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69
69화
사흘 뒤 평소와 같이 천휘는 호숫가에 도착하자 정자에서 호수를 보던 남궁진경이 손을 번쩍 들었다.
“천휘 소도장!”
소리치던 그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천휘의 앞에 선 그의 얼굴은 그때의 상처가 낫지 않아서 멍이 들고 울퉁불퉁했지만, 미소로 가득했다.
“기다리고 있었네.”
“어제보다 기운이 넘치네요.”
“하하하. 미안하네. 내 어제 자네와의 대련으로 깨달은 게 있다 보니…….”
남궁진경이 멋쩍게 웃었다.
그와의 비무로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덕분에 천휘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으며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그러면 바로 하는 게 어떤가?”
천휘는 들뜬 표정으로 곧바로 검을 뽑기 시작하는 그와 눈을 맞췄다.
그는 대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과 같은 고수의 가르침은 보기 힘든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았지만 꼭 그렇지 않았다.
‘나도 남궁세가의 무공을 견식하고 있으니 피차일반이니.’
그가 펼쳤던 무공은 총 여덟 가지.
대부분이 원래 알던 무공들이었지만 그것만 해도 꽤 큰 수확이었다.
‘괜히 창천(蒼天)의 가문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
익힌 무공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창천! 뇌전! 섬전!
얼핏 보기에 서로 달라 보였지만 모두 똑같이 저 하늘을 품고 있었다.
화산파가 매화를 천마신교가 역천을 품은 것과 같이.
여태 봐 온 무공들을 하나씩 정리해 가던 천휘는 고요한 눈으로 응시하는 남궁진경과 눈을 맞췄다.
“이번에는 어떤 무공인데요?”
바로 남궁진경이 눈을 반짝였다.
“천풍검법이라네!”
‘오 천풍검법? 오랜만에 보겠네.’
“어제 선보였었던 대연검법보다 더 위력적일걸세!”
이제는 익숙한 자신만만한 외침에 천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인상이 많이 바뀌긴 했어.’
사흘 동안 이루어진 대련으로 인해 그에 대한 인상이 확연히 달라졌다.
매일 대련에서 처참하게 패배를 겪었어도 전혀 침울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패배한 당일 절치부심해서 다음 날 새로운 무공을 선보이면서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전보다 더 보기 좋긴 해.’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무공에 진심인 것도 강한 상대를 마주해도 꺾이지 않는 것도.
이내 그를 향해 검지를 까딱였다.
“그러면 와요.”
“그 말을 기다렸네!”
몇 번이나 봐 왔던 손짓에 남궁진경은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았다.
“오늘이야말로 소도장이 검을 뽑도록 만들고야 말 것이오.”
기합으로 가득한 말과 달리 남궁진경의 목적은 매우 소소해 보였지만.
남궁진경은 그 목적이 태산보다도 거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대가 천휘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천휘가 불타기 시작하고 있는 그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꽈악!
도발에 남궁진경은 두 눈동자를 굳히더니 손에 쥔 검을 꽉 파지했다.
“그러면 먼저 가겠네!”
이미 천휘와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낀 남궁진경은 선수를 취했다.
천휘는 달려드는 몸을 틀어 남궁진경의 검을 피하며 입을 달싹였다.
“이걸로 끝인가요?”
“이제부터 시작일세!”
남궁진경이 내공을 불러일으켰다.
한순간에 피어난 뇌기가 빠직거리고 그의 검이 크게 휘둘러졌다.
‘알던 것과 별 차이 없는…… 오?’
천휘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조금 아니, 상당히 달랐다.
한 번, 두 번 횟수가 거듭될수록 남궁진경의 검이 강해지고 있었다.
‘내공만 많다고 이런 공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 가능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 남궁진경은 해내고 있었다.
천풍검법이라는 독특한 검법 덕분인 것인지, 아니면 바짝 날이 선 날카로운 집중력 덕분인 것인지.
공세가 폭풍처럼 계속 몰아쳤다.
‘이렇게 쉬지 않고 계속 공격하다가는 내공이 먼저 고갈될 텐데?’
천휘의 눈에 흥미가 깃들었다.
아주 예전 그가 알고 있던 천풍검법은 자유로운 변초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연환격까지 펼치다니.
‘이것도 바뀌었나?’
영롱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검을 휘두르는 남궁진경을 훑길 잠시.
휙―
천휘의 손이 움직였다.
바로 천풍검법을 흘리며 반격을 하자 남궁진경이 반응했다.
탓!
단숨에 보법을 밟아 피하며 검신을 뒤틀어 반격에서 몸을 보호했다.
여태껏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다 처음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본 천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는 피할 줄 아네요.”
별 것 아닌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남궁진경의 입술이 경련이 난 것처럼 꿈틀거렸다.
“자네의 수법을 한두 번 보겠나!”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힘겹게 삼키던 남궁진경이 입을 달싹였다.
“이 정도면 자네가 검을 뽑을 정도는 되지 않았나?”
천휘는 들뜬 그를 보며 말했다.
“아뇨.”
“그게 무슨……. 헙!”
남궁진경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코앞에 나타난 천휘가 손바닥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새하얀 손바닥이 남궁진경의 시야를 온통 삼켜 버릴 정도로 커지고.
콰앙!
새까만 어둠이 찾아왔다.
이마에 큰 충격을 받은 남궁진경은 정신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그래도 이번에는 인정을…….’
결국 의식을 잃고만 남궁진경은 그 모습 그대로 바닥에 대(大)자로 쿵 하고 쓰러졌다.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얼굴은 완전히 웃고 있어서 기괴하게 느껴졌다.
“전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다른 것들은 한참 모자라도 연환격은 대체로 쓸 만하게 펼친단 말이지.”
턱을 쓰다듬으면서 방금 전 남궁진경이 펼쳤던 무공을 회상하길 잠시.
휙―
뒤로 고개를 꺾으며 입을 뗐다.
“그만 나오죠?”
그 순간 눈앞에 돌풍이 일더니 당당하게 뒷짐을 진 노인이 나타났다.
‘저 얼굴은?’
어째서인지 낯이 익은 노인을 훑어보고 있으니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이 두 번째 보는구먼.”
“아! 사흘 전의.”
목소리를 들으니 누군지 알았다.
사흘 전 수문무사를 닦달해 남궁세가의 방문을 허락하게 했던 자였다.
“계속 숨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나오셨네요.”
노인이 멋쩍은지 수염을 매만졌다.
“알고 있었나?”
“그렇게 계속 노려보는데 모를 수 없죠.”
노인이 큼큼거리며 고갤 돌렸다.
“사실은 중간에 나오려 했네. 그런데 본 가의 아이가 화산파의 도사와 대련을 하는 것이 하도 신기해서 지켜보다 그만……. 나오는 것을 깜빡해 버렸지 뭔가.”
“깜빡했다고요?”
“그렇네.”
그냥 잊었다고?
미심쩍은 말이었지만, 민망함에 헛기침을 연발하는 것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그런데 화산파의 도사들이 본 가에 머물다니 감회가 새롭구먼.”
노인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다시는 본 가에 구파일방의 인물들이 머물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건만……. 그래도 같은 정파라서 그런가. 다시 사이가 좋아졌나 보구먼.”
“네?”
“허허. 그래도 내 말을 듣기는 했구나. 무림맹과 척을 져서 좋은 것은 그토록 없다고 했으니…….”
의아했다.
사흘간 남궁세가에서 지내는 동안 느낀 것은 적대와 경계가 태반이었다.
그런데 사이가 좋다니.
“그럴 리가 없는데.”
“주적은 간악한 사파……. 뭐라?”
중얼대던 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그럴 리가 없다니? 그렇다면 어째서 자네들이 본 가에 머무는 겐가?”
노인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자신들이 방문한 이유는 남궁세가에 이미 파다하게 퍼진 일이었다.
안 그러면 창천대전에 그토록 많은 가솔들이 모였겠는가.
바짝 얼굴을 가져다 대는 노인을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거래 때문인데요.”
“거래?”
“이미 다 알 텐데요.”
천휘는 노인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큼, 큼.”
그 시선을 마주한 노인은 당혹감을 감추려는 듯 헛기침을 하며 웃었다.
“허허. 최근에는 이곳에서만 지내느라 본 가의 사정을 잘 모른다네.”
‘아무리 그래도 남궁가주가 나설 정도로 큰일이었는데 모른다고?’
노인은 어정쩡한 미소를 만면에 짓고 있었다.
‘뭔가 있긴 한가 본데?’
의심스럽지만 추궁하지는 않았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고 어차피 거래에 대한 건 다 알려졌으니.
“흑효살마의 시체를 건네주고 대신해서 무언가를 받기로 했다는데 무얼 받는지까지는 자세히 모르겠네요.”
“흑효살마라고?!”
노인의 표정이 싹 변했다.
어정쩡한 미소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눈동자엔 서늘함이 깃들었다.
“그 빌어먹어도 시원찮을 놈을 죽이고 사체를 가져왔단 말인가.”
천휘의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드러났던 노인의 기세는 매섭고 강렬했다.
‘가주보다 강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화산파가 그놈을 처리한 건가.”
“네?”
이어진 노인의 말에 천휘는 또다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는 한데 신기하네요. 보통은 화산파가 처리했다고는 생각 안 하던데.”
노인의 눈썹이 크게 들썩거렸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화산파가 그 정도의 고수를 잡았다고 생각하지 못하잖아요.”
“허허. 화산파가 흑효살마를 처리하지 못한다니 뭔 헛소리인가.”
“네?”
“응?”
둘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표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길 잠시.
‘설마 화산파의 상태를 모르나?’
문득 하나의 가정이 떠올랐다.
오 년 내 화산파에 대해서 좋게 말하는 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이 몰락해 가는 도가라고 무시하거나 한물간 취급을 했었다.
물론 겉으로는 과연 화산파라고 추켜세우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자는 다르단 말이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좀 전 내뱉은 노인의 말 속에 짙은 호의와 경외심이 실려 있었으니.
‘에이, 그래도 설마 모르겠어?’
화산파가 거의 몰락해 가고 있단 것은 온 천하가 아는 일이었다.
무슨 심산유곡에 은거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남궁세가 내부에서 살면서 그것도 모르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설마가 사람을 잡지도 않은가.
천휘는 노인을 보며 물었다.
“화산파가 몰락한 것은 알아요?”
“뭐? 화산파가 몰락해? 허허허. 요즘 화산파의 도사들은 농도 배우나 보구먼.”
노인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다른 곳도 아닌 화산파가 몰락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와, 진짜 모를 줄이야.
지금껏 대화가 엇갈린 이유가 진짜로 그 때문이란 것을 확인한 순간.
아! 설마…….
문득 하나의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 ‘쯧쯧’하고 혀를 찼다.
‘어쩐지 정보를 하나도 모른다 싶더니 뒷방으로 쫓겨난 늙은이였어.’
계속 떠오르던 의문들이 이제야 딱딱 해소되며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불쌍하네.’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면 뭐 하나.
같은 세가의 사람들에게 귀를 막히고 눈이 가려진 꼴이지 않은가.
“지금 화산파는 구파일방의 말석인데요.”
천휘는 아직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노인에게 진실을 알려 주었다.
평소보다 다정한 어투였다.
뒷방으로 쫓겨난 것도 불쌍한데 조금 친절하게 대해 주자는 마음이었다.
“무어라? 구파일방의 말석……?”
노인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천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그 말이 사실인가?!”
“제가 거짓말을 해서 뭐 하겠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물론 다시 올라갈 테지만요.”
뒷말을 덧붙였지만 화산파가 구파일방의 말석이란 말에 홀린 노인의 귀엔 그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화산파가……. 그들이 피워 낸 검화가 온 천하에 피어나고 검향은 모든 것을 삼켰거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을 보니 슬슬 안쓰럽단 생각이 들 때.
“헉!”
남궁진경이 정신을 차리며 벌떡 일어났다.
“소, 소도장!”
일어나자마자 천휘를 찾던 남궁진경은 노인을 발견하더니 흠칫했다.
“태, 태상가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