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1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08)
―그만해! 몬스터가 불쌍해 보이게 하지 말라고!
드라고니아가 질렸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투란이 목뼈를 꺾어도 죽지 않는 광경에 흥미를 느끼고 난 다음, 등뼈도 꺾어보고 어깨와 골반도 부러뜨려보더니 가슴뼈가 내장을 찌르도록 눌러보기도 했고 상체와 하체를 뒤틀어 한 바퀴 돌리기까지 한 탓이었다.
그야말로 타우루스 왕자가 지닌 몸뚱이의 내구도, 생명력의 강인함을 바닥까지 긁어내는 짓이었다. 그로 인해 울려퍼진 몬스터의 괴성은 비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타우루스 왕자가 고통이 가득한 괴성을 토해낼 때부터는 좌우 통로를 막고 있던 장막까지 아예 거둔 채였다! 덕분에 횃불이 일렁이며 그림자가 퍼져나가는 듯한 통로 가득히 메아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고…….
이런 상황이니 드라고니아로서는 매우 황당해서 저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투란은 오히려 그런 드라고니아가 이상하다는 듯이 대꾸하니…….
‘얘가 불쌍하게 보여야 딴 놈들이 안 덤비잖아? 왜?’
타우루스 왕자를 우그러뜨리고 꽉꽉 짜내고 정수를 삼키며 하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되묻는다.
―겁주려 한 거라고?
‘얘네, 막무가내로 치고받고 싸우는 녀석들이 아니잖아. 이리저리 눈치 잔뜩 보는 녀석들이라고. 이럴 때는 하나 제대로 뭉개놔야 눈 마주쳤다고 덤벼드는 짓거리 안 한다고. 뭉쳐 있는 고블린 사냥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인데?’
투란의 대답은 명확했다.
드라고니아도 구멍에서 떨어지고 난 뒤의 일을 되새기고는 납득한 듯, 투덜거림을 멈췄다.
투란은 부푼 몸을 다시 수습해서 적당히 사람의 형체에 가깝게 꾸미면서 타우루스 왕자의 정수가 왕족의 정수와 어우러지지 않는가를 살폈다.
‘흐음? 살짝 섞일 듯 말 듯 하다가 따로 노네?’
‘천칭’의 풍경 속에서 왕자와 왕족의 형태가 서로 미묘하게 공명하고 교류하는 듯하더니 갈라서며 독자적인 정수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타우곤이나 타우루스 족장, 타우루스 오리지널과는 아예 아무런 연계성이 없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투란은 스윽 주변을 둘러보고 고요함을 확인한 다음, 한쪽 통로를 택해 걷기 시작했다. 처음 이곳에서 싸우던 녀석 중 하나가 사라진 쪽이었다. 자신이 처박힌 벽의 반대편을 타고 나가서 붙들리지 않은 녀석을 쫓기라도 하듯, 투란은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근데…… 6층하고 7층 사이가 너무 넓지 않아?’
걸으면서 벽 사이에 묘하게 꽂힌, 거의 벽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횃불이 뭔 재주로 찰랑찰랑 흔들거리며 타오르는가 의아해하며 투란이 불쑥 말했다.
드라고니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여기가 7층이 아닐 수도 있다.
‘뭔 소리야?’
―6층까지, 1층에서 6층에 이르기까지 다섯 층은 모두 높낮이, 층과 층 사이의 격벽이 일정했어. 대강 잡아서 칠 미터, 그것이 다섯 층이었으니 6층 전까지는 지표에서 대강 삼십오 미터 정도 깊이였다고 가늠할 수 있어. 거기에 6층의 공간은 5층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넉넉히 가늠해서, 사십오 미터. 그게 6층의 바닥까지 1층의 천장에서부터의 거리야. 하지만 6층에서 환마를 열쇠 삼아 열린 구멍은 수직통로였고 약 3, 40미터를 내려왔다. 내려오는 동안에 본 바로는 구멍은 암철이었지만, 구멍 밖에 내려서는 순간부터는 암철의 구성이 거의 없었지. 당장 천장을 봐라, 저건 암철이 아니야. 간단히 말해서 여기는 네가 일곱 번째로 들어선 층일 뿐이고, 암철의 미궁과는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란 얘기야. 어쩌면 그 구멍은 환마 넷을 모두 열쇠로 사용한 탓에 중간층을 거치지 않고 여기에 보낸 것일 수도 있어.
‘중간층? 여기랑 환마가 나온 6층 사이에도 층이 또 있을 거라고?’
―깊이로 보자면 그러고도 남지. 프로브로 탐색할 수 없으니 확인할 수는 없다만…….
‘어, 프로브! 야, 여기는 그럭저럭 어떻게 쓸 수 있나 본데?’
―뭐?
드라고니아가 흠칫하는데, 투란은 가만히 왼손을 들고 윌 라이트의 마력을 모았다. 의지가 집중되며 프로브가 생성되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의 구성체는 바로 투란의 감각에 따라 주변을 훑어보며 정보를 채취하여 넘겼다.
하피 여왕의 감각까지 담은 프로브가 넘긴 정보를 통해 드라고니아도 알 수 있었다. 환마가 날뛰던 6층까지와 다르게 거대한 마력이 거의 없는 층이었다. 있는 것은 통로의 굴곡에 따라 여기저기 씩씩거리며 움직이는 뜨거운 피를 지닌 타우루스, 3미터짜리 왕자들이었고 그와 다르게 차가운 피라도 머금은 듯한 길고 긴 몸뚱이를 통로 곳곳에 말아 뭉쳐 있거나 늘어뜨린 채로 이동하는 라미아 몇몇이었다.
단숨에 프로브가 주변의 상황을 포착하는 광경을 알자마자 드라고니아는 바로 투란에게서 인계받은 마력을 기반으로 프로브를 열 기 넘게 형성시켰다. 프로브는 곧바로 흩어졌고, 사방을 헤집으며 정황을 파악했다.
―원형인가 아닌가 애매하다만, 지름이라 치고 셈하면 거의 삼 킬로를 넘는군. 타우루스가 2, 3백 미터 간격으로 서로 견제하며 있는 모양이다만…… 라미아도 섞여 있어서 그런가, 두 종을 모두 합해서 대강 380~390 정도가 여기 층에 널려 있다. 각자 영역을 따로 둔 모양인 것처럼도 보이는데…… 아무래도 한두 곳에 모여서 아까 같은 결투를 하는 일이 잦은가 보네. 너 떨어진 구멍 말고도 결투 흔적이 남은 곳이 여럿 있다. 음, 그런데…… 투란, 여기 있는 라미아는 아무래도 타우루스랑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마찬가지? 뭐야, 라미아 왕자님이라고?’
―아니, 공주님이라고 해야겠지. 프린세스라고 말이야. 퀸이 되기 전 상태인 라미아야. 나가락티 아니라고!
어느 틈에 라미아 왕자님이라는 생각에 빠져서 드라고니아를 향해 흉악하게 생긴 나가락티의 모습을 연상해 뿜어내는 투란이었다.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질색하면서 바로 프로브가 포착한 라미아 공주라는 몬스터의 형상을 투란에게 비춰주는데…….
‘길고 굵구만. 그런데 상체는 더 야리야리하고 가녀린 건가?’
투란은 프로브를 통해 라미아 공주가 거의 이십오륙 미터, 때로는 삼십여 미터에 달하는 뱀이 하반신을 지녔음에도 상체는 어른이 되기에는 조금 모자란 소녀의 모습이란 것을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검토해도 어딘가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마치 완전히 자라고도 남았어야 할 것이 억눌려서 마지못해 덜 자란 듯한 분위기…… 어째서 프린세스 라미아는 저런 형태를 하고 있는가?
―퀸의 휘하이기 때문이야. 퀸이 되지 못한 채라도 뱀의 몸은 계속 자라니까. 허물 벗기로 그 몸을 완전히 다시 키우지 않으면 라미아의 몸, 뱀의 부분은 멈추지 않고 계속 자란다. 인간의 상반신은 자라지 않고 말이야.
‘라미아가 퀸이 되는 조건은? 타우루스는 자기네끼리 싸워서 결판내야 하는 모양인데, 라미아도 그런가?’
―아마 그럴 거야. 동종의 라미아가 가득 모여 있어도 퀸은 늘 하나뿐이었다니까. 일정 영역 안에서 여왕은 늘 하나뿐일걸. 자기 영역 안에 다른 여왕을 두고 보지 않는 것이 퀸 라미아의 본능이라니까. 프린세스가 여럿이라면, 누군가 완전한 퀸이 될 때까지 경쟁하겠지.
드라고니아의 말은 어딘가 애매한 추리였다.
이를 들으며 투란은 프로브로부터 흘러오는 정보를 다시 되새기고 검토했다. 그러다가 문득 기괴한 영역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암철이 있는데? 굉장히 굵고 큰 기둥……? 아니, 저건 그냥 사방이 막힌 문이라고 해야 하나?’
드라고니아도 프로브의 탐색정보를 되새긴 듯…….
―위로 뚫린 구멍은 내려온 곳 하나뿐이고, 내려가는 곳은 없어 보인다. 그 암철벽 안이 통로이든 뭐든, 이곳에서 유일하게 탐색이 불허된 곳이기는 하네.
거의 층 전체의 상황을 둘러본 듯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히힛 하며 웃었다.
‘좋네, 프로브 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저 암철벽 안은 못 보나?’
―저 암철벽 자체에 묘한 마력이 깃들어 있다. 그 점은 위보다 더 심하군. 투시도 안 되고, 프로브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 심지어 철벽 아래에 뱀이 들락이는 구멍까지 있는…….
‘뭐? 구멍? 뱀이 들락거려?’
―그래, 어둡고 조금 파여 들어간 흠이 철벽 아래를 감싸고 있잖아, 그 흠을 따라 둘러보면 몇 곳 안으로 통하는 걸로 보이는 구멍이 있어. 다크림보처럼 보이는 뱀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꼴이 보였어.
투란은 자신이 프로브를 대충 한 바퀴 굴릴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드라고니아가 섬세하게 움직이며 조금 더 관찰해서 알아낸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에 뱀이 슥슥 구멍을 들락인 모양이었다.
‘다른 특이한 곳이 없다면, 가봐야겠지?’
―통로가 많이 꼬여서 조금 빙빙 도는 길이 될 것 같다만…….
살짝 말꼬리를 흐리는 드라고니아였고, 투란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여기 벽, 뚫리잖아? 그냥 방향을 잡고…… 벽 너머에 뭐 나오면 그거나 확인해서 미리 알려줘.’
―그러지. 그러면…… 일단 이쪽 벽을 부수면…….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시각에 한쪽 벽을 표시하며 그 너머에서 팔락거리는 것, 횃불 주변을 맴도는 몇 마리 칼날박쥐의 형상을 그려주기까지 했다. 그 한편으로 축 늘어진 타우루스의 3미터짜리 거구랑 함께.
우드득, 투란의 주먹이 억세게 쥐어졌다.
콰앙!
벽이 뚫렸고, 투란은 자신이 발 디딘 일곱 번째 층을 관통하며 내닫기 시작했다.
팅, 티팅.
‘와, 튼튼하네?’
입맛을 다시면서, 손끝으로 암철을 튕기는 채로 투란은 생각했다.
―새삼 뭔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듯 말했다.
‘위랑 다르니까, 암철도 뭐 좀 다르려나 했는데…… 아, 그보다 내가 몇 마리씩 잡았지? 막 잡다 보니 제대로 셈이 안 되네.’
툴툴거리면서 투란은 똑같아 보이더라도 다를 수 있다는 몬스터 헌터의 격언을 되뇌었고, 벽을 뚫고 돌파해오는 과정에서 잡아 삼킨 타우루스 왕자와 라미아 공주의 숫자에 대해 물었다.
둘 다 어디 내놔도 약하다는 소리를 들을 리가 없는 강력하면서도 특색있는 몬스터였지만, 작정하고 패악 부리는 듯한 투란 앞에서는 그냥 짓이겨지고 밟히며 에센스를 갈취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드라고니아가 그 과정을 되새기며 한숨을 쉬듯 대답한다.
―프린스 열두 마리, 프린세스 여덟 마리. 녀석들이 갖고 있던 철제 무기와 장신구는 모조리 마그마의 열기로 녹여 먹어치웠지.
‘아, 그러고 보니…… 라미아 공주는 대체 어디서 그런 장신구를 얻은 걸까? 타우루스야 배 속에서 뿜어낸 쇳물이 있다지만…….’
문득 프린세스 라미아가 6층에서 본 라미아처럼 몸에 장신구를 둘렀던 것을 떠올리며 투란이 갸웃했다. 6층에서 환마 하누크샤의 지배 아래 나타났던 라미아가 좌우 균형이 잡힌 장신구를 몸에 두른 것과 조금 다르게, 프린세스 라미아 여덟 마리는 몸 한쪽을 휘어 감는 끈과 사슬, 거기에 보석이 매달린 불균형한 모습으로 장신구를 걸치고 있었다.
―글쎄…… 야생의 라미아라면 잡아먹은 사냥감으로부터 이것저것 긁어모아 장신구처럼 걸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만…… 여기서 어떻게 그런 보석 장신구를 얻었는가는 짐작을 못 하겠군.
‘흠, 역시 수수께끼로 남나…… 에, 저거 진짜 다크림보?’
암철벽을 통통 두드리며 빙 돌던 투란은 아래쪽에서 스윽 머리를 내밀며 기어나오는 뱀을 보고 멈칫했다. 암철벽 맞은 편에 꽂힌 횃불,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이 타오르는 횃불의 어스름한 빛 아래에서 뱀은 벽으로부터 몸을 빼내며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투란을 보는 중이었다.
한데 그런 뱀의 형체는 틀림없이 미궁에 들어서기 전에 본 다크림보, 그 성질 더럽다는 독사 같은데 그 눈길은 투란에게 어딘가 낯설면서도 낯익은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마치 눈앞의 독사가 독사이기는 한데, 독사와는 아예 품종이 다른 기묘한 기분이었다.
이 독사를 보면 뭔가 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투란은 그 느낌에 충실하게 따랐다.
―야, 왜 그런……?
갑작스럽게 스테노아의 눈을 부릅뜨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놀랐다.
한데 그 순간, 다크림보의 눈이 똑같이 부릅떠지면서 스테노아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이이잉!
기괴한 공명이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황금모피가 저절로 스테노아의 눈동자 주변에서 살랑이며 피어올랐다.
투란은 스테노아, 고르고니아 맏이의 강렬한 본능이 치솟는 것을 깨달았다.
저절로 투란의 손이 내밀어져 다크림보로 보이는 뱀을 쥐려 하는데, 뱀이 이빨을 드러내며 냉큼 투란의 손목을 물고 있었다.
황금모피가 바로 투란의 손목에 둘러졌고, 뱀의 이빨은 그 금빛 털에 감기며 멈춰졌다. 순간 뱀의 눈이 시뻘건 구슬처럼 변한 채로 투란을 노려봤다. 스테노아의 눈동자는 도도하게 핏빛이 뚝뚝 떨어지는 뱀의 눈을 마주했다.
뱀의 형상이 후드득 방울지며 덜어졌고, 암철벽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빈손을 내려다보면서 투란은 암철벽을 바라봤다.
다크림보였지만 절대로 다크림보일 리가 없는 뱀, 스테노아의 본능을 자극하며 덤벼드는 뱀의 본체는 암철벽 너머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