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35
#734화
평소의 최 팀장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쉽게 내보이지 않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늘 핵심만 간단히 말하기 때문에 돌잡이 때 마이크를 잡았다는 베테랑 리포터도 쩔쩔 멜 정도다.
하지만 그런 최 팀장도 결국 피가 흐르는 사람. 그도 가끔은 제법 풍부한 감정을 보여 준다.
특히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눌 때는 숨겨 두었던 감정을 아낌없이 쏟아 내고는 했다.
바로 지금처럼.
“오딘 길드요. 거기 주인장 면상이나 한번 보러 가고 싶네?”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멍하니 벌어지는 입.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아래에서는 이미 동공 지진이 일어나는 중이다.
이 새끼, 또 사고 치려고 작정했구나.
딱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최 팀장은, 한참의 침묵 후에 간신히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지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흠.”
잠시 생각하던 내가 말을 이었다.
“아마도 반반?”
“반쯤 미쳤다는 소리군요.”
“그게 그렇게 되나?”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당장 오딘 길드장을 만나러 가겠다는 정신 나간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가슴? 머리?”
“가슴.”
내 짤막한 대답에 최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직 완전히 미친 건 아니라서.”
“멀쩡한 사람 보고 미쳤다니. 그냥 얼굴 보고 커피나 한잔하려는 건데. 어차피 프랑스에도 아레스 길드 체인점 있으니까 구실 삼아서 겸사겸사…….”
“체인점이 아니라 길드 지부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소리를 저더러 믿으라고요? 농담하시는 겁니까?”
정색하며 묻는 최 팀장의 모습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뭐, 만약 그쪽이랑 대화가 잘 풀리지 않는다면 약간의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죠.”
“엄청난 트러블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알아듣겠습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 라고 반문하려다 참았다.
나로서도 양심상 최 팀장의 우려가 너무 과장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단신으로 아레스 길드에 쳐들어가 석고준 뚝배기를 깬 것이 현대의 시간으로 불과 몇 주 전의 일이다.
‘해 먹은 게 있어서 뭐라 말도 못 하겠네.’
더군다나 나는 바보가 아니다.
지금 당장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간, 썩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할 거라는 사실 역시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에펠탑이 무너지고, 길드가 무너지고, 우리를 향한 여론이 황폐화…… 네?”
“알았다고요.”
이미 한발 앞서 환각에 시달리고 있던 최 팀장이 눈을 깜빡였다.
“정말입니까?”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초에 명분이 없잖아요.”
하다못해 사람 목숨이 가축과 동급인 무림에서도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한 법인데, 지금 당장 파리로 날아가서 오딘 길드를 들이받아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인터폴 수배령이 전부다.
‘그나마 석고준을 처리할 때는 국민들의 지지라도 있었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는 해도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고, 이번과는 달리 증언과 증거도 확실했다.
거기에 온갖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석고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까지.
내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행동을 했음에도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여러 가지 요소들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는 다르겠지.’
가슴은 당장 파리로 쳐들어가 깽판을 치라고 외치고 있지만, 아직 살아 있는 이성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내 선택에 최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열심히 스마트폰을 보며 육개장을 퍼먹던 스켈레톤 킹은 숟가락을 툭 떨어트렸다.
“이럴 수가. 지금 명분이라고 하신 겁니까?”
“말도 안 돼. 너 이 새끼 몬스터지! 도대체 간악한 인간을 어찌 한 것이냐!”
“…….”
“진태경 씨, 이건 간단한 확인 절차니까 너무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가 어딥니까?”
“야! 도플갱어! 간악한 인간의 몸속에서 나가!”
아주 염병들 하고 자빠졌네.
나는 대답 대신 식탁 위에 올려 둔 숟가락으로 스켈레톤 킹의 정수리를 후려갈겼다.
빡!
“두개골! 내 아름다운 두개골이!”
울부짖는 스켈레톤 킹의 모습을 바라본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진태경 씨가 맞군요.”
“…….”
묘하게 기분 나쁜 확인 절차를 끝마친 최 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생각을 바꾸셔서 다행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면, 국제 범죄고 나발이고 지금이라도 당장 파리행 티켓 끊었겠죠.”
“맞습니다. 오딘 길드가 사라지면, 또 다른 오딘 길드가 나타날 테니까요.”
아레스 길드가 적이었을 때와 마찬가지다.
세상은 넓고, 쓰러트린 적의 빈자리는 또 다른 적으로 채워진다.
우리가 공성(攻城)으로 아레스 길드를 차지했듯이, 저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주위에 바글대는 경쟁자들로부터 성을 지켜 내고, 최대한 영토를 넓혀야 하는 것이 성주의 의무였다.
더군다나 오딘 길드는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이리 따위가 아니다.
거대한 몸과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맹수.
심지어는 탐욕스럽기까지 하다. 지금 막 최 팀장이 내민 태블릿 PC에 적힌 내용처럼.
“이건…….”
“쓰촨성 몬스터 웨이브 당시, 중국 정부에서 오딘 길드 측에 전달한 참여 제안서입니다. 물론 법적 효력이 없는 비공식이고요.”
비공식 제안서라.
유출이 거의 불가능한 자료를 어떻게 최 팀장이 손에 넣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종석 아저씨가 줬어요?”
“종석 아저씨가 아니라, 샤오 양 주석입니다.”
“예. 그러니까 종석 아저씨.”
“…….”
“뭐 어때요. 친근하고 좋구만. 어차피 그 아저씨도 나 되게 좋아하는데.”
반쯤 포기한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최 팀장이 말을 이었다.
“진태경 씨도 아시다시피, 사태 초기 중국 국무원과 상무위원회에서는 국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서구권의 지원을 극렬히 반대했죠.”
두개골을 소중히 쓰다듬고 있던 스켈레톤 킹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반대했다고? 왜?”
글쎄, 왜일까.
이유를 말하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나는 친절한 목소리로 의문에 대한 정답을 알려 주었다.
“중국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같은 인간이 죽어 나가는데?”
“중국이라고.”
“아니, 간악한 인간이여. 지금 이 몸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데…….”
“응. 중국.”
“……?”
“그런 게 있어. 넌 아직 모를 수도 있겠지만.”
물음표로 가득한 스켈레톤 킹의 얼굴을 뒤로한 나는, 최 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쨌거나 서구권에도 지원 요청을 했잖아요? 영국의 필릭스 왕자나, 매직 존슨도 마찬가지고.”
“네. 아크 리치로 인한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커지자, 중국 지도층도 어쩔 수 없이 샤오 양 주석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겁니다. 단, 사태가 마무리되면 외교적, 물질적으로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니 이를 생각해서 전력을 구축해야 했죠.”
그렇게 모인 S급 헌터가 나를 제외하고서라도 무려 네 명.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전력인 것은 맞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정룡이 이끄는 아레스 길드와 더불어 핵심이 되어야 했을 오딘 길드가 발을 뺐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제안을 거절했대요? 이 정도면 오딘 길드도 충분히, 아니,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 정도의 금액 같은데.”
내가 이렇게 물어볼 만큼, 태블릿 PC 화면 속 비공식 제안서에 적힌 고용 수당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전에 언뜻 들었던 아레스 길드의 고용 수당과 비교해도 두 배에 가깝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옵션들까지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오딘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쳐준 최고의 대우.
하지만 이런 내 의문은, 다음 순간 들려온 최 팀장의 목소리에 깔끔히 해결되었다.
“최종적으로 거절한 쪽은 중국 정부입니다.”
“예?”
“협상이 거의 끝날 때쯤, 오딘 길드에서 추가 조건을 붙였거든요.”
“추가 조건이라면…….”
미지근한 커피를 한 모금 삼킨 최 팀장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쓰촨성의 대표 행적 구역인 청두, 메이산, 쯔양, 쑤이닝을 포함한 10개 시(市)를 향후 99년간 오딘 길드에 임대하고, 베이징에 정식 지부 설립을 허가해 줄 것.”
“……!”
“사실상 쓰촨성을 할양(割讓)하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중국 정부에 의해 금지되어 있는 정식 지부 설립은 덤이고요.”
세상에,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야.
멍하니 최 팀장을 바라보던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와, 미친 새끼들. 이건 짱깨보다 더하네.”
“샤오 양 주석이 알려 준 정보에 따르면, 오딘 길드가 협상 직전 프랑스 정부와 접촉했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정신 나간 제안을 하지?”
“프랑스잖습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상식이라는 게.”
“프랑스라고요.”
“……저기요. 최 팀장님?”
“프랑스.”
“…….”
왠지 모르게 묘한 기시감이 드는데. 단지 기분 탓인가.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내게, 최 팀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진태경 씨, 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프랑스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아.”
순간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과 함께, 나는 탄성을 토해 냈다.
“유럽 짱깨……!”
그런 나를 보며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부색과 문화가 다를 뿐. 그들 역시 ‘그 부류’입니다. 대통령이 불륜을 저지르건, 무슨 짓을 하건 프랑스인들은 신경 안 써요. 괜히 오딘 길드가 파리에 본사를 둔 게 아닙니다. 구설수가 있어도 별다른 잡음이 일어나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건 그냥 인터넷 밈 아니었어요?”
“파리에서 보낸 학창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역사 교과서에 외조부님의 사진이 등장하자, 교실 안의 모두가 저를 바라보며 눈을 찢었습니다.”
“아.”
“선생님도 같이 찢고 있었습니다.”
“아앗. 아아…….”
“괜찮습니다. 다 지난 일이니까요.”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접은 최 팀장이 말을 이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저런 프랑스 정부를 등에 업은 오딘 길드라 해도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우 쉐이밍 일가를 암살한 것처럼, 물리적인 위협 대신 단지 경고로 그칠 수밖에 없죠.”
그건 그렇다.
현재 아레스 길드의 성벽에는 천태민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고, 지금껏 내가 세상에 보여 준 모습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설령 그것이 세계 최고로 꼽히는 오딘 길드나, 다른 어떤 거대 길드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환호하고 있습니다. 비록 언론은 거대 길드를 노골적으로 비난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을 질타하는 여론도 상당하고요.”
민심(民心).
마나 연공법 공개를 통해 얻은,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방패.
우리는 손에 들어온 민심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오딘 길드조차 범접할 수 없도록 해야…….
“음,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불쑥 입을 연 스켈레톤 킹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 환호라는 게, 이런 거 말하는 거냐?”
녀석이 내민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불과 수십여 초 전 게시된 뉴스 속보가 떠올라 있었다.
[오딘 길드, 아레스 지지 선언] [오딘 길드, 새로운 마나 연공법 공개] [고위 관계자, “이미 수년 전부터 준비해 온 프로젝트”] [“비록 한 걸음 늦었지만, 그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다.” 세계 최고의 품격]시벌, 이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