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 Practice Disciple RAW novel - Chapter 1
1화 : [제1장] 매화검보 1
[제1장] 매화검보화산. 사과애.
깎아지를듯한 절벽이 있는 이곳에는 하나의 동굴이 있었다. 화산파 제자 중 잘못을 저지른 자가 있으면 일정 기간 폐관 수련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동굴의 이름은 참회동(懺悔洞)이라 했다.
이른 아침 한 소년이 참회동 안팎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백의를 입은 소년은 열다섯 살 정도 되었을까.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청소를 하는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이제 거의 다 되었군. 비록 대타이긴 하지만 연습제자 삼 년 만에 참회동 청소까지 맡게 되다니. 무공은 꼴찌지만 내가 생각해도 청소는 잘한단 말이야. 대사형께서 오시려면 아직 반시진은 더 있어야 할 텐데, 동굴 안쪽을 구경이나 해볼까.’
소년 백리사초(百里思初)가 참회동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치워진 동굴 안은 제법 말끔했다.
워낙 오래된 고동이라 대리석처럼 빛을 낼 수는 없지만, 새벽부터 나와 청소를 한 보람이 있었다.
백리사초가 향한 곳은 동굴 안 석실에 놓여 있는 평평한 바위였다.
한 달 전 화산파 장문인의 여식 악소소(惡昭昭)가 장문인이 아끼던 도자기를 깨트려 단 하루지만 이곳에서 폐관 수련을 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말괄량이로 알려진 악소소는 그 하루를 못 참고 동굴 안을 어지럽혔다고 했던가.
‘아가씨도 이 바위 위에서 참회 명상을 하셨겠지.’
일명 참회 바위라 불리는 바위 위에 가부좌하고 앉은 백리사초가 귀여운 여자아이 얼굴 하나를 떠올렸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어리다고 들었는데, 장문인 따님이라 그런지 무공이 정말 대단했었지. 그보다 너무 예뻐서 장차 천하제일미인이 될 게 분명해.’
백리사초가 악소소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본 것은 석 달 전으로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해마다 연습제자들은 공개 평가를 거치는데, 이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정식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전에는 화산파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해야 했다.
하지만 연습제자가 되는 것 또한 경쟁이 치열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습제자 중에서 정식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화산파의 관례였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무턱대고 제자를 받아들이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일단 정식제자로 받아들이면 본격적으로 화산파 무공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심성이 좋지 못하거나 끈기가 없는 제자를 사전에 가려낼 방안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연습제자 제도였다. 이는 화산파에서 처음 고안해낸 것이지만, 지금은 이를 따라 하는 문파들이 대부분이었다.
백리사초가 악소소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연습제자 다섯 명과의 대련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둔 때문이었다.
‘아가씨가 상대한 제자들은 연습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들로 이번에 정식제자가 된 자들이었다. 한데 그들을 단번에 제압하다니. 몇 년만 지나면 강호의 일대여협이 될 게 분명하구나. 그에 비해 나는 연습제자 중 항상 꼴찌를 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정식제자도 되지 못하고 쫓겨나는 게 아닐까.’
백리사초의 안색이 굳어졌다.
갑자기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악양에 있는 백리세가는 수백 년 전 한때 무림세가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으나, 무공들이 실전되면서 지금은 몰락한 가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무림세가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삼 년 전 그나마 남아 있던 재산을 모두 화산파에 기부해 백리사초를 연습제자로 넣을 수 있었다.
참고로 연습제자는 다시 둘로 나뉘는데 그 자질로 뽑은 제자와 기부를 통해 받은 제자가 있었다.
삼백 명이 넘는 연습제자 중 절반가량이 기부제자일 정도로 그 비중이 컸지만, 그들 중 정식제자가 되는 비율은 일 할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 자질 평가를 거쳐 연습제자가 된 제자들은 그 절반가량이 정식제자로 되고 있어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연습제자로 받아들이는 나이는 대략 열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연습제자가 되면 기초무공을 배우는데, 이 기초무공이 일정 경지 이상이 되면 평가를 통해 정식제자가 될 수 있었다.
‘정식제자가 되면 휴가를 받아 집으로 갈 수 있다. 언제 나는 그런 날이 올까. 부모님께서 내가 삼 년 연속 평가 시험에서 꼴찌한 것을 아시면 얼마나 속상해하실까. 날 화산파 연습제자로 넣기 위해 집까지 파셨거늘.’
백리사초의 안색이 더욱더 굳어졌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초 무공 중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운기토납법부터 거의 진척이 없었다.
하루 중 절반은 화산파 내에서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연습제자 신분이긴 하지만, 그 외의 시간은 정말 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연습을 했었다.
하지만 진보가 거의 없었다.
연습교관의 말로는 자질 부족이라 했다.
내공심법도 아니고 그야말로 기초적인 운기토납법의 구결 해석 능력이 모자란다는 설명이었다.
그렇다고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어릴 적에는 천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글공부에 뛰어났고 기억력도 탁월했다.
하지만 무학 서적만 보면 왠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몰랐다.
‘나도 이곳에서 폐관 수련을 하면 대오각성해서 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내 주제에 무슨 고수가 되겠는가. 정식제자만 돼도 소원이 없을 텐데······.’
백리사초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참회 바위에서 내려왔다.
그때였다.
동굴 석벽 한 곳에서 돌 부스러기 같은 것이 우두둑 떨어졌다.
백리사초가 인상을 찌푸렸다.
기껏 청소해놨는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젠장, 다시 치워야겠군.’
백리사초가 빗자루로 바닥에 떨어진 돌가루를 쓸어 한쪽으로 치웠다.
청소를 마친 그가 고개를 든 바로 그때였다.
돌 부스러기가 떨어진 석벽에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원래 이렇게 약했나?”
백리사초가 금에 오른손을 대자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이 벽으로 들어갔다.
“앗!”
백리사초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려다 뭔가가 닿는 것을 느끼고 그 물건을 뺐다.
“아! 이것은?”
백리사초가 놀라며 손에 쥔 것을 쳐다봤다.
오래된 비급 한 권.
상당히 두툼했다. 백리사초가 일단 먼지를 털고 비급 제목부터 봤다.
“매화검보? 이거 혹시 칠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셨던 매화검선(梅花劍仙)께서 남긴 비급이 아닐까? 만약 사실이면 정말 대박인데?”
백리사초가 비급의 내용을 살펴보려던 찰나.
동굴 입구에서 인기척이 나며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청소가 끝나지 않았느냐?”
“아!”
백리사초가 비급을 손에 쥔 채 신형을 돌렸다.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백의청년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대사형을 뵙습니다.”
백리사초가 고개를 숙였다.
“하하하! 연습제자 주제에 무슨 대사형이냐? 양심이 있다면 정식제자가 된 후에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 네 녀석 이름이 무엇이냐?”
“백리사초라고 합니다.”
“백리사초? 으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혹시 우리 화산파 역사상 최초로 평가 시험에서 삼 년 연속 꼴찌한 녀석이 아니냐?”
“맞습니다.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지요.”
백리사초가 얼굴을 붉혔다.
하늘 같은 대사형 앞이라 모욕을 당한 기분은 전혀 없고 부끄러움뿐이었다.
“하하하! 녀석! 됐다! 청소 끝났으면 이만 가보도록 해라. 사흘간 폐관수련 벌칙을 수행해야 하니까. 으음, 한데 손에 든 것은 무엇이냐?”
“아, 이건······ 조금 전 석벽에서 발견한 비급입니다.”
“비급? 어서 보자.”
“네.”
백리사초가 급히 비급, 즉 매화검보를 대사형에게 바쳤다.
대사형, 즉 우천위(羽天胃)가 비급의 내용을 한참 봤다.
안색이 급변하는 것을 보니 그 내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대사형. 진짜 매화검선께서 남기신 매화검보입니까?”
“검보를 봤느냐?”
“아닙니다. 제목만 봤을 뿐입니다.”
“그래? 이 비급을 본 다른 사람은 없고?”
“네.”
“그랬군. 알겠다. 이 검보는 본파에서 수백 년간 찾던 비급이다. 사초 네가 큰 공을 세웠구나. 어쩌면 공을 인정받아 정식제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백리사초가 매우 기뻐했다.
“물론이다. 내가 힘을 써주마. 평가를 보지 않고 정식제자가 되는 추천 제도도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백리사초가 고개를 숙였다.
악양 고향 집에 있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기뻐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하기야 화산파 정식제자가 되기만 하면 그 무공이 비록 약해도 중소도시에서 무관 하나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었다.
“정말 감사······ 윽!”
백리사초가 고개를 들다가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부릅떴다.
혈도를 찍혔기 때문이었다.
혈도를 찍은 사람은 바로 우천위였다.
아혈까지 찍혀 말도 못 하는 백리사초를 향해 우천위가 말했다.
“미안하다. 비급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서 말이야. 그게 우리 화산파 전통이니 어쩌겠느냐? 네놈 같은 꼴통이 어찌 이 위대한 비급을 익힐 수 있겠느냐? 깨끗하게 죽여주마. 너는 실족사한 것으로 처리될 것이다.”
우천위가 한 손으로 백리사초를 들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동굴 밖에는 천 길 낭떠러지가 있었다.
낭떠러지 가장자리까지 간 우천위가 주저 없이 백리사초를 절벽 아래로 던져버렸다.
휙.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는 백리사초는 눈을 감았다.
생각나는 것은 가족뿐이었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내게 다시 기회가 있다면 절대 저놈에게 비급을 주지 않을 텐데······.’
* * *
“사초! 어서 일어나! 참회동 청소를 대신 해주기로 했잖아?”
덩치가 곰 같이 큰 소년 한 명이 잠을 자고 있는 한 소년을 깨우고 있었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었다.
한데 누워있는 사람은 바로 백리사초가 아닌가.
“헉!”
깨어난 백리사초가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내가 안 죽었나?”
“죽긴 왜 죽어? 어서 사과애로 올라가서 참회동 청소를 해라. 나는 어머님 병환 때문에 집에 가봐야 하니까. 설마 약속을 어길 생각은 아니겠지?”
“그게 아니라 내가······ 꿈이었나?”
백리사초가 고개를 갸웃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다.
백리사초가 잠시 생각하다가 참회동에 있는 참회 바위 모양에 관해 물었다.
백리사초와 연습제자 동기인 초웅(草雄)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위 모양에 관해 설명해줬다.
“아!”
백리사초가 탄성을 터뜨렸다.
꿈속에서 본 참회 바위 모양이 초웅이 말한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실제였어. 내가 다시 살아난 걸까? 혹시 그 옥패 때문에?’
백리사초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옥패를 꺼냈다.
옥패 표면에 생(生)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금이 가 있었다.
‘어머님께서 무명노승 한 분께 시주하고 받은 이 옥패. 어쩌면 이게 나를 살렸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백리사초가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회동으로 가는 거야?”
“그래, 약속은 지켜야지.”
백리사초가 방에 있던 보자기 하나를 챙긴 후 방을 나섰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매화검보는 내가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