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 Practice Disciple RAW novel - Chapter 20
20화 : [제7장] 무저곡 2
무저곡.
끝이 없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여기서 끝의 의미는 한번 사과애에서 추락하면 그 끝이 없을 정도로 깊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실제는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
그 이유는 바로 무저곡 주위에 쳐둔 절진 때문이었다.
칠백 년 전 매화검선이 직접 설치했다는 이 절진은 따로 매화절진(梅花絶陣)이라 불리기도 했다.
현재 무저곡은 매화절진 때문에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 자체가 없었다.
아니 없다기보다 절진이 이를 막아두고 있었다.
유일한 입구는 바로 사과애에서 직접 낙하하는 것이었다.
천 길 낭떠러지긴 하나 무공이 높은 고수는 경공술로 내려올 수 있긴 했다.
한때 무저곡 속에 매화검선이 남긴 비급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몇몇 고수가 시도를 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무저곡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금빛 안개에서 찾았다.
금빛 안개는 일종의 독기류로 그 어떤 고수라도 한번 들어가면 마치 군자산에 당한 것처럼 내공을 사용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기이한 돌개바람까지 계곡 위에 불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절진 속으로 빠져들어 갈 위험이 컸다.
그 때문일까.
화산파는 이곳 무저곡을 오백 년 전부터 절대금역으로 지정했다.
화산파에는 매화검총 같은 금역이 여러 군데 있는데, 이중 무저곡은 금역 중의 금역인 절대금역이었다.
일반금역과 절대금역의 차이는 화산파 장문인이라고 해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장문인조차 못 들어가게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안전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그 누구도 무저곡으로 들어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무저곡 출입구는 절진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그 위치 또한 잊혀졌고 사과애를 통한 진입조차 거의 불가능해졌기에 벌어진 결과였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화산파 내에서 어떤 이유이든지 살인 사건이 나면 그 시체를 무저곡으로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는 비단 화산파 무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른 문파 무사들 또한 살인을 은폐하려고 일부러 사과애로 올라와 무저곡으로 시체를 버리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최근에는 드물었다.
사과애 위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고, 외부인들 같은 경우 곳곳에 화산파 무사들의 초소가 있어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섣불리 시체를 들고 접근하다가 화산파 무사들에게 걸려 그 죄가 드러나게 될 가능성이 더 컸다.
물론 귀령노인 같은 절정고수급 이상의 경우는 예외였지만, 그러한 고수들은 구태여 이곳까지 와서 시체를 처리할 필요성 자체가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런 무저곡에 한 사람이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휙휙휙.
추락할수록 가속도가 붙기 때문에 당사자는 곧바로 정신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물며 주화입마 직전에다가 치명적인 타격까지 당한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정신을 잃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 사람, 즉 백리사초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더욱더 맑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온몸이 굳어져 꿈쩍도 못 하는 상황.
그만큼 마지막에 귀령노인에게 당한 충격이 컸다.
원래라면 격중 당시 곧바로 몸이 터져 죽었어야 했으나, 매화폭잠공 덕분으로 그러한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저곡 밑으로 추락하고 있는 이상 살아날 가능성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무저곡 안에 절진이 없다고 해도 계곡 바닥에 닿는 즉시 온몸이 그대로 터지고 말 것이었다.
백리사초의 몸은 원래보다 두 배 정도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마치 풍선과도 같았다.
이는 매화폭잠공의 기운이 외부 충격으로 극대화한 때문으로, 추락을 막지 못하면 그 끝은 참혹할 게 분명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백리사초가 정신을 바짝 차리며 뭐라도 해보려 했으나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시도해보려는 것은 무명비수로 절벽 면을 찍어 그 추락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다.
무명비수라면 충분히 절벽을 뚫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 가닥 희망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러한 그의 의지와 달리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리사초가 절망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금빛 안개 같은 것이 마치 보호막처럼 흐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무저곡의 바닥 부근까지 온 것이었다.
게다가 돌개바람 같은 것이 불면서 그와 절벽과의 거리 또한 멀어졌다.
이제는 무명비수를 꺼내도 절벽을 찌를 수가 없게 되었다.
‘이대로 끝인가. 결국 매화검보를 얻은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구나.’
백리사초가 처음으로 매화검보를 얻은 것을 후회했다.
하기야 무림에는 오래된 격언이 있었다.
보물이나 비급을 얻게 되더라도 그것을 지킬 실력이 없으면 참화를 피하기 어렵다고.
백리사초의 경우가 그랬다.
아무리 절세비급과 절대 내공을 지니고 있으면 무얼 하는가.
아직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전에 이렇게 화를 당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거부했을 것이었다.
‘내가 너무 주제를 몰랐다. 만년 꼴찌라는 그 수치심 때문에 내 능력도 모르고 덥석 기연을 받아들였지. 되지도 않는 꿈을 꾸고서 말이다.’
백리사초가 죽음을 앞두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의 꿈은 원래 그렇게 거창하지 않았다.
화산파 정식무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강호에 약간의 명성을 얻고 말년에는 고향에 무관을 하나 차리는 것 정도.
부모님은 가문을 일으키길 바랐으나, 그 정도까지는 자신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의 꿈이 소박해진 것은 삼 년 연속 평가대회에서 꼴찌를 한 게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한 번의 죽음 이후 회생을 하고 매화검보까지 얻게 되자 그의 꿈은 다시 커졌다.
무엇보다 마음에 두고 있던 악소소의 목숨까지 구하게 되고 친분까지 맺게 되자 또 다른 목표까지 생겼다.
그래서 그의 꿈은 천하제일인이 된 후 악소소와 혼인하는 것이 되었다.
매화검보를 익히면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악소소와 혼인하는 것은 아직 백리사초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비록 그녀에게 만능공자라는 정혼자가 있긴 했지만, 자신이 천하제일무공을 지니게 되면 상황이 달라지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어쩌면 아직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때는 그런 상상을 자연스럽게 하는 나이니까.
‘내가 너무 어렸고 서툴렀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눈을 감고 있는 백리사초는 이제 조금씩 집착을 버리고 있었다.
후회와 자책도 했고,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조용히 생을 마감할 생각이었다.
그런 초연한 마음을 갖자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이 편해졌다.
터질 것 같은 몸뚱이도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무형검에 도전해볼까?’
어떤 결과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형검의 초입에 잠시 발을 담가본 그로서는 그 경지가 얼마나 평온하고 행복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다시 살아난다면 그때는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겠다. 매화검보도 무명검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을 의지하고 등불로 삼으리라.’
백리사초가 자연스럽게 어떤 결심을 했다.
그것이 깨달음인지 아닌지는 그 자신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백리사초가 눈을 떴다.
자신의 몸이 바닥에 닿았기 때문에 난 소리였다.
하지만 추락하는 속도가 늦추어졌는지 통증은 거의 없었다.
낮은 침상에서 떨어진 정도.
“아!”
백리사초가 주위를 둘러보며 탄성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위는 한 폭의 무릉도원을 방불케 했다.
금빛 안개가 은은히 흐르는 가운데 처음 보는 기화이초와 수목들이 가득했다.
이를 모를 새도 날아다니고 폭포도 있었고 절벽도 있었다.
‘이곳이 무저곡인가? 한데 나는 왜 멀쩡해졌지?’
백리사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그곳에 가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두 배 이상 부풀어 오른 모습은 간데없고 원래 그대로였다.
즉시 시냇가 옆에 가부좌하고 몸 상태를 점검했다.
매화심공을 일으키자 막힌 데가 없이 일주천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두 달 이상의 요양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내상이 말끔히 회복된 점이었다.
귀령노인에게 장풍을 격중당한 것까지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몸 상태였다.
‘설마 내가 매화심공 팔성에 도달한 것인가?’
백리사초가 급히 자신의 경지를 점검했다.
참고로 매화심공의 경지는 자신만이 알게 되는데, 팔성부터는 깨달음의 영역이라 명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는 마음속으로 탑을 쌓는 것과 비슷했다. 명상을 통해 그 탑의 높이를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 역시 팔성에 도달했구나. 아직 십이성 경지에 도달하려면 멀었지만, 무형검의 초입에 들어간 것만은 틀림없다.’
백리사초가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흥분하지는 않았다.
백리사초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저곡 전체를 한번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하기야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아무리 매화심공 팔성에 도달했다고 해도 매화절진을 무리 없이 통과한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었다.
‘매화절진은 매화검선께서 설치한 것이니, 내가 익힌 매화심공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화심공을 팔성 이상 연마한 자만 들어올 수 있게 하신 것인가.’
매화곡 전경은 의외로 단순했다.
무릉도원과 같은 계곡이 된 것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단지 눈에 띄는 것은 동굴 한 곳이었다.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 이곳에 누군가 살았다면 적합한 거처였다.
무저곡 전체를 감싸고 있는 절진의 특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그 핵심은 바로 금빛 안개였다.
금빛 안개 자체가 침입자로 하여금 미혼진에 빠지게 하는 위력이 있었다.
매화검보에는 진법에 관해서도 설명이 되어있어, 백리사초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칠백 년 전 매화검선께서 어떤 이유에서인가 절진을 설치하셨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당시 이곳에 진법으로 가둬야 할 적이 있었던 게 아닐까. 내 예상이 맞는다면 당시 계곡에 있었던 사람들은 평생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외부의 원조도 바랄 수 없었을 것이니, 그야말로 완벽한 감옥 역할을 했을 것 같군.’
백리사초가 눈을 빛내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은 없었지만 마치 상고시대 동굴처럼 오래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왠지 꺼림칙한 생각도 들었으나, 혹시라도 매화검선의 유체가 있을지 몰라 계속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처음에는 좁던 통로가 점점 넓어지며 거대한 광장 같은 것이 나왔다.
광장 벽 곳곳에는 야명석이 밝혀져 있어 주위는 대낮처럼 밝았다.
‘아! 이런 곳이 있었다니. 족히 천 명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백리사초가 광장 곳곳을 둘러보다 광장 벽에 뭔가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빛냈다.
처음에는 오래되어 갈라진 금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무공 구결이었다.
좀 더 자세히 보니 구결뿐만이 아니라 자세 등 무림비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백여 개에 달하는 무공이 벽에 새겨져 있었다.
그중 하나를 자세히 본 백리사초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는 무슨 무공인지 전혀 몰랐겠으나, 이제는 눈이 높아져 있는 그라 그 특징을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마공이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마공들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