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74)
“으와아아!”
쿤토르의 함성은 더 이상 ‘모그와’가 아니었다.
순수한 기쁨이 담겨 있는…… 그럼에도 투란에게는 어딘가 미묘하게 절규(絶叫)처럼 들리는 외침이었다.
‘좋다는 거야, 망했다는 거야?’
조금 찜찜한 기분에 투란은 축하를 해야 할지, 괜찮다고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여기며 어정쩡하게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쿤토르에게는 격렬한 변화가 새겨지고 있었다.
꿈틀거리면서 쿤토르의 몸을 누비고 다니던 녹색이 가지런히 정돈되면서 팔과 어깨 언저리로 뭉쳐들었고, 이전과 다른 무늬를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표범?’
투란은 녹색의 바탕에 검게 채워지는 형체를 바라보며 갸웃했다.
쿤토르의 등 높은 곳의 녹색 무늬는 이제 밧줄처럼 두 어깨 사이를 잇는 중이었고, 두 어깨를 덮는 견갑(肩甲)이라도 되겠다는 듯이 길쭉하고 부드러운 오각형의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등을 통째로 채우는 대신에 어깨 사이를 이으며 목 언저리를 물들이는 정도인 무늬인데, 어깨 한쪽에는 표범의 머리가 다른 한쪽에는 표범의 엉덩이와 꼬리, 뒷발이 채워져 있었다. 뭔가 표범의 허리는 길쭉하니 늘어뜨려서 쿤토르의 목덜미를 덮은 꼴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검은 표범의 형체를 품은 녹색 무늬는 윤곽 언저리를 날카롭게 다듬으면서 가시가 돋친 꼴을 갖춘 다음에 고정되었다.
변화가 끝난 후, 쿤토르는 숨을 고르면서 제자리에서 빙빙 맴돌 듯이 자신의 손발을 살피고 있었다. 무엇을 찾는가 싶었지만 그저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뿐이었던 듯, 곧 멈춘 쿤토르가 한 손을 한껏 하늘로 치켜올리면서 우렁찬 외침을 토한다.
“모그와!”
사람이 내는 소리와는 이모저모로 다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바로 허공에서 쿠르릉거리며 벼락이 맺혔다.
투란이 흠칫하는 사이, 쿤토르는 치켜올렸던 손을 앞으로 내밀며 손가락을 갈고리모양으로 굽혔다. 그 손가락 끝에서 불쑥 표범의 발톱이 치솟아 나온 것은 투란을 한층 더 놀라게 했고, 발톱…… 이젠 손톱이 된 부분에서 번개가 치솟아 쿤토르가 겨냥한 쪽으로 튀어나가는 광경은 투란이 입을 벌리며 놀란 소리를 내게 했다.
“우와아?”
‘몬스터 로드 같잖아!’
입으로 낸 소리가 말이 되지 않는 감탄으로 끝났지만, 투란은 쿤토르가 검은 표범의 능력을 발휘하는 광경이 무엇과 닮았는가를 깨닫고 있었다. 과연 저런 형태의 고대주술이라면, 몬스터 로드를 보고 ‘몬스터 모그와’를 지녔다고 할 만하잖은가!
‘너, 알고 있었어?’
투란은 빠르게, 망설임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쿤토르가 이미 ‘용의 가호’라고 알고 있는 상황이었어도 슬슬 뒤로 빼며 감추려 했던 것을 싹 잊은 듯이!
―비슷한 것을 알고는 있었다만, 저렇게 깔끔하게 마수를 삼킬 줄은 몰랐는데?
투란에게 낯설게도 얼떨떨한 말투였다.
드라고니아 역시 저런 상태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모그와아앗!”
쿤토르가 다시 가슴을 두드리면서 하늘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그 함성 속에 은근히 검은 표범의 포효와 비슷한 음색이 끼어 있다는 것을 투란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둘이 하나가 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쿤토르가 느끼는 감정을 담은 포효…….
쿤토르의 모그와가 벼락을 다루는 마수를 완전히 쿤토르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증거처럼 투란에게 들려오는 소리였다.
“헐…….”
놀란 다음에 어이없어 맹한 소리를 내고 마니, 바로 쿤토르가 후욱 숨을 몰아 내쉬면서 투란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망설이는, 쿤토르를 보아온 여러 날 동안에 투란이 볼 수 없었던 기묘한 머뭇거림을 표정에 담았다가 강하게 떨쳐내듯이 눈을 번뜩이며 묻는 말이 나온다.
“인간, 그대는 정말 왕이 아닌가?”
“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물음은 투란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를 끌어냈다.
드라고니아는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문장 속에서 쓴웃음을 짓는 기척을 흘렸다.
투란은 의미를 몰랐기에 목뒤를 긁적이는 시늉을 하면서 쿤토르를 똑바로 보며 진지하게 대답한다.
“아니야, 인간 왕 아니다. 인간, 쿤토르에게 거짓말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맞춘 진지함이 어느새 그 말투를 흉내 내게 했고, 쿤토르를 이를 겨우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안다, 인간은…… 쿤토르를 만나 거짓말하지 않았다. 예언은 말했다, 쿤토르가 전사의 시련을 치러 내는 순간은 위대한 왕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쿤토르와 함께하는 이는 인간뿐이다. 쿤토르, 혼란스럽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인간은 왕이 아니다. 예언은…… 인간이 왕이라 말했다.”
시련을 마치고 전사로서 우뚝 서자마자 자신이 처한 상황이 몹시 혼란스럽다고 토로하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맹하니 그런 쿤토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요약하자면 간단한 이야기이기는 했다.
오르카의 일족인 쿤토르가 받았다는 예언, 그 예언 속에서 쿤토르가 칼의 인도를 받아 만나기로 한 것은 위대한 왕. 쿤토르가 전사의 시련, 모그와를 완성하는 것 또한 위대한 왕과 함께.
그리고 쿤토르가 길잡이가 되어 숲의 마수와 싸우러 가게 되는 자 또한 위대한 왕!
그 예언에 따르면 투란이 바로 그 위대한 왕이어야 했다.
하지만 투란은 왕이 아니다!
쿤토르로서는 자신이 받았던 예언이 몽땅 일그러진 상황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투란에게 정말로 왕이 아니냐고 한번 더 확인한 것이었고, 섭섭해하는 중이었다. 투란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실망하면서.
‘그렇다고 내가 거짓말을 해야 하냐!’
살짝 미묘하게 울컥한 기분으로 으르렁거리고 싶었지만, 투란은 그 불만스러운 생각을 입 밖으로 흘려내지 않았다. 대신 한숨 소리에 잔뜩 감정을 실어서 후욱 뿜어낼 뿐이었다.
쿤토르 또한 호응하는 한숨을 쉬었다.
예언대로 되지 않아 마땅치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한숨은 투란을 한번 더 울컥하게 했지만, 곧바로 뒤로 벌러덩 쓰러지는 쿤토르의 모습이 그 작은 울컥함을 바로 날려버렸다.
“어? 이봐…….”
쿵.
“쿤토르, 쉬어야 한다. 잠든다…… 인간, 경계를 부탁한다. 쿤토르가 깨면…… 루곤으로…… 드르렁!”
눕자마자 지껄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진 코골이를 해버리는 쿤토르였다. 보는 투란이 ‘뭐? 야!’라고 따지려 했을 때는 이미 발끝으로 툭툭 옆구리를 찔러도 꿈쩍도 않을 정도로 깊이 잠든 상황!
“뭐 이런……!”
어이없어하면서 투란은 그 곁에 쪼그리고 앉아 쿤토르의 어깨를, 표범의 머리 부분을 손끝으로 꾹꾹 눌러봤다. 그냥 탄력 있고 질긴 살갗이 손끝에서 선명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인간과 다른 체격, 체질인 듯하지만 어쨌든 인간형인 종족…….
새삼 그 차이를 느끼면서 투란은 궁금해졌다.
‘오르카 켈카르’를 대마도사 카엘은 대체 왜 이 세상에 불러냈을까?
―대마도사 찾아가 목줄이라도 움켜쥐고 물어보지그래?
드라고니아는 투란을 향해 거침없이 놀리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 한숨을 내쉬며 투란도 투덜거리는 대꾸를 한다.
‘너네도 못 알아낸 거잖아? 포기한다!’
문득 바람 소리를 들으며 투란이 일어섰다.
쿤토르의 코골이 소리는 바람결을 타고 여기저기로 번져가는 듯했고, 숲의 호기심 많은 녀석들을 자극하는 모양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다가 투란은 일단 짐을 쿤토르 곁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죽과 고기 묶음…… 그리고 발톱과 이빨을 담은 주머니, 물주머니 등등.
검은 표범이 다져놓은 터전에 새로 꽂혀 남아 있던 번개와 벼락의 뜨거움이 잔잔하게 바람을 타고 흐르면서 투란이 내려놓은 것들로부터 냄새를 끌어내는 듯했다. 덕분에 보이지 않던 다람쥐, 오소리, 새들이 빈터를 둘러싼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다가 서로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은 소란을 일으켰다.
그중에서 조금 특별한 녀석 하나는 아예 당당하게 나무 틈새로 삐죽 코를 내밀고 킁킁거리더니 당당하게 코를 고는 쿤토르를 향해서, 멀뚱히 서서 지켜보는 투란을 향해서 네 발을 툭툭 내디디면서 다가오기도 했다.
‘저 냄새 독한 오소리 녀석이 미쳤나?’
―음? 저걸 오소리라고 하냐? 저거 울버린인데?
드라고니아가 갸웃하며 투란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응? 울버린? 늑대 중에서 작은 놈을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니었나?’
―울프가 늑대와 같은 뜻이기는 하다만, 저건 늑대랑 전혀 상관없는 종자이고 저 짐승을 울버린이라고 한다만? 냄새 독한 만큼 눈이 캄캄하고 냄새를 잘 맡지. 그리고 성질이 사납고 겁이 없다만…….
‘울버린이란 말은 처음 들어. 저리 생긴 녀석들은 그냥 얼룩 오소리, 방귀 오소리, 줄무늬 오소리…… 그렇게 나눠서 불렀는데 말이지. 아무튼 성질 더럽고 독한 방귀 잘 뀌고…… 이름이 뭐든, 저게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뭘 뭐해, 고기 먹자고 나온 거구만.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어느새 투란이 내려놓은 짐 사이로 코를 처박고 있는 오소리…… 울버린이 앞발로 고기 묶음을 당기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투란이 바로 울버린의 목을 낚아챘고, 앞발 사이에서 고기 묶음을 빼앗았다.
캬앙, 캬아앙!
“으르렁!”
울버린을 한입에 삼킬 정도의 입, 드라고의 입을 확 열면서 투란이 겁주는 소리를 내봤다.
팍팍.
성질 더러운 울버린은 겁내기보다는 냅다 투란의 턱과 입술 사이를 앞발로 후려치고 있었다. 사파이어 광채가 어린 비늘로 덮인 탓에 얼굴에 상처 하나 없기는 했지만, 투란은 놀랐다!
‘와, 이게 이렇게 겁 없는 녀석이었어?’
―그냥 알록달록해진 것뿐이잖아. 이 숲에 사는 도마뱀이 지금 너처럼 비늘 색상을 바꿔가며 겁주는 짓을 잘하지. 하지만 그래놓고 냅다 도망만 치는 겁쟁이들이야. 그 녀석들이랑 부딪혀봤다면 뭐, 딱히 비늘 돋았다고 널 무서워할 리가 없기는 하잖아?
콱!
투란은 울버린의 머리를 물었다.
둔탁한 드라고의 혀로 날름날름 문 머리를 핥으며, 으깨서 바로 죽이는 짓은 하지 않으며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가 퉤엣 하고 내뱉으니 울버린은 바닥에 떨어진 채로 움직일 낌새가 없었다.
“음, 겁은 안 먹어도 졸도는 하는구나! 음흣!”
만족한 듯 투란이 중얼거렸다.
―야, 이 미친놈아!
기막힌 듯,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쿤토르의 목소리도 나직하게 울린다.
바로 곁에서 일어난 소란에 수상함을 느끼고 잠에서 깬 듯한데…….
“작은 놈한테 심술부린다, 인간 어리다.”
하는 말은 투란을 나무라는 소리!
“그냥 계속 자! 널 물어뜯은 것도 아니잖아!”
“쿤토르, 더 잔다…… 작은 것 괴롭히는 인간, 보기 흉하다.”
“자라고!”
투란이 으르렁거리니 자는 시늉이라도 하겠다는 듯, 쿤토르가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곧 쿤토르의 코골이가 다시 우렁차게 빈터를 울려댔다.
잠깐 뭐라 떠든 것은 그냥 잠결에 쏟아낸 잠꼬대였다는 듯, 쿤토르의 잠은 꽤 깊은 것처럼 숲을 울리는 코골이와 함께 길게 이어졌다.
그 꼴을 보다가 투란은 졸도한 오소리의 배를 지그시 밟으면서 소리 없이 묻는다.
‘야, 이거 정말 울버린이라고 부르기도 해? 누가 그런 이름을 붙여둔 거야?’
―정말 울버린이란 이름을 몰라? 흠, 희한하군. 냄새 때문에 스컹크라고 착각하는 경우는 봤어도 아예 울버린이란 이름을 모르다니 말이야.
‘그래, 몰라. 이렇게 생겼으면 족제비 아니면 오소리지 뭐. 음, 그냥 짐승 이름이니 누가 붙인 건지 알 수 없는 건가?’
―아니, 이 녀석의 경우에는 확실히 호칭을 정한 이가 있다만.
‘에? 얘, 뭔 몬스터야? 이름 정한 사람이 확실히 누군가 알려져 있다니?’
―카엘이니까.
‘이놈의 대마도사는 정말 어디든 다 끼는구나!’
―사물의 명칭에 대해서는 오히려 빠지는 것이 이상하지! 드래곤의 저주 중에 한 가지를 풀어내면서 카엘이 정한 언어의 규범이 세계에 새겨졌으니까. 상식적인 교양 좀 쌓아라, 교양 좀!
‘언어의 규범? 그거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아, 그래! 몬스터 사냥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옛날이야기!’
―얌마!
‘도움이 되냐?’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이 어떤 꼴이었나 전혀 몰라? 아, 이 바보를 정말!
‘옛날이야기 맞네. 아무튼 지금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그렇지?’
―닥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