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Chapter 65 – 보드를 잘 타는 김 대리! (2)
“으어어.”
침대에 엎어지듯 드러눕자, 피로가 한순간에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들을 만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더기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다 보니 엄청나게 지쳐 버렸다.
다들 꽤나 중요한 직위를 맡은 사람들이기에 술을 마시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아서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방에 들어오니 긴장이 풀리며 취기가 쑤욱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몸이 나른해지며 순식간에 잠이 몰려왔다.
‘그래도 씻고 자야지.’
느지막이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드러누웠지만, 여전히 장 부장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술자리가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먼저 잔다고 뭐라고 하시진 않겠지.’
정훈은 TV 채널을 돌려 보다가 커튼이 걷혀 있는 베란다를 발견했다. 문득 바깥이 보고 싶어져서 베란다로 걸어 나왔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콘도와 호텔을 합쳐 놓은 듯이 꽤나 괜찮은 시설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펼쳐진 스키장이 시선을 훔쳤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말이 아깝지 않게 거대한 규모였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야간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조명은 아주 밝게 켜져 있었다.
내일부터는 정훈도 신나게 보드를 즐길 예정이다. 첫날은 예의상 이 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지만, 내일부터는 알아서 자유롭게 행동하면 된다.
취지 자체가 사원들이 즐겁게 놀고 또 먹을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물론, 정훈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도 로비를 하고, 치열하게 눈도장을 찍으며 업무의 연장선을 달릴 테지만, 아직 정훈은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다.
‘오늘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하루 동안 내 소개만 서른 번은 넘게 한 것 같으니까.’
창밖에는 홀로 나와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 야간 스키를 즐기러 가는 사람, 이미 즐기고 돌아오는 사람 등 다양했고, 정훈은 한동안 그들을 구경하다가 방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
“이얏호!”
정훈은 고급자 코스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틀며 신나게 보드를 타고 내려갔다.
혹시나 다른 사원들이 보드를 타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젊은 사원들의 대부분이 보드를 즐기러 스키장까지 나와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훈은 단연 눈에 띄는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에 큰외삼촌이 무주 스키장 리조트에서 장비 렌탈숍을 운영하고 있어서 겨울방학 때는 거의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정훈은 내려가던 중에 멈춰 서서 새하얗게 뒤덮인 광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때, 바로 옆에서 한 남자가 큰 소리로 정훈을 향해 소리치며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김 대리님! 먼저 갑니다!”
어제 만난 유호진 과장이었다. 어제도 보드 타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내려가는 모습만 봐도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승부욕이 끓어올랐다. 게다가 방금 전에 먼저 간다고 도발까지 했으니, 받아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죽었어.”
정훈은 고글을 내려 쓰면서 바로 밑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일반적으로 보드를 탈 때, 갈지(之)자를 크게 그리며 내려오지만, 정훈은 속도를 내기 위해 거의 일직선같이 아주 작게 좌우로 움직이며 내려왔다.
덕분에 먼저 내려간 유호진 과장을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의 옆을 지나가며 이번에는 정훈이 밝게 웃으며 똑같은 대사를 돌려주었다.
“먼저 갑니다!”
쌔애앵 바람 소리를 내며 내려가는 그 모습을 보자, 유호진 과장도 승부욕이 타올랐다.
‘질 수 없지!’
유호진 과장도 빠르게 속도를 내며 밑으로 향했다.
먼저 내려가며 여유롭게 속도를 늦추던 정훈이 뭔가 좋지 않은 기운에 슬쩍 뒤를 바라보자, 맹추격해서 다가오는 유호진 과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크.’
정훈은 속도를 늦추다 말고 다시 스퍼트를 내며 밑으로 향해 갔다. 화려한 기술보다는 속도를 내기 위해 몸까지 낮추며 빠르게 내려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내려가다 보니, 도착 지점이 보였다. 제일 밑에는 먼저 한 번 타고 내려왔던 회사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며 놀고 있었다.
슬쩍 뒤를 살폈을 때는 유호진 과장과의 거리는 꽤나 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승자는 세리머니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업다운 활강을 하며 내려가다가 공간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을 때, 보드의 탄성을 이용해 몸의 중심과 앞발을 뒤로 당기며 뛰어올라 낮게 도약했다가 안정감 있게 양발로 동시에 착지했다.
정훈은 사원들의 근처로 가되, 사람들이 거의 없는 쪽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도착 지점에 이르렀을 때쯤, 오른발에 힘을 팍 주어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왼발도 함께 들어 올리며 상체를 돌렸다.
정훈은 공중에 뜬 채로 휘리릭이라는 의태어에 알맞게 540도를 돌고 나서 뒤로 착지하며 빠르게 멈췄다.
“와아!”
“장난 아니다!”
순식간에 푸른 하늘 직원을 포함해 일반인들까지 정훈에게 시선을 집중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훈은 뿌듯함에 함박미소를 지으며 고글을 올렸다. 그 모습을 뒤에서 전부 보고 내려온 유호진 과장은 정훈의 바로 옆에 정지해 감탄했다.
“이야, 김 대리님 장난 아니시네. 보통 솜씨가 아니세요.”
유호진 과장을 보고 나서야 직원들은 정훈이 같은 회사 직원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 푸른 하늘이셨구나.”
“우와. 진짜 잘 타세요!”
구경 중이던 여직원들이 순식간에 정훈에게 몰렸다. 고급자 코스와 초, 중급자의 코스 도착 지점이 한 곳으로 몰린다는 게 이렇게나 뿌듯한 일이 될 줄이야.
“하하하. 감사합니다.”
“어디 쪽에 계시는 거예요?”
“처음 뵙는 얼굴인데, 단합회는 처음 오셨죠?”
정훈에게 순식간에 질문 세례가 퍼부어졌다. 보드도 잘 타는데, 얼굴도 잘생겼고 몸까지 좋으니 여심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그나저나 지금 여기 모여 있는 직원들은 상당히 젊었다. 젊은 사람 중에는 어제의 그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아, 저는 출판부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저는 영업 3팀에서….”
짧은 시간에 정훈은 여섯 여자와 통성명을 마쳤다.
유호진 과장은 정훈을 기다렸다가 함께 다시 보드를 타려고 했지만, 한참 지켜보아도 대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먼저 리프트를 향해 움직였다.
뒤늦게 정훈이 떠나는 그를 발견하고 불렀다.
“유호진 과장님, 먼저 올라가시게요?”
“네. 한 번 타고 내려올게요.”
“같이 가시죠.”
정훈은 여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죄송한데 저도 조금 더 타고 싶어서요.”
“다녀오세요~”
“이따가 저녁에 만나요!”
여자들과 인사를 마치고 정훈은 유호진 과장의 뒤를 따라가 함께 리프트에 탑승했다.
“인기 좋으시네요. 잘생기셔서 그런가?”
“하하하. 아닙니다. 유호진 과장님이 훨씬 더 잘생기셨죠.”
“맞습니다. 제가 좀 생겼죠. 하하하핫!”
“으하하핫. 역시 유호진 과장님 재미있으셔.”
고급자 코스는 높아서 한참 동안 리프트를 타고 가야 하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제부터 느낀 것이지만, 유호진 과장은 정훈과 잘 통하는 면이 있다고 느꼈다.
“아, 과장님. 제가 번호 찍어 드릴게요. 나가서도 자주 봬요. 술 한잔 같이 하시죠.”
“좋습니다.”
유호진 과장은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정훈에게 건넸다. 정훈은 번호를 찍어 유호진 과장에게 건넸고, 그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제 번호니까 저장해 두세요.”
“제가 보드 탈 때는 휴대폰을 안 가지고 다녀서요. 이따가 숙소에 가서 저장하겠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는 웃으며 홀로 번호를 저장하며 정훈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휴대폰 안 가지고 다니면 불편하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제가 보드 탈 때는 이런저런 기술을 사용하다 보니까 휴대폰 잃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여기서 잃어버리면 찾기도 힘드니까 그냥 아예 두고 다닙니다.”
“그러셨구나.”
둘은 다시 고급자 코스 위에 도착해서 나란히 섰다.
“이번에도 시합할까요?”
“에이, 김 대리님 아까 타는 거 보니까 보통 솜씨가 아니시던데. 못 이겨요.”
“유호진 과장님도 잘 타시던데 겸손하시긴. 하하핫.”
“김 대리님은 보드 따로 배우신 적 있어요? 거의 프로급이시던데.”
“아, 어렸을 적에 큰외삼촌이 렌탈숍 하셔서 겨울마다 탔거든요. 청소년 대회 같은 데에 나갔던 적은 몇 번 있어요.”
“오, 대단한 분이셨네.”
대회에 나간 게 끝이 아니라, 보드 부문에서 우승한 경력이 한두 번이 아니다. 스키는 몰라도, 보드는 어디 가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한 번 더 탈까요?”
“그러시죠. 이번엔 제가 먼저 갑니다!”
유호진 과장은 말을 마치자마자 먼저 고글을 쓰고 빠르게 내려갔다. 정훈은 그 모습에 씨익 웃으며 곧바로 뒤따라갔다.
“잡으러 갑니다!”
***
정훈과 유호진 과장은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1층 로비로 나왔다. 어차피 오후에 이어 야간 스키까지 탈 예정이기에 강행군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쉬엄쉬엄 컨디션 조절을 하고 나서 다시 갈 생각이었다.
“들어가시죠.”
“예.”
둘은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은 뷔페식으로, 역시나 고급진 음식들로 가득했다. 정훈은 고기 위주로 꾹꾹 눌러 담았다.
“과장님은 이따 저녁에 술자리 가실 건가요?”
“예. 그래야죠. 한 8시까지 보드 타다가 느긋하게 가서 윗분들 좀 만나면서 한잔할 생각입니다. 대리님은요?”
“저는 계속 보드 타려고요. 요즘 일 때문에 보드를 거의 못 타서 그런지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다른 분들 만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점점 편해지실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어색해서 밖으로 나돌았는데, 여기서 알게 된 분들은 어떻게든 다 회사에서 엮이게 되더라고요. 김 대리님도 곧 알게 되실 겁니다.”
“하하하. 그러겠죠. 그나저나 어제 술자리에는 젊은 분들이 거의 없던데, 스키장에는 되게 많던데요?”
“아, 일이 있으신 분들은 첫날부터 다들 모이는데, 젊은 직원들은 마지막 날 밤에 모이거든요. 모이더라도 이사님이나 전무님들이랑 같이 안 놀고 따로 나가서 한잔하곤 하죠.”
“그랬군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네요.”
“오늘 이따가 보드 타고 나서 주무시기 전에 한잔하러 오세요. 저희도 인사 좀 드리고 나서 젊은 사람끼리 따로 모여서 한잔할 예정이거든요.”
“그래요? 제가 너무 늦지 않으면 전화드리겠습니다.”
“꼭 그러세요.”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젊은 여자 직원들이 반갑게 다가오며 알은체했다.
“어머, 아까 스키장에서 보드 타시던 대리님 맞죠?”
“아, 네. 안녕하세요.”
아까 인사를 나눴던 그 여자들이다. 그 멤버에서 1명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와 있었다.
“옆에 앉아도 되죠?”
“네. 물론이죠.”
6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앉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친화력이 좋아 보이는 여성인 정사랑 대리가 정훈에게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김 대리님은 언제부터 보드 타셨어요?”
“중학교 때부터니까, 꽤 됐죠.”
“어쩐지 보통이 아니시더라.”
다행히 여직원들의 절반은 유호진 과장과 안면이 있는 사이인 데다가 정사랑 대리는 그가 소외되지 않도록 이야기의 균형을 잘 맞추며 대화한 덕분에 유호진 과장과 정훈 모두 기분 상하지 않고 좋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정훈의 식사가 마무리되어 가는 걸 본 여직원 하나가 정사랑의 옆구리를 꾹 눌러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다. 신호를 받은 정사랑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혹시 오후에 보드 더 타실 거예요?”
“예. 그러려고요.”
“저희 중에 보드 잘 타는 애가 없어서 그러는데… 혹시 시간 되시면….”
정사랑 대리가 묻기 전에 정훈이 시원하게 답했다.
“알려 드릴게요.”
“와, 정말요?”
“네. 어려운 일도 아니고, 이따가 같이 타면서 알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이, 잘됐다.”
이야기를 듣던 다른 여직원들도 정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정훈은 웃으며 마저 이야기했다.
“그런데 오후에 바로 가실 건가요? 저는 잠깐 쉬었다 갈 생각이라….”
“아니요. 저희도 차 한 잔 마시고 방에서 좀 쉬었다가 갈 거예요.”
“다행이네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사랑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내밀었다.
“번호 알려 주세요. 갈 때 연락해서 같이 가죠.”
“예. 그러죠.”
정훈은 바로 정사랑의 휴대폰에 그의 번호를 찍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