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00
#99화
보안팀장이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것은 사우나를 막 끝마친 직후였다.
– 팀장님. 접니다, 김권동.
“어, 녹취록이랑 소견서 다 썼냐?”
– 아뇨. 그게 아니라…….
“이 자식이 진짜. 최고참이라고 편의 봐줬더니 정신 못 차리지? 당장 10분 안에 소견서 작성해서 보내.”
– 아이 참, 그게 아니고요. 특이 사항 때문에 보고드리려고 전화한 겁니다.
잠시 후, 보안팀장은 들고 있던 맥반석 계란을 툭 떨궜다.
“USB를 갖고 있었다고?”
– 네. 통화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물건 잘 갖고 있다면서, 본인도 슬쩍 꺼내서 확인했다고 합니다. 준수가 직접 봤다니까 확실합니다.
“그, 그래서?”
– 표적이 직접 보관 중이라는데…… 당장은 준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보고드립니다.
“준수, 준수는? 당장 바꿔 봐.”
– 지금 패밀리어로 표적 감시 중이라 곤란할 것 같은데요.
보안팀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방금 보고받은 내용으로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전화 상대는 누구지? 표적의 정체는? USB 안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보안팀장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김권동이. 이거 길드장님께서 특별 지시 하신 거야. 알지?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 그거야 다들 알죠.
“뭐 하나라도 건지면 다 같이 대박 나는 거라고. 나도 위로 올라가고, 너도 짬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팀장 달아야 할 거 아냐.”
– ……그게 제 맘처럼 되나요. 적어도 B급은 되어야 팀장 달아 주는 거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내 생각에 이거 충분히 건수 된다. 진태경 그놈이 어디에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림 딱 나와. 우리 상동 길드 언급하면서 대화하는 내용만 들어 봐도 알잖아. 그치?”
– 저도 좀 그렇게 생각하긴 했습니다.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는 중이며, 상동 길드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물건은 잘 간수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와 진태경의 대화는 제삼자가 듣기에도 충분히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하물며 상동 길드의 보안팀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 USB가 핵심이야. 막말로 진태경이 소속된 평화 길드건, 어느 경쟁 길드건 간에 우리 길드 한번 엎으려고 수 쓰는 거면…….”
– 그런 거면 진짜 특급 정보죠.
보너스는 기본이고 승진은 옵션이다. 길드장의 눈에 든다면 무난하게 길드 임원까지 노려 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보안팀장은 길드장의 오른팔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고 김권동은 상동 길드 최초의 C급 팀장이 되는 꿈에 젖었다.
“계속 주시해. 난 일단 윗선에 보고하고 진태경 통화 내역부터 조회할 테니까.”
– 넵!
“나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간다. 아무리 늦어도 저녁 먹기 전에 표적이 어떤 놈이랑 통화했는지 뜰 테니까 그전까지 대책을 세워 보자고.”
보안팀장이 탈의실로 달려가려던 그때였다.
– 아, 팀장님.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뭔데.”
김권동의 목소리에서 불안함이 읽힌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고 적중했다.
– 홍우진이 있잖습니까.
“아, 젠장.”
실수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홍우진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보안팀장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놈이 먼저 움직이면 곤란한데.’
그가 아는 길드장, 임춘수는 상벌이 명확한 인물이었다.
신입이어도 실력을 입증한다면 출셋길에 아스팔트를 깔아 주고, 아니다 싶으면 10년을 근무한 길드원이라도 망설임 없이 쳐 내는 성격.
‘한두 번 본 게 아니지.’
단순히 홍우진에게 공(公)만 뺏기고 끝날 리가 없다. 보안팀장 자신의 밥그릇이 달려 있다.
돈? 그따위 문제가 아니다. 반평생을 몸담은 길드,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 보고 싶었다.
“권동아.”
– 예.
“그놈, 지금 집에 혼자랬지?”
– 팀장님, 설마? 안 됩니다!
“아직 말 안 끝났다.”
목소리가 커진 김권동과는 달리 보안팀장은 침착했다.
“이 일, 표적 제압하고 물건 챙겨서 가면 깔끔하게 끝난다. 어차피 C급이야, 쫄 거 없어.”
– 구린내가 풀풀 나는 C급이죠. 잘못 건드렸다가 저희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당해? 이제 겨우 C급으로 각성한 풋내기한테 B급 베테랑인 내가? 이거 자존심 상하네.”
– …….
“너, 설마 임창수가 했던 말 믿는 건 아니지? 그게 사실이면 진태경이 사실은 A급 헌터라는 소린데…… 그럴 거면 차라리 길드장님이 첩자라고 해라. 응?”
–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까지 하세요.
“됐고. 할 거야, 말 거야?”
– 하, 씨. 미치겠네.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던 김권동이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은 잠시 후였다.
– 우리 이거 걸리면 범죄자 되는 겁니다. 아시죠?
“알지. 안 걸리면 무죄라는 것도.”
– 팀장님, 진짜 간도 크시네요.
“그러니까 팀장이지. 애들은?”
– 지금 다 모여 있습니다. CCTV 파악은 투입된 첫날에 끝냈고 간단한 변장 장비도 있어요.
“좋아.”
– 언제 시작합니까?
보안팀장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내가 도착하는 즉시.”
옛말에 이르기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그에게 있어 C급 헌터는 한 손으로도 뽑을 수 있을 만큼 물렁한 뿔이다.
* * *
낚시가 성공했다고 느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야옹.
미야옹.
내 환심을 사기 위한 두 패밀리어의 애교 세례.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르다.
짧은 다리로 버둥버둥 소파에 올라오더니 다른 곳도 아닌 허벅지 위에 자리 잡는 모습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미끼를 물었구나.’
주머니에 들어 있는 USB가 미끼다. 감시자들은 지금쯤 궁금해서 미칠 지경일 거다.
내가 통화에서 말한 계획과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누군지, 이 USB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지.
‘생각보다 과감한 놈들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들이나 나나,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다. 평일 오후, 아파트 단지는 한적했고 TV에서는 재미없는 귀농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아, 오랜만에 뒷산이나 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현관문을 나서려던 그때, 기다리던 변화가 일어났다.
[Lv.2 고양이] [Lv.2 고양이]패밀리어 마법의 해제. 이 현상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는구나.’
새끼 고양이의 몸으로는 내게서 USB를 훔칠 수 없다. 하지만 표적인 내가 직접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가 봐도 고만고만한 C급 헌터, 마음 놓고 뺏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물론 그 과정에 적당한 폭력과 협박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단, 감시자들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착각했다.
바로 나라는 존재다. 항상 가해자였던 그들은 자신들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기대되네. 어떤 놈들일지.’
허락 없이 불법 스토킹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줄 생각이다.
* * *
진태경이 부동산에서 얻은 정보는 절반만 맞았다. 상동 길드의 보안팀과는 달리 홍우진의 아지트는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바로 진태경이 사는 아파트 옥상이었다.
“후우.”
패밀리어와의 링크를 해제한 홍우진은 옥상에 딸린 자그마한 비품 창고에서 눈을 떴다.
그는 경비원에게 약간의 돈을 찔러 주는 것으로 5평 남짓한 최적의 공간을 며칠간 마련할 수 있었다.
“이거 일이 더럽게 꼬였네.”
심상치 않은 진태경의 통화, 뭐가 담겼는지 모를 USB.
드디어 정보라고 할 만한 걸 알아냈지만 그건 상동 길드 쪽도 마찬가지다.
비품 창고에서 나온 그는 옥상 밑을 내려다봤다. 까마득한 저 아래, 막 아파트 입구를 나서는 진태경이 보였다.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의뢰를 생각한다면 따라가는 게 맞는데, 어쩐지 꺼림칙하다. 홍우진이 갈등하는 눈빛으로 멀어져 가는 진태경을 지켜보던 그때였다.
“허, 이것 보게?”
한 명, 그리고 다시 한 명.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꼴이 딱 먹이를 노리는 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 숫자가 도합 여섯.
각자 복장도 다르고 행동거지도 일반인과 다름없지만 업계 동업자인 홍우진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상동 길드 놈들이군.”
한두 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여섯이 몰려나왔다.
더군다나 표적의 목적지는 인적이 드문 야산. 곧 벌어질 일을 짐작한 그가 미간을 찡그렸다.
“가지가지 한다. 아주.”
무력행사는 홍우진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처음 의뢰를 맡을 당시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보안팀을 투입시켰을 때 관뒀어야 했는데……. 이건 도를 지나쳤다.
‘진태경, 저놈은 내 손으로 털고 싶었는데.’
정체가 궁금해지는 놈이지만 딱 여기까지다. 더 이상 얽히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상동 길드, 이 양아치 새끼들.’
혀를 찬 홍우진이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발송했다.
수신인은 1팀장. 문자 내용은 짧고 간략했다.
〈 1팀장
일 접습니다.
옥상을 떠나기 전, 이미 사라진 진태경의 명복을 빌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그로서는 여러모로 재수 옴 붙은 의뢰였다.
* * *
묵묵히 산길을 올랐다. 이미 등산로를 벗어난 지 오래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깊숙이, 더 깊숙이 계속해서 걸음을 옮길 뿐.
그러던 어느 순간 너른 평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릎에 닿을 정도로 높이 자란 잡초가 무성한 그곳에서,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아직도 산책 중이신가 봐요?”
앞서 두 차례 마주친 바가 있는 중년인, 김권동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
“대답이 없으시네. 옆에 계신 분은 누구?”
“친구.”
김권동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인상이라면 지금 대답한 이 남자는 정반대였다.
조폭도 울고 갈 만큼 험악한 인상에 거구의 소유자. 그의 입술 사이로 걸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 알면서 왜 여기까지 왔지?”
“뒤에서 졸졸 따라오시길래. 어디까지 따라오나 본 거죠. 똥개 훈련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남자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린놈이 당돌하네. 몇 살이냐?”
“역마살이요.”
“매를 버는 재주가 있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최병일 씨.”
남자, 최병일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떻게 알았지?”
“그거야 영업 비밀이죠. 그런데 김권동 씨랑 친구 맞아요? 외관상으로 봤을 때는 투샷이 영 아닌데.”
이번에는 김권동이 당황할 차례다. 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친구가 아니라 대답하기 곤란한가? 그럼 다른 네 분한테 물어볼게요. 박형진, 오규현, 이민철, 김준수 씨는 솔직하게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우우웅.
허공이 일렁이더니 네 사람이 뚝 떨어져 내린다. 머리 위로 레벨창을 각자 달고 있는 그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다들 뭘 그렇게 놀라시나. 숨이라도 편하게 쉬시라고 배려해 드린 건데.”
최병일이 이를 악물었다. 처음의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초조함과 당황에 물든 얼굴이다.
“이런 씨팔…… 너 뭐 하는 새끼야?”
먼저 욕 박았으니까 어른 공경은 여기서 끝이다. 나는 최병일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직도 몰라? 내 정보 싹 긁었을 텐데. 패밀리어까지 붙여 놓을 정도면 말 다 한 거지.”
“……!”
“집에 나 혼자였으면 그러려니 했겠는데, 가족들까지 감시당할 거 생각하니까 좀 열받더라고. 그래서 미끼 한번 던져 봤더니 덥석 물데?”
여섯 명의 감시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럼 USB도?”
“아, 그거? 내가 평생을 바쳐 모은 야동 컬렉션.”
인벤토리에 소중히 보관해 놨던 인류의 보물이다.
“말도 안 돼! 분명히 촉이 왔는데.”
“음. 말도 안 되는 작품들이 수두룩하긴 하지. 남자라면 촉이 오는 것도 당연한 거고.”
하나같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성실하게 대답해 줬으니까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
한 명, 한 명.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몸을 움찔거린다.
마침내 내 시선이 멈춘 곳에는 빼빼 마른 20대 남성이 서 있었다. 아마도 이놈이 패밀리어 마법사겠지.
[Lv.41 김준수]“준수야. 너희 상동 길드에서 보내서 왔지?”
“입 닥쳐!”
최병일이 외쳤지만 김준수는 이미 대답을 끝낸 후였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진 얼굴이 바로 그의 대답이다.
“오케이, 상동 길드. 그럴 줄 알았다.”
내 말을 들은 최병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이름은 입에 담지 말았어야지.”
“왜, 죽이게?”
“……널 사로잡고 생각해 보지.”
“그거 되게 힘들 텐데.”
최병일의 레벨은 60대 중반. 느껴지는 기세는 임창수와 비등하고 나머지는 그저 그런 3, 40레벨 정도의 C급이었다.
전문적인 레이드 팀도 아닌 이들이 나를 사로잡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죽을 각오로 덤벼. 그래야 내 손목에 나비매듭이라도 묶을 수 있지.”
“쳐!”
최병일의 외침과 함께 상동 길드의 감시자들이 사방에서 달려들기 시작한다.
쉬이이익!
어깨 위로 떨어지는 단검 한 자루가 시작이다.
나는 느릿느릿하게만 보이는 그 궤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인벤토리 오픈. 장착.’
콰직!
공력을 한껏 머금은 검날이 적의 단검을 부쉈다. 이름 모를 잡초 위로 조각난 날붙이와 누군가의 핏물이 쏟아진다.
“들어와, 이 스토커 새끼들아!”
쐐애애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