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축복이란 이름의 시한폭탄
“이게 정말로 사실인 거냐?”
“…….”
“사실인 거냐고 묻잖아! 새끼야!”
“그, 그렇습니다. 대장.”
뉴튜브 채널 영상에 떡하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하나의 영상.
영상 속 인물은 다름 아닌 자신과 김진우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영상 속에서 이창혁은 승자가 아닌 패자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장장이나 대기업이 이끌고 있는 생산직이나 평범한 길드도 아닌.
전투직이자 S등급 헌터 본인이 이끄는 혈석 길드다.
헌데 그러한 길드의 수장이 다른 누구도 아닌 생산직에게 먼저 검을 뽑아 들었음에도 패배한다?
이만큼이나 최악인 경우가 세상에 또 있을까?
그야말로 반박의 여지가 없는 수치.
처참한 것을 넘어 초라하게 벼락 찜질을 받은 뒤 통구이 같은 모습으로 쓰러진 이창혁.
그 모습은 제가 보기에도 너무나도 멍청해 보여 어이가 없을 정도.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모습이 뉴튜브를 통해 전 세계 방방곡곡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후우…….”
핸드폰을 열자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다.
대부분이 광고, 혹은 경호 인력으로 맺은 계약 파기를 요청하는 내용이었으며, 위자료까지 청구하는 곳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필요할 때는 간이고 쓸개고 내줄 듯이 행동하던 것들이!”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슈퍼 갑이었던 혈석 길드였으나 한순간에 완전히 나락을 찍게 되었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은 자신이 화를 참지 못한 탓에 발생한 일이었으니 누굴 원망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걸 빠르게 인정할 정도의 관대함이 있었더라면 경매장에서 칼을 빼 드는 미친 짓도 하지 않았을 터.
빠드득-!
분노의 이갈이와 함께 길드원들에게 증오 어린 시선이 향했다.
거기에는 책망하고자 하는 감정이 숨김없이 담겨 있었다.
“너희들. 어떻게 된 게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일 처리도 제대로 못 해?”
“그, 그럴 리가요 대장. 사울 경매장 측에 얘기해서 원본 영상은 확보 후 확실하게 폐기 처분했다고요.”
“그럼! 그러면 이건 뭔데?”
“……아마 올린 영상의 내용을 보건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미리 찍고 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매장 측의 CCTV 영상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찍고 있던 영상이라고?
말도 안 된다.
깔끔한 화질을 비롯하여 영상에 고스란히 담긴 전투 장면들.
흔들림도 없는 것으로 보아 바디캠은 당연히 아니다. 또, 경매장의 것도 아니라고 했으니 미리 카메라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창혁은 눈을 크게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설마 이 모든 게 녀석의 계획이었단 말인가?”
이창혁이 노리던 경매장의 물품을 모두 싹쓸이한 것도, 분노한 그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달려들 것이라는 것도.
전부 예상한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이창혁이 리샤오링.
즉, 중국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대놓고 떠들어 대긴 했다지만,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이 구매하려는 상품들을 전부 채갈 정도면 미리 알고 있었던 게 아닌 이상 결코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 촌놈인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히 천년 묵은 능구렁이 아니야?”
20대 중반의 나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솜씨와 책략.
심지어 자신이 일방적으로 패배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영상을 업로드한 이후 꿀벌들의 군무를 라이브 방송에서 보여 주며 자극적인 맛을 완화하는 등.
착실하게 구독자를 늘려 나가는 모습까지.
“하, 하하…….”
뉴튜브 영상으로 이미지가 나락을 찍게 된 것? 툭 까놓고 말해서 상관없다.
타격이 없진 않으나 애초에 한국 시장은 혈석 길드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진정 돈을 벌고자 한다면 큰물인 대륙이라는 수단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 큰물인 중국에게 좋지 않은 꼴을 먼저 보이게 된 데다가 전력 증강을 위한 아이템 구매도 전부 다 실패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제아무리 뉴튜브가 불법인 중국이라고 해도 자신이 농부 따위에게 당하는 영상은 이미 리샤오링에게 보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진정으로 X 됐음을 분조장인 이창혁이라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우웅- 우우웅-!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이창혁이 깨어났음을 알아채고 걸려 온 국제전화.
발신자는 리샤오링일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애초부터 가망이 없는 한국에서도 바닥을 찍은 혈석 길드에게는 그나마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동아줄이다.
“다들 밖으로 나가 있어.”
“아, 알겠습니다.”
부디 썩은 동아줄이 아닌 금 동아줄이길 바라는 심정으로 이창혁이 통화를 수신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만두는 게 좋을걸? 그놈들이랑 손 잡아 봤자 좋은 꼴 못 본다.”
“김장혁? 네 녀석 살아 있었나……?”
바람처럼 언제 병실로 찾아든 것인지 모를 인물.
전 질풍 길드장 김장혁의 모습에 이창혁은 귀신이라도 본 듯 두 눈을 끔뻑였다.
* * *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는 말.
그것은 헌터계에도 당연하게 존재하는 현상이다.
같은 대형 길드면서도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일상이었던 혈석과 질풍 길드.
그나마 차이점이 있다면 혈석은 중국과, 질풍은 일본과 붙어먹었다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장혁과 이창혁은 서로 어색하거나 소원한 관계는 아니었다.
끝 이름이 ‘혁’ 자 돌림인 것도 그렇고, 돈을 추구하는 성격, 그리고 수호 길드인 진아영과 사이가 안 좋다는 점까지.
서로의 이해관계가 비슷했기 때문일까?
질풍 길드가 몰락하던 당시 김장혁을 잡기 위해 날뛰던 다른 대형 길드들과는 달리, 혈석 길드는 어디까지나 잡는 흉내만 냈을 뿐이었다.
결국 김장혁에 대한 소식이 완전히 끊기자 그가 사망했으리라고 어림짐작했던 이창혁이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들 어디까지나 그뿐이기도 했다.
“참견하지 말고 떠나라. 지금 네 놈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으니까.”
아무리 김장혁이라고 한들 남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왈가왈부는 할 수 없을 터.
허나 그도 생각 없이 찾아온 건 아니었다.
“장담하건대 네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순간 혈석은 당연하고, 너는 죽는다.”
“그게 뭔 헛소리야?”
“연금 협회가 인체 실험을 진행했던 건 알고 있겠지?”
“하! 그놈의 음모론을 믿냐? 설령 인체 실험이 존재했다 해도 윗대가리인 리치가 주도한 일이잖아. 그리고 어차피 죽었으니 끝난 거 아닌가?”
“머리가 죽었다고 해서 중국이 작업을 끝낼 것 같지는 않던데?”
“설령 인체 실험이 가능하더라도 난 S등급 헌터야. 쉽게 건들 수 없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 덕분에 남의 명령을 따르는 인형 같은 게 되었었지만.”
“…….”
다른 누구도 아닌.
직접 인체 실험을 경험해 봤던 김장혁의 말이다.
“이해가 안 되는군.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말하는 거지?”
“그야 너도 추태를 겪었으니까?”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 네 성격에 자신의 추태를 밝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크흠, 물론 나도 다 사정은 있지. 인형에서 벗어났다곤 해도 족쇄가 사라진 건 아니라서 말이야.”
“그게 무슨…….”
“그런 건 됐고 자, 다음은 이 녀석이랑 얘기해 보는 게 어때.”
후웅-!
그리고 자연스럽게 뒤바뀐 핸드폰의 영상 속 인물의 모습에 이창혁의 두 눈은 다시금 시뻘겋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으니,
“네, 네 놈은……!”
– 반갑습니다. 우리 구면이죠?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 괜찮으시겠어요? 이제 그쪽 목숨은 제 선택에 달려 있는데? 각성자 자격도 잃고 싶으신 거라면 특성창을 한번 확인해 보시죠. 거기에 ‘대지모신의 축복’이라는 폭탄을 설치해 뒀으니까.
“나한테 그런 특성은 없으니 목 씻고 기다리고 있어. 다음에는 반드시 죽일 테…… 어?”
– 어때요, 있죠?
“…….”
이창혁 본인은 물론이요,
혈석 길드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보내 버린 장본인.
영상 통화 속 김진우는 상인다운 사악한 미소와 함께 이창혁을 맞이했다.
* * *
‘선지자를 향한 대지모신의 축복’.
‘대지모신의 축복’에서 강화된 특성에 걸맞게 그 효과는 ‘대지모신의 축복’에서 업그레이드 버전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땅의 정령뿐만이 아니라 다른 속성의 정령들과의 친화력도 상승시켜 주는, 실로 어마무시한 효과.
게다가 4대 속성뿐 아니라 이제는 어둠의 정령까지.
무려 다섯 종류에 달하는 정령들을 문제없이 다루게 만들어 준 것에 이 특성의 힘을 빼놓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강력한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인위적인 각성의 촉매 역할’이다.
일반인을 각성시키기도, 이미 각성한 존재에게 특성 ‘대지모신의 축복’을 부여해 줄 수도 있는. 가히 사기적인 힘.
워낙 강력한 효과 덕분인지 사용 시 ‘3에 달하는 체력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소모해야 한다’는 패널티가 있었지만, 지금의 진우에게는 그리 큰 타격도 아닐뿐더러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회수도 가능했기에 큰 패널티로 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특성의 회수는 곧 각성자의 자격 박탈이라는 게 크지.’
따로 실험해 보진 않았어도 대지모신에게 직접 문의한 뒤 확신하게 된 내용.
이것은 타인을 각성시키는 능력을 축복이 아닌 폭탄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달리 말하자면 언제든 진우가 원하는 타이밍에 폭발이 가능한 시한폭탄으로서 변질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
그렇게 앗아 가는 것은 무려 각성자로서의 힘 그 자체!
‘이미 한 번 각성을 맛봤는데 일반인으로는 죽어도 못 돌아가지.’
포브스 선정, 각성자가 가장 많이 꾸는 악몽은 일반인이 되는 공포라고 했다. 이는 S등급 헌터라고 해도 비슷할 터.
물론 이런 시한폭탄을 설치할 때 아무런 조건 없이 행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은 몰라도 각성자의 경우에는 승낙이 떨어져야 가능한 일.
허나 해당 조건이 유효한 건 어디까지나 대상의 의식이 남아 있을 경우였다.
기절한 상태.
그래, 예를 들자면 전기 찜질을 받고 통구이가 된 이창혁이었다면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부여가 가능했다는 말씀!
“그래서 제가 전달해 드린 선물은 마음에 드시나요? 무려 땅의 정령을 다룰 수 있게 된다고요?”
– 하,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광전사인 나에게 이따위 특성은 필요도 없다.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폭탄이라고 했잖아요? 굳이 사용하지 않으셔도 제가 조작하면 될 일이라. 참고로 폭발하면 목숨은 멀쩡해도 직업은 날아갈 거예요.”
– ……뭐, 뭣? 그게 무슨?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말씀드리자면 일반인이 되는 거죠.”
– 자, 장난치지 마라. 헌터 역사상 도중 일반인이 되는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죠. 인위적으로 일반인을 각성시키는 것도 제가 최초이긴 했을 테니까요.”
– …….
이쯤 되면 아메바가 아닌 이상 이해할 수밖에 없을 거다.
“제가 왜 그쪽을 죽이지 않고 살려 놨는지 이제 좀 깨달으셨을까요?”
이미지가 나락을 갔다고는 해도 S등급은 S등급이다.
전성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경제력. 그리고 수많은 길드원을 통해 하루에도 적지 않은 몬스터의 부산물 확보가 가능한 대형 길드.
그곳의 수장을 노예로 받아들였으니 남은 건 뻔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잘 부탁할게, 이 사장.”
– …….
드루이드와 농부에 이어 이제는 노예 상인의 재능도 싹틔운 진우였다.