 이뤄진 ‘이야기’, 그러나 그 몇 마디의 의미는 곧바로 투란의 마음에 닿으며 퍼져나와 확실한 ‘앎’을 이뤄주고 있었다.
“그렇구나…… 알았어, 그렇게 하자.”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야, 갑자기……!”
드라고니아가 당혹스러운 말을 하는 듯했다.
아주 살짝 투란이 다른 짓을 했다는 것을 느낀 듯, 지금 상황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려는 드라고니아의 뒷말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휙, 고개를 돌린 투란의 눈길이 빠르게 아홉 ‘그릇’을 훑었고 그때마다 투란의 발아래에서 쭉쭉 뻗어나간 검은 가닥이 ‘그릇’ 안까지 스며 들어가며 심장을 감는 매듭이 되고 있었으니까.
그야말로 단숨에 저질렀는데, 그 매듭과 함께 아홉 심장이 한층 더 강하게 맥동하며 이글거리는 듯한 오러를 머금고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잖은가!
드라고니아는 그 상황과 함께 투란이 울린 마음의 소리를 들었고, 셰이아가 그림자를 짙게 하며 투란 주변에 확고하게 세력을 퍼뜨리는 광경을 확인했다. 이렇게 되면 그냥 침묵하는 편이 낫기에 드라고니아는 꾸욱 입을 다물었다.
“그림자 정령? 아니, 왜 정령을 네가……?”
카이람이 황당함을 감출 수 없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듣고 제발 답해달라는 의미가 살짝 어린 듯한데, 하이람이 그 곁에서 바로 혀를 차는 말투로 핀잔하고 있다!
“쓸 수 있다면 무슨 수단이든 다 써야 할 때잖아. 지금 출처를 따질 참이야?”
“누가 대답하라고 강압이라도 했냐? 그냥 어이없잖아! 왜 에아본이 자랑하는 비장의 한 수를 쟤가 갖고 있냐고! 저 정령은 에아의 룬조차 대행(代行)할 수 있는 특별한 녀석…… 존재라며?”
투란이 툴툴거리는 카이람을 흘깃 지나는 눈길로 훑어보니, 정말로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고통, 비탄과 절망 속에서 간신히 찾은 희망, 그 희망에 대해 조금 더 기대하고 싶어 하면서도 짙은 죄책감과 회의(懷疑)를 어쩌지 못하는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노출된 채였다.
때문에 투란은 왜 카이람이 굳이 말했는가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셰이아, 룬.’
이렇게 마음으로 전하자마자 셰이아는 곧바로 방금 맺었던 매듭, 심장을 감싼 아홉 가닥의 매듭을 독특한 박자로 울리게 했다. 심장의 고동과 함께 합주(合奏)하는 정령의 고동(鼓動)이 ‘그릇’을 둘러쌌고, 투란은 그 견고함 속에 한층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이람이 굳이 혼잣말처럼 떠들며 권할 만한 효과였다.
이런 투란을 보고 하이람이 살짝 쓴웃음을 머금고 중얼거림을 더한다.
“심장이 쇠락해서 버틸 수 없게 되면 재가 되고 말지, 그러면 새로운 심장으로 바로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어. 그래서 아주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아무도 안 물었거든?”
이번에는 카이람이 핀잔했다.
둘이 그러는 사이,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고개를 젓는 시늉을 했고 투란은 완연한 변화를 끝낸 두 문장에 더 깊이 집중했다.
검은 심장이 격류처럼 쏟아부은 마력을 더 커진 보이드의 영역으로 받아냈지만 결국은 모두 채워지고 넘쳐버릴 듯한 상황…… 그 보이드의 껍질이 깨지려는 순간에 두 문장의 형상을 채웠던 마력이 절반가량 사라졌다.
그리고 변화된 문장이 한층 더 맹렬히 움직였다.
‘해골’은 새로 돋은 뿔, 등을 향해 돋아난 새로운 팔, 배를 감싸듯 돋아난 새로운 팔과 두꺼워진 다리, 길어진 발가락 등의 기괴한 형태를 마구 휘두르며 비어버린 자리를 다시 채우겠다는 듯이 검은 심장의 뭉클거림 중심을 향해 내디뎠다.
‘거미’는 갑주처럼 두꺼워진 껍질, 여덟 가닥 다리 끝에 한층 더 날카로운 발톱, 벌침처럼 돋아났지만 갈고리처럼 휘어진 꽁지, 몇 겹으로 솟은 낫처럼 찰칵거리는 입마다 새로운 실을 흘려내고 그물을 자아내며 뭉클거림이 퍼져 있는 범위를 더욱 넓게 휘감고 조였다.
보석이 찰랑이며 붉은빛을 요동시켰고 로그람의 고대마법은 투란을 보좌하며 그 의지를 한층 더 깊이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전해왔다.
드라고니아가 금방 그 ‘이야기’를 공유받으며 투란에게 다시 가공해서 비춰줬다.
바로 투란의 입에서 쯧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왕의 마법에 영향을 끼쳐 형성된 ‘검은 심장’, 그 먹구름 같은 형태를 이루는 마력을 닥치는 대로 찢어 삼켜 없앤다 해도 봉인된 ‘검은 심장’에는 어떤 손상도 없잖은가. 그저 지금까지 왕의 마법을 물들였던 ‘검은 심장’의 방출된 마력을, 그 혼돈의 마력을 제거하는 것에 불과했다.
“몬스터 로드에게 왕 노릇 하라고 했으니까, 왕 노릇 하는 몬스터 로드가 저런 마력의 괴물을 어찌 다루는가 끝까지 보여줘야겠지?”
느닷없이 투란이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가 먼저 흠칫했다.
카이람과 하이람은 어리둥절했다.
투란이 가만히 손을 올렸고, ‘해골’과 ‘거미’가 한층 더 난폭하게 마력으로 만들어지던 ‘검은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삼켰다. 두 문장의 형상을 채우고 터뜨릴 듯이 격렬했던 마력의 흐름은 문장 속에 새로 생긴 검은 영역, 소용돌이치며 한없이 공허를 쏟아내는 듯한 영역 안으로 또다시 잠겨들며 사라져갔다. 마치 공허와 격이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검은 영역은 무엇인가를 가라앉히고 완전히 소멸시키는 허무(虛無)의 늪이었다. 그 늪의 영향으로 인해 더 크고 넓은 공허가 형성되고 퍼져나오는 듯한데…….
‘해골’과 ‘거미’의 안쪽에 잠겨들었던 ‘검은 심장’의 마력이 응축되며 공허의 형상이 한층 더 난폭한 격동을 일으켰다.
보석이 투란의 의지를 받아 붉은 광채 속에 다채로운 색조를 띠었고, 왕의 마법이 격한 반응을 했다.
“어?”
카이람이 먼저 한 소리를 냈다.
“잠깐, 너 설마……!”
하이람은 목소리를 높이며 놀랐다.
드라고니아가 둘이 느끼고 표현하는 경악을 이해한다는 듯, 투란에게 굳이 확인하겠다는 듯이 나직하게 묻는다.
“투란, 꼭 해야겠냐?”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또 누가 여기 서서 저 시커먼 것을 진정시키겠다고 심장을 뽑아야 할걸? 그런 사람이 없다면…… 뭐, 로그람만 멸망하려나? 아니면 로그람을 먹어치우고 자란 저 시커먼 것이 온 세상을 삼키려나?”
투란은 빠르게, 느긋한 말투와 다르게 번개가 스치고 지나가듯 읊조렸다.
드라고니아가 그 단호함과 선명한 결정을 납득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카이람도, 하이람도 여전히 경악하며 당혹을 쉽게 떨쳐낼 수 없는 듯한데…… 그럼에도 둘의 눈가에는 아련하게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미묘한 낌새가 스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돌보지 않는 듯한 투란의 손짓에 따라 왕의 마법이 오래된 봉인의 영역을 열고 있었다.
‘해골’과 ‘거미’가 그 영역을 향해 격렬하게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