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33
#332화
“감히 어느 놈이 장강에서 행패를 부리느냐!”
저쪽에서 대답해줄 것 같지는 않은데.
무송의 외침을 한 귀로 흘려넘긴 나는 공력을 일으켜 안력(眼力)을 높였다.
족히 이백여 장은 떨어진 거리. 그러나 인간 독수리라고 불러도 될 만큼 향상된 시력은 모든 광경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냈다.
‘저건…….’
수적이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쾌조선보다 훨씬 큰 선박 두 척이 자그마한 배 한 척을 에워싸고 있었고, 화살이며 작살처럼 보이는 검은 점들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중이었다.
그리고 놈들이 탄 배에 휘날리는 깃발을 확인한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무송을 향했다.
“어느 잡놈들인지는 몰라도 잘 걸렸다. 여봐라! 당장 저 근본 없는 놈들을…… 왜 그러나?”
“어, 선배님. 이게 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뭐가 말인가?”
“저 근본 없는 잡놈들. 장강수로맹 소속 같은데요?”
“……?”
“……?”
잠시 말이 없던 무송이 버럭 소리쳤다.
“그럴 리 없네!”
“아니 그럴 리 없는 게 아니라, 깃발에 장강수로맹이라고 아주 용맹한 글씨체로 쓰여 있어요.”
“자네, 조금 전에는 문맹이라고 하지 않았나?”
수적이 아니라 면도날인가. 의외로 예리한 면이 있다.
나는 당황하는 대신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제가 좀 빨리 배우는 편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게 문젭니까? 촌각이라도 빨리 장강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저 무뢰배들을 처단해야죠!”
무송은 나부터 처단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내 의견에는 십분 공감했다.
“그렇지.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감히 장강에서 살인을…… 내 저놈들을 일장에 쳐 죽이고 말리라!”
저게 수적 두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개탄스럽지만, 궁기방에게 슬쩍 들은 말에 의하면 무송은 장강수로맹 내에서도 온건파에 속하는 수적이었다.
돈만 뺏으면 됐지, 목숨은 뭐 하러 뺏냐는 것이 그의 지론이라는 것이다.
“…….”
아니, 결국 뺏는다는 거잖아.
생각해 보면 어째 그놈이 그놈 같긴 한데, 심심하면 칼부터 날리고 보는 무림에서 그것도 장강수로맹주의 제자씩이나 되는 1티어 수적치고는 양심적인 게 맞다.
“적기(赤旗)를 올려라!”
두목인 무송의 우렁찬 외침에, 전투를 의미하는 붉은 깃발을 내건 다섯 척의 쾌조선이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쏴아아아아!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돛. 최고의 속도를 내기 위해 개조한 쾌조선은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며 거리를 지워 나갔다.
이백 장의 거리가 순식간에 절반으로 좁혀졌을 때, 백병전을 시도하려던 수적들 사이에서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쾌, 쾌조선!”
“수룡채의 무송이 나타났다! 모두 후퇴하라!”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무송이 아니었다.
어느덧 적과의 거리는 불과 오십여 장. 황급히 자신들의 배로 돌아가는 무리를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에 기광이 번뜩였다.
“어느 놈들인지 낯짝이나 보자!”
빠드득, 이 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작살을 잡아챈 무송이 선미를 박차고 뛰어 올랐다.
쾅!
단단한 목재 바닥이 부서짐과 동시에, 포물선을 그리며 쏘아진 무송의 신형을 장강이 거칠게 집어삼켰다.
‘저거 위험한 거 아닌가?’
장강을 강원도 계곡 정도로 보면 곤란하다.
비록 이곳이 본류(本流)에서 갈라진 장강의 한 줄기라고는 하나, 바다만큼이나 드넓고 수심이 깊은 데다가 물살 또한 거칠기 짝이 없었다.
오죽하면 헛구역질을 하던 혁무진까지 창백한 얼굴로 물어봤을까.
“저거 구해야 되는 거 아닙, 우웨에에엑!”
“기방아, 저 자식 등 좀 두드려 줘라.”
“내가 무슨 유모도 아니고…….”
당연히 유모는 아니지. 누가 거지를 유모로 써.
투덜거리면서도 혁무진의 등을 퍽퍽 두드린 궁기방이 말했다.
“그리고 무지해도 정도가 있지. 수적 두령이 수공(水功)도 익히지 않고 장강에 뛰어들었을 것 같으냐? 그것도 물에서는 당해 낼 자가 없다는 해상왕의 제자가?”
“아, 그러네.”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나 단단히 잘못 걸렸다. 오늘 줄초상 나겠군. 쯧쯧.”
궁기방의 예견은 정확했다.
수 초 후, 무송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쾌조선보다 십여 장은 앞선 지점이었다.
촤아아악!
거대한 신형이 물결처럼 유연하게 곡선을 그릴 때마다 수상스키처럼 치고 나가는 걸 보니 저절로 입이 딱 벌어진다.
“이럴 수가!”
심지어 쾌조선보다 빠른 속도.
마치 어인(魚人)과도 같은 모습으로 선박을 향해 돌진하는 무송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피가 끓어오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간다!”
궁기방이 비명처럼 외쳤다.
“가긴 또 어딜 가!”
“우웨에에엑!”
“은인, 저도요!”
“다 꺼져! 위대한 항로가, 장강이 나를 부른다!”
버뮤다 삼각지대를 뿌리치며 갑판을 가로지른 나는, 뱃머리에서 온 힘을 다해 솟구쳤다.
쾅! 우지지직!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난 뱃머리. 부유감에 휩싸인 몸과 맹렬하게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
쐐애애애액!
“자유! 프리덤!”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었고, 이내 힘을 잃고 추락했으며.
“선배님!”
“헉!”
타닥!
지나가던 어느 어인의 등에 사뿐히 안착했다.
각도와 속도, 거리 계산, 떨어지는 지점. 그 모든 것들이 정확했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였다.
“후우. 완-벽.”
“뭐가 완벽해!”
예상치 못한 무임승차에 무송은 고함을 내질렀지만, 이미 올라탄 걸 어쩌겠나.
나는 서둘러 뱃머리를 돌리고 있는 수적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갑시다!”
“이런 제기랄! 이왕 이렇게 된 거, 선박까지 돌진한다!”
“그래, 그래야 내 선배님이지!”
“자네는 끝나고 보세!”
촤아아아악!
이를 악문 무송이 속력을 더욱 높였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은 수적들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는 한 자루의 작살이 되어 배의 옆면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으니까.
“가라, 선배! 어인 유술 해류 한 팔 업어치기!”
“이야아아아!”
나와 무송은 목이 터져라 외치며 동시에 팔을 뻗었다.
그는 작살을, 나는 창을 쥐고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 끝에 맺힌 강대한 기운.
쐐애애애액!
바람을 베어 버리며 쇄도한 두 개의 창기(槍氣)가 축축하고 단단한 배의 옆면을 파고든 다음 순간.
꽈앙! 쿠구구궁!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굉음이 울려 퍼졌다.
* * *
“무진아.”
내 진중한 목소리에 마침내 구역질을 멈춘 혁무진이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나 수적 체질인가 봐.”
“그건 또 무슨 헛소립니까.”
“곡소리 듣고 싶니?”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그만 말실수를. 다시 생각해 보니까 잘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예. 무모, 아니 용맹하게 선박을 그대로 관통해 버리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훤합니다.”
“짜릿했지.”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서히 침몰 중인 배를 바라보았다.
한쪽에서는 쾌조선에 실려 있던 조그마한 나룻배에 나눠 탄 무송의 수하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수적들을 건져 내고 있었고, 다른 한 척의 배에서는 고개를 푹 떨군 수적들이 줄줄이 밧줄에 묶인 채로 쾌조선에 옮겨 타고 있었다.
‘한 척은 침몰. 다른 한 척은 나포(拿捕).’
첫 수전(水戰)치고는 아주 훌륭한 전과다.
원래는 두 척 모두 침몰시킬 생각이었지만, 동료들이 탄 배가 침몰하는 광경을 보자마자 전의를 상실한 수적들이 항복해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항복했다 하더라도, 결말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감히 네놈들 따위가 장강수로맹의 이름을 더럽혀?”
아무리 무송이 온건파니 뭐니 해도, 결국은 살인에 거리낌 없는 무림인이자 거친 장강에서 살아온 수적이다.
한 번 꼭지가 돌아 버린 무송은 거칠 것 없었다.
“물고기 밥으로 던져 줘라.”
꽁꽁 묶여 있던 수적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는 없습니다!”
“채주! 제발 그것만은!”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송의 싸늘한 눈빛이었다.
“채주? 속해 있는 수채가 다르거늘, 내가 왜 네놈의 채주란 말이냐. 그리고 걱정하지 말거라. 네놈 두령도 곧 따라갈 테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수룡채의 영역까지 침범해 가면서 이런 짓을 벌였다면 이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굳이 너희를 건져 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내 손으로 직접 처벌을 내리기 위해서다.”
무송이 턱짓하자 그의 수하들이 다가와 수적들을 질질 끌고 갔다.
코앞까지 들이닥친 죽음의 존재에 수적들이 비명을 내질렀지만, 이미 사지가 결박당한 그들은 풍덩 소리와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오십여 명이 넘는 수적들이 차례차례 산 채로 수장(水葬)당하는 광경에 청풍이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 만도 하지.’
피도 무서워하는 놈이 이런 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괜히 신경이 쓰여서 넌지시 말을 건넸다.
“눈 감고 있어. 끝나면 알려 줄게.”
“아니에요, 은인. 전 괜찮아요.”
“죽어도 싼 놈들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죽는 모습이야. 보기 힘들 수도 있지.”
“아뇨.”
“응?”
청풍이 눈가를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그저……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익숙해지다니. 청풍이 이런 말을 할 줄이야.
청풍은 타고난 품성 자체가 선하고 또래의 청년들과 달리 속세에 찌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피를 무서워하고 살생을 피해 왔는데, 지금 녀석에게서는 단단한 심지가 느껴졌다.
‘숭산에서 있었던 혈주(血主)와의 싸움. 그때부터인가?’
난생처음 겪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청풍의 뭔가를 깨운 것이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무림이니까.’
맞다. 이곳은 무림이다. 그것도 전운(戰運)이 감도는 무림.
이런 곳에서 언제까지 천진난만한 산골 청년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렇게라도 성장했다면…… 차라리 다행이지.’
금방이라도 감기려는 눈에 힘을 잔뜩 준 채로 버티던 청풍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수적들의 처리가 끝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황태구. 이제 네놈 차례다.”
무송의 낮은 목소리가 갑판 위에 울려 퍼졌다.
다른 수적들과는 달리 쇠사슬에 꽁꽁 묶인 채 무송의 앞에 무릎 꿇려진 오십 대의 사내. 황태구가 바로 이번 일을 주도한 흉수였다.
그 모습을 본 궁기방이 중얼거렸다.
“왜 여기에 무송이 있나 의아했는데, 이렇게 된 거로군.”
“무슨 소리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도 파벌이 있는데, 수적 집단인 장강수로맹은 오죽할까.”
“저 황태구라는 놈이 파벌 싸움에서 밀렸다?”
“욕심 많고 난폭하기로 유명한 자였지. 몇 년 전만 해도 사천의 장강을 주름잡았는데…… 무송에게 밀려난 게 틀림없어.”
내부 알력 싸움에서 밀린 패배자가 막 나가다가 덜미를 붙잡혔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황태구의 입이 열렸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놈에게 할 말 따위 없다. 죽여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네놈의 소원처럼 될 것이다. 하지만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크큭, 멍청한 질문이로군. 나는 수적이다. 수적이 죽이고 빼앗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된단 말이냐?”
“말이 안 통하는군. 진즉 네놈을 죽였어야 했어.”
얼굴을 굳힌 무송이 작살을 들어올린 그 순간이었다.
“선화아(船火兒) 무송 대협께서는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