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7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62)
‘검은 심장’은 해방(解放)을 느꼈다.
거대한 반석(盤石)이 갈라졌고 세계를 향해 마음껏 힘을 떨쳐낼 수 있는, 가로막고 있던 어떤 장애물도 사라진 해방…… 완벽한 자유가 ‘검은 심장’을 자극하며 보다 강렬하게 맥동시켰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맥동이 첫 굽이 파문을 일으킨 순간, ‘검은 심장’은 위축(萎縮)되고 말았다. 방출한 마력이 물질(物質)로서 현상(現象)의 일부가 되는 대신에 뭔가에 단숨에 삼켜지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검은 심장’은 본능 속에 각인된 기억을 바로 떠올렸다.
언젠가 주변을 감싸며 확장되던 자신을 찌르고 갈아 삼키던 작은 존재들…… 그들은 결국 ‘검은 심장’의 막대한 힘의 격류를 견뎌내지 못한 채로 쓸려나갔다. ‘검은 심장’의 힘에 삼켜져 그 언짢은 ‘틈새’가 뭉개졌고 사라졌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검은 심장’은 그때와 지금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힘을 지워내던 ‘틈새’를 지닌 존재들은 직접 날뛰며 다가온 적이 없었으며, 저렇게 난폭하고 흉악하게 ‘검은 심장’의 형질(形質)을 찢고 지워내며 위협적인 적도 없었으니까.
때문에 ‘검은 심장’은 이제까지 자신을 감금하던 봉인이 저 난폭하고 흉악한 존재, 그 존재가 지닌 ‘틈새’라고 할 수 없는 거대한 ‘공허의 세계’에 대항할 유일한 방벽인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 방벽은 오랫동안 물들여왔던 ‘검은 심장’의 힘을 더 이상 품고 있지 않았고, ‘검은 심장’을 위협하는 저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공허의 세계’에 휘둘리고 있잖은가!
존재를 시작한 이후 최초, ‘검은 심장’은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겸허할 수도 있는 인정, 이는 ‘검은 심장’이 단 한 번도 발휘한 적이 없는 보호본능을 자극했고 존재의 구명(求命)을 위해 기능하도록 했다.
분열(分裂), 자신을 연속적으로 분열하고 터져나오는 힘의 격류를 이용해 이 자리에서 탈출한다.
‘검은 심장’은 그렇게 폭주(暴注)와 도주(逃走)를 시도했다.
“웃기자는 거냐?”
투란은 어이없어 작게 으르렁거렸다.
봉인의 마석은 견고한 상자였고, 왕의 마법을 움직여 개방한 부분은 상자의 뚜껑이라 할 만한 한쪽 면뿐이었다. 그 안에서 ‘검은 심장’이 오랜 시간 동안 쇠약해진 형체를 드러냈는데, 그럼에도 꿈틀거리며 한껏 불길하고 사나운 마력을 방출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해골’과 ‘거미’가 한껏 변형된 형상을 들이대자 ‘검은 심장’은 스스로 쪼개지고 갈라지며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숨고 도망치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어찌 보면 봉인의 마석이 완전히 힘을 잃은 것이라 착각해서 저러는 것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상자 형태를 이해하질 못해서 마구 부딪히는 중이라 할 수도 있었다.
투란이 굳이 그런 사연을 짐작하고 헤아릴 필요는 없었다.
‘검은 심장’처럼 방출된 마력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꾸물거리는 형체를 갖추고 한층 더 짙어진 마력을 방출한다면, 그저 존재만으로 위협일 경우이니까.
하여 투란의 의지는 보다 확고해졌고, ‘천칭’이 강렬하게 그 의지의 파동을 전하는 순간 ‘해골’과 ‘거미’는 최초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버린 채로 보다 격렬하고 강맹한 형상을 갖추며 ‘검은 심장’을, 태고(太古)로부터 전해져온 혼돈의 마물을 갈기갈기 찢고 나눠 삼켰다.
남은 것은 고작해야 방출된 마력으로 물들어버린 빈자리, 봉인의 마석이 새로운 왕의 마력을 먹어치우며 형성한 텅 빈 우리뿐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검은 심장’의 마력이 또렷하게 그 여운을 남긴 것이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기는 했다.
* * *
‘해골’은 배를 감싼 팔, 가슴 앞으로 모아 팔짱을 낀 팔, 그리고 등에서 돋아 기괴한 형태로 변형되어 손뼈가 날개처럼 펼쳐진 팔을 허공에 박아넣은 듯이 고정한 채로 앉았다.
두툼하고 넓은 골반은 곧 성채처럼 ‘해골’의 중심이 되었고, 골반의 안쪽 깊은 곳에는 소용돌이치는 ‘공허’를 거느린 ‘허무’가 늪처럼 자리 잡았다. ‘허무’의 늪은 ‘해골’을 형성하는 ‘공허’를 넘으려 하는 것을 닥치는 대로 당겨 삼켜 없애고 있었다.
‘해골’의 형상 외부는 새까만 장벽으로 둘러싸인 듯했고, 오직 존재하는 세계는 ‘해골’의 형상 내부…….
투란은 ‘카이람 켈 로그람’의 이름을 새겨넣은 몬스터 엠블럼 ‘해골’의 풍경을 둘러보다가 삼켜진 ‘검은 심장’이 어떤 형태인가를 살펴봤다.
‘허무’에 삼켜지고 싶지 않은 듯 ‘검은 심장’은 한껏 응축되며 뭉친 채였고 그 형태를 둘러싼 ‘공허’에 매달리고 파묻힌 채로 숨죽인 듯이 여린 맥동을 드문드문 흘려내고 있었다. 그때마다 ‘공허’를 물들이는 마력이 퍼져나오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허무’의 늪이 일으킨 소용돌이에 휩쓸리며 지워져 나갈 뿐이었다.
“절반? 딱 그 정도네.”
투란은 봉인의 마석에서 노출되었던 ‘검은 심장’의 용량(容量)과 ‘해골’이 삼켜 길들이고 있는 부분을 비교하며 중얼거렸다.
* * *
‘거미’의 든든한 등껍질은 게나 새우, 거북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복잡한 문양을 머금은 채였다. 그 문양이 머리로, 다리로, 몸통 아래로까지 번져나가며 그물로 이뤄진 갑주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바다거미.’
투란은 그런 ‘거미’의 형상을 보며 아련하고 깊이 파묻혔던 도감의 한 부분을 떠올렸다. 바다 깊은 곳에서, 넓은 수평선만이 울타리인 바다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그물집을 짓고 산다는 특이한 품종의 거미…… 때문에 마냥 ‘바다 거미’란 이름이 붙어버린 거미의 모습을 문장인 ‘거미’가 상상으로 채워 넣은 형상이었다.
그러나 이 문장의 풍경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그 ‘거미’가 아니라 가득 흘려내고 쌓아 올린 거미줄의 집, 그물로 이뤄진 세계였다. 그 세계의 중심에 노골적으로 비워둔 자리가 ‘허무’의 옥좌이며 ‘거미’는 바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맴돌고 있었다.
자신의 그물, 그 실가닥을 타고 움직이는 ‘거미’의 당연한 움직임에 따라 ‘검은 심장’의 마력이 난도질당한 채로 ‘허무’로 떠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마력의 파편을 삼킨 ‘허무’는 곧바로 새로운 ‘공허’를 낳는데, 그때마다 ‘거미’가 이를 가공해서 그물의 세계를 넓혀가고 응축시키며 다듬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검은 심장’은 그저 그물에 감기고 휘말린 애벌레였다.
스스로 고치를 만들지 못해서 ‘거미’가 대신 만들어준 듯한 몰골…….
‘아라크레온?’
문득 ‘거미’의 머리를 살피며 투란은 갸웃했다.
강대한 의지를 머금은 ‘거미’의 머리는 정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어째서인가 ‘천칭’으로부터 흘러나온 아라크녹스의 왕, 왕비의 형태에 영향을 받았을 듯싶었으니까.
하지만 ‘공허’의 투구를 뒤집어쓴 ‘거미’의 머리는 끝내 투란에게 그 형상을 완전히 보여주지 않았다. 그 대신에 머리를 덮는 두건, 길게 흘러나와 깃발처럼 찰랑이는 두건을 통해 ‘아카인 툴 로그람’의 이름만을 선명하게 알려줄 뿐이었다.
그런 광경을 통해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거미’도, ‘해골’도.
* * *
‘천칭’이 가볍게 회전했다.
문장의 풍경이 맴도는 느낌이 몸을 살짝 울리며 파고들었다.
투란은 문득 주변을 둘러봤고 자신이 로그람의 성수, 어떻게 봐도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연금술사의 천칭이라고 여겨지는 마도구 앞에 서 있는 채란 것을 확인했다. 문장의 풍경을 마음에 담고 지켜보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그 풍경과 현실을 착각할 뻔했다.
‘천칭’이 그런 착란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투란을 일깨운 셈이었다.
“괜찮냐?”
드라고니아의 크고 사나운 낯짝이 바로 눈앞에 드리워진 꼴을 보며 투란은 답해야 했다.
“응? 아……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네.”
드라고니아가 들이박을 듯했던 뿔을 뒤로 물리며 갸웃하고 묻는다.
“처리할?”
“마력으로 남겨진 잔해를 바탕으로 다시 형체를 갖출 수 있어. 삼키고 보니 알겠더라고.”
“뭐? 그러면…….”
“그래, 봉인 안쪽도 깔끔하게 정리해야 다시 안 볼 거야. 적어도 봉인되었던 저것의 파편은 말이야. 완전히 새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거기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
투란이 살짝 무책임하게 덧붙이는 말끝을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부라리던 눈을 가늘게 하며 한숨을 참는 시늉을 했다. 늘 보아왔던 탓에 드라고니아는 원래 투란이 하려던 말이 ‘내 알 바 아니잖아?’란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추궁하지 않았고, 투란은 쥴의 반지를 일깨우며 투영된 왕궁의 봉인, ‘검은 심장’이 남긴 마력의 잔여(殘餘)가 머무는 자리를 향해 마법을 일으켰다.
‘망자의 묘실’이 봉인의 마석과 경계를 이루며 내려앉았다.
그 광경에 드라고니아는 참았던 한숨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흘려내며 날개를 슬쩍 치켜 올려 표정을 감추는 시늉까지 했다. 그리고 카이람과 하이람은 느닷없이 튀어나온 ‘망자의 묘실’을 깨닫기까지 몇 박자 늦은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는데.
“어? 야, 저거 설마……? 저래도 되는 거냐? 하이람!”
“아니, 저러면 역전(逆轉)의 술식이 제대로 작용을 안 할…… 아, 잠깐! 기다려! 그러지 마!”
격한 반대가 또렷하게 로그람 궁정마도사의 시조로부터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는 투란보다 드라고니아를 더 의아하게 한 모양이었다.
“어째서입니까? 저대로 두게 되면 검은 심장이 재생한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겁니까? 앞으로도 희생을 용납하시려는 의도는 없으실 텐데요?”
조금 강경하다 싶은 말투가 드라코눔의 아칸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짚고 있었다.
카이람은 손으로 자기 얼굴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신음했다.
하이람은 당혹스러운 듯이 카이람을 흘깃하다가 드라고니아를 향해 고개를 젓고, 이미 ‘검은 심장’의 잔여가 남은 영역을 쓸어 담고 사라져 가는 ‘망자의 묘실’을 확인하며 허탈한 듯이 말한다.
“용족이여, 마력속성을 변환시키는 로그람 마도술식에 들은 적 있으신가?”
“방금 말씀하셨던 역전의 술식이 그 마도술식이라 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검은 심장의 마력을 어떤 성질로 변환시키고 있었기에 올바른 선택을 만류하신 겁니까?”
정중하게, 하지만 투란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자세로 드라고니아가 신중하게 다시 묻고 있었다.
카이람이 얼굴을 쥔 손가락 사이로 그런 드라고니아를 흘깃하며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었고, 하이람은 투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가다듬은 목소리를 울려내며 대답을 한다.
“투란, 지금 일어나는 왕국의 이변을 파악할 수 있겠지? 왕의 마법, 검은 심장의 봉인술식과 거의 같은…… 역전의 마도술식을 품고 있는 봉인 몇 곳에 이변이 일어났을 거야. 그래, 조금 전 그대의 선택은 용족이 짚은 대로 옳았어. 다만…… 그대의 선조들은 그렇게 옳은 선택을 할 수가 없었지. 우리가…… 카이람과 내가 살던 시절부터 전승시켜 온 잘못이 남아 있는 탓에 말이야. 우리로서는 나름대로 최악을 피하고자 한 짓이었지만…… 우리가 피한 최악을 대신할 차악이 최악이 되고 만 셈이야. 용족이여, 투란과 함께 하는 그대이니 이제 무슨 일인가 알 수 있지 않으신가?”
드라고니아는 입을 벙긋거리려다가 다물었다.
하이람이 몇 마디 건네는 사이, 투란이 들으면서 확인한 봉인의 상황을 드라고니아가 공유받으며 알아차린 사실이 있는 탓이었다.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재빠르게 마음의 풍경을 통해 떠들고 있었다.
―마물로 마물을, 괴물로 괴물을 억누르는 방식이었어! 야, 이제 어쩔 거냐?
‘도대체 역전의 마도술식이 뭐야? 어떻게 했다는 거야?’
투란은 한층 더 침착해진 것처럼 묻고 있었다.
‘검은 심장’의 잔여를 처리하고 다시 왕의 마법을 움직여 봉인의 마석을 깔끔하게 복구시켰다. 비록 비어버린 자리라고 해도, ‘망자의 묘실’로 삼켜 지워 없앴다고 해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봉인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검은 심장’의 위협은 현실적으로 없어졌으니 투란은 여유롭게 고대의 시조를 향해 따져 물을 일만 남았다고 여겼다.
어째서 투란 자신이 마지막 혈통인가.
도대체 왜 샤오콴 마을에 고아로 버려졌는가!
보석은 왜 투란에게 이름조차 알리질 못했는가!
이렇게 거대하고 광범위한 왕가의 마법이 갓난아이 하나 보호하는 일에 왜 실패했단 말인가!
물어볼 일이 이렇게 잔뜩 있는데.
‘이게 무슨 지랄 맞은 상황이냐고!’
드라고니아처럼 투란도 꽤 당황해서 입으로 소리 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붉게 빛나는 보석이 알려오는 왕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상황, 오래되었으면서 강대한 봉인의 마석들이 들썩이며 흔적도 없이 짓누르고 있던 괴물, 마물 따위를 왜 노출시키고 있는가를 쉬이 납득할 수는 없는데…… 어째 그게 지금 아무 생각 없는 몬스터 로드답게 ‘검은 심장’을 없애버린 탓인 듯하잖나!
도대체 왜?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