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9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86)
Chapter 78. 라비엔, 도적들
투란이 빙긋 웃음 지으면서 퍼브 안을 한번 쭈욱 둘러봤다.
눈길을 마주치려는 이는 없었다.
시알라 남매는 저쪽의 헌터들을 지켜보는 중이었고, 헌터들은 꾸물거리고 있는 애시드 그릴 때문에 이쪽을 흘깃거리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다들 확실히 상황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낌새가 있었다.
퍼브의 주인, 퍼브 마스터인 터프넥이 도망쳤다는 것!
술잔이 놓여있어야 할 바 위에 퍼브 마스터의 잘린 왼팔이 덩그러니 놓인 꼴이라는 것!
그런 상황에서 시알라는 이 상황을 깨끗하게 정리하겠다고 큰소리쳤다는 것!
“좋아, 마침 깔끔하게 뒷정리해줄 몬스터까지 있으니까.”
투란의 중얼거림은 낮은 소리였지만 귀를 기울이던 헌터들 사이에서 듣지 못한 작자는 없는 듯, 다들 순식간에 낯빛이 파리해졌다. 곧이어 흘깃거리면서 애시드 그릴과 가로막힌 출구를 둘러보는 태도 또한 헌터들 사이에서 번져갔다.
그런 헌터들의 낌새를 둘러보며 투란이 피식 웃는 소리와 함께 덧붙인다.
“해본 적이 많으니까,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잘 알겠지.”
이는 헌터들의 파리해진 얼굴을 더 짙고 창백한 빛깔로 물들였다.
곧 투란은 한 손으로 바 위를 걷어내는 시늉을 했고, 퍼브 마스터의 잘려진 왼팔이 시알라의 어깨 너머로 날아갔다.
“무, 무슨……!”
“저 새끼가아아!”
비명 같은 고함이 터졌지만, 아무도 애시드 그릴 위로 떨어지는 잘려진 팔 한짝을 낚아채지는 못했다. 팔에서 새 나와 살그머니 휘날린 핏방울 사이로…… 시알라의 몸 주변에서 잔잔하게 피어난 작은 불꽃의 점이 점차 길어지면서 헌터들을 향해 꿈틀거렸고, 이는 파이어 비트가 곧 날아들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퍼브 마스터의 팔이 애시드 그릴에 먹히는 것을 막으려다가는 파이어 비트 한가닥에 그대로 몸이 뚫릴 수 있다는!
그릉, 꿀럭!
갑작스럽게 대롱이 열린 듯한 소리와 함께 끈적한 울림이 퍼지면서 바닥에 얕게 깔려 있던 애시스 그릴이 치솟았다. 퍼브 마스트의 왼팔이 순식간에 엷은 막에 휩싸인 듯했고, 사람의 팔이 형체를 잃으며 녹아 없어지는 광경이 바로 이어졌다.
애시드 그릴이 바닥에서 딱 삼켜버린 팔 크기만큼 커진 채로 우뚝 서서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이를 보는 헌터들은 숨을 삼키면서 가늘게 내쉬며 뒤로 물러선 채로 바싹 긴장하는 모습이 되었다.
“그럼, 가볼게!”
쾌활하게 꾸민 투란의 목소리가 울렸다.
애시드 그릴이 소리의 근원을 찾듯이 기우뚱했다.
잔잔한 파문이 애시드 그릴의 걸죽하고 찰랑이는 형체 위로 번졌다.
벽에 바싹 붙어 거리를 둔 헌터들은 이제 시알라 남매 쪽으로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는 모습으로 긴장했다. 애시드 그릴의 저런 꼴이 바로 먹이를 찾아 쏟아지려 할 때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순간에 뿜어지는 분수(噴水)처럼, 저 상태에서 애시드 그릴은 먹이를 덮친다! 얇게 깔려 있을 때는 할 수 없던 것을 이제 팔 한짝을 삼키고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알기 때문에 헌터들은 긴장했고, 조심스럽게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설혹 애시드 그릴이 노리는 방향이 자신들 쪽이 아니라 해도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아는 태도였다.
하지만 애시드 그릴은 투란 쪽으로 쏟아져 날아가지 못했다.
퍼브 마스터가 남기고 간 둥글게 패고 막힌 벽, 찬장이 으깨지고 짓이겨진 채로 반쯤 파묻힌 그 벽에 투란이 등을 댔고 한쪽 팔꿈치로 두드리는 순간에 터진 폭음(爆音)이 퍼브 안을 메우면서 사방을 쩌렁쩌렁 울린 탓이었다.
애시드 그릴은 이리저리 기웃했지만, 결국 방향을 못 잡고 그 자리에서 찰랑이며 기우뚱거리고 멈춘 꼴만 보였다.
그리고 투란은 새로 열린 바람구멍의 어둠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퍼브 마스터 터프넥이 사라질 때처럼, 투란도 사라진 셈이었다.
귀를 울리던 폭음의 잔향(殘響)이 사라지고, 곧 헌터들 사이로 담담하고 조용한 시알라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정말 흔적도 없이 깨끗하네. 통 안에 담가 놓은 애시드 그릴은 통 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채로 먹이를 포식하니까, 저렇게 먹어치운 것의 부피를 자랑하며 커지지도 않을 테고…… 애시드 그릴은 똥도 안 싸는 몬스터라고 했던가?”
제란드의 목소리가 뒤이어 울려 나온다.
“어, 그랬어. 그래서 도적들 사이에서 시체 처리용으로 애시드 그릴을 담아둔 항아리…… 아주 특별한 통이 은밀하게 나돈다고 했지. 도둑질을 하고 도둑맞은 사람을 세상에서 지우면, 아무도 훔친 물건에 대해서 뭐라 따질 일이 없으니까.”
페란드가 이 말을 받아 잇듯이 묻는다.
“터프넥은 센 적이 없다고 했지. 너네는 세고 있었나? 너네가 저 몬스터에게 먹인 사람 수가 몇인가, 세고 있었어?”
헌터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애시드 그릴은 남매의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꾸물거렸다. 방향만 잡으면 바로 쏟아져 날아갈 듯…… 그러나 애시드 그릴이 막 형체 안에서 거품을 만들고 쏘아질 듯한 낌새가 되면, 말소리의 방향이 바뀐 탓에 꾸물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꾸물거림을 끝내주겠다는 듯, 멜란드가 조금 큰 목소리를 토해낸다.
“푸딩처럼 귀엽네. 저만한 푸딩이면 배를 잔뜩 불릴 수 있겠어! 맛 좀 볼까?”
살짝 혀를 날름하면서 하는 말은 헌터들 사이에서 은은한 분노를 끌어냈다.
조금 전에 사람의 팔 하나를 삼킨 괴물의 맛을 보겠다니…… 이보다 명백한 도발이 또 있겠는가! 하지만 눈앞에는 꾸물거리고 기웃거리면서 가까운 곳의 먹잇감을 찾는 몬스터 또한 명백하게 존재했다. 섣불리 멜란드의 도발에 반발해서 대꾸할 수는 없었다. 대신 죽일 듯한 눈빛으로 멜란드를 쏘아볼 수는 있었는데…….
“아, 이걸로 조금 긁어내면 맛볼 수 있으려나? 어라? 아, 튕겼어!”
멜란드가 손가락 사이에 탁자 위에서 집어 올린 통의 파편을 끼우는 척하다가 튕겨 날리잖는가! 입으로는 실수인 척하는 소리를 뿜어냈지만, 제대로 헌터들 사이를 지나서 벽에 부딪히고 튕겨지게 겨냥했다!
티잉!
파편 중에서 테를 이루던 단단한 것이 벽을 이루는 돌과 부딪히니 높고 센 소리가 시원하게 울렸다. 그리고 바닥으로 튕겨 떨어져 내리는데…… 가까이 있던 헌터 둘이 재빨리 그 파편을 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파편이 땅에 떨어져 애시드 그릴의 괜한 관심을 끄는 것을 막으려 함이었다.
“아, 또 튕기네?”
그러나 멜란드가 이죽거리면서 심술궂게 또 단단한 파편을 날려주고 있었다!
아까 전까지 사슬에 묶인 채로 힘겹게 씩씩대던 몰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멜란드였다. 헌터들은 자신들이 비웃던 놈이 자신들을 비웃으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분노했다. 곧 헌터들 사이에서 눈짓이 오갔다.
“건방 떨지 마!”
한편에서 누군가 외쳤다.
애시드 그릴이 그쪽으로 기우뚱하는 순간…….
“우리가 이 꿀렁이를 하루 이틀 겪은 줄 알아!”
다른 쪽에서 또 누군가 외쳤다.
그리고 곧 또 다른 누군가가 단검으로 쇠토시를 긁으며 외친다.
“어디 누가 죽나 해보자 이거지? 그래, 한번 해보자고! 꿀렁이 먹이가 되는 게 어느 쪽인지!”
애시드 그릴이 꾸물거리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렸다. 하지만 재빠르게 옮겨다니는 소리의 원천 탓인지 어느 쪽으로도 뿜어져 날아가지 못한 채로 그 형체 안에 거품만 점점 더 짙어질 뿐이었다.
시알라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꿀렁거리는 거품과 굼틀거리는 형체의 애시드 그릴을 넘어서 벽에 붙어 전투 태세를 갖추는 헌터들 사이로 다시 울려 퍼진다.
“그래, 이제 각오가 된 모양이네. 그럼, 끝내자.”
로이는 괴성을 질렀다.
목이 터질 정도로 열심히 소리 지르는 탓에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제대로 듣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페란드는 간단하게 로이의 뒷덜미를 잡아 누르면서 속삭여줬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시끄럽게 굴지 마.”
로이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작아졌다.
“사, 살려달라고! 한번만…… 한번만 봐줘! 놓아달라고! 난…… 난 저렇게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지기 싫다고! 괴물의 먹이라니! 너무하잖아! 너네도…… 너네도 사람이면서 이럴 수 있어? 아니잖아, 이건!”
페란드의 눈길이 물끄러미 로이의 얼굴에 머물렀다.
엉망진창이 된 꼴이라서 제대로 말하기가 꽤 어려울 텐데, 로이는 지금 아주 또박또박 정확하게 가쁜 숨결 사이로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는가 의아할 정도잖은가.
“마법으로 말하는 건가…….”
페란드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하지만 로이는 그 손길이 무겁고, 무섭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단단하게 로이의 목덜미를 잡아서, 로이가 결코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으로 날려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손길이니까!
“제발……!”
다시 한 번 벽 쪽을 흘깃하면서 로이는 간절하게, 열심히 마법으로 울려낸 목소리로 애원했다. 결코 저 벽으로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절절히 배어나오는 탄원이었다.
애시드 그릴이 벽에 발린 모양을 한 채로 꾸물거리는 그 광경 속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다는 절규이기도 했다.
로이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전에, 전혀 싸움이라고 할 수 없는 광경을 똑똑히 봤으니까!
처음 본다고는 할 수 없었다.
길드에서 로이가 껄렁거리고 있을 때, 시알라가 분명히 루케인을 자극하기 위해서 했던 짓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엄포를 놓기 위해서 물건을 밀고 부수는 대신에 헌터들을 밀고 벽에다가 몰아붙였다.
단순하게 센 마력을 이용해서 물건을 옮기는 포스 윌딩(Force Wielding)인 듯했지만, 애시드 그릴도 함께 몰아붙인 짓이었다. 이건 그야말로 어디에서 먹잇감이 떠들고 있는가 갸웃거리며 기웃대는 몬스터를 그 찾고 있는 먹잇감과 함께 엮어버린 셈이었다.
나름대로 시알라의 파이어 비트에 대해서 견적을 내고 있던 헌터들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었다. 그 전에 제란드와 멜란드가 각자 자리를 잡으면서 파이어 비트를 쏘아내는 시아라를 엄호하듯이 움직인 탓에 더욱 그런 예측을 할 여지가 없기도 했다. 그 때문에 헌터들은 시알라의 마력에 제대로 어떤 대처를 하기 전에 몽땅 벽에 눌러붙은 꼴로 애시드 그릴과 엮였고…… 삼켜졌다.
사람이라면 나를 이렇게 이용하네 어쩌네 하고 작은 투덜거림이라도 토해낼 듯한 상황이었지만, 몬스터인 애시드 그릴은 아주 기분 좋게 그 본능을 충족시키며 닿은 먹잇감을 녹여 지울 뿐이었다.
그나마 헌터들 중 한둘은 좀 특별한 장비를 지닌 듯 애시드 그릴이 닿지 않으려 피하는 듯했지만, 벽에 눌러붙는 상황까지는 피하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그 한둘에게 제란드가 뚜벅거리며 다가가서 뭔가 뜯어내 뺏었으니, 결국 그들도 애시드 그릴에게 바로 삼켜져 녹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로이는 최대한 마력을 끌어내서 바닥을 기어 시알라가 몰아붙이는 포스 윌딩의 영향권에서 살짝 벗어나 버텨냈다. 그러나 그런 로이의 목덜미에 바로 페란드의 손이 닿았으니…….
그 감촉에 로이는 일단 비명을 지르면서 애원했고,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페란드의 모습에 얼른 음성을 전하는 마법까지 동원했다. 이대로 몬스터의 먹잇감이 될 수는 없으니까. 그야말로 입고 있는 옷까지 다 녹여 지워버리는 애시드 그릴에게 지워져서 세상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로 사라지려고 라비엔까지 온 것이 아니니까!
때문에 로이는 필사적이었고, 망가진 표정 속에서 지닌 능력을 총동원해서 마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 로이의 귓가에 불쑥 한마디가 스며든다.
“얼마였어?”
갑자기 물어온 이는 페란드가 아니었다.
페란드는 묻고 있는 멜란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체에게 뭘 묻고 있냐는 듯한 페란드의 표정을 간파하고, 로이는 멜란드가 뭘 묻는가 열심히 빨리 생각해서 바로 대답을 질렀다.
“은전 다섯 닢! 그뿐이야! 난 그냥 여기저기서 주운 얘기를 전할 뿐이었다고! 내가 뭘 하려 한 건 아니잖아! 난, 그냥 은전이 탐났을 뿐이고……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고!”
“흠…… 주운 얘기라…… 여기저기서 말이지…….”
어느새 로이 곁으로 와서, 살짝 몸을 웅크린 멜란드가 띄엄띄엄한 말투로 뭔가 물을 듯 말 듯 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로이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로 보였다.
“뭐, 뭐든 물어봐! 내가 아는 건 모두 말해줄 테니까! 제발 살려줘! 난 죽이는 것보다…… 살려두는 게 이득이라고! 루, 루케인도 날 죽이지 않고 있잖아? 난…… 별 볼 일 없는 놈이라고!”
보다 애절하고 간절한 소리를 끌어내며 로이는 다시 애원했다.
하지만 멜란드는 그저 망설이는 듯했고, 페란드의 손길은 단단하기가 쇠집게 같아 풀어줄 낌새가 없었다.
거기에 차분한…… 때문에 더욱 로이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시알라의 목소리가 찾아든다.
“켈슨에 대해서 말해봐. 켈슨 팀의 전멸에…… 터프넥이랑 또 누가 끼어 있지?”
순간, 로이는 가슴 깊은 곳이 서늘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일에 대해서 떠들었다가 도망친 터프넥이 돌아온다면…….
‘도망……칠 수 있을까?’
갑자기 뇌리에 떠오른 투란의 해실거리며 웃음 짓던 표정을 되새기며 로이는 어느 쪽에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 당장 자기 목숨을 구할 쪽이 어느 편인가는 꽤 명확했고!
“그건…….”
로이는 터프넥이 투란에게서 도망치지 못한다는 쪽에 걸었다.
제발 터프넥이 투란에게 죽어버리길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