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99
#98화
홍우진은 후회했다.
‘내 생각이 짧았구나.’
침입은 성공적이었다. 고양이 덕후인 표적의 여동생에게 접근, 애처로우면서도 반짝이는 눈망울로 마음을 사로잡았으니까. 다만 문제는…….
“우리 여름이는 뭘 먹고 이렇게 귀여워요? 응? 응응?”
미야옹.
“여름아, 왜 자꾸 문밖으로 나가려고 해. 여기서 언니랑 놀자.”
야옹.
“꺅, 너무 귀여워!”
하악! 하아아악!
“헉, 여름이 화났어? 미안해. 언니가 너무 만졌지? 알았어, 가만히 있을 테니까 침대 위에서 놀고 있어. 응?”
이 망할 여동생이라는 녀석이 도무지 밖으로 내보내 줄 생각을 안 한다는 거다. 덕분에 하루 반나절 이상을 진하연의 방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됐다.
‘차라리 개로 할걸.’
개였다면 지금처럼 쉽게 들어올 수는 없었겠지만 들어온 이후에 반 감금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산책 정도는 시켜 줬을 테니까.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위기감에 휩싸인 홍우진은 탈출을 시도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그렇게 독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벅, 벅벅벅벅.
“…….”
야옹. 야오오오옹.
“…….”
첫 번째 시도는 실패다. 괜히 방문도 박박 긁어 보고, 큰 소리로도 울어도 봤지만 진하연은 책상에 앉아 단 한 번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 그저 매서운 눈빛과 손놀림으로 문제집을 풀어 가고 있을 뿐.
‘전국 상위 0.01%라더니.’
1차 조사 자료에서 봤다. 중학교 때부터 전교 1, 2등은 예사고 각종 경시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수두룩했으니 잊기도 힘든 내역이다.
홍우진은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책상 앞에 앉은 그녀는 정말이지, 어마 무시한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이런 애가 마법사 하면 딱인데……가 아니고.’
그는 그 후로도 어떻게든 공부를 방해하려고 애썼다. 쉴 새 없이 발을 건드리고 애교를 부려 댔다.
하지만 진하연의 대응은 간단했다.
“언니 지금 공부 중이야. 방해하면 안 돼.”
의자에 발을 올려 책상다리로 앉아 버리고 나니 이 조그마한 몸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게 되었다. 아기 고양이의 한계였다.
‘이번 작전은 실패다.’
공부 방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별수 없이 최후의 카드를 꺼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에 큰 손상을 입겠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것도 무시하나 보자.’
쉬이이이이.
새하얀 이불보가 노랗게 물든다. 본래 큰일과 작은 일은 한 번에 해결해야 하는 법.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끝마친 홍우진은 굳게 결심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처리하자. 프로답게.’
데굴데굴.
패밀리어 마법을 시작한 지 5년. 이렇게까지 망가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세뇌를 걸었다.
‘나는 프로다, 나는 프로다, 나는 프로다…….’
잠시 후, 뭔가 이상한 냄새를 맡은 진하연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모든 게 끝난 후였다.
미야옹.
대소변으로 물든 이불, 마찬가지로 오물로 범벅이 된 아기 고양이 한 마리.
“꺅, 여름아!”
깜짝 놀란 진하연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더러워진 이불을 걷고, 조심스럽게 고양이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화장실 두고 여기서 싸면 어떡해. 우리 여름이 씻어야겠다.”
‘그래, 문으로 가라! 문!’
고대하던 순간이다. 비록 오물로 범벅이 된 채 스무 살도 안 된 여자애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만 홍우진은 희열에 가득 찼다.
달칵.
열린다, 문이!
어제 이후로 보지 못했던 거실이 보인다!
미야옹! 미야오옹!
“이상하네. 얘가 왜 이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진하연이 갸우뚱하던 그때였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다녀왔습니…… 뭐냐, 그건?”
“어디 다녀왔…… 그건 뭐야?”
남매는 서로를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면 각자의 손에 들린 생물체를.
야옹.
미야옹.
황당한 시선을 교환하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홍우진?’
‘저놈은 상동 길드의 아마추어?’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쟤는 왜 온몸에 똥칠을 하고 있어?’
‘아, 시바.’
홍우진이 갖고 있던 마지막 인간의 존엄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 *
“이불에다가 똥칠을 해 놨다고?”
“어. 잠깐 공부하는 사이에 실수했나 봐.”
실수는 개뿔, 다분히 의도적이다.
하연이가 방에만 두고 물고 빠니까 어떻게든 나오려고 머리 굴린 거지, 뭐.
미야옹…….
고양이, 아니 이제 두 마리니까 이름을 불러 줘야겠구나.
어쨌건 여름이의 힘없는 울음소리에 하연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애가 아까부터 힘이 없어.”
“음, 그럴 수 있지.”
모르긴 몰라도 자괴감이 장난 아닐 거다.
몸에 똥칠한 채로 업계 동업자와 감시 표적을 동시에 맞닥트렸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원래 고양이들은 몸에 물 닿는 거 싫어하잖아.”
“그래서 그런 건가? 아냐, 아까 씻길 땐 반항도 안 하고 얌전하던데.”
“아, 그래?”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애가 좀 넋이 나간 느낌이야. 자기도 사고 친 걸 알아서 미안해하는 건가?”
우리 여름이, 현자 타임이 제대로 왔구나.
나는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거야 모르지. 아무튼 너 이불 어쩌냐? 시트도 새로 갈아야 되겠네.”
“괜찮아. 사람이 한 것도 아니고 동물인데, 뭘.”
별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더니.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하연이의 한마디는 비수로 변해 누군가의 가슴에 꽂혔다.
움찔.
울음소리도 못 내고 작은 몸을 부르르 떠는 아기 고양이 한 마리. 반면 다른 한쪽은 신이 났다.
그릉, 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내 다리에 연신 얼굴을 비벼 대는 검은 고양이를 하연이가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얘는 어디서 데려왔어?”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길고양이야?”
“그렇겠지. 혼자 있었으니까.”
“뭐? 그럼 엄마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새끼 고양이는 하루 정도는 지켜보고 데려와야 해.”
“어떤 아저씨한테 들었는데, 어제부터 혼자 울고 있었다는데?”
“아, 그럼 엄마 없네.”
움찔!
골골거리던 애교가 딱 멎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2킬을 달성한 하연이가 해맑게 웃었다.
“우쭈쭈. 너도 엄마가 없구나. 괜찮아, 오늘부터 언니가 엄마 해 줄게.”
“…….”
내 동생이지만 웃는 얼굴로 엿 먹이는 재주가 제법인데.
검은 고양이는 직업 정신과 패드립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했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였다.
야옹.
어머니의 원수에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하다. 저런 게 바로 직장인의 애환이지.
지켜보고 있자니 문득 엄마에게 생각이 미쳤다.
“엄마는?”
“몰라, 중요한 약속 있다고 나가셨어.”
“약속?”
“응, 요즘 자주 나가셔.”
무슨 일이지?
근래 들어 엄마의 외출이 잦아졌다. 일을 관둔 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니 스스로의 삶을 찾으시는 걸까?
‘그러고 보니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로 앉아 계신다거나, 갑자기 말을 걸면 화들짝 놀란다거나. 확실히 엄마의 주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때가 되면 말씀해 주시겠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믿는 분이 바로 우리 엄마다. 언제나 그렇듯이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물론 적절한 시기에 함께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 드리는 것도 자식의 도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별것 아냐. 그나저나 너는 어디 안 나가냐?”
“뭐야, 꼭 어디 나가기를 바라는 말투네.”
“꼭 그런 건 아니고.”
“흠, 수상해. 여자 친구 데려오려는 건 아니지?”
“…….”
제발 데려올 여자 친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내 표정에 하연이가 주춤했다.
“아, 미안.”
“……사과하지 마. 두 배로 비참해져.”
“진짜 미안해.”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생각해 보니까 도서관에 책 반납해야 할 게 있네.”
방 안으로 뛰어가더니 가방을 들쳐 메고 나오는 속도가 광속이다. 쾅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히자 집 안이 조용해졌다.
‘솔로의 마음을 후벼 놓다니.’
가슴 한구석이 휑해졌지만 내가 원하던 무대가 드디어 만들어졌다.
가급적이면 가족이 없을 때 해결해야 될 문제니까.
미야옹.
야옹.
각기 검고 흰 두 마리의 고양이가 슬금슬금 다가와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쫑긋 선 귀.
나에 대한 정보를 건지고 싶어 안달이 난 패밀리어들을 뒤로하고 베란다로 나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수백 대의 차량이 늘어선 주차장이다.
‘주차장은 클리어.’
귀가하기 전, 패밀리어를 품에 안고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아 보았다. 남들 눈에는 날씨 좋은 날 산책하는 한량으로 보였겠지만 목적은 차량 확인이었다.
결과는 이상 무.
‘그럼 역시 집밖에 없지.’
이로써 감시자들이 최근 거래된 아파트를 아지트로 삼았음이 확인됐다. 나는 부동산에서 얻은 정보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5동 901호. 4동 302호. 3동 202호.’
공교롭게도 세 곳 전부 우리 아파트를 중심으로 감싸는 형태로 자리해 있다. 창문으로도 동 입구를 내려다볼 수 있어 감시에 용이한 위치.
감시자들이 어느 곳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저 중 어디에 숨었냐는 건데…….’
발각을 우려해 마법 장비가 아닌 패밀리어를 붙일 정도로 조심성을 갖춘 놈들이다.
섣부르게 다가갔다가는 놓친다. 확실한 검거를 위해서는 그만큼 큼지막한 미끼를 던지는 수밖에 없다.
‘슬슬 시작해 볼까.’
촥, 촤르륵.
우선 집 안의 모든 커튼을 쳤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둑해진 거실 중앙에서 주머니를 뒤적였다.
‘인벤토리 오픈. 마나 탐지 장비.’
동시에 손바닥의 절반만 한 쇳덩이가 손에 잡혔다.
이름 그대로 마나를 탐지할 수 있는 장비, 스토어에서 2천만 원이나 주고 산 물건이다.
‘다음 단계, 수색.’
탐지 장비를 들고 집 안을 꼼꼼히 훑었다. 내부에 아무런 마나가 감지되지 않는 걸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통화를 걸었다.
뚜, 뚜. 달칵.
통화 연결음과 함께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내가 대답했다.
“접니다, 진태경.”
그런 내 모습을 두 마리의 패밀리어가 숨도 쉬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 * *
김준수는 눈을 뜸과 동시에 외쳤다.
“왔어요, 왔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견서를 쓰고 있던 보안팀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뭐?”
“누가 와? 우리 팀장?”
“아니면 설마…….”
말꼬리를 흐린 팀원을 향해 김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적이요. 이 자식 이거 구린내 장난 아닙니다.”
“진짜로?”
“네. 집 비자마자 커튼 칠 때부터 뭔가 쎄 했는데, 탐지 장비까지 사용해서 집 안 점검하더라고요.”
평범한 C급 헌터, 그것도 휴가 중인 놈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 방 안의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래서?”
“폰 꺼내더니 전화부터 걸던데요.”
“전화? 누구한테?”
“그걸 모르겠어요.”
김준수가 미간을 찡그렸다.
“통화가 3분도 안 될 만큼 짧았던 것도 있지만, 호칭에 굉장히 주의한다는 게 느껴질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해. 일단 윗선에 보고해서 저놈 통화 기록 털어 보면 되니까.”
“그래, 더 나온 건 없고?”
“왜 없겠습니까. 그놈이 뭐라고 한 줄 아세요?”
크흠. 한차례 목을 가다듬은 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네, 네. 상동 길드 쪽에서는 아직 눈치 못 챘습니다. 물건은 잘 갖고 있습니다.”
듣고 있던 팀원들이 무릎을 탁 쳤다.
“이거네!”
“드디어 하나 건졌다.”
“와, 방금 살짝 소름 돋았어. 이거 무슨 비밀 요원이야?”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김권동이 불쑥 입을 열었다.
“진수야, 방금 그 자식이 무슨 물건 갖고 있다고 하지 않았냐?”
“좋은 지적입니다.”
김진수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놈, USB를 갖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