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7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76)
Chapter 36. 마그마의 정원
짙은 녹음이 파고든 듯한 땅, 줄기처럼 얼룩처럼 번져가는 검은 바위…….
풍경은 초원과 숯이 된 바위의 색채가 제멋대로 꼬인 채였다.
이 꼬인 풍경의 중심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짙은 회색으로 하늘을 칠하려는 듯이 피어오르며 구름과 섞여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언덕인가, 산인가.’
멀리서 볼 때는 굴곡과 함께 슬쩍 파인 것으로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와 보니 그래도 연기를 뿜어내는 부분이 주변보다 좀 높았다. 그래서 투란의 감상도 이걸 언덕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넓게 퍼진 산으로 봐야 하나 하는 실없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좀 더 가보면 갈라진 틈새가 골짜기처럼 내려다보일 거다.
드라고니아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광경에 대해 예측하고 있었다.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주변에 남아 있는 흔적을 제대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을 때, 검은 카프리곤과 붉은 그랑츄 무리가 싸운 곳이 이 근처였다.
하지만 투란이 여기에 느긋하게 걸어오는 사이에 싸움으로 보였던 일은 끝난 모양이었고 서로 갈 길 가버린 듯했다. 멀리서 봤던 꼴은 꽤 험악해 보였는데, 막상 와보니 누가 죽거나 다쳐 쓰러진 경우도 없는 듯했고…….
‘어쨌든 이 언덕은 올라가야겠네.’
멀리 벽처럼 이어지는 언덕의 기울어진 광경을 보며 투란은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발바닥에 닿는 검은 바위는 단단했고, 짙은 녹색의 이끼로 물든 땅은 푹신했다. 바위에서는 간혹 시커먼 얼룩이 배어나오는 듯이 검은 먼지가 피어났고, 녹음이 짙은 땅은 풀과 벌레의 흔적을 보이며 발자국을 챙겼다.
‘붉은 그랑츄는 대체 뭘 먹고 사는 거지?’
높이 솟은 나무가 없이, 그저 이끼 같은 풀이파리만 가득한 풍경을 보며 투란은 갸웃거렸다. 바위에서 뭔가 열매 따위가 자랄 듯하지는 않았고, 이렇게 이끼로 덮인 땅에서 토끼라든가 사슴, 멧돼지가 있을 듯이 보이지도 않았다. 붉은 그랑츄가 투란처럼 땅을 파내고 시체지네를 유인해내서 먹을 리는 없었고.
투란에게 언덕 너머에서 피어나는 연기의 박력은 주변을 무슨 대장간 화로 속의 풍경으로 만들 듯이 보이는데, 붉은 그랑츄는 이런 곳에서 산다고 했다.
―멀리 사냥을 나갈 거다. 먹는 것과는 별개로 붉은 그랑츄에게는 이 환경이 꼭 필요하니까. 무리 지어 사는 그랑츄는 거주지와 사냥터를 나름 분별해서 오가는 경우가 많기도 하지.
드라고니아가 대충 설명하고 있었다.
얼핏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와 비슷한 말이었기에 투란은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언덕의 정점에 올랐다.
“어?”
바로 놀란 소리가 투란의 입에서 새 나왔다.
언덕의 끝자락에 올라 보니, 전혀 기대하지 않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풍경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후끈하고, 분명히 뜨거운 바람결부터 세차게 몰려나왔다. 투란이 올라온 언덕 아래쪽으로는 전혀 낌새조차 없던, 뜨겁게 몰려와 그대로 하늘 높이 치솟아 사라져가는 마르고 더운 바람이었다.
그 바람의 근원이라는 듯, 다른 무엇보다 선명하게 투란의 눈에 비쳐 들어온 것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출렁이는 용암, 마그마의 호수였다. 투란이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들은 적도 없는 풍경이 눈앞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잠시 넋이 나간 듯이 투란은 그 풍경을 바라봤다.
붉게 달아오른 호수, 그 속에서 시커멓게 솟아오른 바위 송곳처럼 보이는 기둥, 거대한 벽처럼 저편에서 기울어진 채로 보이는 검은 절벽…… 뜨거운 호수를 내려다보려는 것처럼 기울어진 절벽에서 호수를 향해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낸 것처럼 뿜어낸 검은 송곳은 호수에서 솟아오른 것과 맞물리며 저편에서 입을 벌린 듯이 보였다.
분명히 단단한 바위가 녹아 흐르는 것이나, 쇠가 녹아 흐르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게 보였고 찰랑거리는 모습이 마치 바람결에 흔들리는 물을 보는 듯했다. 간간이 그 위에 검은 얼룩처럼 보이는 덩어리들은 붉은 호수의 작은 암초(暗草)로 보였다.
드레이크처럼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서는 알 수 없는, 기울어진 절벽과 파여 나간 지형의 형상이 구름처럼 자욱한 검은 티끌이 바람결에 휘날리는 광경과 엮인 마그마의 연못을 중심으로 꾸며진 작은 정원…….
―투란?
드라고니아가 불쑥 한소리 냈을 때, 겨우 투란은 자신이 바라보는 풍경이 샤오덴 할배가 꾸민 뒷마당 정원 따위와는 다른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크기가 전혀 다른 거대한 영역인 것을 느꼈다.
그 속에서 불어나오는 뜨거운 바람에 ‘악마의 심장’이 몹시 불쾌해했고, 잿빛바위 그랑츄의 살갗이 열기에 시달리는 듯이 땀방울을 뿜어내려 했다. 그 와중에 ‘작은 늪’이 심장 속에서 그럭저럭 활동하지 않았다면, 바로 몸을 돌려 올라왔던 언덕 쪽으로 일단 피하고 볼 듯한 몸 상태……. 투란에게는 조금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뭐가 이리 뜨거워?’
―원래 이런 용암지대에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살지 않는다.
간결한 드라고니아의 상황 정리였다.
너무 간결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투란에게는 다른 설명도 필요 없었다.
여기 살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저 뜨거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준의 마수이거나 몬스터일 수밖에 없잖은가!
덤으로 뜨거운 바람결에 짙게 배어 있는 기분 나쁜 냄새…….
‘이 냄새는 또 뭐야?’
불평을 쏟아내면서 투란은 손으로 입을 가렸고, 혀로 냄새를 맛보다가 웩하고 토하는 시늉까지 해야 했다. ‘악마의 심장’이 그 순간에 속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정말 신물이라도 토할 뻔한 꼴이었다.
―음? 아, 유황(硫黃)인가 보군. 인간에게는 구토를 유발하고 독성을 발휘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들었다고? 이런 걸, 너네는 아무렇지 않게 여겨?’
―드레이크도 아무렇지도 않았잖나?
‘어?’
갑작스러운 지적에 투란이 눈을 껌벅거렸다.
분명히 드레이크는 이 위를 멋대로 날아다녔고, 이 근처의 뜨거운 물…… 저 붉게 달아오른 호수가 아닌 보통의 호수에서도 별 거리낌 없이 몸을 담그고는 했다. 그러면서 숨쉬기 어려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분명히 이 냄새는 바람과 저 피어오르는 연기를 타고 하늘까지 도달했다.
“쳇.”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면서 투란은 이 상황에 몸을 적응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악마의 심장’은 바람에 실린 뜨거움은 꺼렸지만, 유황의 냄새 따위에는 전혀 상관없어했다. 두어 번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사이에 적응이 끝났고 투란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작은 늪’이 흘려내주는 몸속의 늪으로 인해 열기조차도 살갗 안으로 스며오는 것을 막아냈다.
적응하고 나자 투란은 조금 여유를 느꼈다.
까맣게 물든 호반(湖畔)과 붉고 뜨거운 마그마 호수…….
거의 절반, 혹은 절반에 조금 모자라게 기울어진 절벽의 영역에 묻혔고 이리저리 튀어나온 언덕의 바위 지형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때에는 저 붉은 호수가 생각보다 좁아 보일 듯했다.
드레이크의 기억으로 가늠해본다면, 이건 확실히 더 큰 규모를 감춘 마그마의 정원인 셈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는 도저히 안쪽의 진상을 알기 어려운 검은 바위의 지역…….
열기와 함께 피어나는 연기가 먼 곳의 풍경을 흐릿하게 지우는 듯했고, 맨눈으로 보기는 좀 까탈스럽게 눈알을 쑤시는 느낌이 강했다.
‘여긴 정말 오러로 가드하든가, 몬스터의 힘을 쓸 수 없으면 올 생각을 말아야 할 곳이네.’
결국 호기심에 잠깐 사람이 맨몸으로 어느 정도나 버틸까 재보려다가 투란은 바로 포기하고 말았다. ‘악마의 심장’에 의해 순수한 사람의 역량을 강화해보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너무 뜨겁고 숨쉬기도 버거운 지형이었다. ‘악마의 심장’조차 해체한 상태였으면 한두 번 숨 쉬다 그냥 기절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내키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발길 돌리면 된다. 여기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잖나?
뭔가 투란이 이리저리 재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냈다.
‘기왕 왔는데…….’
투란은 잠시 눈을 감았고, 검은 가죽빛으로 물든 눈꺼풀이 이뤄진 다음에 눈을 떴다. 과연 아르고누스에 의해 보완된 사람의 눈은 눈물이 나거나 따끔거리는 느낌이 아예 없었다. 그저 주변을 사람의 시각으로 철저하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잠시 사람의 눈길로 주변을 보다가, 투란은 멀리서 꼬물거리는 붉은 점과 높은 곳에서 툭 떨어지는 듯이 보이는 까만 점을 느꼈다. 바로 투란의 눈꺼풀이 깜박거렸고, 사람의 눈을 대신해 뿔수리의 눈이 자리 잡았다.
‘어라, 저 녀석들 저기서 뭘 하는 거지?’
수 킬로미터 저편에서 검은 털의 카프리곤과 한 무리의 붉은 그랑츄가 묘하게 얽히고 있었다. 절벽 중간 정도에서 마그마의 호반을 향해 길쭉하게 툭 튀어나온 선반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붉은 그랑츄 무리는 그곳으로 가는 길목을 막은 것처럼 자리 잡았는데, 검은 카프리곤이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상황이었다.
투란은 그 먼 곳의 풍경을 보며 잠시 멍한 표정부터 지어야 했다.
조금 늦게 보기는 했지만, 분명히 저 검은 카프리곤은 저 튀어나온 선반으로 뛰어내렸다. 수 킬로미터 밖인 이곳에서조차 아주 높게 느껴지는 그 절벽 정상에서, 거의 절반가량을 뛰어내린 셈이었다.
‘저 녀석, 대체 몇 백 미터를 뛰어내린 거야?’
―글쎄, 대충 가늠해도 저 절벽의 전체 높이는 약 사, 오백 미터는 될 듯싶군. 그 절반가량이니 이, 삼백 미터 정도 된다고 어림잡을 수 있겠지. 뭘 그리 놀라나? 저 녀석의 도약능력을 고려한다면…….
‘높이 뛰는 거랑 뛰어내리는 거랑 좀 다르지! 저건 순전히 위에서 아래로 내리박히는 꼴이었다고! 무슨 나뭇잎이나 깃털처럼 뛰어내린 게 아니잖아!’
―몬스터에게 이치에 닿는 몸가짐을 원하지 말라고.
‘큭, 아무리 몬스터라도…….’
투란은 가만히 몸을 낮추면서, 잿빛바위의 살갗으로 몸을 덮으며 일단 붉은 그랑츄와 검은 카프리곤이 뭘 하나 지켜보기로 했다. 그 뛰어내린 높이에 놀라고 있기는 했지만 자신도 수 킬로미터 밖에서 그랑츄나 카프리곤의 섬세한 털끝, 살갗의 얼룩까지 선명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은 잊은 채였다.
푸륵, 푸아핫!
뜨거운 바람결을 짓누르려는 듯이 카프리곤은 검은 털가죽의 윤기를 흘리면서 거친 숨을 토해냈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향한 경고처럼!
붉은 그랑츄의 무리는 정상적으로 걸어들어올 길목을 막은 채로 나란히 서서 무슨 담벼락처럼 느릿느릿 걸어 움직였다. 카프리곤이 높이 뛰거나 날지 않으면 저 담벼락에 치여 선반 지형의 끝으로 몰렸다가 마그마의 호수로 투신해야 할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카프리곤은 그런 상황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자신이 여기에 뛰어내린 목적에 충실하겠다는 듯이 날렵하게 성큼성큼, 검은 돌로 둘러싸여 흡사 돌로 만든 그릇 속에 담긴 듯한 고기 더미를 향해 다가갔다.
붉은 그랑츄 무리가 길목을 막고 선 이곳에는 사냥해온 고기가 한 무더기로 쌓여서 바람이 실어오는 열기에 마르고 익어가는 중이었다.
카프리곤은 바로 그 고기를 노리고 뛰어든 셈.
그륵, 그르르!
붉은 그랑츄 무리가 카프리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들뜬 모습부터 드러냈다. 수십 마리가 벽처럼 늘어서서, 카프리곤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경이(驚異)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몰이꾼처럼 다가서고 있었다.
카프리곤은 그런 접근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고기 더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크고 굵은 두 손을 내밀며 배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정말 멀리서 보면 이것들이 뭔 짓을 하는가 의아할 지경이었다.
‘저건 대체 뭘 하자는 거지?’
자세히 보면 볼수록 투란에게는 계속해서 같은 의문이 떠오르고 있었다.
카프리곤이 고기를 집어 들고 삼키는 꼴을 보자니, 왠지 맛있어 보이고 속이 허전하기도 했다. 무슨 검은 돌무더기를 집는가 해서 의아했는데, 보고 있자니 그 돌무더기 속에서 고기가 나오다니!
마치 붉은 그랑츄 무리가 카프리곤을 식사에 초대라도 한 듯하잖은가?
시체지네를 꼬물거리고 유혹해서 파먹던 투란에게는 갑작스럽게 엄청난 만찬을 즐기는 부자가 저기 있는 셈이었다.
―미끼를 둔 거잖아!
너무 부러워하며 침을 흘렸던가,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꽥 소리를 냈다.
‘어? 미끼? 그럼, 저게 덫? 바보냐!’
순식간에 투란의 생각은 이렇게 흘렀다.
붉은 그랑츄가 고기를 쌓아두고 카프리곤을 유혹한 것이라면…… 그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된 셈이라 하겠지만, 저 카프리곤의 도약능력은 붉은 그랑츄가 2미터 40이든 4미터가 넘든 상관없이 뛰어넘을 수준이었다. 단지 높이만 뛰는 게 아니라 멀리도 뛰는 놈이니 저렇게 나란히 늘어선 꼬락서니는 아무 의미가 없잖은가?
―그건, 카프리곤이 피해 도망칠 경우이고.
‘응?’
문득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살짝 한숨을 쉬듯 짚는 바를 느낄 수 있었다.
저 녀석은, 저 까만 털빛의 카프리곤은 누런 털빛의 카프리곤과 싸울 때 주변에 그랑츄가 있는지 없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