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몸 속에 흐르는 카페인
척 보기에도 귀엽게 생긴.
심지어 스스로 사고하며 말하는 기능까지 붙은 최첨단 인형이라고?
어린아이가 달라며 칭얼거릴 정도로 매력적으로 생긴 두 개의 늑대 인형.
그러나 귀염뽀짝한 생김새와는 달리 내뱉는 말은 흉흉하기 그지없다.
–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나. 덜떨어진 인간?
– 고개를 조아려라. 감히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유진이를 대할 때와는 180도 전혀 다른 까칠한 반응.
하긴, 그들 딴에는 제 주인인 유진 공주님 외에는 따를 이유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녀석들도 이건 몰랐을 거다.
“땍! 나쁜 말 못됐어!”
– 아, 아니. 이건 태초이시여!
– 건방진 인간은 미리 교육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빠한테 그런 말 못 써!”
– 허억!
– 그, 그런 관계셨습니까? 태초의 아버님께 이, 이런 실례를!
응, 너희 주인이 내 딸내미란다.
이제 좀 감이 오니?
X 됐다는 감이?
그런데 이 늑대들은 죄송합니다-만을 연발해도 부족한 판국에도 나쁜 입버릇은 고스란히 내뱉는다.
– 어……. 그런데 태초에게는 부모님이 없으실 텐데요?
“스우 너, 혼나야겠어!”
– 예? 방금 그 말은 하티가 했습니다, 태초여!
“고자질 나빠! 너도 혼나!”
– 예에? 부디 자비를! 으, 으아아악!
어려도 알 만한 건 다 안다고.
눈앞에서 벌어진 의도치 않은 패드립에 격노하는 공주님.
연대책임으로 회전 회오리 형에 처한 두 늑대 인형.
……근데 저건 그냥 인형 가지고 노는 거 아닌가?
하지만 멀리서 보면 단순히 놀이처럼 보여도 가까이에서 보니 늑대들은 엄청난 비극을 맞이하고 있었다.
– 우, 우우욱!
– 아이고 나 죽네!
“아직이야! 더 놀아야지!”
– 히이익!
– 사, 살려 주세요!
인형 상태에서는 많이 약화된 것인지 몰라도 가치가 150신용도나 되던 녀석들답지 않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그러나 인형들이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지치지 않는 체력의 에너자이저.
우리 강탈의 공주님께서는 아직도 여유만만이시다.
“그런데 혼내는 거 아니었나?”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몰라도 그저 ‘놀이’로 뒤바뀐 유진이의 훈육.
뭐, 버릇없는 늑대 인형들 따위 어찌 되든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오히려 쌤통처럼 느껴질 지경.
그렇지만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150신용도의 가치를 지닌 아이템에 깃든 늑대들이다.
‘빚을 지워서 나쁠 건 없지.’
나름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지성도 갖춘 늑대들.
은혜를 모르는 것이 아니고서야 빚을 안겨 두어서 나쁠 것 없을 터.
빠르게 머릿속에서 계산을 끝마친 진우는 회전 회오리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유진이를 말렸다.
“유진아. 그만하면 됐어. 괜찮아.”
“응? 그렇지만 더 놀아야 하는걸!”
“괜찮겠니? 유진이가 빨리 안 오면 음료수가 다 사라져 버릴 텐데?”
“어? 어어? 그건 안 되는데…….”
사막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사막이더라도 그렇게 빨리 증발될 일은 없겠지만 어린 아이에게는 달콤한 주스가 사라지는 것은 볼 수가 없을 거다.
“인형들은 잠시 내려놓고 자, 빨리 마시렴.”
“네엥!”
늑대들을 한 켠에 내려놓고 양손으로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유진이.
이렇게 보면 참 터프하기 짝이 없다.
뭐, 그건 그렇고.
이제 도와준 것에 대한 어필이 필요할 때다.
– 어지러워. 토, 토할 것 같아.
– 으으, 건방진 인간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계속 그렇게 말해도 괜찮을까? 유진이가 주스를 다 마시면 또 너희들이랑 놀려고 할 텐데?”
– 히, 히이익!
– 제발 그것만은!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잘해. 혹시 알아? 놀이 시간이 줄어들지.
– 평생 따르겠습니다!
– 오오오! 태초의 아버님이시여!
[스콜과 하티가 당신을 두 번째 주인으로 인정합니다.]그렇게 어필 겸 협박을 통해 두 늑대에게 인정을 받는 것에 성공한 진우였다.
* * *
진우가 숲속 게이트 한쪽에서 커피 농사를 보내고 있는 사이.
농장에선 한참 작업 중인 생명들이 가득했다.
꾸왁, 꾸와아악!
삐삐! 삐삐삐삐!
“허억. 어머, 너희들 정말 힘도 좋다. 얘.”
정신없이 뛰노는 팜오리와 녀석들을 따라다니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운다이르, 그리고 그 운다이르를 다루고 있는 유리 자이스.
제아무리 일반인들보다 체력이 좋은 각성자라고 해도 일단은 물의 정령사.
체력보다는 마력 쪽에 치중되어있는 능력치 덕분에 기운이 펄펄 넘쳐흐르는 팜오리를 일일이 따라다니는 것은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허나 노동의 여운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녀는 작업 좀 하러 가겠다며 사라진 진우의 빈 공간을 보곤 짐짓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자기애가 중증 수준인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미국에서는 출중한 용모 덕에 적지 않은 인기를 지닌 그녀다.
거리를 돌아다닐 때마다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과 기척을 느끼지 못할 리 없지 않겠는가?
“흐음.”
하지만 유독 자신과의 관계를 일반적인 비즈니스로만 여기는 진우의 행동.
“설마……. 에이, 아니겠지. 뭘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이미 수아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건가?”
동성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20대 중반의 나이라면 혈기도 적지 않을 텐데, 조금은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짝이 생겨 버린 걸까?
첫 만남이었던 강남 게이트 때도 그렇고, 진우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수아가 진우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정도는 진즉에 눈치챘던 그녀다.
같은 물의 정령사이기도 하고 비슷한 나이대로 인해서 언니 동생하는 자매 같은 사이가 된 정수아.
“그렇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단 말이야.”
허나 그건 그거고, 골키퍼가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겠는가?
아끼는 동생이 관심을 두고 있는 남자라 해도 순순히 포기할 유리가 아니다.
괜히 머나먼 땅인 미국에서 한국으로 찾아와서 오랫동안 머물겠는가?
드워프의 제작 의뢰는 일종의 명분일 뿐.
진짜 목적은 어디까지나 진우인 그녀.
“아무래도 드워프의 무구가 완성되려면 좀 더 걸릴 테니까.”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드워프가 작업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카페 건축으로 인해서 잠시 시간이 비었다.
그 기간 내에 유리가 어떻게든 진우와 관계를 좀 더 개선해 보려던 찰나였다.
깡- 깡-!
까앙-! 치이이이익-!
“휴우. 이보게. 부탁한 의뢰건 다 완료했어.”
“어엇? 버, 벌써요?”
“그럼 당연하지. 신화 등급도 아니고 전설 등급 정도쯤이야. 둘이 붙었으니 금방이지.”
“아아…….”
그녀도 예상치 못한 드워프의 빠른 작업 속도.
하기사.
이러니까 헌터 세계의 비대칭 전력으로 취급받는 것 아니겠는가?
“테일 뭐시기한테는 안부 잘 전해달라고. 아, 벌써부터 술 땡기는구만.”
“크흐흐, 부탁을 들어줬으니 드워프 맥주는 기본이지!”
“안주는 뭐가 좋으려나?”
그녀의 속도 모른 채 술판을 벌일 생각에 희희낙락하는 드워프들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미국 대통령이 직접 손수 의뢰한 물건.
일단은 제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은 전달하는 것이 옳다.
“톰 아저씨. 드워프한테 의뢰했던 건 완료 되었습니다.”
– 오오! 벌써 말입니까? 역시 드워프. 엄청난 실력의 대장장이분들이시군요. 전설 등급의 제작을 이렇게 빨리할 줄이야. 가문과 백악관에게는 금방 소식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건 그렇죠.”
자이스 가문의 입장도 생각한다면야 최대한 빠르게 복귀하는 게 우선일 터.
하지만 그녀에게도 방법은 있다.
“저, 그런데요. 아무래도 제 복귀가 좀 늦어질 것 같아요.”
– 예? 아가씨! 가,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해지는…….
“진우 씨랑 미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머무른다고 전달하면 위에서도 별말은 없을 거예요.”
– 흠흠, 그 부분도 함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특히나 그중에서도 테일 로렌트가 가장 원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김진우다.
귀화까지는 이어지지 않아도 미국과 돈독한 관계로 남게 된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이 또 없지 않겠나?
“후우, 힘내자.”
겨우 얻어 낸 시간.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눈을 번뜩였고,
“저 왔어요. 오리들이랑 같이 있느라고 힘드셨죠?”
“아뇨, 전혀 안 힘들었어요. 오히려 재미있었던걸요.”
때마침 타이밍도 좋게 도착한 진우까지.
위기를 기회로 바꾼 그녀의 기회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보게 진우! 작업 부탁한 거 다 끝냈어!”
“그러니 어서 드워프 맥주를 달라고!”
인간의 눈치는 조금도 보지 않고 칭얼대는 드워프들.
“…….”
어째 앞날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낀 유리였다.
* * *
기본적으로 전성과의 계약에 있어서 압도적인 ‘갑’의 위치에 있는 진우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력을 막 휘두를 정도로 모나진 않았다.
비즈니스.
무엇보다도 전성과는 이제 길게 가야 할 파트너십의 협력자이지 않던가?
“수아가 연 카페에 찾아가신다고요?”
“네. 카페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라는데 개업식 선물 정도는 챙겨 가면 좋지 않겠어요? 커피도 성공적으로 수확했고 말이죠.”
“예? 최근에 막 심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그런데 제 수확 속도는 아시잖아요?”
“그, 그거야 그렇긴 하죠.”
드워프도 그렇지만 새삼 느끼는 농부 진우의 수확 속도.
드워프가 대장장이 계의 비대칭 전력이라면 그야말로 진우는 농부계의 비대칭 전력이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현재 헌터 세계에 농부를 직업으로 지닌 각성자가 없다는 것 정도?
“그러고 보니 이제 유리 씨는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원래라면 그렇지만 동생 가게 정도는 들릴 여유는 충분해요.”
“그럼 더 좋죠.”
개업식 축하에 있어서 혼자 찾아가는 것보다는 둘이 낫고.
또 그 대상이 미인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카페에 칙칙한 농부 혼자 가는 것보다는 생기 넘치는 물의 정령사가 함께하는 쪽이 더 좋지 않겠는가?
“이봐, 진우! 드워프 맥주는?”
“거참. 매번 그렇게 술만 마시면 안 좋다고 했잖아요.”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 드워프의 혈액에는 술과 알코올이 흐른다고!”
뭐,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드워프들의 난동이 있긴 했지만, 드워프를 다루는 법 정도는 마스터해 버린 진우다.
“술은 오래 묵힐수록 더 맛있어진다는 거 몰라요?”
“맥주가 무슨 와인도 아니고. 왜 숙성시켜서 먹으려고 그래!”
“제 맥주는 조금 특별하신 걸 아실 텐데요?”
“그럼 기대해도 되는 거지?”
“절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좋아. 진우니까 믿어 보겠어!”
“진우면 인정이지.”
술에는 술로 상대하면 되는 법이라고.
드워프 맥주를 부르짖는 드워프들을 금세 진정시킨 진우.
이어서 그는 술이 아닌 다른 것을 선보였다.
“그래도 고생하셨으니까 숙성이 다 끝나기 전까지 이걸로 때우고 계세요.”
“응? 이건 뭔데?”
“척 보면 모르나요. 커피죠.”
“커피? 으으, 난 됐어. 난 숙성된 드워프 맥주나 마실 테니까 이건 너희들이나 먹어.”
“나도 사양하지.”
잔잔한 향을 머금은 커피.
커피 애호가들은 못 참을 향을 한가득 품고 있으나 술에 살고 술에 죽는 알코올 파답게 드워프들은 거절했다.
그러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던가?
고집 세기로 유명한 드워프라고 해도 진우의 제안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상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자신들의 입을 만족시키는 드워프 맥주를 제작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후회하실 수도 있으니까 한번 드셔 봐요. 이걸 마셔야 나중에 술맛이 오른다니까요?”
“크흠, 정 그렇다면야.”
“어디 한번 맛 좀 볼까?”
“유리 씨도 한잔하세요.”
“예? 저도요?”
“그럼요. 거절은 거절하겠습니다.”
고민 끝에 은은한 향의 커피를 드워프들의 입에 가져다 대는 것에 성공한 진우.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진우는 상상하지 못했다.
“오, 오오오!”
“이게 진정 커피라는 건가?”
“진우! 한 잔 더!”
“나, 나도!”
미미美味!
커피의 좋은 맛을 깨닫게 된 드워프들.
이제는 알코올을 넘어서 카페인까지.
다소 의도치 않게 드워프들의 혈액에 카페인을 흐르게 만든 진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